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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57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4.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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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화

DUMMY

편의점 벽은 유리로 되어 있다. 안이 잘 보여야 손님을 끌어들이기 쉬우니까. 유리가 많고······남자 귀신도 계속 보인다. 더 진해진 것 같다.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미쳐버리겠다. 귀신은 사람을 해치지 않아 왜냐면 죽은 사람도 귀신이 되니까 서로 어색해지잖아. 근거 없는 믿음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실제로 날 해칠 수 있는 좀비는 안 무섭고, 그냥 웃기만 하는 남자 귀신은 무섭다. 한심하긴 한데 현실이 그런 걸 어떡해. 저 귀신은 이제 평생 따라다니는 거야? 진짜 미쳐버리겠네. 그리고 이 편의점도 틀렸다. 털어갈 만한 건 다 털어갔다. 외국인 노동자도 좀비 사태에 대처하는 방식은 똑같은 모양이다. 남아있는 고양이 캔만 두 개 담았다.


공장에 돌아왔다. 치즈 고양이는 아예 사람처럼 누워 자고 있었다. 팔자 좋구나. 좀비도 걱정할 거 없고 귀신도 걱정할 거 없으니 얼마나 좋겠어. 캔을 따서 코에 대주자 조그만 코를 벌렁거리더니 오옹 하면서 일어났다. 귀엽다. 딱히 아무 노력 안 해도 귀엽다는 이유로 사랑받는 생물.


아냐. 사실은 고양이도 애정을 많이 표현하니까 사랑받는 거지. 밥 먹고 내 다리 위에 올라왔다. 만져주니까 손바닥에 머리를 문지르며 골골거린다. 차라리 고양이로 살았으면 행복했을까. 그랬을 것 같아. 고양이는 미래를 걱정하거나 과거를 후회할 만큼 똑똑하지 않아. 그러니까 행복했겠지.


그리고 고양이 밥은 역시 비리고 맛없다. 비린내에 약해서 도저히 못 먹겠어. 먹어도 해로운 건 없을 텐데, 아깝네. 남은 하나는 내일 아침에 까줘야지.


낮에 귀신을 봤다는 사실 때문에 밤은 정말 무서웠다. 뒷덜미가 시리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서 가만히 누워있기가 힘들었다. 고양이는 이불 위에서 자다가 어디로 가버렸다.


앉아서 목검을 품에 안고 버텼다. 귀신, 지네, 좀비. 셋 중에 특히 무서운 건 역시 지네다. 생긴 것 자체가 너무 징그럽고 끔찍하다. 사람 얼굴이 확실하긴 한데 시체처럼 창백하다. 그게 밤에 몰래 들어와 날 물어뜯는다고 상상할 때마다 발끝이 바짝 움츠러든다. 좀비랑 몸싸움하는 게 차라리 나아.


귀신은 도대체 뭐였지. 진짜 환상이야? 그때 갑자기 거울이 달그락거렸다. 뒤집어서 벽에 기대 세워 둔 거울.



“아이고 이거 귀신 피곤하게 참. 너 지금 여기 있지? 거울 좀 똑바로 돌려봐라.”



분명히 귀신이라고 말했고, 거울 속에서 튀어나온 손이 막 휘적거리는데도 신기하게 공포가 싹 사라졌다. 오랜만에 듣는 사람 목소리가 너무 반가웠다. 날 공격할까 걱정되긴커녕 빨리 도와주고 싶어졌다. 시키는 대로 거울을 돌렸다. 길쭉한 유리 안에서 귀신이 빠져나왔다. 무릎 아래가 투명했다.



“안녕하신가. 최 도령이다. 표정 보니까 이제 무섭진 않은가 보네. 낮엔 기가 막혔는데.”



목검을 꼭 잡고 자리에 앉았다. 내 이름은 안 물어보네. 그럼 말 안 해야지.



“너 벙어리야?”


“······아닌데요.”



목이 잠겨서 소리가 낮게 나왔다. 헛기침했다.



“잘됐네. 낮엔 귀신이라서 못 나왔고 아까까지는 고양이 때문에 못 나왔어. 그렇게 상서로운 동물은 아니거든. 12간지에 없잖아. 알지? 12간지.”


“네.”


“시원하게 설명해주길 바라는 얼굴이네. 세상이 왜 이렇게 됐으며 어쩌고저쩌고 다 설명해줬으면 좋겠지?”


