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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395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4.01.03 16:30
조회
125
추천
4
글자
10쪽

29화 나비 (1)

DUMMY

곽. 정. 범.


학생들보다 더 동안이라 간혹 정문 앞에서 복장 불량이나, 지각 단속에 걸린다는 영어 선생님이 칠판 가득 이름을 썼다.


어찌나 힘을 주고 썼는지 마지막 '범' 자에 점을 찍다 분필이 부러졌기도 했고,


꼿발을 들고도 칠판의 중간까지 밖에 닿지 못하는 모습에 몇몇 애들이 킥킥 거렸다.


“앞으로 1년 동안 담임을 맡게 된 곽.정.범. 이다. 선생님은 너희들과 친구처럼, 형제처럼 지내고 싶은데, 이의 있나?”


“이이? 이이가 뭐냐?”

“그, 율곡 이이?”


쟤들이 크게 말하는 건지, 해선의 귀가 밝은 건지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거기, 두 사람. 일어나봐.”

“...?!!”

“안 들려?”


드르륵-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개를 살짝 돌려 보니 하나는 천달수, 다른 하나는 모르는 얼굴인 걸 보니 다른 초등학교 졸업생 인가보다.


“방금 한 말, 다시 해봐.”

“...”


지휘봉을 어깨 위에 올린 곽정범 선생님이 두 친구들 쪽으로 걸어갔고, 분단과 분단 사이의 책상에 선생님 배가 한번씩 닿으며 가까워지자,


벌개진 천달수 얼굴의 열기가 해선에게까지 전해졌다.



***


“너! 내 키 얘기 했냐?”

“...니요.”

“그럼, 배 얘기 했냐?”

“아, 아, 니요.”

“그럼, 엉덩이 얘기 했냐?”

“아,아,아,니요.”


어째 계속 천달수 만 대답하는데, 점점 말을 더듬는다.


천달수는 열 살 넘도록 말을 더듬었지만 6학년 즈음부턴 거의 더듬지 않게 되었는데, 지금 엄청 겁을 먹고 있음이다.


책상 모서리를 꼭 잡은 천달수 손에 핏기가 가시며 새하얘졌다.


친구처럼, 형제처럼 지내자면서요, 선!생!님!!!


해선의 눈동자에 찬 기운이 서리며 주먹이 쥐어진다.


“아니야?”

“...예.”

“정말! 아니야?”

“...예”

“진정! 아니야?”

“...예”

“맹세코! 아니야?”

“예...”

“결단코! 아니야?”

“...”


마지막 대답을 하지 못한 천달수가 곧 울음이 터지기 직전까지 갔을 때,


“자! 모두 주목!!!”


책상을 잡았던, 하얗게 핏기 가신 손으로 주먹을 꼭 쥐는 천달수를 보고 픽 웃은 선생님이 다시 분단 사이를 걸어 교탁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칠판에 썼던 이름을 지우고 이렇게 다시 썼다.


-out of side, out of mind.


-앞뽈록, 뒷뽈록.


...???


모두의 머리 위에 물음 표를 띄운 곽정범 선생님이 눈을 감더니, 시조를 읊듯 천천히 읊조렸다.


“아웃 업 사이드, 아웃 업 마인드,


나의 정신은 언제나 밖에 있다, 고로 제정신이 아닐 때가 많다.”


...?????


아, 뭐냐. 진짜 골 때리네.


조용히 눈을 뜬 선생님이 또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갑자기 뭘 물어보든! 쫄지 말도록! 알겠나?”

“....”

“대답 안 해? 알겠나??”

“...네!!!!!”

“좋다. 그리고, 앞뽈록! 뒷뽈록! 저건 내 별명이다. 마음껏 불러도 좋다. 니들이 선생님 별명을 많이, 자주 불러줄수록 선생님 수명이 늘어서 더 오래 산다. 알겠나?”

“네!!!!!!!!!!!”

“예!!!!!!!!!!!”

“와아아아!!!!!”

