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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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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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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5.07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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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화

DUMMY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지판 생각부터 든다. 그냥 다른 집이랑 전선으로 연결할까? 아니면 수력발전?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는 소박한 삶도 괜찮지 않을까. 갑자기 다 귀찮아졌다. 비닐하우스에 심어둔 채소를 보러 갔다. 싹이 나왔다. 금방 나오는구나. 물이 마른 것 같아서 좀 줬다.


동동이가 앞마당에서 풀을 뜯고 있다. 닭이랑 같이. 그늘에 앉아 지켜봤다. 마지막 생존자까지 다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세상인데도 지금은 평화롭다. 최 도령은 며칠 사이에 3천 명이 죽었다고 했다. 같이 대피했다면 나도 죽었을지 모른다. 난 어떻게 버려졌을까. 옥상에 올라가 있을 때 대피했나. 그때 귀마개를 끼고 있어서 소리도 못 들었나.


어떻게 되건 무슨 상관이냐. 기다리다 보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겠지. 원룸에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냈었다. 무능한 패배자가 나서 봤자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배려심 없이 솔직하기만 했던 그 친구도 죽었을까? 굳이 살아있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아. 좀비로 만난다면 기꺼이 목검으로 때려줄 수 있다. 사람은 감정으로 움직이는 생물이다. 솔직함을 핑계로 그 감정을 부정하고 무시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된 거잖아. 외부 자극, 위협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기 위해 발달시킨 능력.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이 특히 강하고 오래간다. 다음번엔 피해야 하니까.


감정이 이성을 마비시켜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나쁜 선택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나 겪어봤겠지. 감정은 고통을 피하게만 할 뿐이다. 그다음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서 뇌가 자아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자기 상태를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 건강한 자아가 건강한 인생을 만든다. 근데 감정에 비해 자아는 진화가 덜 된 것 같아. 맨날 휘둘리잖아.


고양이 풀 뜯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뭐지? 뇌가 쓸데없는 일에 영양분을 낭비하고 있어.


통발을 보러 갔다. 이번에도 작은 가재뿐이었다. 여기서 차 타고 30분쯤 나가면 강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자전거로도 갈 수 있는 거리다. 강 주변에도 마을이 있고. 마을은 이곳저곳 많다. 낚시 도구 있는 집이 하나쯤은 있겠지. 낚시해본 적은 없는데, 손도 못 댈 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이번에는 탐색 가기 전에 상의를 좀 해야겠다. 무연이랑.



“들리세요? 무연 씨?”


“말씀하십시오.”


“다른 마을에 낚시 도구 구하러 가려고요.”


“······.”



대답이 없다. 화났나?



“······저번에 좀비를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비닐로 감아서 태웠어요.”


“더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자세히 설명할 것도 없었다. 얼굴 안 보고 대화하니까 편하네. 사람 표정 읽는 거 지친다.



“알겠습니다. 생존자 두 명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합류한 후에 결정하십시오.”



미리 말 안 한 이유가 뭐야. 보낼 테니까 알아서 받으라고? 아버지도 항상 이런 식이었는데. 한 마디도 없다가 일이 닥쳤을 때 갑자기 이래라저래라. 그래놓고 잘못되면 내 탓을 했다.



“······지금 얘기하는 이유가 뭐예요?”


“저도 방금 들었습니다.”


“누가 결정했는데요?”


“청장님입니다.”


“그게 누군데요?”


“같이 계셨지 않습니까.”


“최 도령이요?”


“본인이 그렇게 소개하셨습니까?”


“네.”



청장이고 뭐고, 왜 그랬는지 이해는 하는데······. 안 그래도 사람한테 스트레스 많이 받으며 살았다. 차라리 떠날 준비를 해야겠어. 어차피 이사 가고 싶기도 했고, 괴물한테 죽으면 죽는 거지. 사람한테 치일 바에는 그냥 괴물한테 빨리 죽는 게 낫다.


플라스틱 상자에 짐을 정리해 화물차에 실어놨다. 대부분 음식이다. 쌀, 감자, 고구마. 항아리에 있는 된장, 간장, 고추장도 유리병에 옮겨 담았다. 꿀 담는 유리병이 많아서 다행이다. 철망으로 이동식 닭장도 대충 만들어두었다. 바쁘게 있다 보니 해가 금방 떨어졌다.


어두워지기 무섭게 무연이 창고 밖으로 나왔다.



