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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59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5.15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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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1화

DUMMY

“아저씨 몇 살이에요?”



오원우는 계속 떠든다. 트럭 속도를 80으로 올렸다.



“서른다섯이요.”


“전 스물하난데 재수해가지고 올해 입학했거든요. 대학교요. 자취하려고 원룸 들어갔는데 엄마가 반찬을 해주셨어요. 근데 좀비 나오고 나서 연락이 안 되더라고요. 반찬 볼 때마다 엄마 생각나서 하나도 못 먹었어요. 저 장조림 좋아해서 그거 해주셨는데······.”



엄마랑 친했나 보네. 난 부모랑 친했던 기억이 없어서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다.



“엄마도 좀비 됐겠죠······? 아저씨는 기분 어땠어요?”


“언제요?”


“아버지 좀비 되셨다면서요.”



좀비가 된 아버지를 처음 봤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잘 모르겠다. 생각이 안 나.



“다 지나가요.”


“지나간다고요?”


“아무리 힘든 일도 다 지나가요.”


“······.”



스트레스가 심하면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하던데 그게 원인인 것 같다. 엄마가 어딨는지도 모르는 오원우보다는 내 사정이 더 나은가. 그렇다고 해야겠지. 난 마음만 먹으면 아버지 무덤에 갈 수 있다.


아버지를 목검으로 때렸을 때 손에 느껴졌던 진동은 기억난다. 짧고 강렬했다. 뼈를 부러뜨렸다는 걸 알 수 있는 감각이었다. 난 그 순간을 위해 목검을 만들었던 게 아닐까. 이 생각이 아직도 든다.



“아저씨······검도 하셨어요?”


“아뇨.”


“그럼 목검은 그냥 인터넷으로 사셨어요?”


“제가 만들었어요.”


“진짜요? 파는 물건인 줄 알았어요. 아 원래 그쪽에서 일하셨어요? 목수?”


“아뇨······.”



조금만 더 길게 대답해줄까.



“태어나서 처음 만든 거고 목공은 안 해봤어요.”


“태어나서 처음이요? 근데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요?”



그냥 만든 거지 뭘 어떻게 만들어.



“저도 하나 갖고 싶은데 만들어주시면 안 돼요?”



직접 해라······.



“가르쳐주셔도 돼요. 배울게요.”



좀 낫네. 난 목검 깎아주는 아저씨가 아니란다. 자기 무기는 직접 구하렴.



“일 년 걸려요.”


“일 년이요? 왜 그렇게 오래 걸려요?”


“나무 말려야 해서요.”


“그럼 마른 나무 구하면 되겠네요?”


“너무 마른 건 약해서 안 돼요.”


“아 적당히 말려야 되는구나. 아무 나무나 쓰면 안 되죠? 아저씨 목검은 무슨 나무예요?”


“감태나무요.”


“그게 무슨 나문데요?”


“지팡이 만드는 나무요.”


“아 노인분들이 짚고 다니는 그거요? 감태나무라고 하는구나.”



배우려는 의지는 있다. 잘 만들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근데 그냥 쇠파이프 쓰는 게 훨씬 나을걸. 아니면 철판 잘라서 마체테라도 만들거나. 그래도 하다 보면 손재주라도 늘겠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목검 만들던 시절에 알아봤었는데 벼락 맞은 감태나무가 제일 좋다고 한다. 나무에 철분이 많아서 전기가 통하면 더 단단해진다나. 철분 때문에 벼락을 잘 맞기도 하고. 시커멓게 얼룩 있는 지팡이가 그런 나무로 만든 물건이다. 근데 그냥 토치로 구워서 색깔만 내기도 한다. 감태나무를 구우면 고소한 냄새가 난다. 식용으로도 쓴다던데 한번 시도해볼까? 작두로 납작하게 자르고 말려서 차로 우려내면 되겠지?


군부대로 돌아왔다. 다른 짓 하지 말고 앵커만 챙겨서 나가자. 창고 바로 앞까지 들어가 차를 세웠다.



“저희 전투식량도 가져갈까요? 식량 많으면 좋잖아요.”


“나중에요. 앵커만 가져가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와서 다 가져가면 어떡해요?”


“가져갈 사람 없어요. 다 죽었어요.”



오원우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딴 거로 말싸움할 시간 없어. 앵커를 포함해 잡다한 게 가득 들어있는 더플백을 트럭에 실었다. 큰 망치도.


