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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398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29 17:20
조회
127
추천
4
글자
10쪽

26화 딱 한번만 (2)

DUMMY

밤이면 더 좋았을까.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안심 시킬 방법도 문제였고, 이전 생에서 놈을 본 건 언제나 이모의 퇴근 무렵인 정오 이전,


해선은 떠오른 기억이 분명했음에도 간절히 저의 기억이 왜곡 되었길 바랐다.


이모가 그 놈과 다정하게 웃는 모습을,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뭉치가 보호 받고 사랑 받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면,


조용히 돌아가리라 그리 마음 먹었었다.


비틀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용케도 철길 자갈 돌 위를 걸어오는 이모를 마주 했을 때,


크게 이모라 부르며 달려가 안길 뻔 했다.


아니, 안아주고 싶었다.


다 큰 어른의 소원이 겨우 ‘이모’ 소리 듣는 거였는데,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백만 번, 천만 번 불러 줄 거라 다짐하지 말고 이모 귀에 들리도록 한번 만이라도 불러 줄 걸.


이번 생에선 이모를 이모라 불러 줄 수 있을까.


이모의 삶에서 저 놈을 치워버리고도 이모와 나와 엄마의 인연은 이어질까.


기억을 다시 샅샅이 훑는다.


단 한순간이라도 저 놈이 이모에게 소중했던 순간이 혹시 있었는가를.


단 한번이라도 저 놈이 이모를 소중하게 대했던 순간이 혹시 있었는지를.


단 한번이라도 이전 생의 자신은 저 놈을 인간이라고 느꼈던 순간이 혹시 있었는지를.


세차게 가로 저어지는 고개와 함께 차가웠던 갈색 눈동자가 분노와 증오로 이글거린다.


치워버릴 것이다.


이모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아니 어쩌면 제 영혼에 깃들어 있을 존재에게 말을 건넨다.


딱 한번만,


딱 한번만, 나의 의지로, 이 능력으로, 누군가의 삶을 끝내겠다고.


그리고,


끓어오르는 분노와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놈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깊이 가라 앉힌채,


아직 끝나지 않은 이모의 비명과 그놈의 발길질과 뭉치의 끊어질 듯한 숨소릴 들으며 숨죽여 기다렸다.


놈의 죽음에 털끝 만큼이라도 이모가 연관되어서는 안된다.


***


놈이 나온다.


"카-악! 퉤!"


놈은 가래 침을 돋워 뱉고는 주변을 스윽 살핀 후 전봇대에 오줌을 갈겼다.


“어어, 춥다. 시발.”


주머니에서 구겨진 지폐를 꺼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센다.


왼쪽 뺨의 꿰멘 자욱, 역한 술 냄새, 히죽거릴 때 드러나는 누렁니,


이전 생, 그토록 공포와 두려움의 존재였던 놈이 벌레 만도 못하게 하찮아 쓴 웃음이 날 정도다.


골목 끝, 담 벼락 아래 쪼그려 앉은 해선을 흘끔 보고 그대로 지나치는 놈.


해선도 일어나 놈의 뒤를 따라 걸었고,


철 길 쪽으로 가야 해. 철 길이다.


모든 사념을 가라앉히고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갑자기 놈이 휙 돌아다 보지만 상관없다.


누가 보아도 아직 소년인 해선의 모습이 놈에게 어떤 경계심도 줄 리 없음이다.


놈이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철길 옆 자갈 돌위로 올라섰다.


위잉-

위이잉-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휘돌던 바람이 철길 위를 내달린다.


[지금이ㅡ앗??!!!]



해선은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질뻔 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자신의 의지를 실행하려던 것과 동시, 자석에 밀리듯 제 의지가 떠밀려 나간 건.


...???


놈이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손을 빼면서 지폐가 딸려 나왔고,


“어?어?어? 에이잇! 썅!!!”


허공으로 날아가는 지폐를 쫓아 뛰다 넘어졌지만, 일어나 다시 쫓는 놈.


