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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좀비와 고양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c61
그림/삽화
c61
작품등록일 :
2024.04.12 22:42
최근연재일 :
2024.05.25 21: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30
추천수 :
1
글자수 :
150,912

작성
24.05.0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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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2화

DUMMY

식당 지붕 반대편으로 올라가 확성기를 회수했다. 낮에는 정말로 크게 위험할 게 없었다. 좀비는 내가 엎드려 기어가는 것보다 느렸다. 힘도 약하고. 물어뜯어봤자 옷도 못 뚫을 것 같아. 내버려 두고 읍내로 이동했다. 벽이 있고 내부가 넓은 장소를 찾았다. 동사무소 옆에 딸린 작은 공원에 있는 게이트볼장. 좋아. 좀비가 게이트볼장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통로도 만들었다. 검은 비닐을 썼다. 농사할 때 쓰는 그거. 쇠막대기를 땅에 꽂고 비닐을 감아 벽을 세웠다.


막대가 안 박히는 곳에는 물통을 썼다. 물을 채운 물통에 쇠막대기를 끼웠다. 그런 식으로 좀비 잡는 커다란 통발을 만들었다. 벌써 시간이 많이 늦었네. 확성기에 줄을 달아 게이트볼장 안에 넣고 좀비를 기다렸다. 기대한 대로 하나둘씩 나타나 게이트볼장 안으로 들어갔다.


꼭 불로 처치할 필요는 없지. 경험치도 안 주고 아이템도 안 줘. 가둬놓으면 충분하다. 좀비들이 느릿느릿 낚이는 모습을 동사무소 2층에서 구경했다. 휴게실에서 찾아낸 커피를 찬물에 대충 타 마셨다. 그런대로 문명의 맛이 났다.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최 도령은 오지 않았다.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귀신인데 뭐······죽겠어?


읍내에 있는 좀비를 다 유인하진 못했다. 그렇지만 좀비는 내가 먼저 움직여야만 반응한다. 과감하게 차를 몰아 생각보다 쉽게 읍내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절 앞 식당가는 도로가 완전히 점거돼서 상황이 좀 달랐다. 폭죽을 또 써야 했다. 열 개도 안 남았어. 여긴 내일 어떻게든 정리해야 해.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동동이랑 놀아줬다. 지친 동동이는 옆으로 벌렁 넘어져 쉬었다. 배를 만져봤는데 의외로 싫어하지 않았다. 확실히 사람 손을 많이 탔어.


내일 어쩔까. 일찍 가서 좀비를 미리 유인하는 게 좋겠다. 옷이 햇볕에 말라야 불이 잘 붙지. 그리고 더 강한 화력······. 타이어를 태우자. 이 동네는 트랙터 타이어 같은 게 굴러다닌다. 좀비를 식당가 주차장 한쪽에 유인한 다음 반대쪽에 불붙은 타이어를 놔서 유인······.


아니지 잠깐만. 그냥 자동차에 검은 비닐을 붙여서 벽 만들어도 되지 않나? 굳이 차를 움직일 필요도 없고, 주차장에 방치된 거 그대로 쓰면 돼. 혹시나 해서 비닐 가져오길 잘했어. 여러 장 겹치면 못 찢을 거야.


근데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나 혼자 고생할 뿐인데.



“하아······.”



나쁜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의미 없는 인생만 살아서 그런가, 아예 버릇이 들었다. 갑자기 동동이가 와서 내 얼굴을 핥았다. 한숨 때문인가. 아니면 밥?



“밥 줄까?”


“양.”



양? 알아듣고 대답한 거니? 밥을 주니까 먹긴 먹는다. 고양이는 살쪄도 귀여워. 그래도 밥은 적당히 줘야지.


스스로 의미를 찾아야 하는 아침이 또 밝았다. 이번에도 차에 타려는 동동이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위험해서 안 데려가려는 건데 그것도 몰라. 말도 안 통하고. 귀엽지만 조금 모자란 생물이다.



“안 돼. 집에 있어.”



창문을 열고 동동이를 집어넣었다. 유리에 앞발을 붙이고 날 쳐다본다. 그 정도 눈빛으로는 어림도 없다.


어제 생각했던 계획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좀비는 사람을 한 번 발견하면 주변에서 무슨 일이 나건 사람만 쫓아왔다. 비닐로 벽을 칠 틈이 안 생겼다. 오늘따라 날도 덥고, 짜증이 좀 났다. 물통 손잡이에 비닐을 묶은 다음 도로 한가운데 두었다. 날 따라온 좀비들 주변을 크게 돌면서 비닐로 좀비 무리를 감았다.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돌면서 감고 또 감았다.


