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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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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4.2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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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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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화

DUMMY

밤에 닭장이 소란스러웠다. 고등어 고양이가 얼쩡거리고 있었다. 고양이는 먹을 것을 구걸하듯이 나한테 다가와 울었다. 닭 키우는 집에서 고양이는 반가운 생물이 아니다. 닭을 재미로 물어 죽이니까. 그래서 쫓아내거나 죽인다.


쫓는다고 갈 것 같지도 않고, 도와달라고 매달리는 걸 죽일 수도 없고······. 찬장을 뒤져보니 북어포가 있었다. 맛없어서 난 안 먹는다. 북어포를 물에 불려 고양이한테 줬다. 허겁지겁 씹어 삼킨다. 미안하지만 얘는 멀리 버리고 와야 할 것 같다. 아무리 불쌍해도 내 목숨보단 안 중요해.


고등어 고양이는 다음날 아버지 묻으러 갈 때 날 따라왔다. 할아버지 산소 옆을 파서 항아리를 넣고 흙을 덮었다. 눈에 띄도록 봉긋하게 쌓았다. 잔디도 대충 심었다.



“혹시 묘비는 해드릴 생각 없어?”


“해야 돼요?”


“하면 좋지. 성함 석 자라도 적어 세워드리면 고마워하시겠지. 아무리 사이가 나빴어도.”


“묘비 구한다고 쳐도 혼자선 여기까지 가져오지도 못해요.”


“가져올 수 있을 만큼 작게 해. 돌 크기가 뭐가 중요하겠냐. 마음이 중요하지. 자꾸 참견해서 미안한데, 아무리 그럴싸해도 남한테 돈 주고 하는 것보단 자식이 직접 해주는 게 훨씬 나아.”


“진짜 참견 많이 하시네요.”


“어쩌겠냐, 내가 귀신인데.”



최 도령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듣기 싫진 않았다. 그래, 그까짓 묘비쯤이야 세우면 되지. 시골은 산소가 많다. 읍내에 석재상 있는 걸 봤어.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는데 돌아다니다 보면 있겠지. 적당한 돌 고른 다음 거기다 아버지 이름 새겨넣으면 된다. 손수레로 옮길 수 있을 정도로 작아야 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들어오는 길은 경사가 너무 심해서 일반 차량은 안 된다. 그러니까······대략 40kg 이하로 잡아야겠다.


고양이를 진짜로 버리고 와야 할지 고민된다. 닭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아무 상관 없는데. 집안에서 키우면 되지 않을까. 묘비 구하는 김에 고양이 물건도 구해야겠다. 마트에 좀비가 없었으면 좋겠다. 당연히 있겠지만 지금쯤이면 지네가 다 뜯어먹었을지도 몰라.


가장 가까운 읍내는 산을 넘어 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좀비가 쳐들어올 걱정은 안 해 될 거야. 그래도 문은 꼭 잠그고 다니자.


읍내로 가는 길에 절을 지나쳤다. 앞에 식당가가 있을 정도로 큰 절이다. 좀비가 바글거렸다. 대부분 아저씨 아줌마였다. 걸을 때 몸에서 인면지네가 떨어지기도 했다. 떨어진 지네는 어두운 곳으로 기어가 숨었다.



“저 좀비들 말인데.”


“네.”


“혼이 없는 고깃덩이야. 그냥 시체. 그래서 인면지네가 파먹는 거고. 인면지네는 청소부거든.”


“진짜 언데드네요?”


“음······저승엔 저런 게 없어. 뭔지 모르겠다.”


“서양 괴물이니까 서양에서 넘어오지 않았을까요.”


“정확히는 아이티 부두교가 원조지. 살아있는 사람을 중독시킨 거라서 저거랑은 다르지만.”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너 저승 와보면 엄청 놀랄걸. 서두르진 마라. 천천히 와.”



제가 죽으면 인면지네가 되진 않을까요. 그렇게 물어보려다 말았다.


마트부터 갔다. 좀비가 다 쓰러져 있어서 좋았다. 조금씩 꿈틀거리기만 했다. 실내에 있던 좀비는 지네가 파먹었고 밖에 돌아다니는 좀비는 무사하다. 인면지네는 햇빛을 싫어하는 것 같다. 저 시체 같은 얼굴은 절대로 적응을 못 하겠다.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아 진짜 너무 징그러워.


