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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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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5.0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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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5화

DUMMY

사람 죽인 동물은 죽어서 괴물이 된다. 사람들은 그걸 여태 모르고 살아왔다. 위험한 동물이 나오면 최대한 빨리 잡아 죽였다. 옛날에 우리나라에 많이 살았던 호랑이들이 저승 가서 대부분 괴물이 됐다는 말이다.


착물갑사는 그래서 생겨났다. 착호갑사가 잡은 호랑이가 저승에서 괴물이 되면, 그걸 착물갑사가 잡는다. 누가 그런 조직을 만들었냐는 질문에 무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청장님께서 숨기라고 하셨습니다.”


“왜요?”


“당신이 놀라길 기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무연은 날 ‘당신’이나 ‘인프제 님’이라고 불렀다. 당신은 그렇다 쳐도 인프제 님? 님자까지 붙었어. 뭐 어때······말만 잘 통하면 됐지.


지금은 산골로 돌아가는 중이다. 밤이고. 저수지랑 계곡 주변에 입지가 좋은 집이 꽤 있었다. 정말로 좋았다. 물이 바로 옆인 데다 밭농사 지을 땅도 넉넉했다. 과수원 하는 집도 있었다. 난 전지판이 16장이나 있는 큰 집을 하나 골랐다. 1층은 식당을 하는 2층 건물이었다. 가져온 짐을 대부분 거기 놔두고, 산골에 남은 걸 싹 털어오기로 했다.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새집을 구해서 기분이 좋다. 좀비 사태 전에는 이런 기분을 못 느껴봤다. 노력 이상으로 보답 받는 기분. 치열한 경쟁 사회가 아예 박살이 난 뒤에야 이런 삶이 가능해졌어. 우리나라는 미친 나라였다. 앞만 보고 달리다 넘어져 코가 깨져도 쉴 줄 모르는 나라. 출산율 꼴찌, 자살률 1위.



“자살한 귀신은 상태가 어때요?”


“좋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도 저승 분위기 전체적으로 안 좋았어요?”


“네. 이승이 안 좋으면 저승도 안 좋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조용했다. 고라니 한 마리를 칠 뻔했던 거 빼고. 무연이 길 밖으로 쫓아냈다. 고기도 맛없고 가죽도 별로라서 안 잡는 동물이라고 들었다. 멸종위기종인데 우리나라에만 바글거린다. 지네한테 먹여도 되겠지? 잡기만 한다면.


대왕지네는 고양이 케이스 안에 있다. 자기가 들어갔다. 케이스를 조수석 풋레스트에 놨고 동동이는 조수석에 올렸다. 직선거리로는 멀지도 않은데 강이랑 산 따라 휘어진 길이라 오래 걸렸다. 안전을 위해 천천히 달리기도 했고. 밤늦게 도착했다.


제일 고생이 많았던 닭들을 닭장으로 다시 옮겨줬다. 여러 번 왕복해야 할 거고, 일주일 넘게 걸릴지도 모른다. 아버지 컨테이너까지 싹 털어야지. 새집을 생각하니 별로 피곤하지도 않았다.


커플이 타던 차는 세단이었다. 차를 잘 모르는 나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유명한 흰색 모델. 양아치가 많이 타는 거로 유명한······. 자기 차가 아닐지도 모르지. 어쨌든 차가 두 대 있으면 나쁘지 않다. 경유랑 휘발유 골고루 쓸 수 있는 것도 좋고. 근데 이걸 어떻게 몰고 가냐.


약간 미친 생각이긴 한데, 화물차는 저쪽에 두고 자전거로 여기 돌아와서 가져가면 될 것 같다. 차로 한두 시간 걸리는 거리인 데다 경사도 심하다. 고생길이 훤하네. 아, 이 정도는 무연한테 부탁해도 되겠구나. 그때 가서 자전거 밀어달라고 해야겠다.



“이 차를 가져가시겠다면 제가 당신을 업어드리겠습니다. 필요하실 때 말씀해주십시오.”



A급 신병 같은 눈치였다. 그러자고 했다.



“커플 귀신은 어떻게 됐어요?”


“그날 청장님이 오셔서 데려가셨습니다. 커플 때문은 아니었고 당신이 떠났다고 하니까 급하게 오셨습니다.”


“만났는데 지네 얘길 못 들었어요?”


“지네는 나중에 발견했습니다.”


