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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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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404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21 23:45
조회
154
추천
5
글자
12쪽

22화 북극성

DUMMY

밖으로 나온 박재학은 달려드는 밤바람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걸었다.


‘어, 씨. 되게 춥네. 으으으.’


혹시 친구들이 그냥 들어오라고 하는 건 아닐까 몇 번이나 뒤를 돌아다 봤지만 꼭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새끼들, 치사하게. 아, 해선이 빼고. 히히’


박재학은 친구들이 저를 보고 박해선 엄마라고 놀리는 게 참말로 좋았다.


해선이는 몸도 허약하고, 마음도 여리고, 밥도 조금밖에 안 먹고, 친구들이 놀리면 속 상하니까 무조건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아, 씨. 근데, 되게 무섭다. 깜깜해서 길도 안 보이고.'


초저녁 때만 해도 달빛이 꽤 밝았는데 구름 뒤로 숨은 것인지 별빛만 밤하늘 가득했다.


김영선네 집 앞 밭에 구덩이를 파고 볏단을 세워 만든 저장고가 보인다. 저 안에서 무수(무) 나 꺼내 갈까?


-이상한 거 갖고 오면 안 쳐 준다?


성 나면 하마보다 무서운 하재숙이 그렇게 말했는데 무수를 가져가면 봐 주겠는가.


아, 나도 천달수 마냥 중간에 그냥 집으로 갈 걸 그랬다.


처음엔 해선이 오는 것만 보고 가려고 했었고, 그다음엔 자꾸만 게임에서 지니까 한 번 이길 때까지만 있다 가려고 했는데 . 왜 이렇게 된 걸까.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이다. 그래, 머리가 나빠서.


‘이눔아, 중핵교 가도 맨날 꼴찌만 할 것이냐. 니 성은 1등을 놓친 적이 한번도 읎는데, 대체 넌 누굴 닮은 것이냐. 어이구, 속 터져.’


시험 끝나고 성적표 나오는 날마다 아부지가 그리 말했다.


박재학 형, 박재철은 화라리에서 난 용이라고 했다. 선생님들이 더 가르칠 게 없으니 월반을 하라고 했고, 나중에는 서울로 가라고 했다. 형은 서울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에 들어 갈 거라고 사람들이 입을 모았다.


그런데, 난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콱! 죽어 버릴까.


게임에서 져서 벌칙 받으러 나온 박재학이 갑자기 인생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 가 좀 이상하다.


“어? 여기 어디지?”


박재학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이쪽을 봐도 저쪽을 봐도 칠흑 같은 어둠,


며칠 전 내려 쌓인 눈이 그대로 인 들판만이 하얗게 보였지만, 그마저 크고 작은 별들이 떨어지듯 반짝이고 있어 밤인데도 눈이 부셨다.


쿵 쿵 쿵ㅡ!


심장이 미칠 듯 뛰며 방망이 질을 해 댔고,


저기 어디선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입가에 피 칠을 한 귀신이 지켜 보고 있는 것 같아 금방이라도 오줌을 쌀 것 같다.


***


밖으로 나온 해선은 김영선네 집 마당에 서서 온 몸의 감각을 세워 사방을 탐색했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다.


이상하다. 지난번 송윤정 할머니는 꺼져 가는 숨소리임에도 느낄 수 있었는데.


“이쁜아, 아까 박재학 나오는 거 봤지? 어느 쪽으로 갔어?”


이쁜이가 앞 장 서 걷다가 김영선네 집 앞 밭에 있는 저장고 앞에서 멈춰 선다.


“그 다음, 그 다음엔 어디로 갔는지 못 본 거야?”


끼-끼잉-


귀와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낑낑 대는 걸 보니 모르겠나 보다. 한겨울 추위에 천지가 꽁꽁 얼어붙어 냄새도 맡기 힘든 상황.


“괜찮다. 괜찮아.”


이쁜이를 그리 달랜 후, 박재학의 집으로 향했다.


없다. 집으로는 안 왔어.


김영선네 집에서 나올 때, 댓돌 위 신발부터 확인 했었다.


안에 털 들었다고 자랑하던 그 털 신, 지금 재학의 집 댓돌 위에 털 신이 없다는 건 집으로 오지 않았다는 것.

우후죽순 튀어 오르는 사념을 재우고 주변의 소리에 집중했다.


들리는 건 오직 바람 소리 뿐, 저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만이 귓전을 울렸다.


미친놈아, 어디로 사라진 거냐.


아까 그냥 게임을 끝냈어야 했나. 박재학이 무섭다며 한 사람만 더 하자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한 건가.


시간이 없다. 먹을 거 찾는다고 무작정 돌아다니다 길을 잃었다면 위험할 수도 있다.