막사 창문에 누가 잠깐 보였다. 좀비인가? 불안하네. 머뭇거리는 오원우를 차에 태우고 군부대를 떠났다.


부대에 굴러다니는 해골도 조만간 싹 정리해야겠어. 그래야 루팅할 때 안심이 되지. 근데 밖에 있는 해골은 뭘까? 낮에는 안으로 들어갈 텐데. 뼈가 부러져서 못 움직였나? 무연이 한번 갔었으니까 그때 당했나 보네.


원우가 노래를 부른다. 누구 노래인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못 부른다. 그래도 노래방 기계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스트레스 풀기 좋잖아.



“노래방에서 노래방 기계 가져올래요?”


“네! 저 노래 좋아해요. 코노 자주 갔어요. 아저씨는요?”


“못 불러요. 음악 듣는 건 좋아해요.”



코인 노래방이나 그냥 노래방이나 기계는 똑같겠지? 그냥 보이는 대로 들어가서 뜯어내야지. 오늘은 말고.


김수진, 박가람, 김은태는 맡은 일을 다 끝내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남는 시간에 각자 필요한 물건도 좀 구했다고 했다. 신발이나 옷 같은 거.



“오셨네. 얼른 끝내고 갑시다!”



철조망에 앵커를 걸어 깊숙이 박았다. 코끼리도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철근이 튼튼해.


원래 이 앵커는 인계철선을 칠 때 쓰는 물건이다. 방울 달린 줄을 쳐서 누가 건드렸을 때 소리가 나게 하는 거다. 아니면 폭탄에 연결해서 함정을 만들거나. 집이랑 펜션 주변에 쳐두면 되겠네. 좀비는 이런 거 피할 줄 모르니까 바로 소리 나겠지.


생각난 김에 집에 가자마자 해뒀다. 다른 사람들도 날 따라 했다. 차 드나드는 길만 남기고 빈틈없이 줄을 쳤다. 별것 아니었지만 만족감이 컸다. 훨씬 안전해진 느낌이야.


그리고 걱정했던 대로, 남자들은 총기 손질을 할 줄 몰랐다. 교범 가져왔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생각해 보니까 옛날에 동원훈련 할 때도 분해결합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어. 기억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K1은 누구 거예요?”



김수진이 기관단총을 들고 말했다.



“제 거요.”


“현역 때 이거 쓰셨어요?”


“아뇨. 그냥 새거라서 가져왔어요.”



남자들끼리 군대 얘기를 시작했다. 난 그쪽에 좋은 기억이 없다. 군 생활도 사회생활도, 그냥 인생 전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빠졌다. 기관단총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닭장을 확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지네가 마중 나왔다. 벌레인데도 마중을 나오니까 반갑다. 들어서 어깨에 올려줬다.



“누가 괴롭혔어?”


“아니.”


“이제 다 친구야?”


“아직 아냐.”



늘어지게 자던 동동이도 거실로 나왔다. 총을 보관함에 넣어두고 소파에 앉아 쉬었다. 계획대로 잘 마무리했다고 무연한테 말해주러 가야 하는데 귀찮아. 밤 되면 알아서 사람들이랑 얘기하겠지? 생각해 보니까 오늘 운전만 네 시간 넘게 했네. 그럼 당연히 피곤하지. 운전이 재미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도로에 다른 차 없으니까 스트레스도 안 받고.


뜻밖에도 여자들이 저녁밥을 준비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신서윤이 카레를 가져왔다.



“아저씨 표정 왜 그래요? 카레 싫어해요?”


“아뇨. 잘 먹을게요.”


“같이 먹어요! 제 것도 가져왔어요.”



단둘이 먹자고? 다른 남자도 많은데 왜 자꾸 나한테 들이대는 거야? 얼굴만 보면 박가람이 제일 낫지 않나?



“그러세요.”



1층에서 먹기로 했다. 부실한 재료로 최선을 다한 카레다. 파 기름을 내서 재료를 볶아 만들었다. 양파도 있었구나. 설마 다 쓰진 않았겠지? 심어서 키워야 하는데.



“아저씨 밭에 파 좀 썼어요. 허락 안 받아서 죄송해요.”


“씨앗 구해서 그쪽에도 심으세요.”