고양이용품이 없네. 작은 마트니까 그럴 수도 있지. 시골은 고양이를 잘 안 키운다. 애완용품 가게가 어디 있긴 있겠지만, 오늘은 묘비부터 보는 게 좋겠다. 북어포랑 멸치, 건새우 몇 상자만 가지고 나왔다.


합판 울타리로 둘러싸인 석재상을 읍내 외곽에서 발견했다. 잠긴 문을 절단기로 땄다. 당연하지만 돌밖에 없었다. 묘비로 쓰기 좋은 새카만 돌. 이걸 판묘비라고 하는구나. 납작하게 만들어서 눕히거나 세우는 묘비. 세우는 거로 하자. 잘 보이니까. 크기랑 무게가 바닥에 다 적혀 있었다. 35kg. 생각보다 가볍다. 이게 20kg 쌀자루보다 작다는 걸 생각하면 대충 맞는 것 같다. 돌 옮기기 딱 좋은 손수레도 있었다.


예전엔 다큐멘터리를 가끔 봤다. 직업 소개해주는 다큐멘터리. 석공도 봤었는데, 요즘은 컴퓨터에 내용을 입력하기만 하면 기계가 모래를 쏴서 돌에 새겨준다. 사진도 되고 심지어 QR코드까지 된다. 전기가 안 들어오니까 당연히 지금은 안 된다.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묘비에 분필로 아버지 이름을 쓰고 정이랑 망치로 살살 두들겨 새겼다.



“너 이것도 처음이야?”



유리처럼 반들반들하고 까만 비석 안에 최 도령이 나타났다.



“네.”


“근데 어떻게 망설임이 없냐. 한 10년은 해본 것 같네.”


“돌 깨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요.”


“아니 그래도.”


“망설일 시간 없어요. 해 떨어지기 전에 끝내야죠.”



해가 떨어지는 건 정말로 문제다. 지금은 석기시대다. 밤 되면 내 발도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해진다. 게다가 여긴 산 때문에 해가 빨리 진다.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도 생각해야 한다. 늦어도 다섯 시엔 떠나야 해. 몇 시간 안 남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돌이 별로 안 딱딱해서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10년씩 연습할 수는 없잖아. 농사짓는 법이나 배우는 게 훨씬 낫다. 내일은 묘비, 내일모레는 도서관. 여긴 도서관이 없으니까 큰 도시로 가야겠다. 며칠 더 준비해서 갈까? 위험한 게 있을지도 몰라. 멧돼지만 나와도 충분히 위험하다. 창 같은 게 있으면 훨씬 낫겠는데. 아······아버지 공장에 있을 때 하나 만들걸. 아니지, 그때부터 전기 안 들어왔으니까 어차피 못 만들었겠구나.


화물차에 묘비를 싣고 산골로 돌아왔다. 고등어 고양이가 날 기다리던 중이었다. 아예 집사로 부려먹을 생각이구나. 화물차에서 내리자마자 가까이 와서 울어댔다. 쥐 같은 거 알아서 잡아먹었어야지 나한테 왜 이래.


마을에 사람이 없으니까 쥐도 없나? 뭐 아무튼, 당장 먹을 건 가져왔다. 멸치를 물에 끓여주었다. 냄새만 맡고 안 먹는다. 음식 가릴 때가 아닌데. 근데 나도 국물용 멸치를 물에 끓여 먹긴 싫다. 비린내 나는 건 다 안 좋아한다. 대신 닭이 먹어주었다. 미친 듯이 쪼아 먹는다. 잘게 부숴줬다. 계란을 또 받아 고양이한테 삶아줬다. 흰자는 안 먹고 노른자만 처먹네. 입이 왜 이렇게 고급이야.


지붕에 달린 태양광 전지판으로는 냉장고가 안 돌아간다. 전자레인지도 안 되고. 전등이라도 켜지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여기도 LED 쓰는구나. 나보다 전등이 오래 가겠다.


가스는 가스탱크에 들었다. 얼마 남았는지 모를 가스로 건새우를 볶아 밥반찬으로 먹었다. 기본적인 양념 같은 건 다 있었다. 마늘도 그늘에 걸려 있고. 한 달 정도는 그럭저럭 사람답게 먹을 것 같다. 해 떨어지고 나면 할 일이 너무 없다. 소일거리라도 만들어야 하나?



“묘비 내일 세우지?”


“네.”


“그거 한 다음에 제사도 간단하게 지내드려. 음식이랑 술 놓고 절 두 번 하면 돼.”


“왜 자꾸 늘어나요?”