“낄낄낄-”


만물이 소생 하는 봄,


아직 다 녹지 않은 운동장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기나긴 교감 선생님,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견디고 교실에 들어갔던 까까머리와 단발머리 중학생들의,


사는 동안 내내 입에 오르내릴 것이 분명한,


강림 중학교 1학년 1반의 첫 날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


“어떻습디까? 곽선생님.”

“?...”

“에이, 그 선생님 반, 박해선 말이에요.”

“그건, 말씀 드린 것 같은데요. 교장 선생님.”

“그러지 말고, 잘 살펴 보시라니까요. 올해 아주 특별한 학생이 입학한 것 같단 말이요.”

“그 특별함이 무얼 뜻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 저는 제 방식대로 아이들과 소통하겠습니다.”

“곽선생님은 다 좋은데 젊은 사람이 왜 그리 고지식 한지, 참.”



강림 중학교 입학식 하루 전날,


교장 유석태가 곽정범을 교장 실로 불러서 조용히 언질을 주었었다.


“곽 선생님, 올해 1학년 1반 맡으셨지요?”

“예.”

“그 반에 박해선 이란 학생 좀 잘 살펴봐요. 뭐 좀 특출한 게 있는지.”

“...예?”

“아, 뭐 별건 아니고. 곽선생님도 알겠지만, 올해부터 우리 학교에 장학금이랑 독서실, 실험실까지 새로 다 지어 주시기로 한 ‘신만원’, 그 분이 부탁하더이다. 보통 아이가 아니니 잘 좀 살펴 달라고 말이오. 당사자인 박해선 학생은 눈치 못 채게.”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과 차별한다든지, 따로 살핀다든지 그런 건 못합니다. 특별히 문제가 생기거나 그렇다면 또 모를까.”

“...곽선생님과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알았으니, 나가보세요. 어찌 됐든 좀 잘 살펴 보시고요.”



***


교장 선생에게 대답은 그리 하였으나,


입학 첫날부터 곽정범은 박해선을 유심히 지켜봤다.


교장의 언질 때문이 아니라 저절로 눈길이 가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입학 첫 날, 첫 대면,


바짝 긴장한 학생들에게 자신을 확실하게 각인 시켜주기 위한 이벤트 성 소개 식,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달했을 때 반 애들 전체가 책상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웃고 환호 했지만,


오직 한 명, 박해선 만은 미동도 없이 저에게 주었던 눈길을 거두지 않았었다.


얼핏 ‘저거 미친 놈인가?’ 하는 표정도 보이긴 했지만,


깊고 서늘한 갈색 눈동자에 무슨 생각이 담겼는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저 답지 않게 적잖이 긴장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슬쩍 올라갔던 입꼬리엔 분명 따스함이 묻어 있었다.


‘이 자식, 물건이네?’


교사 생활 10여 년 만에 아주 군침이 도는, 썩 괜찮은 학생을 발견한 것 같아 가슴이 뜨거워지는 곽정범이었다.



***



하교길,


“해선아ㅡ!! 여기, 여기!”


언제라도 잎이 튀어나올 듯 연두빛 눈이 몽실몽실 돋아난 등나무 아래서 박재학이 손을 흔들었다.


“힘든데 우리도 버스 타고 다니자.”

“나, 힘 하나도 안들엄마.”



당연히 안 들겠지, 미친놈아. 넌 그냥 페달만 밟으면 되니까.



6학년 겨울방학 내내, 어찌나 공부에 열을 올리는지 감복한 박재학 아버지가 중학교 입학 선물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해선에게 시계를 받고 세상을 다 가진 듯 부러울 게 없었던 박재학이라 처음엔 아무것도 갖고 싶은 게 없다고 했지만,


“아부지, 그럼 자전거 사주세요.”


자전거가 어디 한,두푼이냐 경을 치려던 박재학 아버지는 이놈이 비뚤어져서 잘 하던 공부 때려 칠까 지레 겁이 났고,


박재학 엄마에게 최소 석삼년은 쿠사리 먹을 각오로 자전거를 사주셨던 것이다.


“야, 타라.”


입학식 날, 박재학은 아직 날이 채 밝기도 전 해선을 태우러 왔다.


