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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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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4.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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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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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화

DUMMY

고양이가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캔을 하나 까두고 문도 열어뒀다. 나도 이대로 영영 떠날지 모른다. 좋은 추억이 없는 원룸이다. 윗집은 당연하고 아랫집, 옆집, 계단 소음까지 다 들어오는 형편없는 건물. 덕분에 애정이 하나도 없으니 고마워해야 하나. 전혀 아쉽지 않다. 솔직히 불이라도 나서 다 무너졌으면 좋겠다.


새 자전거 안장에 몸을 올리고 출발했다. 경사로를 달려 내려가 대로를 탔다. 자동차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다 떠난 모양이다. 생기 없는 도시는 햇볕에 노출된 시체 같다. 거기 달라붙어 썩은 살을 뜯어 먹는 좀비들. 포장된 음식을 뜯지 못해 이빨로 계속 씹기만 한다. 다 썩은 거라 뺏을 필요는 없다.


벌써 열흘째다. 사람이 열흘을 굶으면 움직이기도 힘들다. 좀비도 힘이 하나도 없다. 날 보고 걷다가 쓰러지기까지 한다. 서양판 좀비 아포칼립스였으면 변종 좀비 같은 게 뛰어다녔으려나. 그냥 내가 아직 못 만난 건지도 모르고.


대도시를 향해 계속 달렸다. 가는 길에 고속도로 쪽을 봤는데, 차들이 전부 그쪽에 몰려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다 막힌 모양이었다. 남쪽에 뭐가 있다고 내려가려 했을지 짐작이 안 간다. 배를 타고 해외로 나갈 생각이었나. 전 세계가 똑같은 상황인데 무슨 소용이지? 배나 비행기처럼 폐쇄된 공간에 좀비가 나오면 그냥 죽는 거다.


도착할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달렸다. 군부대가 도시를 폐쇄한 흔적을 만났다. 콘크리트 바리케이드를 치고 모래주머니를 쌓아 안에서 못 나오게 막아놨다. 군용 차량은 없다. 다 떠났다. 나쁜 소식은 아니다. 움직이는 군대가 어디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바리케이드 앞에 좀비 시체가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다. 총으로 쏘다가 안 되니까 네이팜 같은 걸 터뜨린 것 같다. 아직도 불이 타고 있어.


두 시간이나 자전거를 타니 힘들다. 엉덩이도 아프고. 중요할 때 체력이 부족하면 안 된다. 복숭아 통조림을 먹고 잠깐 쉬었다. 땀에 젖은 옷이 불쾌하다. 땀······장갑을 24시간 끼고 다니긴 힘들지. 목검에 손잡이를 감아야겠다.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에 스포츠용품점을 들렀다. 역시나 음식이 없는 곳은 좀비도 없다.


테니스 채에 쓰는 그립 테이프를 목검에 감았다. 손맛이 좋아졌다.


튼튼하게 만든 목검이지만 언젠가는 부러질 거다. 좀비용으로 가장 좋은 무기가 뭘까. 총 말고. 긴 손잡이가 달린 전투 망치? 어떤 유튜버가 추천해주는 걸 본 적 있다. 창이랑 망치를 합친 무기다. 근데 그걸 우리나라 어디서 구하겠어. 비슷한 걸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튼튼한 쇠파이프 끝에 송곳이랑 망치를 용접해 달면 된다. 그립 테이프도 넉넉하게 있어야겠네. 좀비가 없는 시절부터 좀비 사태를 준비해온 사람들은 지금 다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다. 전멸하진 않았을 거야. 나도 살아있으니까.


아파트 단지는 조용했다. 군대가 한바탕 난리를 피운 덕분에 수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그래도 인구 100만이었던 도시다. 어딘가에 모여있을 수도 있다. 먹을 것이 있는 곳에. 언제든지 내려칠 수 있도록 목검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전기가 언제 끊길지 모르는 판에 엘리베이터를 탈 순 없지.