한 겨울, 모두가 잠 든 시간,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하고 이대로 아침을 맞는다면...


늦기 전에 박재학 부모님께 알리고 어른들과 합심하여 찾아야 하는 걸까.


아니다, 우선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어쩌면 쉽게 찾을 수도 있다. 아무일 없는 듯 돌아올지도 모르고.


생각을 하자. 생각을...생각...


아! 북극성ㅡ!!!!!


박재학이 기억할까?

편미영 선생님이 별자리 공부할 때 해주셨던 말씀을?


해야만 해. 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쁜아, 뛰어!”


박해선과 이쁜이가 질주했다.


***


이쁜이와 질주해 도착한 곳은 바로 해선의 집,


발소리를 죽이고 집 안을 들여다보니 언제 돌아오셨는지 곤히 주무시는 엄마,


해선은 엄마의 등에 가만히 손을 얹고 더 깊이, 편히 주무실 수 있도록 하고 빠르게 다음 일을 진행했다.


김영선네 집은 화라리의 끝자락,


이쁜이가 분명 김영선네 집 마당 앞, 밭 저장고에서 멈췄어.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해.


밭 뒤쪽으로는 산, 바보가 아닌 이상 아무리 밤이었대도 산길로 들어섰을 리는 없다.


어디론가 무작정 걸었다면 저장고를 마주 보고 섰을 때 왼쪽이나 오른쪽이 아닌, 김영선네 집 뒤, 개울 방향으로 갔을 확률이 가장 높다.


개울을 기준으로 해선의 집은 북쪽이면서도 중간 지점.


해선의 의지에 따라 박재학이 조금만 움직여 준다면, 그 다음은 수월하다.


재학아. 한 순간 만이라도 좋으니 내 생각을 떠올려! 그래야만 해!!!


해선은 빠르게 두뇌 회전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박재학을 향해 자신의 의지를 전하고 또 전했다.


문제는, 빛이다.


무슨 수로 빛을 낸단 말인가. 이런 건 시도조차 해본 적 없다.


횃불?


횃불을 밤하늘 높이 올려 꺼지지 않게 타오르게 한다면?


불 모양은 공처럼 작고 둥글게, 약간의 바람만 일으켜 불빛의 크기를 조절한다면?


그래,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야.


헛간으로 가 횃대를 가지고 나와 마지막 고민을 끝낸 후 불을 붙이려던 그 때,


조용히 곁을 지키던 이쁜이가 해선의 소맷자락을 물고 문밖으로 이끌었다.


이쁜아, 너 왜 그래. 뭐 본 거야?


녀석은 담장 옆 오래된 우물 가 앞에 멈춰서야 소맷자락을 놓았고,


후웅-


갑자기 공중으로 뛰어 올라 우물 가장 자리를 밟고 안으로 사라졌다.


ㅡ??!!!


놀랄 틈도 없이 들여다 보니 앞발로 우물 바닥을 파헤치는 이쁜이,


맞아. 이 우물은 더 이상 쓰지 않아 오래전에 흙으로 메웠지.


저런 행동을 하는 데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


해선이 몸을 날려 사뿐히 우물 안으로 뛰어 들자,


파밧-파밧-파바밧-


더 빠르게 앞발을 놀리며 파헤치는 녀석,


여기, 무언가가 있는 거야!


이쁜일 멈추게 하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흙 위를 감싸듯 손바닥을 댄 후,


박재학에게로 향해지던 의지를 잠시 멈추고 손끝으로 기를 보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팽창감이 손바닥을 빠져나와 흙 안으로 스며 든다.


이내,


부드러워진 흙이 들썩이며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황금 빛 작은 구체가 따뜻한 바람을 타고 해선의 손바닥 위로 올려진다.


탁구공보다 작은 구체의 황금 빛은 점점 밝기를 더해 우물 안을 가득 채웠고,


해선이 손바닥을 위로 펼치자 그 빛이 밤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ㅡ북극성!!!!!


박재학ㅡ!


보고 있는 거냐! 여길 봐!! 내가 있는 곳!! 여기!!!



***


아부지이이ㅡ!!

엄마아아ㅡ!!

혀어엉ㅡ!!!

박해서어어언ㅡ!!!


부르고 또 불러 보지만 차가운 메아리가 되어 제 귀로 다시 와 박힌다.


곧 울음이 터지기 직전,


ㅡ ??!!!


언젠가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이 생각났다.


-얘들아, 밤에 길을 잃었을 땐 하늘에서 제일 반짝이는 큰 별을 찾아서 따라 가면 돼.

-그 별을 북극성이라고 하는데, 항상 북쪽 하늘에 있으니까 우리 집이 어느 쪽에 있는지 알아두면 좋겠지?


