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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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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386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4.01.16 17:20
조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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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36화 웰컴투 in화라리 (1)

DUMMY

“엄마, 힘드시죠.”

“어떡하지? 아들한테 효도 받아야 하는데, 힘이 하나도 안들어서말야. 호흐홍.”

“하하, 엄만 진짜. 이거, 커피. 방금 볶은 거예요.”

“으음, 향 정말 좋다. 피곤이 싸악 풀리네?”

“것 봐요. 하나도 안 힘드시다 더니.”

“어머? 들켰네? 호호홍.”

“삼촌. 같이 커피 마셔요. 일 좀 그만 하고.”

“커피? 조오치.”


마당 한쪽 벤치에 엄마와 득환이를 앉혀 놓고 커피를 안긴 해선이 바삐 걸음을 옮겼다.


“고생들 많으시죠. 커피 드시고 좀 쉬세요.”

“이이. 코피 좋지. 넘치도록 따라줘이?”

“아유, 나는 코피 마시믄 밤에 잠이 잘 안 오던데.”

“그럼, 이걸로 드셔 보세요. 맛은 똑같은데 카페인이 없는 거라 잠 잘 오실 겁니다.”

“하여간 니는 예나 지금이나 워째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냐.”

“하이고. 코피 맛나다. 요거 향미 엄니가 낋여줬던 것처럼 달지도 않은 게, 참 맛나네이?”

“참말로, 자네는 어째서 케케 묵은 옛날 얘기를 꺼내고 그런가?”

“성님, 뭐 어때유. 그때 성님 덕분에 애기들 많이 생겨서 지금 다들 잘 컸잖어유. 좋은 일 한 거여유,”

“그 말도 맞는 말이지 이?”


하하하-

깔깔깔-


“그동안 고생들 정말 많으셨어요.”

“고생은 무슨. 니 덕분에 우덜 다 부자 된 거 모르냐.”

“하하.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돈을 벌었음 써야 재민디, 돈 쓸 곳이 없다 야.”

“그럼, 그 돈 나 줘유.”

“아무리 그래도 고것은 안될 말이지 이?”

"차암, '도마네 아버지' 그냥반이 끝을 다 보고 갔으면 참말로 좋았을 것인데."


잠시 정적이 흘렀지만,


"이이, 저기 위에서 다 내려보고 있지 않겠는가? 댐 짓는 거만 다 못 봤지, 웬만한 것은 다 보구 가셨고 이?"

"그런 양반 다시 없을 것이네. 암만."


웃음 꽃은 이내 다시 이어졌다.


***


[in 화라리]


고심 끝에 탄생한 명칭이다.


몇 날을 두고 친구 놈들과 머리 맞대고 고민했지만 이만큼 모든 걸 대변할 이름을 찾지 못했다.


국수와 전병, 밥을 파는 식당이라기엔 거창했으나, 이 곳은 단지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잖는가.


in화라리가 성공의 반열에 올랐을 때,



누군 가는 ‘선견지명’ 이라 했고,


누군 가는 ‘천운’ 이라 했으며,


누군 가는 ‘조상님이 보살펴준 덕’ 이라 했고,


또 누군 가는 ‘황소가 뒷걸음질 하다 개구리 밟듯’ 얻어 걸린 거라 했다.


아무려면 어떠랴.


그 모든 말들이 가리키는 건 단 하나였으니,


해선의 머릿속 퍼즐이 현실에서 한 치 오차도 없이 잘 맞춰졌음 아니겠는가.



***



해선이 ‘도마네 아버지’ 로부터 송경묵네 집 터를 사들여 개조한 후 식당을 한다고 했을 때,


입 가진 사람이면 누구라도 한마디씩 했다.


-머리가 너무 좋으면 돈다더니 저 머리 좋은 애가 어째서 공부를 때려 치고 고작 한다는 게 식당이래.


-읍내 나가면 식당이 쎄고 쎘는데 버스도 몇 번 안 다니는 이 촌구석에 누가 와서 막국수 나부랭이를 사먹겠어유.


-젊디 젊은 엄마가 저 하나 보고 살았으면 공부하고 출세해서 효도를 못할망정 이제 식당 일까지 시키려 하는갑네.


수오리,개나리,화라리를 이어 흐르는 개울 상류를 막는 어마어마한 댐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수몰을 피하지 못한 수오리, 개나리 사람들은 보상이고 뭐고 고향을 떠날 수 없다며 피눈물을 흘렸고,


수몰을 피한 화라리 사람들조차 저들이 나고 자란 고향 땅이 변질되고, 평생을 일궜던 논과 밭, 집터 일부를 내어 주어야 함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몇 날이 지나간 어느 날 ‘도마네 아버지’ 가 이장 심복수씨 대신 마이크를 잡았고,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이이. 그럼 그렇지, ‘도마네’ 가 나서야지. 암만.


