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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46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4.29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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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화

DUMMY

1톤 화물차는 가격에 비해 힘이 좋다. 밟는 대로 튀어나갔다. 시커먼 발 하나가 바닥을 다 밟아 부수면서 따라오는 게 룸미러로 보였다. 겁나는 만큼, 신기하게 머릿속이 맑아졌다. 발목괴물은 햇빛에 불타며 검은 연기를 계속 뿜어냈다. 괴물에 채인 좀비가 반으로 찢어져 멀리 날아갔다. 자동차도, 나도 저렇게 될 것 같았다. 도시 한복판에서 시속 120km로 달렸다.


오 분 정도 따라오던 발목괴물은 거리가 멀어지자 다른 곳으로 갔다. 차를 타도 이 정돈데 맨몸이나 자전거였으면 그냥 죽었겠다. 아 소리를 듣는댔지. 조용히 있었으면 살았을까?



“아슬아슬했다! 운전도 잘하네. 저 도시 다시는 가지 마. 괴물은 퇴치하기 전까지 안 없어져. 시간 지나서 더 늘어나는 경우도 있고.”


“괴물이 시간만 지나도 레벨업해요?”


“농담할 정신이 있었냐? 아 진지하게 하는 소리야? 뭐 레벨업이라고 할 수도 있지. 부정한 기운이 남아있으면 주변에 안 좋은 일이 계속 생겨. 괴물 늘어나는 것도 그중 하나고.”


“그런 거 처리하는 귀신은 없어요?”


“있는데 저승도 지금 난리다. 그 많던 사람들이 며칠 사이에 다 죽어버렸는데, 어떻겠냐.”


“심각하겠네요.”


“응. 엄청나게 심각해. 죽을 때가 안 된 귀신들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와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진짜 엉망이야.”


“괴물 또 만나겠어요.”


“안 만났으면 좋겠다. 죽지 마라, 인프제야.”


“제 이름······.”


“안 돼, 귀신한테 이름 함부로 알려주지 마. 평생 따라다니는 수가 있어. 그냥 인프제로 지내. 원래 이 정도로 엄격하게는 안 하는데 지금 상황이 좀 그렇잖아.”


“알았어요.”



도시 파밍을 못 하게 됐다. 그래도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좀비를 따위로 만드는 진짜 괴물이 나타났다. 그럼 그렇지. 요즘 좀비 아포칼립스는 항상 이런 식이다. 현대식 무기가 너무 좋으니까 좀비를 진화시키든가, 아니면 그냥 괴물을 소환한다. 난 현대식 무기 없다고······.


발목괴물한테 어지간한 화기는 안 통한다고 최 도령이 말해줬다. 군부대 가서 총 구해볼 생각도 했었는데, 접어야겠다. 괴물한테 안 통하면 군용 소총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 사냥총이라면 몰라도.



“일이 참 치사하게 돌아가지 않냐? 우린 이승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데 괴물은 어떻게 설치고 다니지? 너한테도 그렇고 골치 아프게 됐네. 생존자 전체가 걱정이야. 어디에 얼마나 살아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절은 어떡해요?”


“일단 가서 분위기만 보자. 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꼭 보고 싶어.”


“네.”



도시 한 번 다녀왔을 뿐인데 해가 다 떨어졌다. 찬장에서 어묵 꼬치를 찾아 꺼내놨다.



“뭐 구워 먹게?”


“아뇨. 폭죽 달려고요.”



분수 폭죽. 화기다. 손으로 잡으면 뜨거우니까 꼬치 끝에 달아야지. 내일은 읍내 문방구에 가서 폭죽을 루팅하자. 횃불도 만들었다. 소나무 가지를 잘라 한쪽을 여러 갈래로 조각내서 행주를 끼웠다. 쓰기 직전에 기름 먹이면 된다. 떨어지는 불똥에 데이지 않게 나무껍질로 받침도 만들었다. 그냥 원래 있는 껍질을 받침 모양으로 벗겼다.



“이것도 처음이라고 해라.”


“처음인데요.”


“히야~. 나중엔 항공모함까지 만들겠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알아요?”


“글쎄 평소에 소통을 잘 안 해서, 모르겠네. 근데 어디든 비슷할 거야. 귀신 데려가서 윤회로 보내는 방식은 다 똑같아. 과정만 좀 다를 뿐이야. 좀 많이.”



