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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52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4.3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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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화

DUMMY

텃밭 만드는 건 쉬웠다. 비닐하우스 흙바닥을 적당히 파내고 비료를 채웠다. 포장지에 나온 대로 씨앗을 심고 물도 흠뻑 줬다. 밖에 돌아다니는 닭이 씨앗을 쪼아먹지 못하게 문을 잘 닫아뒀다.


어묵 꼬치에 폭죽도 달았다. 횃불을 왼손으로 들 거니까 폭죽은 가방 오른쪽에 달자. 고무줄로 묶었다. 콩알탄은 전대에 보관했다. 바지 주머니는 안 된다. 땀에 젖는다. 유인용으로 쓸 막대 폭죽은 가방에 넣었다.


쉬엄쉬엄해서 시간이 잘 갔다. 저녁밥 먹기 전에 계곡에 통발을 담그고 왔다. 페트병으로 만든 통발. 송사리가 잡힌다. 차 타고 조금 나가면 강에서 낚시도 할 수 있다. 근데 낚시를 안 해봐서 자신이 없다. 낚싯대도 찾아야 하고.



“낚시해봤어요?”


“낚시도 해봤고 사냥도 해봤다. 보니까 덫 걸려있던데 그거나 한번 놔봐라. 멧돼지 저번에 봤잖아.”



아 그렇지 덫. 멧돼지가 나왔던 곳까지 차를 몰았다. 동물이 길 뚫은 흔적이 눈에 잘 보였다. 강철 줄을 매단 덫에 걸리면 곰도 못 도망친다. 덫을 놓은 다음 고구마를 잘라 길목에 뿌려놨다.



“근데 살생은 죄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사람이 살려면 다른 생물을 먹어야지. 그게 불가피잖아. 멧돼지 말고 다른 거 잡아먹는다고 뭐 다르겠냐.”


“죄를 안 짓고 살 수는 없겠네요?”


“그렇긴 한데 죄가 다 똑같진 않아. 네가 전에 얘기했던 그, 부동산으로 여러 사람한테 사기 치는 그런 게 진짜 악질이다. 심한 고통을 많은 사람한테 줬으니까.”


“그런 사기꾼이 인면지네 돼요?”


“무조건은 아닌데 꽤 많아. 사람 형상이 아닌 건 동정할 가치도 없는 것들이야. 죽이고 싶으면 죽여도 돼.”


“저주받으면 어떡해요?”


“네가 죽여서 고통을 줄여줬으니까 저주 안 하지.”


“고통이 어떻게 줄어드는데요?”


“죄에 따라 다른데, 일반적으로는 사람 형상으로 돌아가서 남은 부정을 씻어내. 훨씬 편해진단 뜻이다, 상대적으로. 그러니까 저주도 안 해.”


“저주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예요?”


“그런 놈들이 너한테 들러붙으면 그게 저주야. 내가 이러고 있는 거랑 똑같아. 근데 그놈들은 부정 탄 혼이니까 나쁜 일이 일어나.”


“그럼 굿 같은 거 해서 떼어내야 해요?”


“그렇지. 화기로 떨쳐내도 되고. 쑥뜸을 한다거나, 태양초로 만든 매운 음식을 먹거나 찜질방 가도 돼.”


“사격장에서 총 쏘는 건요?”


“그것도 돼. 어지간하면 달아날 거야. 그리고 지금은 내가 붙어있잖아. 저주 같은 건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


“아 그러니까 제가 화기를 쓰면 최 도령이 도망친다고요?”


“아니, 그건 부정을 심하게 탄 혼일수록 화기에 약해서 그런 거고 난 별로 상관없지. 귀신이라도 사람 모양을 하고 있으면 괜찮아. 말까지 하면 더 괜찮고.”


“사람 모양인데 위험한 경우는 없어요?”


“있긴 있어. 일본 귀신이 그래. 별 이유도 없이 산 사람한테 해코지하는 미친놈들이 있다더라. 그럴수록 자기가 더 힘들어지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오후엔 진짜로 쉬었다. 시원한 꿀물을 타서 그늘에 앉아 마셨다. 요즘 시골에선 벌을 많이 키운다. 쉽게 돈 버는 방법이라 인기가 많다. 그런 거 해본 적 없는 나는 그냥 집에 있는 꿀을 먹었다. 닭한테도 꿀물을 줘봤는데 생각보다 잘 먹었다.