“그러고는 싶은데 키우는 법을 몰라서요.”



농사 책을 아직도 못 찾았어······. 좀 무리를 해서라도 손에 넣어야겠다. 도서관을 닥치는 대로 뒤지는 수밖에 없다.



“저도 농사 안 해봐서 잘 몰라요. 농사책 찾아야 해요.”


“도서관에 있겠죠? 같이 찾으러 가실래요?”



큰 도시는 몰라도 읍내는 괜찮겠지.



“달리기 잘하세요?”


“아, 아뇨. 좀비 나오면 어떡해요?”


“밝은 데로 도망치세요. 큰 소리 내지 마시고요. 옷이랑 신발도 필요하시죠?”


“네. 아직은 괜찮긴 해요.”


“운동화 여러 개 구해서 매일매일 바꿔 신으세요.”


“왜요?”


“새 신발 신으면 불편하니까요. 골고루 길들여놔야죠.”


“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맨날 신는 것만 신잖아. 근데 매일매일 바꿔 신으면 매일매일 불편한 거 아냐? 그래도 일주일 정도면 길이 들겠지?



“근데 아저씨 진짜 원래 무슨 일 했어요? 진짜로 백수였어요?”


“네.”


“근데 이런 건 다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그냥 하는 건데요.”


“아니 세상에 그냥이 어딨어요? 아저씨 사실 특수부대 출신이죠? 정체 밝히면 안 돼요?”



멋있긴 한데 아니라고.



“좀비 영화 좋아해서요.”


“아 영화로 배우신 거였어요? 근데 우리나라는 좀비 영화 거의 없잖아요. 아시는 거 있어요?”


“있긴 있는데 별로 참고는 안 돼요.”


“그럼 추천하는 좀비 영화는요?”



잠깐만 이거 영화 같이 보자고 이러는 것 같은데. 이러다 아주 DVD방까지 가서 물고 빨고 다 하겠다? 근데 DVD 구해오는 건 괜찮은 것 같다. 노래방 말고도 오락이 필요해.



“새벽의 저주요.”


“그렇게 고민하실 정도면 진짜 괜찮은 영환가 보다. 몇 년도 영화예요?”


“그건 모르겠어요. 옛날 영화긴 한데 지금 봐도 재밌어요.”


“흑백이에요?”


“아뇨.”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흑백인데 그건 어딜 가도 못 구할 것 같다. 나도 대학교 강의로 접했다. 흑백이라는 게 오히려 신선해서 재밌게 봤었다.



“카레는 어때요?”


“맛있어요.”


“아 다행이다. 재료 너무 없어서 제대로 못 만든 줄 알았어요.”



양파만 오래 볶아서 끓여도 맛있는 게 카레다.



“요리 자주 하셨어요?”


“네! 요즘은 다 사 먹잖아요? 아 요즘이 아니라······아무튼 사 먹으니까 되게 부담되더라고요. 물가 진짜 장난 아니었잖아요. 몇 번 해먹어 보니까 생각보다 쉽데요? 그래서 거의 집에서 해먹었어요.”



나와 같군.



“아저씨도 요리 하시는 것 같던데 집에서 해드셨어요?”


“네. 해 먹는 게 훨씬 싸요.”



무너진 영양 밸런스는 약으로 때우면 되고. 뭐가 내 다리를 건드렸다.



“동동아-! 잘 있었어?”


“······오옹.”



신서윤은 밥 먹다 말고 고양이랑 놀기 시작했다. 털 날려······.


자정 전에 무연이 좀비를 보고 왔다. 낮에 초등학교에 모아놨던 거. 검은 덩어리가 붙어 되살아났다고 했다. 좋게 보면 좋고 나쁘게 보면 나쁘다. 이제 좀비를 함부로 불태우면 안 된다. 부정 제거에 이용해야 한다.



“이 주변 10km 일대를 안전지대로 만들고 싶습니다. 영주시까지 포함입니다.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해야죠.”


“도시엔 괴물 나오잖아요! 그냥 도시 포기하고 이대로 살아요!”



이번에도 오원우다. 겁쟁이라고 욕할 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 분위기도 똑같으니까. 지옥이 된 서울에서 목숨 걸고 탈출한 사람들이다. 강요하긴 힘들어. 나 혼자서라도 하자. 방심하고 놔뒀다가 여기까지 지옥이 되는 건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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