밖으로 나가서 횃불을 시험해봤다. 얼마나 오래 타는지 알아둬야 한다. 그냥저냥 10분 정도 탔다. 손전등에 비하면 빛도 시원찮고. 그래도 불이니까 귀신 쫓는 힘은 손전등보다 강하겠지. 행주는 실이 좀 가늘어서 그런가, 금방 타네. 아, 목장갑을 끼우는 게 낫겠구나. 귀찮게 나무 쪼갤 필요도 없고 그냥 한쪽에 씌워주기만 하면 되네. 안에 톱밥을 채우고 끼우면 더 좋을지도. 목장갑은 어느 철물점이든 뭉텅이로 쌓여 있다. 당장 여기 창고에도 많고.


다 탄 횃불에 목장갑을 끼워 다시 태워봤다. 14분. 나쁘지 않았다. 생나무를 칼로 깎아 톱밥을 만들어서 세 번째로 시험했다. 17분. 근데 톱밥이 계속 떨어진다. 완성도 있게 하려면 나무를 쪼개고 거기다 톱밥 채운 장갑을 끼워야겠어. 세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친 횃불은 25분이나 탔다. 톱밥도 안 떨어졌고. 생나무 톱밥이 잘 안 타서 오래가네.



“너 어디서 훈련받았냐?”


“아뇨.”


“재주도 좋다, 진짜. 아니 내가 도와줄 게 하나도 없잖아.”


“안 심심해서 좋아요.”


“고맙다! 초라해지려고 했는데. 말이 통한다는 게 별것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축복이야. 너도 그래서 내가 처음 말 걸었을 때 도망 안 친 거지?”


“네.”


“오~. 역시 인프제는 신기한 성격이야. 남들이 늙어서 하는 생각을 벌써 다 해놨어.”


“MBTI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좋아요.”


“에이, 설마 ENFP가 그러겠냐? 엔프피 자존심이 있지. 그냥 나침반이라고 생각하면 편하잖아. 사람 알아가는 데 쓰는 나침반. 방향은 알려주지만 찾아가는 건 직접 해야지.”


“비유 좋네요.”


“진심이야? 인프제는 칭찬을 빈말로 한다던데. 머릿속으론 완전 반대로 생각하지 않아?”


“진심인데요. MBTI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니까요.”



하지만 빈말로 칭찬을 한다는 게 아예 틀린 분석은 아니다. 칭찬이 아니라 좋은 말을 빈말로 한다. 약속에 맨날 30분씩 늦는 친구가 ‘나 진짜 한심한 것 같아’라고 하면 ‘괜찮아 다음엔 30분 먼저 출발하면 돼’라고 말해주면서 속으로는 ‘한심한 놈’이라고 생각하는 식으로. 한심한 놈 되기 싫었으면 진작 버릇 고쳤지. 그놈은 아마 대피할 때도 30분 늦었을걸.


목장갑 횃불은 세 개만 만들었다. 가지고 다니기 불편했다. 어떻게 해도 가방에 안 들어갔다. 그냥 천으로 묶어 가방 옆에 매달았다. 카라비너도 몇 개 있으면 좋겠네. 가방 사은품으로 받은 거 하나뿐이다.


준비는 아직 안 끝났다. 횃불을 들고 있을 땐 목검을 못 쓴다. 내 목검은 한 손으로 휘두르기엔 너무 무겁다. 한 손 무기가 필요하다. 전투 망치. 그거 진짜 갖고 싶은데 어디서 구하지? 박물관? 우리나라에선 만드는 곳 없을 거야. 해외직구 하는 수밖엔······.


집에 있는 장도리를 몇 번 휘둘러봤다. 밸런스가 안 맞아. 이런 무기는 빗나갔을 때가 문제다. 안 놓치려고 힘을 지나치게 많이 쓰게 된다. 운 나쁘면 내 다리를 때릴 수도 있어. 그냥 밀어내는 식으로 대처해야겠다. 두툼한 겨울용 장갑을 한 벌 찾아놨다. 골판지랑 테이프로 손목 보호대도 만들었다.


자려고 누웠을 때 또 생각이 났다. 상체가 없어도 움직이는 좀비가 있었잖아. 못 죽이는 좀비인데 전투 망치는 무슨. 내가 사는 것만 생각하자. 탈출로를 항상 확인하고 포위당하거나 뒤치기 당하지 않게 조심하면 돼.