“다른 세계 저승 얘기도 해주세요.”


“아 좋지. 자세히는 나도 모르니까 적당히 해줄게. 일단 우리나라부터 좀 설명을 해야겠다. 이승이랑 비슷해. 나라도 있고 관청도 있고 공무원도 있어. 내가 공무원이야.”


“좀 암울한데요.”


“돈 때문에 일하는 것도 아닌데 암울할 게 있냐? 일하는 거 자체가 보람이지.”


“아무 보상 없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에 직접 도움이 되잖아. 그게 보상이야.”


“그러네요.”


“좋은 뜻으로 일하니까 분위기도 좋아. 너도 마음에 들걸.”


“왜 제가 같이 일할 것처럼 말해요?”


“벌써 하고 있잖아.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나 도와주는 거 아니냐?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왜 도와주고 있어?”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요.”


“하하하! 그래야 인프제지.”


“다른 나라 얘기도 해주세요.”



최 도령이 비교해서 설명하다 보니 자꾸 우리나라 얘기로 돌아왔다.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저승사자 말을 잘 듣는 편이라 크게 힘들지 않다고 했다. 웬만하면 자기 장례식 보고 바로 떠났다. 하지만 종교 믿는 사람은 거부할 때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죽은 날부터 최대 49일까지 머물러도 돼. 마음 정리할 시간을 주는 거야. 아무리 신앙심이 강해도 49일 안에 설득이 되지. 뭐 어쩌겠어? 49일 동안 천사가 안 오는데.”


“저승사자는 진짜 공무원이네요. 민원 받아주기 힘들겠어요.”


“그냥 사람도 아니고 죽은 사람 상대하는 거니까 힘들지. 그래서 말 듣고 따라와 줄 때 보람도 크다고 하더라. 반면에 중국은 귀신이 너무 많아서 전쟁을 벌여.”


“전쟁이요?”


“이상하지? 중국에 친구가 있었는데 의외로 괜찮다더라. 귀신이 아무리 많아도 감당이 되거든. 괴물도 알아서 치우고. 부정만 씻어내면 사실 과정은 어떻게 해도 상관없어.”


“전쟁하는데 부정이 씻겨요?”


“전쟁터에 다 쏟아내는 거야. 전쟁은 남고 귀신은 가고.”


“그래도 죽으면 무조건 전쟁하러 가는 거네요. 별로예요.”


“나도 그래. 의외로 괜찮다는 거지, 따라 하고 싶진 않다.”



나랑 상관없어서 그런지 흥미로운 해외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미친놈들이 좀 있다고 그랬잖아. 걔들만 잡는 특수부대가 따로 있어. 우리나라처럼 중앙집권식인데 각 지역 관리는 토지신이 하고, 미친놈 나왔을 때 토지신이 중앙에 요청하면 특수부대를 보내줘.”


“토지신이 뭐예요?”


“신사에 머무는 신. 이름만 신이고 그냥 마을 이장 같은 거야. 일본은 사람이 죽으면 토지신이 처리해. 그래서 저승사자보다는 힘이 좀 있는 편이지.”


“우리는 특수부대 없어요?”


“있지! 착물갑사라고 괴물 사냥 부대 있어. 발목귀신 기억나지? 저승엔 그런 게 항상 나와. 창피한 얘기긴 한데 우리나라가 사기꾼이 많잖아. 부정이 금방 고여.”


“그럼······중국은 괴물이 나와도 전쟁에 치여서 바로 없어지고, 일본은 사람 귀신이 괴물로 되는 거네요.”


“그렇지. 우리나라가 제일 평화로워. 사람들이 다 착해. 얼른 예전으로 돌아가야 하는데······큰일이다, 진짜.”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죽은 사람이 너무 많다. 최 도령이 그것도 모르고 한 말은 아닐 거야. 지금 당장 이 악몽이 끝난다 해도 회복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절에서 아무 단서도 못 찾으면 그땐 어쩔까. 어쩌면 그냥 자연재해일지도 몰라. 지구에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어디선가 균형이 깨져서 와르르 무너진 거지.