“귀신들이 저 원망했겠네요.”


“네. 그래도 청장님께서 잘 설득하셨습니다.”



자기가 나한테 보냈는데 일이 이렇게 돼서 최 도령은 마음고생 좀 했겠다. 나야 뭐······솔직히 속이 다 시원하다. 그래도 말조심해야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라면으로 후딱 때우고 일하러 나갔다. 어지간한 생활용품은 저쪽에서도 구할 수 있을 거야. 먼저 건축자재 위주로 루팅했다. 새 닭장을 지을 자재. 다치지 않게 조심했다. 하루 이틀 늦는 건 아무 문제 없다. 안 다치는 게 최우선이다.


집을 뒤지고, 창고를 뒤지고, 무거운 걸 차에다 싣고 하다 보니 하루가 다 지나갔다. 저녁엔 동동이와 지네, 나 셋이서 같이 밥을 먹었다. 지네는 고양이 사료도 잘 먹었다. 식탐 강한 동동이지만 지네를 공격하진 않았다. 무서운지 눈치를 보며 거리를 뒀다.


지네가 너무 크니까 진짜가 아니라 플라스틱 장난감 같다. 까만 몸통에 빨간 다리. 벌레는 눈이랑 입이 징그러운데, 얘는 입이 밑에 있어서 안 보이고 눈은 까맣고 동그래서 안 징그럽다. 인면지네에 비하면 솔직히 귀여울 정도다.


귀엽다고 생각해야지······앞으로 계속 봐야 하는데.


마음을 비우고 며칠 고생했다. 아니 고생하다 보니 마음이 비워졌다. 건축자재를 한바탕 옮긴 다음은 농기계였다. 밭갈이에 쓸 농기계. 이거 이름이 관리기구나. 처음 알았네. 화물차에 철판을 대서 관리기를 올렸다. 예초기나 전기톱 같은 것도 실었다. 찾아보면 저쪽에도 있겠지만, 고장 날 걸 생각하면 여러 대 있는 게 좋아.


몸이 아파서 하루 쉬었다. 근육이 쑤셨다. 큰 고무 대야에 계곡물을 담아 안에 들어갔다. 적당히 시원해서 좋았다. 느긋하게 늘어져 있는데 닭이 내 머리카락을 물어뜯어 분위기를 망쳐놨다.


여태 머리를 안 깎고 있었네. 이발기 저쪽에 있는데······. 가위로 대충 잘라냈다. 개천에 빠진 거지꼴이 됐다. 어이가 없어서 혼자 웃었다.


비닐하우스에 심었던 채소가 꽤 자랐다. 살살 파내어 화분으로 옮겼다. 건축자재와 기계 다음은 비료였다. 단순 운반 노동. 지게차만 있었어도 훨씬 편했을 텐데. 수십 포대를 일일이 옮겨 싣느라 어깨가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이거 또 저쪽 가서 내려야 하잖아. 돌겠네.


포대 때문에 하루 쉬었다. 저녁밥 먹고 심심해서 무연이랑 얘기하러 갔다.



“고양이를 만지고 싶습니다.”



아오 깜짝이야 말도 안 걸었는데 어떻게 알았어.



“놀라셨습니까? 발소리를 들었습니다.”


“아 예.”



고양이? 고양이 좋아하나? 근데······.



“무연 씨, 고양이 만질 수 있어요?”


“······.”



머리만 있다고 했잖아. 손이 없는데 고양이를 어떻게 만져.



“데리고 올게요.”



동동이는 무연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굉장히 경계하긴 했다. 갑옷 냄새를 맡게 해줬다. 차를 많이 타본 고양이라 그런지 금속이나 기름 냄새에 익숙한 듯했다. 금방 적응한 눈치였다. 무릎 꿇은 무연의 어깨에 올려주니까 얼굴을 핥고 몸도 비볐다. 동동이 접대력이 좋다.



“스읍······.”



고양이 냄새를 흡입하네. 근데 무연은 어쩌다 머리만 남았을까. 좋은 추억은 아닐 것 같다. 물어보지 말자. 동동이가 뛰어내리려고 눈치를 보기 시작해서 얼른 내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저승엔 멀쩡한 동물이 없어서요.”


“동물은 죽으면 어떻게 돼요?”


“바로 윤회로 가거나 괴물이 됩니다. 괴물이 되는 경우도 요즘은 거의 없습니다.”