“에이, 네가 아들인데 그 정돈 해야지. 아버지 뭐 좋아하셨어?”


“감자 부침개요.”


“만들 줄 알아?”


“네.”


“잘됐네. 후회는 안 할 거야. 내 말 믿어도 돼.”



마늘이랑 고춧가루로 양념간장을 만들었다. 양념간장은 하루는 숙성돼야 맛이 난다. 아······진짜 할 일이 없다. 고양이가 현관문을 긁어대서 열어줬다. 물티슈로 발을 닦아주려고 했는데 빠져나갔다. 온 집안에 흙이랑 모래를 뿌리고 돌아다니는 미친 고양이. 청소하느라 고생했다. 덕분에 시간은 잘 갔다. 고양이를 화장실에 몰아넣어 가뒀다. 발이랑 몸까지 닦아줬는데 엄청 더러웠다. 넌 무조건 빨아야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평화로운 산골 아침이다. 귀농한다고 들어온 사람들이 마을 아래쪽에 있는데 그쪽도 한번 살펴봐야겠다. 소, 오리, 토종닭 같은 걸 키웠다. 배추나 고추 농사도 지었고. 친척들이랑 알고 지내지는 않았다. 소 닭 보듯 그랬다더라.


한밤중에 잠깐 바람 쐬러 나갔다. 별이 보였다. 별인지 인공위성인지. 유난히 밝은 건 대부분 인공위성이야. 우주정거장에 있는 사람들은 뭘 하고 있을까. 지상에서 우주선을 보내주지 않으면 지구로 못 돌아오지 않나. 탈출선 같은 게 있나. 내려와 봤자 좀비뿐일 텐데 괜찮을까.



“너 내가 말 안 걸면 한마디도 안 하더라. 안 답답해?”



최 도령이 쓸데없는 소릴 했다.



“왜 답답해요?”


“너 I구나? MBTI 뭔지 알지? 해봤어?”


“네.”


“잠깐만, 내가 맞춰볼게.”



귀신도 그걸 한다고? 저승 가면 진짜 많이 놀라겠다.



“I······STP. 맞아?”


“INFJ요.”


“하하하! I 빼고 다 틀렸네. 난 뭐게?”


“ENFP요.”


“내가 말했었나? 어떻게 알았어?”


“그냥 찍었는데요.”


“대단하다 참. 인프제가 원래 통찰력이 좋다더라. 직감도 뛰어나고.”


“그거 그냥 통계에요. 사람마다 달라요.”


“MBTI 잘 안 믿는 것도 인프제 특징이야. 남이 하는 말은 확실한 근거가 없으면 안 믿지. 근데 왜 했어? 믿지도 못하면서.”


“재미로요.”


“어땠냐? 맞는 것 같아?”


“대충요.”


“대답이 뭐 그러냐. 성의가 없어.”


“통계라니까요. 100% 맞을 수가 없어요.”


“그래, INFJ 맞네. 이상도 높고, 도덕관념도 높고, 완벽주의자라서 까다롭고. 그럼 그것도 알겠네? 우리나라에 인프제가 1%도 안 된다는 거. 특히 남자 인프제는 거의 없어.”


“네. 절 이해해줄 사람이 없다는 거죠.”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뜻이잖아.”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안 좋다는 뜻이에요.”


“야 인마, 자꾸 그런 식으로 대답하면 내가 어떻게 챙겨주냐.”



귀신이 사람 챙겨서 어쩌겠다는 건지······.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나 말해봐요.”


“근처에 절 있던데 거기 한번 가봐라. 그냥 가서 둘러보기만 하면 돼.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게.”


“좀비가 많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어떻게든 해봐. 너라면 할 수 있을걸? 지금까지 잘 했잖아.”


“낮에 가도 되죠?”


“낮에 가야지. 그러려고 너한테 씌었는데.”



밤은 아직 쌀쌀했다. 고양이가 내 옆구리에 파고 들어왔다. 깔아뭉개지 않게 조심하느라 잠을 설쳤다. 고양이 집 같은 것도 있어야겠어.


아침엔 감자 부침개를 했다. 내 배부터 채웠다. 산소까지 묘비를 가져가는 게 쉽지는 않았다. 손에 쥐가 날 정도였다. 산소 앞에 펼쳐진 경치를 보면서 좀 쉬고 일을 마무리했다. 받침대랑 묘비, 둘 다 30kg이 넘었다. 잡기 불편해서 엄청 힘들었다. 온몸으로 밀어 아버지 무덤 앞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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