저녁은 비빔국수를 먹었다. 채소 없이 국수에 양념장만 넣어 비벼 먹었다. 자극적인 게 맛있었다. 밥 먹은 후엔 창고에서 찾아놨던 안전모를 내 머리에 맞춰놨다.


새벽이 되기 무섭게 잠에서 깼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땐 저절로 깨는 편이다. 평소에도 늦잠자지만 않으면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다. 단단히 준비하고 차에 올랐다. 절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리고 좀비들은 그새 더욱 약해져 거의 방해가 되지 않았다. 대부분 쓰러져 있고, 걷는 놈들도 휘청거렸다.


예전에 이 절에서 김장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처음 왔지만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대웅전 찾아봐. 석가모니 모신 곳이야. 보면 바로 알 거야.”



들어가는 길에 있는 안내도를 폰으로 찍어뒀다. 대웅전은 중간쯤에 있었다. 절인데 건물들이 하나같이 콘크리트로 기반을 다졌고 크기도 컸다. 관광지 같았다. 대웅전도 마찬가지였다. 스님 좀비들은 저 위쪽에 모여 있었다. 저쪽이 식당이던데, 스님도 밥이 먼저구나.



“허이구야······.”



대웅전에 들어가자마자 최 도령이 탄식했다. 불상 머리가 잘려있었다. 모든 불상이 그랬다.



“누가 이랬는지는 몰라도 상황이 흉흉하게 돌아가는 것만은 틀림없다.”



잘린 단면을 살펴봤다. 아주 뜨거운 뭔가로 반듯하게 잘라낸 흔적이었다. 그런 물건이 있나? 광선검? 자른 다음 태웠을 수도 있다. 마치······머리가 원래대로 붙지 못하게 하려고.



“이러는 게 무슨 영향을 줘요?”


“우리나라 저승은 불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걸 뒤엎고 싶은 놈들이 저질렀을지도 몰라.”


“기독교요?”


“나도 생각나는 건 기독교밖엔 없긴 한데, 이런다고 저승이 달라지진 않아. 저쪽은 저쪽이고 이쪽은 이쪽이야. 서로 간섭할 필요도 없고 하지도 않아.”


“어차피 혼을 윤회로 보내는 건 똑같으니까요.”


“그렇지. 어쨌든, 좀비하곤 상관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생각보다 다닐 만하네. 좀 더 돌아봐라.”



불상을 파괴한 놈들은 엄청 집요했다. 절에 있는 불상이란 불상은 단 하나도 남김없이 훼손했다. 화장실에 있는 조그만 것들까지도. 광기가 엿보였다.



“여긴 이만 됐다. 얘기해볼 귀신도 없네. 읍에 교회 있지? 거기 십자가 멀쩡했는지 기억나냐?”


“그럴걸요. 가볼까요?”


“그래. 가보자.”



나갈 때 고양이를 봤다. 삼색 고양이였다. 목걸이를 찼네. 누가 키우던 애인가보다. 절에서 키웠을 수도 있고. 도로 한가운데 앉아 길을 막는 고양이. 쫓아내려고 차에서 내려 가까이 갔다. 확실히 사람 손을 탔다. 만져주기를 바라는 듯이 꼬리를 바짝 세우고 날 반겼다. 좀 만져주다가 안아서 길가로 옮기고 차로 돌아왔다. 올라타려는 순간 고양이가 먼저 휙 올라갔다. 차 타봤구나.


절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아니었다. 목줄에 있는 전화번호로 방문객 차량을 찾아냈다. SUV였다. 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는 고양이용품이 많았다. 차에 남은 사람 흔적이 어른거렸다. 아이 대신 고양이를 키우기로 한 신혼부부였다. 차에서 버텼는데, 남자가 도움을 구하려고 나갔다가 물렸고 여자는 남자를 따라갔다. 물이 떨어져 다른 선택이 없는 상황이었다.


여자가 남긴 돌봄일지는 동동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로 끝났다. 고양이가 동글동글하게 생겨서 동동이로 지었나 보다. 고양이한테 필요한 정보도 적혀있어서 일기는 따로 챙겼다. 고양이용품도 화물차로 옮겼다. SUV는 열쇠를 찾지 못해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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