결과는 멋졌다. 좀비가 하도 느리다 보니 가능했다. 예쁘게 묶인 좀비 떼가 꼼짝도 못 하고 있다. 무식한 방법이었어. 근데 효과적이다. 어젠 괜히 게이트볼장에 몰아넣는다고 고생했잖아. 물통이랑 비닐만 있으면 되는데. 마무리는 역시 불이지. 비닐 덕분에 잘 탔다. 읍내에서도 이 방법 써먹자.



“자 왔어요 왔어 자반고등어 한마리 오천원~. 제주산 은갈치 한박스 만원~. 싸다 싸 오늘 아니면 못사요~.”



생선 장수 흉내를 냈다. 계속 떠들기에 좋은 역할이라서. 사이렌은 내 귀에 너무 시끄럽고. 아무튼, 읍내 외곽을 돌며 좀비를 다 끌어냈다. 읍내 옆에 있는 넓은 공터에 모아 비닐로 감았다. 중간에 떨어진 비닐을 새로 구해올 만큼 여유가 있었다.


아, 진짜 허무하네. 뇌는 왜 있냐. 이딴 방법도 생각 못 하고. 한 덩어리가 된 좀비 무리는 날 향해 걷다가 우르르 넘어졌다. 끝.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불이 붙을 때까지 횃불로 느긋하게 지져주었다. 게이트볼장은 귀찮아서 그대로 뒀다. 거긴 건물이 많아서 불 지르기 안 좋아.


잘 처리했다고 생각하지만, 긴장을 놓으면 안 된다. 꼭 이럴 때 좀비한테 뒤치기를 당하는 법이다. 동사무소 출입문을 안에서 잠갔다. 뒷문도 확인했다. 이러면 안에서 좀비가 나오겠지? 방을 하나하나 수색했다. 여자 화장실까지 싹 다 뒤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했어도 뒤치기 당할 때는 당한다. 구석에서 벽을 등지고 앉아 최 도령을 기다렸다. 졸음이 왔다.



“야 인프제! 거울 앞에 안 있고 여깄었네. 늦어서 미안하다. 그래도 착물갑사는 데려왔다.”



날 보며 웃는 최 도령 뒤에서 시커먼 게 걸어 나왔다. 키가 나만큼 컸다.

012.png


검은 갑옷······. 얼굴이 하얀 미녀다. 갑옷 때문에 완전 하얗게 보인다. 최 도령은 사람 같은 색감인데 이쪽은 진짜 귀신 같다. 다리가 의족이네. 옛날 갑옷 같은데 다리가 저래서 이상하다.



“많이 지쳤네? 오늘 뭘 했는데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냐?”


“좀비 정리했어요.”


“어디 좀비? 읍내?”


“절이랑 읍내요.”


“두 곳을 다 정리했다고? 혼자서?”


“절까진 안 했고 그 앞에 식당가만요. 읍내는 거의 다 했고요.”


“혼자 이틀 만에······무연아, 확인해봐라.”



출입문을 통과할 줄 알았는데 사람처럼 열고 나갔다. 이승에 영향을 주네?



“착물갑사는 좋은 소식이기도 하고 나쁜 소식이기도 하다. 저승 것이 이승에 영향을 주게 됐어. 그리고 그 많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좀비가 되는 바람에 우리나라 전체가 부정을 탔다.”


“괴물이 더 나온다고요?”


“그래. 훨씬 더 많이. 지옥도가 펼쳐질 거다. 이미 펼쳐졌지.”


“생존자는 얼마나 있어요?”


“우리가 확인한 건 3천 명 정도. 그나마 요 며칠 새에 괴물한테 습격당해서 거의 다 죽었다. 어느 도시든 위험해. 절대 가지 마라. 여기도 언제 괴물이 나올지 몰라. 사람이 안 살았던 곳으로 가야 한다.”


“지금 제가 있는 마을은요?”


“볕도 잘 드는 편이고 사람도 적게 살았으니까 다른 곳보다는 낫겠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새롭게 시작할 자신 있냐?”


“아뇨.”


“그래. 현대인이 원시인처럼 맨몸으로 살아갈 순 없지. 당분간 그 동네에서 지내라. 무연이가 지켜줄 거다. 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


“네.”



최 도령은 무연이 돌아올 때까지 잠깐 기다렸다. 귀신이어서인지 갑옷이 가벼워서인지는 모르겠는데 발소리가 안 난다. 어, 최 도령 다리가 보이네. 신발도. 한복에 운동화를?



“확인했냐? 어땠어?”