“왜 떠나십니까?”


“아직 안 떠나요.”


“청장님께서 여기 있으라고 하셨잖습니까.”


“아직 안 떠난다니까요. 어떤 사람들인지 만나보고 결정할 거예요.”


“다소간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존중해야 합니다.”



나랑 의견이 안 맞는 게 전제야? 좋은 사람들이 아닌가 보네? 무연이랑 말싸움하기 싫어서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가고 싶으면 가는 거다. 이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사람 없어. 권총 뽑는 연습을 했다. 고무탄이니까 옷 위에 맞는 거로 죽진 않겠지?


이사 준비하느라 손톱에 때가 많이 끼었다. 짧게 깎고 비누로 씻었다. 낮에는 더웠다가 밤 되니까 쌀쌀해졌다. 이불 안으로 들어오는 동동이 때문에 잠에서 깼다. 캄캄한 한밤중이었다. 밖에서 차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일어나서 권총을 허리춤에 넣었다. 누가 문을 잡고 흔들었다.



“계세요?!!”



안 열리니까 쾅쾅 두들기면서 소리를 지른다. 남자다. 불부터 켜고 문을 열어줬다.



“아-씨-발 존나 춥네. 우리 오는 거 알았다면서 문을 왜 잠가요? 자기야, 빨리 들어와.”



뒤에 있던 여자가 들어오면서 나한테 눈을 흘겼다.



“뭐야 아저씨야? 소름.”



그러고 둘이 내 집을 자기 집처럼 둘러봤다. 남자는 나름 운동을 했는지 몸이 옆으로 넓었고 여자는 깡마른 체형이었다.



“집 좋네! 우리가 여기 쓰면 되겠다. 아저씨 이불 좀 꺼내줘요.”


“여기 난방 안 돼요? 씻고 싶은데 물도 좀 데워봐요.”



잠이 확 깨네. 이 새끼들 어떻게 살아남았냐······아니지, 이렇게 뻔뻔하니까 살아남았겠지. 무슨 펜션이라도 놀러 온 것처럼 행동하는 커플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 꽉 끼는 모자를 머리에 쓴 것처럼 답답했다.



“놀러 오셨나 봐요.”


“그래서 불만이세요?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씨발 몇 번을 뒤질 뻔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좀 쉬지도 못해? 딱 보니까 아저씨 혼자 여기서 꿀 존나 빨았네. 도와줄 거 아니면 닥치시든가 씨발. 분위기 존나 처 못읽네.”



남자가 소리 높여 지껄였다. 이 정도로 선을 넘어버리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저렇게 긴 개소리를 숨도 안 쉬고 뱉는 걸 보니 막말 학원이라도 다닌 모양이다. 동동이를 캐리어에 넣고 나머지 짐도 화물차에 실었다. 커플은 내가 떠난다는 걸 알았는지 참견하지 않았다. 잠자던 닭들을 한 마리씩 이동식 닭장으로 옮겼다.



“닭까지 다 가져가는 꼬라지 봐. 지혼자 살겠다고.”


“냅둬, 꼴통새끼랑 같이 있어봤자 우리만 피곤해.”



무연은 창고 앞에 가만히 서 있다. 커플이 저걸 못 봤나? 알 게 뭐야. 어둠 속에서 차를 몰고 슬슬 떠나는 나를 무연은 잡지도 않았고 따라오지도 않았다. 나도 부르지 않았다.


무슨 생각으로 여기 왔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무덤 앞이다. 날이 밝을 때까지 무덤 앞에 앉아 기다렸다. 밤엔 위험하니까? 그런 생각은 안 했다. 그냥 앉아서 해 뜨는 걸 봤다.


주변에도 아버지랑 잘 지내는 아들은 정말 드물었다. 서먹하거나, 싸우거나. 평범하다고 해서 괜찮다는 건 아니지. 이제 안 보면 그만인 저 커플이랑 다르게 가족관계는 맘대로 못 끊는다. 내 의지랑 상관없이 계속 이어진다.



“갈게요.”



저번에 전화했던 이후로 처음 아버지한테 입을 열었다. 벌초하러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묘비가 있다. 여기 누가 묻혔는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알아볼 수 있을 거다. 나야 뭐 이름도 없는 시체가 되겠지만.