복도식 아파트라 한쪽이 막혀도 도망칠 수 있다. 그 점은 다행이다. 아버지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썩은 냄새가 확 풍겼다. 아버지는 집에서 혼자 좀비가 되어 있었다.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다. 꺼진 핸드폰. 나한테 연락하려고 했던 걸까. 아버진 자기가 좀비로 변한다는 걸 알고 나한테 연락하려 했을까. 하지만 끝까지 하지 않았다. 날 걱정해서?


경찰 좀비한테 했듯이 아버지 어깨를 목검으로 내려쳤다. 밖에서 목검을 휘두르면 창피하니까 실내에서 운동 삼아 많이 했는데, 그게 도움이 됐다. 빗장뼈가 부러진 아버지. 왼팔이 축 처졌다. 손을 바꿔 한 번 더 내려쳤다. 순식간에 양팔이 불구가 된 아버지를 넘어뜨렸다. 그리고 이불째 테이프로 묶었다.


마치······예정된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모든 걸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던 것 같은······그런 착각에 잠시 빠졌다. 난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 좀비를 쓰러뜨렸다. 아버지가 죽은 거나 다름없는데 눈물이 안 나온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었다. 좀비여도 다를 게 없다. 아니, 쓸데없는 잔소리를 안 하니까 좀비가 나을지도 모르겠다.


안방에서 아버지가 쓴 손편지를 찾았다. 혹시라도 내가 집에 올까 싶어 남긴 듯했다. 어쩌다 물렸는지, 자기 상태가 어떤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다 적혀있었다. 만약 자기가 죽으면 할아버지 옆에 묻어달라는 부탁도. 내 상황은 생각을 안 했나 보다.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은 있었다. 사랑한다, 아들. 아빠가 이렇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힘들 때 아버지는 모든 게 내 탓이라고 했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을 때 아버지는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자길 탓하지 말라고 했었다. 부모가 자식을 그딴 식으로 밀어낼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옆에 묻히고 싶을지 몰라도 난 아버지 옆에 묻히고 싶지 않아.


아버지는 공장을 운영했다. 공업단지 한쪽에 있는 영세업체. 화물차는 거기 있을 거다. 열쇠는 아버지한테 있고. 여기서 가깝진 않다.


아버지가 계속 움직이는 한 내 마음이 편해질 날은 없다. 할아버지 옆에 묻으러 가야겠다. 어차피 시골로 갈 생각이었으니까 문제없다. 문제가······너무 큰 문제가 다른 걸 다 잡아먹었지. 지금은 아무 문제도 없다.


차를 끌고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계엄령이 떨어졌고 군대가 도시를 폐쇄했다면 어느 길이든 막혀 있을 거야. 하지만 자전거에 아버지를 싣고 가는 건 불가능하다. 도시 안에서 굴삭기든 뭐든 찾아내 바리케이드를 밀어버려야겠다. 운전하는 법은 모르지만 하다 보면 되겠지.


실내 환기를 했다. 눈물이 나올 만큼 냄새가 독했다. 눈물이 계속 나왔다. 집에 먹을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손대기 싫었다.


아버지를 놔두고 도망치고 싶다. 날 불효자라고 욕할 사람도 없다.


도시 어디에 굴삭기가 있을지 전혀 모르겠다. 넓은 주차장이 필요할 테니 땅값 싼 곳에 있지 않을까. 그런 물건은 소규모 업체가 연락을 받아 자기들 것을 보내주는 식이다. 큰 회사가 굴삭기를 소유한 게 아니다. 지도를 한참 동안 찾아봤다. 이름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꼭 굴삭기가 아니어도 돼. 바리케이드만 밀면 되니까. 버스로 해볼까? 버스터미널로 가자.


