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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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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3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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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5,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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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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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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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4화 화라리 in 화라리 (1)

DUMMY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재학이가 해선을 찾았다.


“니 머릿속에 한번 들어 가보고 싶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좀 보게.”

“무슨 생각이겠냐. 별거 없다.”

“미친놈. 누가 믿냐. 그걸.”

“너라도 좀 믿어봐라.”

“해선아.”

“그렇게 부르지 마라. 무섭다.”

“무서우라고 인마. 솔직히 잘 모르겠다. 너도 안 가는 대학을 내가 왜 가는 건지.”

“가서 공부해. 하면서 생각하고. 내가 도와 달라고 하면 언제든 도와 줄 거지?”

“미쳤냐. 꿈도 꾸지 마라.”

“좋았어. 약속했다.”

“넌 확실히 미친놈이야.”


다음날 아침, 첫 버스에 오르다 말고 뛰어내린 재학이 배웅 나온 해선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인마! 화라리 용은 너다. 간다! 다시 보자.”


손에 늘 먹을걸 들고 다니던, 배만 빵그랗던 박재학 맞나?


아이엠그라운드 게임 지옥에 빠졌던 그날 밤, 아무래도 재학이는 북극성의 정기를 받아 각성을 한 게 맞는 듯 하다.



***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이던 자라바우에 해선 홀로 앉아 물속을 들여다 보고 있다.


햇살이 닿아 반짝이는 물결 위로 친구 놈들의 웃음소리가 얹혀 함께 흐른다.


다시 이 바위에서 친구들과 함께 할 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이 막대기 하나만 갖고도 하루 종일 놀 수 있었던 우리들의 시절은 가슴속에만 머물 것이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한 생각을 처음으로 정립하게 되었던 건,


과거로 돌아온 후 처음 맞은 그 봄 날 부터였다.


퍼즐 조각은 다 준비됐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 맞춰 가는 것 뿐.


하지만,


역시 중요한 건 가장 첫 번째 퍼즐이 아니겠는가?


지금부터 시작이다!



***



“엄마, 엄마는 제일 자신 있는 요리가 뭐예요?”

“아유. 언제 엄마가 요리를 해봤나?”

“요리가 별 건가요? 먹어서 맛있으면 그게 요리죠.”

“호홍, 그런가?”

“그럼요. 솔직히 엄마가 하는 건 다 맛있어서 탈이지만요.”

“하여간,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한다니까?”

“엄마, 저한테 딱 두 가지만 알려 주세요.”

“두 가지? 뭐 하려고?”

“뭐하긴요. 엄마 해드리려고 그러죠.”

“스읍, 아닌 거 같은데...”


해선과 민경선이 하룻동안 머리를 맞대고 두 가지 음식을 골랐다.



다음날,


‘도마네 아버지’ 신만원과 마주한 해선,


“지금 송경묵네 집 터를 네게 팔라고 하는 것이냐.”

“...예.”

“그 터는 내가 가장 아끼는 곳이다. 아주 비싸다는 말이지. 네가 그만한 돈이 있느냐.”

“없습니다. 하여, 제가 사는 집과 뒤안 텃밭, 머짓골 밭을 사주셨으면 합니다. 애초에 그것들도 다 주신 것이니 염치 없긴 합니다 만.”

“뭐라? 핫핫핫하!!! 그거 다 해도 송경묵네 집 터 값으로 택도 없다.”

“알고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매월 사용료를 지불하고, 기간을 정해 갚도록 하겠습니다.”

“어째 사람 놀래키는 재주가 더 커졌구나. 오래 비워둬서 헛간이나 다름없는데, 무얼 하려는 게냐.”

“식...당, 음식점을 내려고 합니다.”

“뭣이라. 이런 촌구석까지 누가 와서 사 먹는다고...”

“당장은 그렇겠지요.”

“어차피 비어 있는 곳 아니냐. 무얼 하든 상관이야 없다 만.”


‘도마네 아버지’ 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해선의 말에 한참을 생각했다.


한 놈은 공부하라고 서울 보내 놨더니 아비 몰래 가수를 한다고 하고,


남몰래 탐하며 아꼈던 놈마저 대학을 안 간다고 청천벽력 내린 것도 모자라 이젠 무슨 식당을 하겠다고 하니.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싶은 ‘도마네 아버지’였지만,


“내, 너의 속을 어찌 알겠냐 만. 기왕 하려면 뽕나무 밭을 갈아엎고 그곳에 하거라. 바로 앞에 개울도 있고, 땅도 평평하고. 송경묵네 터보단 훨씬 낫지 않느냐.”


뽕나무 밭은 송경묵네 집 터보다 몇 배는 넓다. 어차피 속을 알 수 없는 놈, 어찌 나오려나 보고 싶은 심산에서 한 말이었다.


“뽕나무 밭은, 엎으면 안됩니다. 그대로 두시지요.”


옳거니! 그럼 그렇지. 다 생각이 있는 게로구나.


“그리 하거라. 네 집도 밭도, 사용료도 필요 없다.”

“그럼, 다른 곳을 알아보겠습니다.”

“고연놈. 두둑히 내놓거라, 이놈아.”

“하하.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 식당에선 무얼 판다는 게냐.”

“막국수와 메밀 전병입니다.”

“...!”


다 생각이 있는 게 맞구나, 라고 했던 조금 전의 생각을 왠지 고쳐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도마네 아버지’였지만,


끄응!


두고 보면 알 일, 이미 허락한 걸 되돌릴 수는 없잖겠는가.


***


해선이 돌아간 후 ‘도마네 아버지’ 는 얼마 전 다녀간 ‘도마’ 가 했던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버지, 죄송해요.”