아버지 화물차는 잘 달렸다. 이게 고장 나는 게 먼저일지 내가 고장 나는 게 먼저일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까 진짜, 차 정비하는 방법도 알아야겠다. 여기저기 방치된 차 중에 내가 쓸 수 있는 건 없다. 열쇠가 어딨는지 모르니까. 자동차 공장에 가면 새 차가 있겠지. 여유 생기는 대로 그쪽도 알아봐야겠다.


일단은 남쪽으로 향했다. 모르는 길이다. 내비도 없다. 중간중간 멈춰가며 핸드폰 지도로 내 위치를 짚었다. 이거라도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꿈처럼 한순간 사라진 모든게- 난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애오옹.”



동동이가 짜증스럽게 울었다. 캐리어를 열어줬다. 좁아터진 1톤 화물차. 밖으로 나온 동동이는 발로 바닥을 긁었다. 똥 마렵다는 뜻인가? 고양이 화장실은 화물칸에 있다. 조수석에 넣기엔 좀 커서. 차를 세우고 화장실을 내려줬다. 바로 들어가더니 시원하게 볼일을 본다. 기다리는 동안 음악을 들었다.


고양이랑 같이 다니려면 차가 커야겠구나. 그때 신혼부부 차도 SUV였지. 그리고 아버지 차도 대형 SUV다. 열쇠는 아직 갖고 있다. 근데 지금 가지러 갈 이유는 없지. 도로도 다 막혀있고 괴물도 있을지 모르고······.


길이 강이랑 산을 따라 만들어져서 엄청 구불거린다. 피곤하고 오래 걸린다. 답답한 기분으로 내려가다 작은 도시를 만났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건너에 길게 펼쳐진 도시다. 다리 중간이 바리케이드로 막혀있어 가보진 못했다.


계속 달렸다. 해가 떴다. 날씨가 좋다 보니 나 혼자 여행하는 느낌이다. 강 주변에 나무로 된 산책로가 보인다. 꽤 기네. 정부 차원에서 관광사업으로 만든 것 같다. 이 지역은 가을에 단풍 보러 오는 사람이 많다. 산골에서 1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떠날 줄이야. 단풍도 못 보고 가서 아쉽다.


길이 왕복 4차선으로 바뀌었다. 좀 편해졌다. 지도를 보니까 중앙고속도로로 나갈 수 있다. 남쪽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톨게이트 옆에 있는 마을에서 잠깐 쉬기로 했다. 차를 타고 마을을 천천히 둘러봤다. 이상하네. 좀비가 없어.


해답은 초등학교에 있었다. 군대가 운동장에 킬존을 만들어서 좀비를 다 처치했다. 총으로 머리를 쏴도 죽지 않는 좀비에 당황했을 것도 같은데, 철조망으로 침착하게 끌어들여 불로 태웠다. 다 타고 발목만 남은 좀비가 움직이네. 바이러스가 원인인 게 맞아? 아버지도 물리고 나서 변하긴 했는데······.


이 좀비는 말이 안 되는 게 많아. 아무리 인구밀도가 높아도 그렇지 걷는 좀비 따위에 어떻게 우리나라 전체가 털리냐고. 여긴 차 없으면 오기도 힘들다. 대피하던 사람들이 마을마다 좀비를 뿌리기라도 했나? 그것도 너무 억지스럽다.


정말로 자연재해 같다. 나라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사람들을 덮친 거지. 그러면······바이러스가 아니라 저주인가? 수인성 바이러스였으면 지금쯤 나도 감염됐을 거야. 산골에 들어간 다음에는 마시는 물도 계곡물을 썼으니까. 그건 좀 부주의한 짓이었다. 상류에 시체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근데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 어디든 안전한 물이 없다. 오히려 산에서 바로 내려온 계곡물이 제일 믿음직해. 동동이는 어느새 햇볕 잘 드는 운동장 흙바닥 위에서 뒹굴고 있다. 동글동글해서 더 귀엽다.


귀신도 있고 괴물도 있고, 그럼 저주가 있어도 이상할 거 없어. 꼭 저주라고 할 것까진 없는데, 아무튼 이번 좀비 사태는 초자연적인 원인이 있을 것 같다. 살아남은 생존자들한테 어떤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바이러스라면 면역력이고, 저주는······. 모르겠다.



“동동아 가자.”


“애웅!”



동동이는 내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울더니 차로 뛰어 올라갔다. 고양이도 개처럼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고 한다. 무시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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