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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400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4.01.09 17:40
조회
90
추천
3
글자
10쪽

32화 나비 (4)

DUMMY

찰싹-


“어우, 씨. 모기 새끼!”


재학이 모기 물린 뺨을 때리며 눈을 떴을 땐 평상에 저 혼자였다.


치사하게 혼자 들어갔다고 궁시렁대며 방으로 갔으나 아무도 없는 빈 방,


“오줌 누러 갔나?”


눈을 비비고 마루 끝으로 다시 나왔을 때,


개울 건너 저들이 다녔던 학교 쪽이 대낮처럼 환했다.


어? 불이다!!!


재학은 해선이 저곳에 갔을 것임을 직감으로 바로 알았다.


‘아!! 새끼가, 겁도 없이!!!’


박재학은 주저 없이 학교 쪽으로 뛰다 말고 방향을 이장님댁으로 틀었다.


“이장니임!이장니이임!!!”

“불, 불났어유!!”


마당 한쪽에 쑥 불을 피워 놓고 대청마루에서 잠을 자던 이장 심복수씨가 ‘불’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누, 누구여. 어디서 불이 났다는 거여.”

“저기 학교유. 학교에 지금 불 났어유. 얼렁 방송해서 사람들 다 깨워 주세유. 가서 불 꺼야 돼유. 급해유.”


이장 심복수씨가 개울 건너 학교 쪽을 봤지만 깜깜한 어둠 뿐, 뭘 보고 불이 났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 이눔아. 어디가 불이 났다는 것이여. 아닌 밤중 홍두깨비도 아니고. 무턱대고 방송을 하라고 하면 어뜩혀. 사람들 다 자는디.”


이장님의 호통에 재학이 몸을 돌려 학교 쪽을 봤지만, 대낮같이 환했던 빛이 사라졌다.


“아닌데, 불 났는데...”

“거, 서울에서 온 학상들이 켜 논 불이겄지. 잔다고 인자 껐는가보구만.”

“아니에유. 시뻘겋게 막 타올랐다구유.”

“저 봐라. 깜깜하기만 한데 뭐가 탄다는 겨. 어여 가서 잠이나 자. 한밤중에 그러구 댕기지 말구. 신발은 어따 팔어먹구 맨발이여.”



내려보니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고 그제야 발바닥 통증이 느껴졌다.


겨우 잠든 걸 깨웠다고, 다시 자긴 날 샜다는 이장님의 한 소리를 더 듣고 제 집으로 향하던 재학이 해선의 집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상하다. 분명히 불 봤는데.’


***


꼬끼오오오옥-

음머-


어두웠던 하늘이 푸른 빛을 띠며 동이 터오자 수탉의 훼 치는 소리와 누렁소들의 울음이 차례로 들려왔고.


저만큼 다리 끝에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순간 재학은, 사람이 아니라 산이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쿠웅-!


아직 얼굴을 내밀지 않은, 해를 품은 칠봉산이 검푸른 하늘을 찢고 다가오는 느낌.


질끈-!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땐,


“여기서 뭐하냐.”


바로 코앞에 해선이 서 있었다.


“어? 어. 넌, 인마. 왜 거기서 와.”

“학교 쪽에 불 난 거 같아서. 가 봤는데, 벌써 다 꺼졌더라.”

“어? 불? 불 난 거 맞지? 맞지? 거봐, 내가 봤다니까. 아, 씨 이장님. 내 말 안 믿어.”

“응, 근데 비 와서 금방 꺼졌대. 가자.”

“너, 새꺄, 왜 나 안 깨우고 혼자 가. 위험하게. 뭐? 비 왔다고??”

“너, 뭐야. 왜 맨발로 다녀.”



‘...이 씨.’


도대체 비가 언제 왔다는 것인가. 거짓말 할 해선이 아니니 참말일 것이다.


호랭이가 훤한 대낮이 아니라 밤에도 장가를 간다고?


방금 전 칠봉산이 해를 품은 채 저의 앞으로 다가 왔는데, 말해봤자 믿지도 않겠지?


박재학은 아무래도 오늘 밤 여우한테 단단히 홀린 것만 같았다.



***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교감 선생님.”

“다친 학생들 없으니 다행입니다. 큰일 날 뻔 했어요.”

“청소랑 말끔히 다 했습니다. 학생들 안전하게 귀가 조치하고 일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정말 감사했습니다.”

“선생님들도 놀랬을텐데. 그렇게 까지 안 해도 돼요.”

“아닙니다. 사후 처리도 있을 것 같고. 다시 뵙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럼.”


학교에 불이 났다는 소식에 자전거를 타고 달려온 최교감은 말끔히 정리된 현장을 보고 안도했다.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도시의 학교에서 수련회를 오지만, 대부분 야영을 하는 까닭에 학교 교실을 내어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인원수가 많은 데다 여학생들이고. 수련회 내내 야영을 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며 정식 요청이 왔기에, 학교 운동장과 교실 사용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올 때만 해도, 내 이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리라 어금니를 꽉 물었던 최교감은,


불이 났었다고 하니 불이 난 줄 알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된 운동장을 보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무엇보다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으니 하늘이 도왔음이다.


게다가 깍듯하게 예를 갖춰 사죄하며 혹시 따를 행정 처리 등도 있으니 다시 오겠다고 하잖는가.