아버지 집에서 버스터미널은 가까운 편이다. 그러나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버스가 한 대도 없었다. 시민 대피에 동원한 것 같았다. 길가에 방치된 버스는 문이 잠겨 있거나 열쇠가 없었다. 피곤해져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누운 채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아버지 공장으로만 가면 되는데······. 공장 주변에 지게차 업체가 몇 개 있다. 그거면 바리케이드를 치울 수 있을 거야. 근데 거기까지 자전거 타고 가서 여기로 지게차 타고 돌아오는 건 생각만 해도 지친다. 가는 데만 네 시간은 걸린다. 당연히 지치지. 도착했을 때 무슨 일 생겼다간 대처가 안 된다.


어떡하지.


끌차랑 상자. 아버지를 상자에 넣고 끌차에 실은 다음 자전거로 끌고 가자. 중간에 원룸에 들러서 하루 쉬고 가면 된다. 당장 서둘러야 할 이유는 없잖아. 천천히 가도 돼. 하루 늦는다고 죽지는 않으니까.


끌차는 버려진 화물차에서 찾아냈다. 이삿짐용 플라스틱 상자도 같이 있었다. 이번엔 운이 좋았다. 약간 어설픈 방법이었지만, 해가 떨어지기 전에 아버지를 데리고 원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샤워가 너무 하고 싶었다. 도시 옆에 있는 강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안 그러는 게 좋겠지? 좀비가 물속에 있다가 날 덮치는 상상이 떠올랐다.


턱시도 고양이가 내 의자에서 자고 있다. 캔은 다 먹었다. 발소리를 듣고 내 앞으로 와서 기지개를 켠다. 방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전기도 끊겼구나. 지금부턴 석기시대다. 내 손으로는 석기까지밖에 못 만드니까 석기시대가 맞아. 당연히 주변에 널린 철기 쓰겠지만······.


빛이 없는 밤은 정말 길었다. 허리가 아파 계속 누워있지도 못했다. 배터리를 아끼느라 핸드폰도 안 썼다. 그냥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땀이 식어 추웠다.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입을 옷도 별로 없네.


밥을 못 먹은 좀비가 굶어 죽는다고 치자. 한 달쯤 후에. 그럼 그다음부턴 어떻게 되는 거지? 숨어있던 사람들이 나와서 돌아다니나?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까?


어차피 나 같은 사람은 아무도 신경 안 쓴다. 대피할 때도 찾아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갔잖아. 갈 데가 어딨다고. 좀비 사태 같은 걸 정부 차원에서 대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급한 김에 제주도로 모이지 않았을까. 섬을 폐쇄하고 좀비만 잘 통제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좀비한테 물리는 것 외에도 감염 경로가 있을 거야. 기생충일 수도 있고, 동물일 수도 있고, 물일 수도 있다. 동물에 붙은 기생충. 흑사병도 쥐에 붙은 벼룩이 퍼뜨렸다고 했었나. 이번에도 똑같이 쥐에 붙은 벼룩이라면? 그럼 고양이도 매개체일 텐데.


좀비가 고양이를 피한다. 정말로 이유가 뭘까? 좀비도 공포를 느끼나?


어두운 데서 나 혼자 있으려니 잡생각이 계속 든다. 고양이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피곤하다.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아침이 올 때까지 누워서 기다렸다. 고양이도 어느샌가 내 옆에 와서 체온을 나눴다.


감기에 걸렸다. 몸이 나른하고 이마가 화끈거린다. 라면은 아직 많아. 물이 걱정이다. 이삼일 정도는 버틸 수 있다. 그동안 좀비들이 더 약해지면 마트에 들어갈 수 있을 것도 같다. 노래 같은 걸 틀어서 유인해볼까?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네. 밖에서 노래 틀어봤자 실내에선 잘 안 들려. 냄새도 그렇고.


몸도 무겁고 머리도 무거워. 고양이가 또 문을 열어달라고 보챈다. 열어주었다. 나한테 캔이 없는 걸 알고 사냥하러 가나 보다. 고양이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옥상에서 산책했다. 마지막 가스로 끓인 커피도 마셨다. 이제 가스도 안 나온다. 커피는 엄청 맛없었는데 물이 아까워서 참고 마셨다. 감기는 금방 낫겠지. 종합비타민 먹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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