하나, 둘, 셋,,,,,


놈은 가까스로 팔랑이는 지폐를 잡아 주머니에 구겨 넣었고, 마지막 한 장까지 잡자 회심의 미소를 짓고 돌아섰지만,


철로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치직-치직-치직-

빠아아아아아아앙ㅡ!!!!!


커다란 먹구렁이가 입을 떡 벌린 채 철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오며 내는 기적 소리,


삐이익-!

삐이이이이익-!!


역무원의 다급한 호루라기 소리,


띠링-띠링-띠링-!!


위험을 알리는 경적소리,


퍽!퍽!퍽!!!!!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철로에 끼인 발을 어쩌지 못해 돌을 주워 제 발목을 쳐 내리는 놈의 비명 소리...


***


모든 소리가 멈추고,


정적이 찾아왔을 땐,


놈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


후련하지 않다.


엄마를 구하던 날과 똑같다.


무얼까.


마지막 순간 나를 대신하는 것 같은 이 존재는.


내 영혼에 깃들었으니 결국 나이지 않겠는가.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함일까.


죄책감이 자신을 짓누른다 해도 기꺼이 감당하고 살아갈 수 있다.


죽이지 않으면 엄마와 이모가 죽는다.


***


놈이 사라진 이모의 삶은 이제 행복해질까.


모르겠다.


저 골목 안, 어둡고 초라한 방에서 울다 잠들었을 이모를 보고 싶지만 돌아선다.


만나게 될 인연이면 언젠가 만나게 될 것이다.


엄마의 혈육이라면 더욱 그러할 터.


기다리자.


놈의 죽음이 먼지한톨만큼이라도 이모에게 슬픔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골목을 돌아 나오려던 그 때,


도도도도도-


땅에 붙어 낙엽 구르듯 달려와 해선의 발등 위로 납죽 올라타는 하얀 털 뭉치.


“뭉치ㅡ???”


해선은 저도 모르게 털 뭉치를 덥썩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


“해선아ㅡ!”

“아, 선생님.”

“미안해, 미안해. 그런데, 정말 계속 여기서 책만 본 거야? 점심은? 아휴, 박해선. 너 정말.”

“죄송해요, 선생님. 걱정 하셨어요? 저 책도 많이 봤고, 점심도 먹었고. 다 했어요.”


이전 생, 광화문 한복판에서 회사 생활을 했던 해선이다.


길을 잃을 리도, 누군가에게 몹쓸 일을 당할 리도 없을 테지만, 선생님 입장에선 서울이 처음인, 아직 중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제자일 뿐.


혼자 서점에 가겠다는 해선의 말에 그건 안된다는 말 대신 엉뚱한 대답이 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리던 선생님께 미안한 건 도리어 해선이었다.


“선생님, 친구 분들이랑 영화 재밌게 보셨어요?”

“응, 재밌게 잘 봤지. 아주! 아주! 어른스럽고 훌륭하신 제자 님 덕분에?”

“하하. 잘하셨어요. 선생님.”

“네~네. 고맙습니다. 제자 님!”


아이고, 선생님. 뒤끝 엄청 있으시네.


“해선아.”

“네.”

“선생님은 말야, 해선이가 어떻게 클지 참 궁금하다?”

“...”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가도 편지도 하고, 방학 때면 얼굴도 보고, 그랬음 좋겠다. 해선이 크는 거 보고 싶거든.”

“...네.”


그럴게요. 저도 선생님 결혼하시는 거 꼭 보고 싶으니까요.


“응?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요?”

“분명 들렸는데? 넌 못 들었니?”

“...네. 못,,,니요.”

“...?!”


해선의 까만 외투 안, 꼬물락거리며 하얀 털이 머리를 내미는 바람에 끝까지 모르쇠 할 수 없는 해선이었다.



***


하얀 털 뭉치가 저를 향해 구르듯 달려 왔을 때, 뭉치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저도 모르게 뭉치라 부르며 번쩍 안아 올렸을 때, 녀석은 바들바들 떨며 품으로 파고 들었다.