무연의 키에 맞는 캣타워를 만들어야겠다. 동동이도 좋아하겠지.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냥 나무에 발판 몇 개만 달면 돼. 그게 캣타워지 뭐. 톱 달린 선반이 있으면 좋겠다. 아니면 그냥 선반이라도.



“많이 바쁘다던데 저랑 있어도 괜찮아요?”


“모든 착물갑사는 현재 괴물을 사냥하거나 생존자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게 제 임무입니다.”



죽은 귀신이 산 사람을 지켜준다. 서정적이긴 해도 정상이 아니야. 크게 잘못됐다. 근데 이게 현실이다.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무연한테 동동이 발바닥 냄새를 맡게 해주고 집으로 들어왔다.


자려고 누웠는데 갖고 싶은 게 계속 떠오른다. 전기 절단기. 산소 절단기. 용접기. 에어 컴프레셔. 밀링 머신. 전부 다 아버지 공장에 있다. 그걸 실어 올 큰 화물차도 있고, 화물차에 올릴 지게차까지 다 있다. 근데 지게차를 못 싣네.


금속은 사방에 널렸다. 적당히 루팅만 해도 평생 쓴다. 그러니까 금속을 가공할 수 있는 기계가 절실하다. 아니 없어도 먹고 사는 건 되지. 웬만한 건 철물점에 다 있으니까. 그냥 내 손으로 무기 만들고 싶어서 그렇다. 위험 지역을 파밍하려면 더 좋은 무기가 필요하다는 건 상식이다.


아버지 공장까지 다녀오는 건 어렵고, 이 지역 공업단지에서 찾아봐야지. 공업단지는 무조건 도시랑 떨어져 있으니까 괴물도 잘 안 나올 거야. 거리가 가깝다면 기계를 옮기는 대신 그쪽을 작업장으로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 전기 문제가 있긴 한데······. 공장에서도 태양광 전지판 많이 쓰니까 운이 좀 따라주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도 있어.


아 진짜 잠이 안 오네. 이불 속으로 들어온 동동이를 한참 만져주다가 잤다.


이사는 예상대로 일주일 넘게 걸렸다. 틈틈이 쉬느라 길어졌는데, 잘한 짓이었다. 꽤 일했는데도 몸이 가볍다. 고생한 게 전부 운동이 됐나 보다. 개운하면서도 한편으론 우울했다. 늦을 대로 늦고 나서야 인생 제대로 사는 기분을 맛보다니.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낮에는 펜션촌으로 옮겨온 짐을 정리했다. 해가 떨어지고 나서 무연의 등을 빌렸다. 세단을 가져오기 위해서다. 무연은 의족 때문에 운전이 어렵다고 했다. 감각이 없으니까 브레이크나 엑셀 조절이 어렵지. 일손이 참 아쉽네. 서로 도와도 모자랄 판에 그 커플은 왜 그렇게 함부로 행동했나 모르겠다. 내 머리론 영원히 이해 못 할 거야.



“우리나라에 생존자 얼마나 있어요?”


“1%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오십만 명. 생각보다 많다. 돌아다니면서 마주친 적이 없는 것치고는.



“다 어디 있어요?”


“대도시에 갇혀 있거나 제주도로 내려갔습니다.”


“대도시 전부 봉쇄됐어요?”


“네. 서울이랑 부산은 완전히 봉쇄됐습니다.”


“군대가 꽤 남아있다는 소린데 다 어떻게 됐어요?”


“군대는 거의 궤멸했습니다. 도로를 막은 건 예비군이랑 민방위입니다.”


“걸어 다니는 좀비한테 군대가 털렸다는 게 너무 말이 안 돼요.”


“저희가 생존자에게 들은 바로는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변이가 일어났습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변했다고요? 한꺼번에요?”


“네.”



마치 누가 단추를 누른 것처럼 일제히 시작된 변이. 나노 바이러스? 그러면 내가 멀쩡한 게 말이 안 돼.



“어디까지 알아내셨어요?”


“거의 진전이 없습니다. 일어난 일을 감당하기도 벅찹니다.”


“최 도령은 뭐 하고 있는데요?”


“일하고 계십니다. 조정에서 생존자 보호와 귀신 인도를 최우선으로 하라는 어명을 내렸습니다.”



조정? 조선왕조야? 왕이 저승 가서도 권력을 포기 못 했나. 웃기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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