모두의 마음이 그렇게 하나가 되어 모였을 때, 앞에 나선 건 ‘도마네 아버지’ 신만원이 아니라 해선이었다.


-그러니까, 뭣이냐. 당장 공사 하는거이 아니고, 집 다 비워 주는 게 아니란거이지?

-내 땅이건, 아니건 보상금 다 나오구이?

-댐 공사 하는 동안 저 식당서 인부들 밥해주고, 돈을 받는다는 거네 이?

-댐이 다 지어지믄 관광하러 오는 사람들헌티 국수랑 전병을 판다는 거이지?

-조를 짜서 돌아감서 일을 하믄 되고 이?

-길도 넓어지고, 집도 다 새로 지어주고 이?

-음식 파는 식당이 아니고! 화라리 안에 다시 화라리가 생긴다는 것이지, 지금? 그라믄 된 것이여. 긴 말 필요 읎고! 다들 돌아가 잠이나 자자고. 해선이 말만 들으면 되는 것이지, 인자부터.



그날, 화라리 사람들은 또 다른 이유로 잠들지 못하는 긴 긴 밤을 보냈다.


***


댐이 지어지는 동안,


화라리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도 돈을 벌었다.


아버지들은 공사 현장에 나가 잡일을 했고, 엄마들은 조를 짜 돌아가며 식당에서 인부들에게 밥을 해줬다.


식당의 전반적인 운영은 득환과 민경선이 이끌었고, 서울로 취직해서 떠났던 하재숙이 와서 합류했다.


하재숙의 넉넉한 풍채와 넉살, 작고 아담한 민경선의 엽렵함, 천하장사 못지않게 힘을 쓰는 득환,


이 셋의 환상 조합은 음식 맛은 물론이고 사람들에게 색다른 구경거리를 선물했다.


애초부터 오픈 형으로 크게 지어진 주방에서 조리 되는 모든 과정을 다 볼 수 있었는데,


특히 막국수와 전병이 인기 만점이었다.


메밀로 반죽을 하고 치대 홍두깨로 민 다음, 국수로 뽑아지는 과정과 전병으로 구워지는 모든 것들이 투명했고 청결했으며,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하는 게 신기했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간 인부들이 입 소문을 내자 타 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고,


처음 하나만 걸렸던 가마솥은 다섯 개로 늘어났다.


류장원의 도움으로 군청의 지원을 받아 버스 배 차 간격을 줄여 매 시간마다 운행을 했고,


15인 승 승합차 2대를 구입하여 버스가 다니지 않는 시간에도 전화만 하면 장흑수, 최호승, 천달수가 교대로 손님들을 실어 나르도록 했다.


입 소문을 타고 막국수와 전병을 먹으러 왔던 사람들은 그다음부턴 힐링을 위해 방문했다.


디딜 방아를 밟아 밀을 찧고, 떡메를 쳐 인절미를 만들고,


사람들이 들어가 축구를 해도 될 만큼 커다란 토끼장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토끼들에게 풀을 주고,


닭들이 꼬꼬댁 거리는 방사 장 안 둥우리에서 달걀을 꺼내오고,


이쁜이를 졸졸 따라다니는 뭉치가 새끼인지, 아니면 해피가 새끼인지 맞혀보는 퀴즈를 냈다.


모든 것들은 절대로 서두르지 않아야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슬로우 힐링이었고, 사람들은 그 매력에 푹 빠졌다.


동적인 힐링을 충분히 느꼈다면 그 다음은 정적인 힐링,


사람들은 해선이 가마솥에 볶아 내린 커피를 받아 쥐고 주변을 산책했다.


도랑에 발을 담그고, 돌을 들춰 가재를 잡고, 아카시아 향에 취하고, 진달래꽃을 따먹기도 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단연코 식당 앞마당에서 부터 뽕나무 밭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와 손만 뻗으면 따 먹을 수 있는 오디.


아이들은 신기함에, 어른들은 어린 시절 추억에 입술이 까매지도록 오디를 따먹었다.


몸으로 체험하는 힐링의 다음 순서는 영혼의 힐링,


개울 건너 서쪽 하늘을 빨갛게 불태우는 노을에 저마다의 가슴속 불이 지펴진 사람들은,


하늘이 아닌, 바로 코 앞 커다란 화덕에서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며 눈가가 뜨거워지고야 마는,


아주 이상하고도 기이한 불 멍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갔다.