놈의 발길질에 상한 곳은 없을까. 살펴 보니 다행히 이상은 없었지만,


깃털 같다. 이렇게 가벼웠나.


이전 생, 나이가 어렸던 탓도 있었지만 엄마를 잃은 상실감에 다른 생명체를 돌아볼 여력이 없었던 해선에게 웃음을 주었던 녀석이다.


뭉치가 다정하게 내밀던 앞발을 처음으로 잡아줬던 날을 기억한다.


그 날 이후부터 이모에게도 마음을 열었었다.


그런데, 뭔 가 좀 이상하다.


나를 알아보는 걸까? 설마, 그럴리가.


이모도, 그놈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이제 너 때리는 나쁜 놈 없어. 이모랑 잘 살아야 해?”


한참을 안아주고, 쓰다듬고, 얼굴을 부비고, 가만히 골목 안으로 들여 밀었지만,


졸졸-


따라온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면 그 자리에서 딱 멈추고.


돌아서 걸으면,


도도도도-


다시 따라 걷는다.


“휴우, 일로 와 봐.”


우다다다다-


“따라오면 안돼. 너는 이모랑 있어야지.”



***


“세상에! 어쩜.”

“...”

“그럼 이 녀석이 아침부터 너를 따라 왔다는 거야? 이상하네. 동네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데. 하긴, 내가 매일 서울에 있는 건 아니니까.”

“...저, 선생님. 이 강아지 누가 버린 거 같은데, 제가 키우고 싶어요.”

“뭐어? 아니, 그건 좀...”

“아침부터 지금까지 데리고 있었는데 정말 얌전했어요.”

“그래. 작고 예쁘긴 하다. 불쌍하기도 하고. 그런데, 기차를 탈 수 있을까?”

“그건 제가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작으니까 품속에 꼭 안고, 안...들키면...”

“흐흐흥, 해선이 너 강아지 진짜 좋아하는구나. 지금도 있지 않아? 그 엄청 하얗고 예쁜 강, 아니 개 말이야.”

“맞아요. 이쁜이요. 얘 데리고 가면 둘이 친구도 하고 엄청 좋아할 거예요.”

“무슨 친구? 엄마 개랑 아기 강아지겠지. 아유, 근데 얘 정말 예쁘긴 하다. 무슨 뜨개질 실 뭉쳐 놓은 거 같네? 호호홍.”

"그래서, 이름도 지었어요. 뭉치예요."

"벌써 이름까지? 실 뭉치에서 실만 뺀 거구나? 호홍, 잘 어울리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선생님 설득하는 건 정말 너무 쉽다.


아이처럼 맑고 순수하셔서 그런 걸까.


그래도 연애 하실 땐 밀당이 필수인 거 아시죠? 모르시겠구나.



***


석 달 같았던 3일을 무사히 보내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뭉치야. 절대 소리 내면 안된다? 고개를 내밀어도 안되고. 한번씩 통로에 나가서 바람 쐬어줄게. 알았지?”


뭉치는 약속을 잘 지켰지만, 정작 선생님이 문제였다.


“뭉치, 숨 못 쉬는 거 아닐까?”

“뭉치, 자고 있는 거 맞나? 너무 조용한데?”

“너보단 선생님이 안고 있는 게 더 낫지 않겠니?”


선생님은 해선의 검은 외투 안 뭉치를 수도 없이 떠들어 보고 확인했다.


이러다 선생님이 키우고 싶다고 하시는 건 아니겠지?


품 안의 뭉치 지키랴, 뭉치 궁금해 하시는 선생님 단속하랴,


집 가면 친구 놈들한테 시달려야 할 걱정 같은 건 할 틈도 없는 해선이었다.


뭐, 친구 놈들이야 단박에 입막음 할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지만 말이다.


아, 엄마 보고 싶다. 이쁜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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