“지금이라도 노래 때려 치고 공부 하라고 하면 하겠느냐.”

“...”

“공부 하면서도 노래는 할 수 있니라.”

“...”

“자식이라곤 너 하나다. 아비가 천 년, 만 년 살 것 같으냐. 네가 제대로 공부를 해야 이 많은 것들을 다 지킬 수 있다.”

“...”

“좋은 일도 결국엔 가진 것을 지키지 못하면 할 수 없다.”

“...해선이가 있잖습니까. 득환형님도 있고요. 그 둘이면 저의 열 , 아니 백을 합한 것보다 나을 겁니다.”

“...다시, 다시 말해보거라.”

“...”

“다시 말해 보라지 않느냐.”

“아버지. 불효라는 거 알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씀 드릴게요. 매일, 하루에도 수십번씩 죽고 싶었습니다. 무슨 미련이 많아 아침마다 눈을 뜨는 건지, 끔찍하고 원망스러웠어요. 그런 제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됐을 때, 어땠는지 아세요?”

“...”

“살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죽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안도하고 또 안도했습니다. 그때 마음 먹었어요. 잃어버렸던 시간들, 다시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큰 돈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더러, 이미 주신 것 만으로도 차고 넘칩니다. 해선이, 그 아이에게 주세요. 그 아이라면 아버지가 주신 것들을 지키는 것을 넘어 더 크게 만들 거에요. 진심입니다.”


긴 말을 끝내는 동안 ‘도마’는 한순간도 아버지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고,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



“야, 저 새끼 좀 돈 거 같지 않냐?”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냥 생 또라이라니까?”


평상에서 후루룩 거리며 막국수를 먹던 장흑수와 천달수가 가마솥 앞, 못 내 심각한 표정의 해선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데, 이거 너무 맛있지 않냐? 점마가 한 거 맞어?”

“니 눈깔이로 봤자넘마.”

“봤지. 보고도 안믿겨지는 게 문제지.”

“대붕이 하는 걸 우리 같은 참새가 어찌 알것냐. 호승이 이새낀 왜 안보이냐.”

“운전면허. 오늘 떨어지면 일곱 번째다.”

“빙신새끼. 내가 했음 단번에 붙었을 건데.”

“얌마, 우리도 다 따라고 한 거 모르냐? 너 한번에 안 붙기만 해봐. 가만 안 둔다.”

“히히. 전병이나 먹어, 인마. 어우, 재학이 있었음 환장했을 거다.”


장흑수가 젓가락질을 잠시 멈추고 멀리 앞을 내다보며 한마디 했다.


“와, 그래도 다 해 놓고 보니 멋지긴 하다. 이걸 우리가 다 했다고?”

“멀리서 봐봐라. 더 멋있지.”


송경묵, 그러니까 송윤정네 할머니가 살았던 이 집은 화라리가 병풍이라면, 그 병풍에 편안히 감싸인 듯한 모습이다.


집터 오른쪽으로 칠봉산 계곡에서부터 시작된 도랑이 개울까지 이어져 물 흐르는 소리가 앞마당까지 들려왔고,


도랑 둔턱엔 아카시아 나무가 심어져 봄이면 지천에 꽃 향기가 흩날렸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손 볼 곳이 많았지만, 낮엔 득환이와, 장흑수, 최호승, 천달수가 도왔고,


밤이면 남모르게 해선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 두 달여 만에 환골탈태를 했다.


사실,


가옥의 외형을 옛 모습 그대로 살린 것이기에 쓸고 닦고, 기름 먹이는 등, 청소 수준의 과정이라 보는 게 더 맞았다.


다만, 마루와 방은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했고,


앞쪽의 텃밭은 주차장으로, 앞마당과 뒷마당엔 원두막을 놓아 운치를 더했으며, 마당 초입에 있는 작은 연못에도 물고기가 살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음식을 만드는 주방일 터.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쓰던 디딜 방아를 그대로 살린 후, 바로 옆에 커다란 가마솥을 걸고,


반죽을 밀거나 전병을 빚어 부치는 과정을 볼 수 있도록 오픈 형으로 만들었다.


누렁소를 키웠던 외양간과 여물이나 땔감을 쌓아 두었던 헛간은, 벽을 허물고 공간을 넓혀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으니,


따뜻한 계절엔 마당 텃밭에서 신작로를 따라 뽕나무 밭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이 산책로가 될 것이고,


추운 겨울엔 카페 안에서 소리 없이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게 될 것이다.



***



잠 안 오는 밤, 해선은 머릿속 그림을 천장에 띄웠다.


늦봄에 던졌던 첫 번째 퍼즐이 자리를 잡았으니 이젠 두 번째 퍼즐이다.


순서는 없다.


애초에 첫 번째 퍼즐이 성공하면 어느 곳에 어떤 퍼즐을 끼워도 다 맞춰질 수 있게 그린 그림이었다.


퍼즐 위 그림에 소중한 사람, 소중한 것들을 가만히 올려본다.


더없이 아름답고 웅장하여 가슴이 뛴다.


계절이 가고 오고, 세월이 더해지면 어쩔 수 없이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어떤 변화의 물결에도 그러나, 이 퍼즐은 절대 흩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곳은!


화라리 안의 화라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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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화 웰컴투 in화라리 (1) 24.01.16 69 4 11쪽
35 35화 화라리 in 화라리 (2) 24.01.15 77 4 10쪽
» 34화 화라리 in 화라리 (1) 24.01.13 80 4 10쪽
33 33화 나비 (5) 24.01.10 95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1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3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6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5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8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9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5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70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1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2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200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8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5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1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6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2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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