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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39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5.0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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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화

DUMMY

해가 지기 시작해서 교회는 내일로 미뤘다. 같이 온 동동이에게 닭장을 소개해줬다. 관심이 있는 눈치였다. 근데 닭들이 경계하며 쪼아대려고 해서 겁을 먹었다. 집에 들여주고 계곡으로 가서 세수했다.



“고양이 좋아하냐?”


“네.”


“개는?”


“산만해서 좀 그래요. 싫어하진 않아요.”


“인프제답네. 야, 내일 교회 가는 김에 전신거울도 찾아봐라.”


“왜요?”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 너한테 나쁠 건 하나도 없어. 거울 크면 클수록 좋은데 생각나는 데 없냐?”


“헬스장이나 발레학원에 있을걸요?”


“오 그렇겠네. 맑은 연못도 괜찮긴 해.”


“연못은 어딨는지 모르겠어요.”



최 도령이 거울 안에서 나왔었지. 누구 불러오려고 그러나.


밥 먹고 돌봄일지를 읽었다. 동동이한테 뭘 해줘야 하는지 다 적혀있었다. 다른 건 괜찮은데 정기검진······. 나도 고양이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 문을 잠가놓고 다니고 싶은데 나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 때가 걱정이다. 그 신혼부부도 똑같은 이유로 차를 열어놨겠지. 부엌에 작은 창문이 있다. 그거면 될 거야. 밖에 발판도 놔주고. 벌레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잡으면 되지 뭐.


동동이 이를 닦아주고 발톱도 깎아줬다. 얌전하다. 많이 받아본 솜씨다. 장난감으로 놀아주기도 했다. 소일거리 생겨서 좋다. 고양이 운동시킨 다음엔 나도 운동했다. 고통스럽게 죽기 싫으면 운동해야 한다. 가볍게 땀을 뺀 후 샤워하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동동이는 자기 집에 내 발수건을 놓고 이불로 쓰고 있었다. 뺏는 대신 그냥 새 발수건을 꺼냈다.


쌀밥이랑 감자볶음으로 아침밥을 먹었다. 메뉴가 너무 부실해. 먹고 싶은 대로 다양하게 먹는 건 현대 문명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다. 사실 전에도 그렇게 다양하게 먹진 못했다. 돈이 없으니까······. 식당 중에 제일 저렴한 한식 뷔페도 달에 두 번 정도만 갔고 평소엔 군만두랑 중국산 김치를 반찬으로 먹었다. 중국산 김치조차 지금은 아쉽다.


새집을 구한다면 바닷가가 좋겠다. 통발만 열심히 놔도 식탁이 훨씬 풍성해질 거야. 비린 건 싫지만, 갓 잡은 건 별로 안 비리니까 괜찮다. 고양이 줄 것도 생기고. 100% 재생에너지로 유지되면서 담수랑 해수 근처에 있는 집. 하나쯤은 있을 것 같기도 해. 요즘은 그런 데에 관심 있는 사람이 꽤 되잖아.


동동이 밥이랑 물이 충분한지 살펴본 다음 화물차에 시동을 걸었다. 부엌 쪽 창문에 상자로 발판도 만들었다. 주변에 크게 위험한 건 없겠지? 설마 대왕지네가 그 멀리서 다시 올 리는 없고.


읍내로 가는 길에 멧돼지 덫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미끼로 뿌려놓은 고구마도 거의 그대로였다. 사람 냄새 때문에 안 오는 건가. 밭이나 창고를 지키는 사람이 다 없어졌으니까, 그냥 더 좋은 데로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읍내 교회는 멀쩡했다. 십자가도, 안에 예수상 같은 것도 좀비 사태 이후로 방치된 듯했다. 먼지가 가볍게 내려앉아 있었다.



“이러면 합리적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진짜로 기독교 짓인가······.”


“좀비 사태랑 상관없는 거 맞아요?”


“그래. 불상 머리 날아간다고 전 세계 사람들이 좀비가 되진 않아. 불교 없는 나라 많잖아.”


“그럼 그냥 불교 싫어하는 사람이 이때다 싶어서 저질렀나 보네요.”


“좀비가 바글대는 절에 들어와서는 불상 머리를 하나하나 찾아 날렸단 말이냐.”


“방법을 알아냈을지도 몰라요. 좀비가 고양이를 피하더라고요.”


“좀비가 고양이를 피한다고? 아 그래서 동동이를 키우기로 한 거야?”