“123구가 소실됐습니다. 34구는 옆 건물에 갇혀 있습니다.


“대단하네. 우리 인프제 무용담을 듣고 싶지만 진짜로 가야겠다. 잘 지내라. 죽지 말고. 또 보자.”


“안녕히 가세요.”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소개를 안 해줬네. 얘는 이무연이야. 머리만 남은 귀신이고. 덕분에 남들은 못 쓰는 무기를 쓰지. 인프제 네 얘기는 해뒀으니까 생략할게. 이만 간다.”


“예······무연 씨 안녕하세요.”


“거처로 이동하십시오. 따라가겠습니다.”



로봇 같은 말투다. 무연의 갑옷은 자동차만큼 빨랐다. 뛸 줄 알았는데 스케이트 타듯이 움직였다. 좀비가 나오면 재빨리 앞서나가 팔에 달린 편곤으로 때려 부쉈다. 거침없는 동작이었다.



“윽. 고양이.”



집에 와서 동동이를 만났을 때, 무연은 옆구리를 찔린 것처럼 반응했다.



“고양이 있으면 안 돼요?”


“아닙니다. 창고를 써도 되겠습니까.”


“네, 쓰세요.”



거기서 지내겠다는 말이었다. 밤에 무슨 소리가 나서 가봤더니 창문을 하나하나 막고 있었다. 자다 말고 일을 도와줬다. 농사용 부직포를 드릴로 박아 빛이 안 들어오게 확실히 막았다. 근데 내가 낮에 창고 써야 할 때는 어쩌지. 암실을 따로 만들어야겠네.


땀 좀 빼고 누웠더니 잠이 안 왔다. 더 좋은 집으로 옮기고 싶었는데······. 만약 읍내로 갈 일이 생기면 무연이랑 같이 밤에 가는 게 차라리 나을까? 모르겠다. 착물갑사가 원래 혼자 활동하진 않을 거야. 최 도령이 날 생각해서 따로 빼준 거겠지. 그냥 안전하게 있자.


아침은 계란이랑 상추에 밥을 비벼 먹었다. 고추장 항아리를 다른 집에서 찾아냈다. 곰팡이가 하얗게 피어 있어서 고민이 많이 됐는데 그 부분을 덜어내고 먹었다. 배탈 안 났다. 맛도 괜찮았고. 장에 피는 곰팡이는 좀 다른가? 햇빛으로 살균이 될까 싶어 양지바른 곳으로 항아리를 옮겼다. 유리 뚜껑이니까 빛이 들어가긴 하겠지.


다른 집에 있는 태양광 전지판을 내 집으로 옮기고 싶다. 시험 삼아 나사를 풀고 움직여봤는데 너무 커서 옮기기가 힘들었다. 무게도 꽤 나갔고. 이거 기중기로 올렸구나.


설치 자체는 될 것도 같다. 프레임이랑 전지판 따로따로 돼 있어서 분리한 다음 프레임 먼저 박으면 된다. 저번에 전동 공구 새로 구하길 잘했다. 콘크리트도 잘 뚫는다. 비싼 메이커라 이름값을 한다. 전지판 설치 설명서를 찾아낸 것도 운이 좋았다. 시공업체가 주고 갔나 보네.


그래 봤자 내 힘으로는 옮기질 못하는 게 문제지. 전지판은 좀 고생하면 될지도 모르겠는데 프레임이 문제다. 조립식이 아니고 용접한 쇳덩어리라 절대 안 된다. 오래 쓰는 물건이라서 일부러 튼튼하게 한 것 같아. 근데 너무 튼튼하게 했어······.


집으로 와서 설명서나 실컷 읽었다. 낯선 단어가 너무 많았다. 인버터니 MPPT니······. 접지도 필요하고, 인버터 하나에 전지판을 너무 많이 연결하면 불난다. 집에 있는 전지판은 8장이고 이게 한 유닛으로 되어 있다. 16장까진 괜찮을 것 같다. 근데 못 옮기잖아.


이 동네는 태양광 발전에 불리하다. 산골이라서 해가 늦게 뜨고 금방 진다. 습기도 많고. 전지판에 맺힌 이슬이 빛을 반사해······어쨌든 그래서 냉장고도 안 돌아간다. 조건이 좋으면 전지판 8장만으로 전기세를 아예 안 낼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남쪽 지방이 그렇다. 이사 가고 싶다.


이제야 좀 졸린다. 무연은 머리만 남은 귀신이랬는데 그럼 몸 전체가 동력 갑옷인가보다. 저승에 그 정도 기술이 있구나. 그쪽은 어떨지 궁금하긴 하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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