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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34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4.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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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화

DUMMY

난 지금 뭘 하고 있나······. 내리막만 타다가 고꾸라져 죽을 인생이었다. 좀비 사태 덕분에 명줄이 더 길어졌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이제 더 살아서 뭐 하지. 모르겠다. 아플 땐 원래 우울해진다. 근데······평소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옥상에 드러누웠다. 햇빛에 달궈진 옥상이 등을 덥혀준다. 따뜻하다. 사람한테서 온기를 느껴본 적이 언제였더라. 이 건물은 정말 쓰레기 같은 건물이지만 따뜻할 땐 따뜻하구나.


아버지는 1층에 있다. 방으로 데려올 필요까진 없어. 누가 훔쳐가지도 않을 거고.


감기는 저녁때쯤 낫기 시작했다. 느낌상 그랬다. 종합비타민 덕분인가. 입맛이 돌기 시작했다. 라면이랑, 복숭아 통조림을 또 먹었다. 질리네. 그래도 먹어야지. 아, 그러고 보니 변기 물이 안 내려가는구나. 앞으로 볼일 볼 때마다 계속 피곤하겠다. 석기시대가 그렇지 뭐.


하루 쉬면서 아버지 공장으로 갈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진짜 안 돌아올 것 같으니까 다 챙기자. 마트에 한 번이라도 갔다면 좋았을걸······. 공장 근처는 거의 촌이지만 그래도 마트가 있다. 사람은 훨씬 적을 거고. 시골로 떠나기 전에 보급을 꼭 해야겠어.


고양이가 또 제멋대로 와서 문을 긁어댔다. 귀찮게 하네 진짜. 열어주었다. 입에 뱀 같은 걸 물고 있었다. 나 주려고 잡아 왔나? 뱀은 기생충이 걱정이라 먹기 싫다. 근데 이게 뭐지? 뱀치고는 좀 짧은데. 핸드폰 손전등을 켰다.

004.png


뭐야 씨발 왜 지네에 사람 머리통이 붙어 있어!?


발은 이미 지네를 밟고 있었다. 아주 납작하게 뭉개버렸다. 건물 바닥이 쿵쿵 울렸다. 아랫집에 사람이 있다면 올라올 거다. 지네 시체를 버리고 바닥을 대충 닦는 동안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다. 어둠 속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사람 머리 달린 지네가 주변을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했는데도 공포는 가시지 않았다. 밟아 죽이면 그만인 지네일 뿐인데, 왜 사람 머리가 달렸냐고.


사람 머리가 확실했나? 너무 놀라서 제대로 못 봤다. 인간의 뇌는 얼굴처럼 생긴 건 다 얼굴로 인식하는 버릇이 있다. 우연히 닮았을 뿐, 사람 머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기엔 머리카락에 눈코입도 선명했고······. 등에 지네가 들어간 것 같은 끔찍한 느낌이 들었다.



“야옹.”



너 때문이잖아. 그딴 걸 왜 잡아 왔어. 내 다리에 몸을 비비는 고양이를 만져주었다. 그제야 공포가 좀 가셨다. 고양이도 잡을 수 있는 나약한 생물에 겁을 먹다니. 좀비는 두들겨 팼으면서 그깟 지네가 뭐라고. 그래, 좀비도 있는데 사람 머리 달린 지네도 있을 수 있지. 뛰는 좀비보단 지네가 나아. 근데 자는 동안 어디 틈으로 들어오는 거 아냐? 고양이랑 같이 자면 괜찮을까? 다행히 턱시도 고양이는 그날 밤 내 곁을 지켜줬다. 신사답게.


아침엔 추워서 깼다. 어제 징그러운 걸 봐서 그런지 기분이 안 좋았다. 준비해둔 짐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아버지가 든 상자 주변에 어제 그 끔찍한 지네들이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날 쳐다보잖아. 사람 머리 맞잖아!!



“하아악!”



날 따라 내려온 고양이가 소리를 지르자 지네들이 도망갔다. 문틈으로 달아났는데 머리통이 끼어 몸부림을 쳤다. 징그러운 놈들이지만 멍청했다. 소름 끼치고. 건드리고 싶지도 않아. 아버지 몸에서 나온 건가? 상자에 지네가 나올 만한 틈은 없다. 그럼 냄새를 맡고 모여든 거겠네. 아버지한테서 나온 게 아니라면 괜찮아. 빨리 출발하자.