“아뇨, 데리고 다닐 생각은 없어요. 고양이는 사람 말 안 듣잖아요.”


“말 안 듣지. 귀신도 아니고 좀비가 고양이를 피한다니. 묘한 일이네. 혹시 개는? 봤어?”


“개는 잡아먹혔어요.”



산 채로 배를 물어뜯겨 깨갱거리던 강아지. 다시 생각해도 불쌍하다.



“여하간 기독교하곤 상관이 없는 것 같고······차라리 저승에서 이랬으면 어떻게 손이라도 써봤을 텐데, 어찌 이승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나. 답답하다 참말로.”



좀비도 귀신도 예전에는 없었다. 이승이랑 저승이 겹치고 있는 게 맞을까? 그렇다고 쳐도 이유를 알아야 한다. 여태 안 그랬다가 갑자기 이렇게 된 이유.



“너 예전에 이승이랑 저승이 겹쳐졌을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그거면 말이 되거든? 인프제의 통찰력을 한 번만 더 발휘해봐라. 원인이 뭘까?”


“자연재해요. 어디선가 균형이 어긋나서 무너지기 시작한 거죠.”


“말 잘했다. 내가 오늘 거울 찾으라 한 이유가, 저승으로 다시 좀 가보려고. 그리고 발목괴물 있잖냐. 착물갑사를 한번 데려와 볼게. 원래 이승에서는 힘을 못 쓰는데 혹시 모르니까.”


“발목괴물 잡으려고요?”


“잡을 수 있으면 잡아야지. 놔둬서 좋을 게 없다. 너한테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도시에서 찾아볼 거 많잖아.”


“네. 고마워요.”


“고마워할 거 없어. 왜냐면 거울 찾은 다음에 해 떨어질 때까지 네가 기다려줘야 하거든.”


“이쪽은 위험한 거 별로 없으니까 괜찮아요.”


“그놈 참 쿨하네.”



확실히 위험은 적었다. 힘도 없고 썩어가는 좀비랑, 인면지네.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고 나니 인면지네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꿈에 나올까 두려운 장면이었다.


거울은 동사무소에서 찾아냈다. 동사무소 신축 기념으로 누가 기증한 커다란 거울이 통로에 붙어있었다. 최 도령이 시키는 대로 깨끗하게 닦았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보자. 해 떨어지고 십 분 이상은 기다리지 마. 내가 늦을 수도 있어.”


“그럼 만날 때까지 매일 여기 오라고요?”


“미안하다. 다른 방법이 없네. 이 거울 뜯어내다 깨질 수도 있잖아.”


“네. 다녀오세요.”



최 도령은 거울로 들어가 사라졌다. 거울 속엔 나뿐이다. 어두운 와중에, 후줄근하게 차려입고 목검 짊어진 아저씨.


동정할 가치도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인면지네는 수가 정말 많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심한 죄를 지었단 말이야? 부정 씻어내는 게 수백 년씩 걸린다면 설명은 된다.


저 징그러운 얼굴은 진짜 아무리 봐도 적응을 못 하겠어. 동정심 눈곱만큼도 안 생겨. 가까이 가기도 싫다. 차 주변에 얼쩡거리는 지네들을 목검으로 치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러 마리 밟아 죽이기도 했다. 터지는 소리가 계속 났다. 죽여주는 게 고마운 일이라던 최 도령 말을 믿자.


좀비도 몇 마리 보였다. 내 차를 보더니 꽤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왠지 낮보다 움직임이 빨라. 확실히 빠르다. 심장이 뛰었다. 옆길로 빠져 좀비를 피했다. 좀비는 골목이나 건물 안에서 계속 나타났다. 이러다 포위당하겠어. 차로 밀어버리고 읍내를 빠져나왔다. 빛을 보고 따라오지 않을까 걱정됐다. 불 끄면 앞이 아예 안 보여서 어쩔 수가 없었다.


절 아래 식당가에 있는 좀비들도 길 위까지 넓게 퍼진 상태였다. 집으로 가는 길은 산을 타고 올라가는 이 길 하나뿐이다. 침착하자. 다 준비해놨잖아. 막대 폭죽에 불을 붙여 멀리 던졌다. 터지는 소리를 들은 좀비들이 그쪽으로 몰려갔다. 좀비를 떨쳐내고 산을 넘은 다음 잠깐 쉬었다. 손에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운전대가 미끄러웠다.