오늘도 일찍 일어났다. 닭한테 모이를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계란이랑 라면, 밥으로 아침을 먹고 점심에 먹을 고구마도 몇 개 삶았다. 소가 풀 뜯으면서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잡아먹고 싶진 않았다. 혼자 다 먹기도 힘들고 해체하는 방법도 모른다. 농사는 농기계 있으니까 괜찮아. 농사법 배워야 하는데 아직도 도서관을 못 갔어······.


씨앗을 마트에 팔 텐데 도시는 못 가고, 읍내에서 찾아보자. 씨앗 봉투에 키우는 법이 적혀있을지도 몰라.


출발했다. 날이 좋았다. 새소리도 들리고 평화로웠다. 인간이 멸망하는 게 야생동물한텐 이득인 것 같다. 도로 위를 걷던 멧돼지가 차 소리를 듣고 도망치는 걸 봤다. 덫을 놓아볼까. 덫은 집에 있다. 대충 고구마 같은 거 놔두고 깔아두면 잡힐 거다. 돼지 해체하는 법도 모르긴 하지만 소보단 훨씬 작으니까 부담이 덜하다.


저장이 걱정이다. 소금에 절이는 방법밖에 몰라. 천일염도 집에 한 자루 있긴 해. 마트에도 있을 거고. 근데 장마 오면 습해서 다 녹을 것 같다. 쉽지 않네. 뭘 해도 혼자서는 힘들어. 세상이 이렇게 된 원인은 언제쯤 알 수 있을까?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래서 최 도령을 도와주는 거야.


읍내에선 별일 없었다. 찾아낸 폭죽을 다 가져왔다.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토마토랑 오이, 상추 씨앗도 얻었다. 비료랑. 포장지에 키우는 법이 나와 있었다. 비닐하우스에 심어야지. 주식으로 먹을 것도 키워야 한다. 감자가 제일 무난하다. 쌀은 나 혼자선 어렵다.


땅콩도 괜찮은데. 뿌리에 있는 무슨 박테리아가 땅에 좋다고 들었다. 근데 비료 많으니까 상관없다. 그냥 내가 땅콩을 좋아한다. 저장하기도 편하고. 우리나라 곳곳에 쌓여 있을 엄청나게 많은 식량을 집으로 가져오는 것이 사실은 제일 나은 방법이다. 죽을 때까지도 다 못 먹는다. 근데 썩지 않게 보관할 냉동창고가 있어야지. 전기 없는 게 이렇게 서럽다.


항공모함. 항공모함은 원자력 엔진 덕분에 30년은 작동한다고 한다. 나 혼자서만 쓴다면 평생 갈지도? 아 원자력은 그런 식으로 아껴 쓰진 못하나? 그래도 보물창고가 따로 없겠지.



“너 무전기는 쓸 줄 몰라?”


“네.”


“어차피 전기가 안 들어오는구나. 중계기도 작동 안 하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라디오라도 매일 틀어봐.”


“네.”



최 도령이 적당한 타이밍에 말해줬다. 집에 가기 전에 건전지 넣는 라디오를 구했다. 건전지는 걱정이 없다. 바로 채널을 돌려봤다. 아무것도 안 나와······. 모든 채널에 아무것도 안 나온다. 우리나라에 비상용 방송 주파수 같은 건 없나? 그것도 다 끊겼나?



“군대가 수색부대 보낼지도 모르잖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해봐.”


“군대 남아있어요?”


“우리 중에 그쪽 보러 간 애도 있어. 소식이 있을 거다.”



기대되는 말이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창고 같았던 비닐하우스 내부를 정리했다. 무거운 게 많아서 반나절이 다 지나갔다. 힘 빠진 손이 덜덜 떨렸다. 그 손으로 밥을 짓고 저녁을 먹었다. 밥 먹으면서 라디오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힘들었던 지난날을 다 잊고 여기서 하루하루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렇지만 최 도령과 약속을 했고, 개인적으로도 세상이 이 꼴이 된 원인을 알고 싶다. 원인이 뭐건 내 힘으로 해결하긴 힘들겠지. 그래도 매일매일 똑같은 일 하고 똑같은 밥이나 먹으면서 그저 살아가기만 하는 것보단 나아. 그런 식으로 사는 건 닭이랑 다를 게 없잖아.


절은 모레 가야겠다. 비닐하우스 정리하느라 고생해서 팔이 쑤신다. 내일은 텃밭 만들고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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