“네.”


“미안한데 우리도 잘 몰라. 그래서 내가 조사하러 왔고.”


“우리요?”


“나 같은 귀신이 더 있다고만 알고 있으면 돼. 저승사자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안 잡아가.”


“근데 왜 저한테······.”


“왜 너한테 찾아왔냐고?”


“아뇨 왜 반말이세요?”


“하하하하!!”



최 도령이 시끄럽게 웃었다.



“좀비 오니까 크게 웃지 마세요.”


“주변에 좀비 없어. 그리고 내가 몇 살인데 말을 못 놓냐? 너 용띠지?”


“네.”


“난 너보다 열두 배쯤 나이가 많다고 보면 돼. 됐지?”


“예, 뭐······.”


“그리고 딱 봐도 귀신이잖아. 얼굴 젊은 게 무슨 상관이야. 너도 솔직히 쭈그렁탱이 할아방구보단 이게 나으면서.”


“그렇겠죠.”


“대답이 성의가 없어. 됐으니까 일 얘기나 하자. 난 생존자를 찾고 있었다. 귀신은 이승에 간섭하기 힘들어. 살아있는 사람이 도와줘야 해. 제일 먼저 발견한 게 너야. 이상할 정도로 생존자가 없더라. 정말 이상해.”


“제 생각도 그래요.”


“그래서, 이렇게 하자. 네가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줄게. 너도 날 도와줘라.”


“오래 살고 싶은 생각 없어요.”



최 도령이 진지한 표정으로 날 뚫어지게 쳐다봤다.



“힘들어 보이네. 인생이 그렇게 녹록지는 않지?”


“노력하면 할수록 안 좋아져요.”


“그래,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도 너한테 살고 싶은 의지가 있다는 거 알아. 그 목검 직접 만들었지?”


“네.”


“역시 딱 봐도 너랑 연이 깊더라. 그걸 내려놓고 싶어질 때까지만 도와주라. 억지 안 부릴게.”



그런 말을 들으니 왠지 힘이 났다. 이 목검은 죽어서도 가져가고 싶다. 화장할 때 같이 넣어달라고 유서에 써놨는데, 유서를 컴퓨터에만 저장해놨다. 전기가 안 들어오니까 아무도 못 본다.



“아버지부터······할아버지 옆에 묻은 다음에요.”


“알았다. 근데 그냥 묻어드리지 말고 태워서 뼛가루를 묻어드려라. 지네가 파먹는다.”



그렇겠네. 최 도령 말대로 해야겠다.


도령은 고양이가 돌아오기 직전 사라졌다. 쥐를 잡아 온 고양이. 먹으라는 듯이 내 앞에 둔다. 쥐는 죽은 척하고 있다가 내가 머뭇거리자 도망갔다. 고양이는 도망친 쥐를 다시 잡으려 했지만 어디로 잘 빠져나가 잡지 못했다.


귀신이랑 말이 통해서 그런가, 무서움은 완전히 가셨다. 공장을 한 바퀴 돌며 문이 잠겼는지 확인한 다음 방에서 고양이랑 같이 잤다. 아침엔 요의를 느끼며 일어나 화장실부터 갔다. 잠이 덜 깨서 거울에 뭐가 있는지 잘 안 보였다.



“말을 늦게 해서 미안한데 너한테 씌었다. 고양이 때문에 그래. 그놈 없을 때 들어가느라. 우리 같이 다니려면 이 방법이 제일 나아. 낮에도 돌아다니려면.”


“알았으니까 제 얼굴 바꿔치기해서 말하지 마요. 놀랐잖아요.”


“장난이야. 잠 다 깼지?”


“네.”



거울 속 내 뒤에 나타나 웃음을 짓던 최 도령이 홀연히 사라졌다. 고양이는 없었다. 캔을 까서 놔두고 짐을 챙겨 나왔다. 시골까지 세 시간 정도 운전해야 한다. 전방 주시. 과속 금지. 시골 가는 길은 동쪽이니까 막혀있진 않을 것 같다.


화물차를 예열하면서 짐도 다 실었다. 아버지, 자전거, 난로, 그리고 사무실에서 찾아낸 생수통. 혹시나 해서 주변에 있는 다른 공장도 돌아봤다. 따지도 않은 생수통 몇 개를 더 찾아냈다. 짭짤하게 루팅한 다음 가까운 주유소로 향했다. 역시 자전거보단 차가 훨씬 편해.


