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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384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4.01.05 17:30
조회
115
추천
5
글자
10쪽

30화 나비 (2)

DUMMY

강림중학교 교장실,


반쯤 열린 유리창 앞에서 뒷짐을 진 채 밖을 내다보는 교장 유석태,



“야, 패스! 패스! 아, 패스 하라고!!”

“막아!막아! 뛰어!!”

“슈우우-웃!-”

“아ㅡ잇!”


오후의 봄 햇살 가득한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학생들이 지르는 고함 소리를 듣자니 얼굴 가득 그윽한 웃음이 감돌았다.


곽정범 선생이 협조를 좀 해주면 좋으련만 뭐 상관없다.


오늘처럼 그렇게 가서 한번씩 살펴보면 될 일.


정년까지 2년!


평 교사에서 교감을 거쳐 교장까지 큰 사고 없이 잘 왔다. 가끔 사고를 치는 학생과 선생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때마다 원만하게 잘 수습되었던 것처럼 남은 2년도 그리 보내면 될 터.


정년 후엔 텃밭에 상추 심고, 닭이나 몇 마리 키우며 유유자적 평온한 삶을 누릴 것이다.


이만하면 그럭저럭 잘 살아온 삶 아니겠는가.


그러나,


뭔가 아쉬움이 가슴 한켠을 차지했고, 그 아쉬움은 가끔 허전함으로 빛을 달리하며 스산함을 안겼다.


그런 유석태의 가슴에 싱숭생숭 따스한 바람을 몰고 찾아온 이가 있었으니,


‘도마네 아버지’ 신만원!


유석태와 형님, 동생 하며 가까이 지내는 고향 후배였다.


하늘이 내린 부자에 인정과 자애가 넘쳤던 ‘신만원’ 은 돈보다 더 귀하게 얻은 자식의 불행을 늘 저의 부덕으로 돌렸었다.


언젠가 말문이 트일 수 있다 했으나, 그 세월이 10여 년을 넘어가자 모두가 말은 안 했어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 여겼고. 유석태 또한 그 중 하나였을테다.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땐 만사 제치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건 정말 기적이네. 자네의 덕이 하늘에 닿았음이야.”

“고맙소, 형님. 내 따로 할 말이 있는데, 일간 학교로 찾아 갈게요.”

“날도 추운데, 학교까지 올 일 있는가. 지금 말해보게.”

“학교로 찾아뵙지요.”

“사람 하고는. 두 번 말 못하게 하는 건 여전 하구만.”



***



그저, 노후에 상추나 좀 심을 양지 바른 쪽 밭뙈기 몇 평 부탁했었다.


같은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대부분을 도시에서 지냈고. 농사엔 관심이 없었던 유석태.


부모님을 일찍 여읜 유석태와 그의 누이 유정임은 ‘신만원’ 의 아버지 ‘신석중’의 보살핌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는데,


은혜를 갚는 길은 오직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는 길이라 여겼기에 한눈 팔지 않았다.


그 성공이 돈과는 거리가 먼 교육자의 길이었지만, ‘신석중’ 의 흐뭇해 하던 표정을 유석태는 잊지 못한다.


그런데!!!


장학 재단 설립, 과학실, 음악실, 독서실, 체육실 등 서울의 웬만한 사립학교가 와도 울고 갈 규모의 엄청난 걸 들고 오다니.


그의 재력이 어마어마 하고, 친분이 두터웠음에도 따로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청한 적 없었다.


그건, 철저히 개인의 신념으로 이루어져야 함이 마땅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이건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지원하는 정도의 장학금 수준이 아니었다.


필시, 그럴만한 사유가 발생했을 터.


“이보게, 만원이. 혹시 신상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핫핫핫. 내, 형님이라면 이리 물어올 줄 알았지요.”

“자네가 돈 욕심 없는 건 익히 알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우니 다른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아닙니다, 형님. 저도 그동안엔 제가 돈 욕심도 없고, 많이 베풀면서 살고 있다 자부 했지 뭡니까. 세상 헛 산지도 모르고.”

“...?”

“도마 말문도 열렸고, 여한이 없어요. 이깟 재물, 죽어 가져갈 것도 아닌데 쌓아두면 뭐 한답니까. 그, 내 이종 조카 장원이 알지요? 군청 근무하는. 복잡한 행정 문제 같은 건 다 알아서 처리해 달라고 했지만, 형님도 잘 좀 협조 부탁해요.”

“이사람아. 자네가 하려는 일이 다 돈이고, 그 돈줄이 이렇게 열려있는데 무슨 협조를...”

“하하, 그렇소? 형님, 내가 요즘 아주 살 맛이 납니다. 가슴이 뛰어요.”


교장실 문을 열고 나가다 말고 ‘신만원’ 은,


몸을 유석태 쪽으로 한껏 기울이며 아주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형님, 올해 입학한 아이 중 ‘박해선’ 이라고 있어요. 크게 될 아이니 잘 좀 지켜봐 주시오.”



***



조그만 시골 중학교,


교장이나 교감, 평 교사 누구라도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고,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다.


올해 따라 밤 톨 같은 머리를 한 남학생들이 유독 눈에 띈다.


곽정범 선생이 그리 뻗대니 별 수 있겠는가.


마침 오후 수업 시작까진 시간이 좀 남았고, 직접 가서 보면 될 일,


드르륵-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란스러움이 일시에 잦아들며 올망졸망 눈망울들이 일제히 유석태 쪽을 향했다.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계속하라 손짓을 하였으나, 수십 개 눈동자들이 저의 동선을 쫓는다.