하얀 눈 내려 쌓이는 겨울이면, 작정하고 in화라리에 들어와 며칠씩 묵으며 머릿속 고민을 다 비우고 떠났다.


그렇게,


화라리를 찾는 사람들은 힐링과 위안을 받고 돌아갔고, 더 많은 사람들을 몰고 왔으며,


그렇게,


화라리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돈방석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과 자연이 어우러져야만 가능한 그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이 해선이었음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여름 끝 무렵, 초승달이 새초롬히 얼굴을 내밀고 귀뚜라미 쓰르르 노래하는 밤,


일과를 모두 끝내고 원두막에 모여 시시껄렁한 농담들이 오가던 차,


“야,야,야, 너네 모르지?”


느닷없이 장흑수가 제 허벅지를 때리며 소리쳤다.


“미친놈! 밑도 끝도 없이 뭔 소리야, 인마.”

“듣고 놀래지나 말어, 새꺄. 낼 모레 순영이 온다더라?”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짐과 동시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지랄, 시끄럼마. 걔가 여길 왜 왐마.”

“진짜라고. 동미가 그랬다니까? 아, 이거 비밀이랬는데?”

“동미가 퍽도 너한테 비밀을 말했겠다. 너한테 말하는 순간 온 동네 퍼지는 건 순식간인데.”

“누가 아니래냐. 순영이 떠난지가 언젠데. 걔 탑스타라서 죽을때까정 보기 힘들어, 인마.”

“아닌데. 진짠데? 스타들 고향 찾아가기, 뭐 그런 거 한다든데?”


사실이었다.


낼 모레는 아니고, 그로부터 열흘쯤 후 수많은 스탭들과 그 스탭들보다 수십 배도 넘는 구름 인파를 몰고 나타났다.


겉으론 해선의 각시였으나 화라리 소년들 모두의 첫사랑이었던 서순영이가 말이다.



***



촬영은 하루 종일 이어졌고,


구름 같은 사람들이 함께 몰려 다니느라 누구도 순영이를 제대로 본 사람들은 없었다.


친구 놈들은 그래도 촬영이 끝나면 우리들을 보고 가지 않겠냐 기대에 부풀어 하루 종일 구름 위를 걷는 듯 보냈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고,


그날 촬영한 영상은 며칠 후 ‘스타! 고향을 찾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었다.


-사실, 제가 나고 자랐던 고향에 댐이 생겼다고 해서 슬프고 속상했어요.

-어릴 적 예쁘고 아름다웠던 추억이 댐과 함께 다 물속에 잠긴 건 아닐까 두려웠거든요.

-in화라리에 발을 딛는 순간 눈물이 나더라고요.

-늘 그립고, 가고 싶었던, 내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그곳에 있었으니까요.

-고향도, 추억도 다 그대로 인데...변한 건 저 뿐이네요.


이젠 굳이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가며 찾거나 기다리지 않아도 탑 스타가 된 순영일 볼 수 있었다.


청순한 얼굴에 시크한 표정의 미소를 가진, 오묘한 매력의 순영인,


쵸콜릿, 샴푸, 껌, 아이스크림 등 광고 뿐 아니라 드라마까지 접수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서순영이 아닌 서수연 인 걸로 보아 개명을 했거나, 예명인 듯 했다.


이전 생에서도 순영인 연예계로 진출 했었을까.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쪽으로는 관심이 없었기에 몰랐던 걸 수도 있고.


“히야, 죽인다. 드럽게 이쁘네.”

“어째 어릴 적 모습에서 몸만 컸네 이?”

"아주 똑 소리 난다. 똑 소리 나."


입을 헤 벌리고 화면을 뚫고 들어갈 기세인 친구 놈들과 달리 해선의 마음은 착잡했다.


인터뷰를 이어가는 순영의 웃는 모습에서 왠지 어둡고 가라앉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법 잘 어울리는 길로 들어섰네. 그런데, 어디 아픈 건 아니지?


화면 속 순영에게 그리 묻는 해선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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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웰컴투 in화라리(完) +1 24.01.18 100 4 13쪽
» 36화 웰컴투 in화라리 (1) 24.01.16 69 4 11쪽
35 35화 화라리 in 화라리 (2) 24.01.15 76 4 10쪽
34 34화 화라리 in 화라리 (1) 24.01.13 79 4 10쪽
33 33화 나비 (5) 24.01.10 94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0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2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5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4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3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7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4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8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2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4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0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1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7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4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4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1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1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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