주유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살펴봤는데 비상용 발전기도 없고, 내 지식으로는 손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최 도령도 이런 건 잘 모른다고 했다. 기름통이랑 사이펀만 차에 실었다. 1톤 화물차는 우리나라 어디에나 있다. 금방 찾아냈다. 연료통 뚜껑을 절단기로 따고 기름을 빼냈다. 등유 난로가 경유나 휘발유로도 작동할까? 잘 모르겠다. 잘 모르는 건 하지 말자. 불이나 가스는 특히 조심해야지.


마트에서는 기괴한 장면을 먼저 봤다. 지네한테 파먹힌 좀비들이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거······지네는 뭐예요?”


“인면지네? 죄인이 벌 받는 모습이야. 원래 저승에만 있는 생물이고.”


“이승이랑 저승이 겹쳐졌나 봐요.”


“오, 상상력 좋은데? 그것도 일리 있네.”



뭘 생각하는 건지, 최 도령은 그 뒤로 한참 동안 아무 말 안 했다. 나도 원래 말수 적은 성격이라서 화물차에 물건 싣는 데만 집중했다. 쌀, 고구마, 감자가 창고에 쌓여 있는걸 찾아내 정말 기분이 좋았다.


시골도 시내로 나가면 마트 같은 거 다 있으니까 너무 욕심내진 말자. 연비도 그렇고, 차가 잘 달려줘야 위기가 닥쳤을 때 도망칠 수 있다. 아 근데 미숫가루나 육포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걸······. 나도 사람이라 욕심이 끝이 없다.


약국을 발견해 구급상자도 챙겼다. 차에 두고 다니자. 약은 안 썩겠지? 썩는 걸 본 적이 없어. 변질되나? 몇 년이나 지났는지 모를 연고 같은 거 상처에 발라도 괜찮긴 하잖아. 최 도령은 이런 것도 잘 모른단다. 아는 게 뭐야.


대화 상대가 생기는 바람에 긴장이 다 풀린 것 같다. 나쁜 징후다.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다. 좀비나 지네보다 심한 괴물이 나올 수도 있어. 아무래도 총을 꼭 구해야겠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집에 귀신이 들렸을 때 대포를 갈겼다고 한다. 이건 최 도령도 인정했다.



“화기는 음기에 강하지. 총알에 맞아 사라지는 게 아니라 뜨거운 기운에 놀라 도망가는 거야.”


“그럼 화염방사기가 대포보다 효과 좋겠네요?”


“좋고말고. 근데 집까지 태우면 안 되잖아.”



아버지 공장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사격장이 있던 거로 기억한다. 근처를 지나갈 때면 총소리가 들리곤 했다. 절단기로 안 될 수도 있어. 경찰서 때처럼. 그래도 시도는 해보자. 기름 넉넉하고 물이랑 먹을 것도 많아. 지금 부족한 건 화력이다.


표지판을 보며 사격장으로 찾아 들어갔다. 결과는 꽝이었다. 나랑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벌써 다녀간 뒤였다. 크고 강력한 무슨 기계로 철문을 뜯어냈다. 총은 몇 자루 남아있었지만, 총알은 하나도 없었다. 단체로 와서 쓸어간 것 같았다. 그리고 기계 자국은······소방서에서 쓰는 기계식 절단기인가? 소방관들이 왔었나.


사격장 직원들이 가장 먼저 오지 않았을까. 나라도 그랬겠다. 아니 어쩌면, 오고는 싶었는데 군대가 대피를 시켜서 못 왔을지도. 뒤에 남은 소방관들은 살아남기 위해 여기까지 와서 총이랑 총알을 가져갔고. 혼자 시나리오 쓰고 있네. 어쨌든, 나한테 무조건 나쁜 일은 아니다. 총을 가진 소방관······믿어도 되겠지? 세기말도 아니고 민간인을 약탈할 이유가 없잖아.


사격장이 있는 동네는 총포사도 있을 것 같아. 당연하게도. 그리고 사격장이나 경찰서보다는 보안이 조금 약하지 않을까. 손님이 물건을 봐야 하니까 철판으로 다 막아놓진 않았겠지. 조금만 더 시간을 들여보자. 하루 지연돼도 괜찮아. 공장에서 또 자고 내일 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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