이걸 내일 또 해야 한다고?


잠시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내일 낮에 준비해야 한다. 오늘은 운이 좋았어. 읍내에서 포위당했다면, 폭죽을 실수로 놓쳤다면······. 땀이 식어 추웠다.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계속 서행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닭들은 닭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 문을 닫았다. 동동이도 집에 있었다. 날 보고 기지개를 켠다.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얘는 상상도 못 할 거야. 아직도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소파에 누웠다. 동동이가 내 위로 올라왔다. 만져주자 그르릉거렸다. 그제야 진정이 좀 됐다.


입맛이 없어서 저녁밥은 걸렀다. 샤워만 하고 바로 누웠다.


아침에는 다행히 기운이 났다. 맑은 하늘과 밝은 햇빛이 기분을 많이 풀어주었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가 잠을 날렸다. 밥을 먹은 다음 목검을 들고 마을 아래를 산책했다. 귀농한 사람들이 사는 곳. 텃밭에 상추가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었다. 이걸 이제야 봤네. 몇 장 뜯어 먹어봤다. 썼다. 그래도 고기 먹던 기억이 나서 좋았다. 삼겹살이 아니라, 제일 싼 뒷다리살.


근데 뭘 깜박한 것 같은데······. 아, 통발 놨었지. 송사리는 없고 가재 두 마리가 들어가 있었다. 너무 작았다. 그래서 그냥 풀어줬다. 통발은 더 깊은 물을 찾아 다시 놨다.


오전엔 읍내와 절 주변의 좀비를 정리할 계획을 세웠다. 불로 태워버리면 죽지는 않아도 못 움직이겠지? 유인은 소리로 하면 되고, 기름을 어떻게 뿌릴까. 특별히 좋은 방법을 모르겠다. 너무 오래 걸리면 안 돼. 기름은 금방 증발하니까. 옷을 다 입고 있던데 그냥 옷에다 붙일까? 대부분 합성섬유라서 기름 없이도 잘 탈 거야.


좀비 손이 안 닿는 곳에 확성기로 미끼를 놓고 횃불로 정리하면 되겠다. 분무기에 기름······. 아니지, 기름은 아무 데나 담으면 안 돼. 플라스틱이 녹는다고 들었다. 휘발유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차피 다 석유니까 비슷하겠지.


절대 안 신을 것 같은 양말을 모아 둥글게 말았다. 뚜껑 있는 양철통에 담아 등유를 부어 적셨다. 이걸 집게로 던지면 돼. 솔직히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모르겠다. 좀비에 불만 붙으면 되니까, 방법에 너무 매달리진 말자.



“오르륵. 오오아앙.”



고양이 원래 이렇게 우나? 저번에 턱시도 고양이도 이랬잖아. 동동이는 몇 번 이상하게 울다가 장난감을 물어왔다. 놀자는 뜻이었구나. 지금은 안 되는데······. 이따 저녁에 놀아줄게. 집에 있어.


조용해지니까 갑자기 최 도령 생각이 났다. 귀신이어도 심심할 때 말 걸어줘서 좋았다. 기본적으로는 혼자 있는 게 좋지만, 사람도 가끔 만나야 한다. 사람이란 게 원래 그렇다.


자꾸 차에 올라타서 나랑 같이 가려는 동동이를 집에 가두고 나왔다. 창문을 통해 날 보며 계속 울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동물을 데려갈 순 없어.


좀비 무리 공략은 절 주변부터 시작했다. 사다리를 써서 식당 지붕에 확성기를 올리고 사이렌을 켰다. 시끄러운 소리가 귀 따갑게 튀어나왔다. 이제 좀비들은 대부분 인면지네한테 뜯어먹혀 뼈만 남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움직이긴 했다. 엄청 느리게. 어제 저녁엔 분명히 저 상태로 빠르게 걸었다.


뼈만 남은 좀비인지 살이 남은 스켈레톤인지 모르겠어. 수십 마리쯤 모였다 싶었을 때 불을 붙였다. 왜인지 옷이 축축하게 젖어 있어서 잘 안 탔다. 산은 새벽에 습기가 내려온다. 그래서 젖었나. 불붙인 양말을 몇 개 던졌다. 그래도 시원찮았다. 화력이 약해. 바닥에 장작을 깔고 그 위로 유인할 걸 그랬네.


오늘 안에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내야 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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