“큼,큼. 반장이 누구지?”


유석태를 쫓던 눈동자들이 일제히 향하는 한 곳,


접니다 만? 이라는 눈빛으로 오른손을 가볍게 드는 남학생.


‘박해선’ 명찰을 달고 있었다.


멈칫-


싱거운 교장이 되어선 안된다. 체신 머리를 지켜야지.


하나, 머릿속 생각과는 정 반대로 저의 몸이 먼저 반응을 했다.


“교장 선생님?”

“흠, 그래요. 초등학교 때랑 다르게 수업 시간도 늘어났고, 시험도 자주 칠 거고. 그래도 다들 잘 해 줄 거지요?”


이런, 젠장. 내가 평소에도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썼던가? 기억이 안 난다.


“하하, 수업 준비해요.”


뒤통수에 와 꽂히는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며 교실 밖으로 나오자, 교실 안은 다시 소란스러움으로 채워졌고,


돌아서서 유리창으로 ‘박해선’을 한 번 더 보려고 했지만, 마음과 달리 발은 앞을 향해 걸어졌다.



***



유석태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읽혀지지 않는, ‘박해선’ 학생의 깊고 차가운 갈색 눈동자를 보자마자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따로 의지를 움직일 필요도 없이 떠오른 또 하나의 갈색 눈동자!


살면서 본 기억이 있던가?

검은색에 가까운 빛이 아닌, 깊고 부드러운 갈색! 흔한 빛이 아니다.


그랬었구만.


누구라도 사는 동안 실수 하고 잘못도 한다.


성인 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평생을 깨끗하게, 당당하게 살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신념에 의한 것이든,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저질러진 것이든,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오고, 용서 또한 따른다.


은혜를 입었다.


평생을 갚아도 모자랄 것이었지만, 이제 자신도 지켜 줘야 할 무언가가 생긴 것 같다.


입에 자물쇠를 굳게 채울 것이다.


의혹이 아닌 확신을 굳히며 여전히 만 면에 그윽한 웃음을 짓고 있는 유석태였다.



***



오랜만에 이쁜이와 땀 나게 달려 보려 던 일요일 아침,


아무래도 해선의 계획이 무산될 분위기다.


“이쁜아, 가자!”


시큰둥-


...???


“동네 한 바퀴 돌 건데, 싫어?”



뭉치와 꼭 붙어 양지 쪽에서 봄 햇살 샤워를 받느라 해선의 말에 콧방귀도 안 뀌는 이쁜일 보니 드는 생각,


푸하핰ㅡ! 오누이 아닌 게 확실하네.


처음 뭉치와 마주했을 때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며 숨던 녀석을 떠올리니 웃음만 난다.


게다가 무려 이쁜이가 암컷이다.


뭉치야, 너 대체 어떻게 꼬신 거냐?


늑대 만한 몸집의 이쁜이와, 다람쥐보다 조금 큰 뭉치의 조합이 참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꼭 그렇지 만도 않은 게 신기하다.


둘의 달콤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로 하고 혼자 집을 나선 해선은, 뛰는 것 보단 천천히 걷기로 했다.


뛰어서 숨차하며 보기엔 눈앞의 풍경이 말도 안되게 예뻤던 까닭이다.


과거로 돌아와 처음 맞는 봄,


분명 이전의 생에서도 수없이 마주했던 계절이었을 테지만, 그땐 알지 못했다.


이토록 눈부셨던 가.


삭막했던 산과 들이 언제 저리 푸르러졌을까.


매일 마주했던 것들도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달랐다.


꽃 같은 살얼음을 뚫고 버들강아지가 고개를 내민 것을 시작으로 온갖 생명체들이 앞다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어디를 보아도 싱그러운 연두빛 향연,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저들이 때를 기다려온 시간이 헛되이지 않았음을 아름다운 색으로, 자태로 알리는 것은,


사람들에게 이제 당신들이 바쁘게 일해야 할 시간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고, 녹은 땅을 갈아 뒤집고 엎고를 반복하며 숨 쉬게 만든 후, 한 해 양식이 될 작물을 심느라 바쁜 사람들!


봄 햇살에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졸고 있는 이쁜이와 뭉치의 한가로움과 대비되며 해선에게 문득 깨달음을 안겼으니,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네.


친구들의 형, 누나들 대부분은 서울이나 도시로 공부하러, 또는 돈 벌러 떠났기에 동네에 청년들의 수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바쁜 농사철, ‘도마네’ 집에 일을 하러 오는 사람들 또한 타지 인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엄마도, 동네 사람들도 이젠 누에를 키우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지 않는가.


화라리에서 가장 넓은 뽕나무 밭을 가진 ‘도마네’가 곧 뽕나무 밭을 갈아엎고 논으로 만들 거라는 말도 들려왔다.


모든 것이 다 변할 것이다. 아주 빠르게.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이전 생, 짧지 않은 세월을 트라우마에 갇혀 살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제외한 대부분의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과거로 돌아와 엄마를 구했고,


이모의 삶에서 그놈을 치웠고,


그리웠던 친구들과 눈부신 유년시절의 마지막을 한 번 더 보냈다.


그것이면 되었다......


라고 생각했던 해선에게,


저 들판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어떤 것들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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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2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4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0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1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0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7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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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4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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