방금 봤던 걸 기억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다. 너무 끔찍하다. 지네랑 눈이 마주쳤을 때 몸이 마비된 느낌이었다. 고양이가 아니었다면 진짜 마비됐을지도 몰라. 턱시도 고양이는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 영역 동물이니까 여기서 계속 살 거다. 따라오지 않는다면 억지로 데려갈 이유가 없다. 지네는······그냥 징그러울 뿐이지, 멍청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근데 그놈들이 어떻게 건물 안에 들어왔을까? 문 열리기 전까진 도망도 못 쳤으면서. 원래 건물 안에 있었나? 언제부터 그런 것들이······. 아 그냥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아무 도움 안 돼. 빨리 공장으로 가서 화물차를 찾고, 마트에서 생필품 보급한 다음 시골로 가자.


몸이 조금 무겁다. 감기가 완전히 낫지 않았다. 그래도 자전거 타기에 무리는 없다. 왕복 3차선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천천히 달렸다. 뻥 뚫려 있어 편하고 좋았다. 좀비가 도로 위에는 잘 안 올라온다. 살아있을 적 버릇이 남아있는 걸까?


도로에 무한궤도 자국이 있다. 전차는 고무 패드를 붙이고 다니는 것으로 안다. 궤도 달린 중장비는 화물차로 싣고 다니지, 혼자선 도로 안 나간다. 뭔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다니지 않는 뭔가가 지나간 건 확실하다. 군대겠지 뭐. 하행선이니까 남쪽으로 갔겠네. 궤도 자국은 내가 아버지 공장 쪽으로 빠질 때도 남쪽을 향해 쭉 이어졌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울리고 싶지는 않은데도 그런 바람이 있다. 내가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공업단지로 들어섰다. 좀비가 드문드문 보인다.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다. 그것 말고는 똑같다. 한식 뷔페에 주로 몰려 있다. 배 채우기 좋은 식당. 맛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맛없는 식당은 아무리 가격이 싸도 망하지. 그렇다고 엄청 맛있지도 않다. 그냥 적당한 수준. 사람 머리 지네가 좀비에 붙어 있다. 살을 파먹는 중이다. 좀비 뷔페······.


지네가 역겹게 생기긴 했어도 좀비를 먹어주면 나한테는 좋잖아. 근데 지네한테 물리면 나도 좀비가 되겠지. 안 그래도 피할 생각이었는데 더 조심해야겠다.


오랜만에 온 아버지 공장은 문이 전부 잠겨 있었다. 당연히 난 열쇠가 있지. 공장 안에도 생수통이나 라면이 있을 텐데 찾아볼까. 외국인 노동자들이 지내는 컨테이너 숙소가 걱정되긴 해. 좀비가 돼서 돌아다니고 있으면 피곤해지는데. 그래도 여기 구조는 잘 아니까 유인해서 한 마리씩 처리하면 되겠지. 목검이 부러진대도 대신할 것들이 많아.


다행히 기우였다. 한 마리도 좀비가 없었다. 컨테이너는 전부 열려 있었다. 짐을 챙겨 대피한 흔적. 여기조차 마지막 한 명까지 다 도망쳤는데 아무도 날 안 챙겼다는 게 어이없었다. 잘 생각해보면, 나도 딱히 남을 챙기진 않았을 거야. 그냥 혼자 대피했겠지. 우리 건물에 남은 사람이 없는지 일일이 확인했을까? 그럴 리가.


물이 나오지 않는 화장실에서 거울을 봤다. 수염은 매일 정리하고 있다. 건전지 넣는 전기면도기를 쓴다. 아주 가끔 수염이 뽑혀 따갑지만 괜찮은 물건이다. 사실 내가 자기가 인간인 줄 아는 좀비였다거나······. 그런 억지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거울 속에 보이는 건 그냥 내 평소 얼굴이랑 씨발 뒤에 저거 누구야!!


너무 놀라 움직이지 못했다. 거울 속 얼굴, 남자다. 젊은 남자. 날 보고 웃는다. 굉장히 반가워하는 눈치다. 반면 내 얼굴은 웃길 정도로 눈이 커져 있다. 거울 속 남자······파란 한복 저고리를 입었다. 갓도 썼고. 귀신인가? 다리······거울이 작아서 허리까지밖에 안 보인다.