“야, 버스 타면 되지. 날도 추운데 무슨 자전거야.”

“버스 비 아끼고 좋잖냐? 빨리 탐마.”

“나 아직 밥도 안 먹었다고.”

“그럼, 기다릴 테니 빨리 밥 먹어.”



이런, 미친놈!


버스 타면 20분 거리를 자전거로 1시간 넘게 달리자고?


얘가 이렇게 똥 고집이 있는 줄 몰랐다.


할 수 없이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만 빼고 박재학의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하기로 했고.


평평한 신작로와 꼬불꼬불 산길과,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언덕 길을 내려갈 때의 스릴과,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꽃, 나무, 풀, 하늘, 구름,


함께 달리는 모든 것들이 더없이 좋아졌다.


***


“야아아아아아아!!!!!”

“...”

“어때, 기가 막히지?”


내리막길을 달릴 땐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쭈욱 뻗은 후, 손까지 놓고 고함을 치는 박재학,


그래. 기가 막힌다, 아주. 내 일찍이 니가 이렇게 까지 미친놈인 줄 몰랐거든.


그런데,


미친놈이 또 한 명 늘어났다.


아니, 둘 인가?


“박해서어어언!!!”

“박재하아아앜!!!”

“야, 이 치사 빤스 새끼들아아아아!!!”

“이이히히히히히익!!!”


내리막길을 달려서 어지러운 건지,


봄바람에 묻어온 라일락 향기에 어지러운 건지 잘 모르겠는,


4월 어느 봄 날,


원차웅과 장흑수 두 미친 놈이 합류했다.


둘을 위해 득환이가 기꺼이 자신이 타던 자전거를 선사했단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페달을 밟고 달려오는 원차웅과 장흑수를 보며,


해선은 저의 할 일이 두 배로 늘어났음에 고개를 가로 저었고.


아무래도 독수리 5형제 중 넷은 이렇게 정해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박재학이었다.


그럼에도,


해선 또한 만 면에 웃음을 띤 채, 가슴이 간질 거리는 스릴을 만끽 했으며,


뜨겁고도 끈끈한 무언가가 친구들과 저의 사이에 층을 쌓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해선이 무얼 하는지는 영원한 비밀이지만 말이다.



***



“다녀왔습니다ㅡ!”

“흐흥, 공부하느라 고생했어. 아들?”


고생은 제가 아니라 엄마가 하시죠.


“엄마. 이쁜이랑 뭉치 어디 갔어요?”

“글쎄? 조금 전까진 있었는데. 요즘 둘이 잘 없어진다니까?”



해선의 껌 딱지였던 이쁜인 이제 뭉치의 껌 딱지가 되었다.


매일 저와 개울까지 뛰고, 한밤중 달빛 따라 뛰었던 게 아주 먼 일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말이다.


중학교 들어가고부터 하교 시간이 늦기도 했고, 숙제며 공부 등 시간을 쪼개서 써야 하다 보니 좀 소홀하기도 했고.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하지?


공부도 그 무엇도 대충 하면서 살려 던 것과 달리 여전히 열심히 치열하게 하는 자신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태생이 그렇게 생겨 먹었음을 어찌 하겠는가.


뭉치가 없었다면 이쁜이가 좀 외로웠겠네.


생각이 그에 이르자 문득, 뭉치가 사라져 버린 이모의 삶도 외로운 건 아닐지 궁금해졌다.


여름방학 하면 서울에 한 번 가봐야겠어.


이모 생각에 우울했던 마음은 그러나,


멀리서 뛰어 오는 두 하얀 찹쌀떡 때문에 금세 행복감으로 바뀌었다.


숏다리를 땅에 붙이고 굴러오는 동그랗고 하얀 털 뭉치와,


행여 다칠 세라 옆에서, 뒤에서 살피느라 제대로 뛰지 못하는 롱다리의 이쁜이.


어? 쟤네들, 뭐냐.


어째 오누이가 아니라 꼭 연인 같은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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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나비 (4) 24.01.09 90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2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 29화 나비 (1) 24.01.03 126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4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7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8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4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1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2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8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4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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