이가 딱딱 부딪혔지만 간신히 입김을 내어 손을 호호 불면서 하늘을 올려다 봤다.


저게 뭐다냐. 별이 너무 많잖아. 다 크고 다 엄청 빛나.


몸이 점점 얼어온다.


눈물이 주루룩 흘러 손등으로 닦아 내려 했지만 꽁꽁 언 손등과 뺨이 화끈거리고 아프다.


위잉-위잉-


미친 듯 울어 대는 바람과 사방을 막은 시커먼 산들이 저를 잡아 먹으려 입을 벌린 채 조여 오는 것 같다.


아부지이이ㅡ!!

엄마아아아아ㅡ!!!

혀어어엉ㅡ!!!

해선아아아ㅡ!!!


나 죽어유우우우ㅡ어어허엉!!!!!


그 때,


하늘과 땅이 닿아 있는 듯 보이는 저 끝, 유난히 크게 반짝이며 깜빡이는 빛 무리,


어? 엄청 크다. 무지 밝아. 북극성인가?


땅속에 박힌 것처럼 꼼짝 않던 발이 저 빛만 따라가면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돌을 매단 듯 무거웠지만 한걸음씩 한걸음씩 떼어졌다.


“제발, 제발, 우리 집 찾아가게 해줘유. 중학교 들어가면 정말 정말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살게유.”


박재학은 너무나 무섭고 무서워서 태어나 처음으로 기도를 하며 빛을 따라 걸었고,


그 빛에 거의 닿았다 느낄 즈음,


어???


멀리서 빛만 보고 왔을 때는 분명 하늘에서 빛나는 별인 줄 알았는데...하늘이 아니야.


으어억! 도깨비 불???


눈을 있는 대로 뒤집던 박재학이 뒷걸음 하다 철퍼덕 주저 앉았고,


화아아악!!!!


빛이 그물망처럼 넓게 퍼지며 박재학을 감쌌다.


따뜻해. 엄마 품 속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만 졸린다.

이렇게 추운데, 이렇게 무서운데, 졸음이 쏟아진다.


난 역시 바보, 천치가 맞나 보다.


***


친구들아, 이제 그만 들 일어나지?


잘했다, 박재학. 그러니까 너도 이제 그만 일어나고.


아기처럼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자는 박재학을 보니 우습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고,


참 뭐라 할 말이 없네.


다시는 너희들과 파티 같은 거 안 할 거다.


아직도 귓전에서 맴도는 아이엠 그라운드 지옥과, 박재학을 너무 늦지 않게 찾은 것과, 잠든 박재학을 업고 김영선네 집까지 온 걸 생각하면,


이렇게 긴 밤이 또 있을까 싶은 해선이었다.


아니, 배가 그렇게 빵그라니 업기가 쉬웠겠냐고.


그래도, 참 좋았다. 언제 이렇게 또 놀아 보겠나.


설마 나의 유년시절이 또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지만 박해선에겐 아주 소중한 무언가가 또 생겨버린 것 같으니까.


***


우물 안 흙을 깨고 나와 해선의 손에 올려진 황금 빛 작은 구체에서 밤하늘로 빛이 쏘아 올려진 순간, 해선은 알았다.


자신의 의지가 박재학에게 닿았음을, 박재학 또한 해선을 향해 한 순간이라도 마음을 보냈다는 것을.


팽팽하게 당겨져 튕기는 거문고의 현 처럼 서로가 그렇게 연결 되었고,


재학이는 빛을 따라 아주 잘 와주었다.


도깨비 불이라며 기겁을 하곤 주저 앉더니 빛 무리에 싸여 금방 잠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박재학이 무사히 해선에게 찾아오고도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선의 의지 안에 깃들어 지금 이 순간도 느끼고 있으니까.


불러내면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테니까.


다만,


궁금한 건,


도대체 이쁜이가 어떻게 알았을까 인데. 정말 이상하게도 이쁜이는 자신의 말을 전해주지 않는단 거다.


엄마 다음으로 가깝고 의지하는 녀석이건만 어째서 마음을 전해주지 않는 걸까.


처음 본 누렁소도 저의 마음을 그리 애절하게 전해주지 않았던가.


너 혹시, 그럴만한 까닭이라도 있는 거냐?


월-월-


여전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모르면 어떠랴. 지금 이렇게 우리가 함께 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뎅그렁-뎅그렁-


어젯밤, 엄마랑 교회 종소리 듣고 파티 하러 왔었는데,


성탄절 아침이 밝았음을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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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나비 (5) 24.01.10 95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1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3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6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4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8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9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 22화 북극성 23.12.21 155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1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2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8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5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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