최대한 침착하려고 애쓰면서 뒤를 돌아봤다. 목검 잡은 손에 땀이 엄청났다. 손잡이 감아 놔서 천만다행인데 귀신한테는 의미가 없어. 뒤에는······아무도 없다. 거울 속에는 있다. 뒤에는 없다. 귀신 맞다. 아니 그냥 환각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미친 거지.


천천히 화장실에서 나왔다. 온몸이 추웠다. 햇빛은 따가운데 공기는 서늘해서 그늘에 들어가면 쌀쌀한 날씨다.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른 채 빠른 걸음으로 건물 밖으로 나가 옷을 다 벗고 햇빛에 몸을 말렸다. 옷도 같이 말렸다. 목검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나체여도, 이거만 있으면 좀비는 물리칠 수 있으니까.


몸에 온기가 들자 마음이 진정됐다. 심장을 조이던 공포도 잦아들었다. 공장 출입문은 유리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 얼굴을 비춰봤지만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잠깐 미쳤던 게 맞나 보다. 이상한 일이 아니야. 좀비 아포칼립스에, 아버지가 좀비가 됐고 내 손으로 불구로 만들어서 지금 저기 저 상자에 넣어놨잖아. 할아버지 옆에 묻어주려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게 분명해. 내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지.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라 억지로 버티고 있는 거야.


해가 지고 있다. 공장에서 하룻밤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밤중에 운전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시골로 내려가는 길, 고속도로 한복판에 좀비가 있다면? 정면충돌. 그보다 더 최악이 없다. 차라리 길이 막혀 있는 게 나아. 그땐 그냥 돌아가면 되니까. 밤에는 절대 고속도로 타면 안 돼. 내일 아침 일찍 가자. 일단 화물차부터 확인하고.


몇 번 타본 1톤 화물차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시골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래서 차에 익숙하고 길도······완벽히 외우진 못했는데 내비 없이 갈 정도는 된다. 핸드폰에 지도 저장해놨으니까 그거 보면 돼. 기름은 절반 정도 차 있다. 평소였다면 시골까지 가고도 남는다. 그래도 꽉 채우는 게 좋을 것 같아. 여분이 있으면 더 좋고. 주유소도 가야겠어. 공장엔 난로에 쓰는 등유뿐이다.


등유랑 난로 가져갈까? 그래, 그러자. 시골은 겨울에 춥다.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 나무 때는 난로도 그쪽에 있긴 해. 근데 등유 난로까지 있으면 훨씬 든든할 거야.


전기 안 들어올 때도 주유소에서 기름 뽑을 수 있나? 모르겠다. 가보면 알 거야. 다른 화물차에서 경유 빼내는 방법도 있고. 기름 자체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거다.


시험 삼아 화물차를 몇 미터쯤 가볍게 몰아본 다음 공장으로 들어왔다. 아버지가 공장에서 잘 때 쓰는 작은 방이 있다. 이불이나 커피포트나 라면 같은 것도 있다. 거울도. 거울을 치워야겠는데 또 그 남자 보이면 어떡하지. 깨버릴까. 안 돼. 시끄럽고 위험해. 이불로 가리면서 치우자. 그렇게 했다. 거울을 뒤로 돌려 세워놨다.


작은 냉장고를 열어봤는데 안에 든 음식이 대부분 상했다. 음료수 같은 건 멀쩡하다. 김이 다 빠진 탄산음료를 마셨다. 와······진짜 맛있네. 이게 이렇게 맛있는 거였구나. 자전거도 타고 귀신도 봐서 많이 지쳤나 보다. 이대로 혼자 자도 될지 모르겠다.



“야옹.”



깜짝이야!


그냥 고양이였다. 치즈 고양이. 먹을 게 없는데 어쩌지. 해 떨어질 때까지 시간이 조금 있으니까 근처 편의점이라도 털어보자. 뭐가 남았을지도 몰라. 땀에 젖어 끈적거리는 목검 손잡이를 휴지로 닦고 일어섰다. 고양이는 날 따라오는 대신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에 파고들었다. 길고양이 더러운데······지금은 나도 더러우니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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