참 요즘 보기 드문 젊은 선생인 것 같아, 먹었던 마음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최교감이었다.


***


오후 무렵,


인솔 교사와 소녀들을 태운 버스가 뽀얀 흙 먼지를 날리며 떠났고,


친구 놈들은 자라바우에 모여 난상토론을 벌였다.


“와, 씨. 집에 가지 말고 더 놀았음 우리가 불 다 껐을텐데.”

“빙신아, 니가 집에 가자고 젤 지랄했자넘마.”

“지랄! 니들, 인마. 불 난 거 봤음 다 도망 갔을 거면서.”

“빙신아, 너는 도망 갔겄지. 인마, 화악 불 다 끄구. 막 여자애들 구하고 그랬음 진짜 좋았을 건데. 에이, 씨.”

“걔네들, 엄청 울었더라. 눈 다 새빨개서, 아후. 불쌍하다.”

“야. 근데, 순영이 걔는 왜 한번도 안 오냐? 방학 때마다 온다더니.”

“새끼, 왜 갑자기 순영일 찾고 지랄이염마.”



불 난 현장에 있었다면 다 영웅이 됐을 것만 같은 까까머리 친구 놈들,


화라리 소년들 모두의 마음속 첫사랑 순영이 떠난 후 찾아온 두 번째 설레임,


버스를 타고 떠난 소녀들은 절대 알 수 없을, 친구 놈들만의 두 번째 사랑은 그렇게,


한여름 밤의 꿈을 남긴 채 속절없이 떠났다.



***



“매번 폐 끼쳐 죄송해요.”

“어이구, 그런 말 말어유. 내가 깨꼬름히 잘 해서 갖다 줄테니깐두루 걱정 말구, 가서 일 보셔유.”

“예. 그럼 부탁 드려요. 고맙습니다. 미안하다. 꼬꼬야.”


꼬꼬댁-꼭꼬꼬!! 꼬꾸댁-꾹꾸꾹!!!


닭 모가지를 틀어 잡고 뒤안으로 가는 천달수 아버지한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민경선이 도망치듯 마당을 나왔다.


“엄마, 그렇게 까지 안 하셔도 돼요.”

“무슨 소리야. 당연히 대접 해야지.”

“두 분은 안 드셔도 배가 부르시다니까요. 지금.”

“그래도, 밥 한 끼 드실 수 있게는 해야지.”

“...”


아니, 엄마. 밥 한 끼가 아니라 진수성찬이잖아요. 닭까지 잡고.


내, 이 선생님들을 진짜!!!



***



편미영 선생님은 졸업식 날 왜 그렇게 개구리 눈이 되도록 우셨을까?


재희가 말을 배워가고,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라도 된 듯, 선생님은 거의 매일 화라리로 출근을 하셨다.


우습게도, 재희의 옹알이가 점점 완벽한 우리말을 갖추어 감에도 선생님의 혀 짧은 소리는 그대로였다.


모르긴 해도 선생님의 월급 중 상당 액이 재희의 장난감이나 책, 레이스 달린 원피를 사는 데 지출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


재희를 향한 편미영 선생님의 마음에 균열이 가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으니!


친구 놈들이 소녀들을 떠나보내고,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그 해 가을,


사랑의 작대기 두 개가 만났던 것이다.


***


“자! 이것으로 종례를 마친다. 박해선은 교무실로!”


왜 부르시는 거지?


“박해선이, 수오리 초등학교 졸업한 거 맞지?”

“네.”

“그, 편미영 선생님이 6학년 때 담임이셨고?”

“...?”

“선생님, 혹시 뭘 좋아하시냐?”

“...??”


아니, 이 선생님이 그런데!!!


“하하. 이눔자식 봐라, 이거. 눈 안 풀어?”

“...!”


교무실을 나와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재학에게 가는 동안 방금 곽정범 선생님에게 들은 말을 정리해보는 해선,


그러니까, 여름방학 때 맞선을 보셨다는 거지? 두 분이?


곽정범 선생님이 미혼이란 것도 충격인데, 심지어 편미영 선생님과 맞선을 봤다고?


아니, 어떤 거지 같은 인간이 그따위 중매를 섰다는 건가.


앞뽈록, 뒷뽈록 곽정범과 영심이보다 더 귀여운, 무려 편미영 선생님을???


“야, 왜 그래. 꾸중 들었어? 아니지, 니가 꾸중 들을 일이 뭐가 있겠냐.”


자전거 바퀴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재학이 질문을 던졌지만, 갈 곳 잃은 해선의 갈색 눈동자는 허공을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


꼭 껴안고 낮잠 자는 이쁜이와 뭉치를 보니 알겠다.


늑대와 다람쥐의 사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울리지 않는 두 녀석도, 저리 애틋하지 않은가.


처음엔 편미영 선생님이 좀 튕기셨나 보다.


암. 당연히 그랬어야지.


아니, 그런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그런 속담은 왜 있어 가지고!!!


곽정범 선생님은 열 번이 아니라 스무 번도 더 찍었다고 했다.


그러나,


편미영 선생님이 넘어간 건 순전히 스무 번 넘는 도끼 질 때문 만은 아니었는데.


끝없는 대시에도 꿈쩍 않는 편미영 선생님을 찾아 어느 날 곽정범 선생님이 화라리를 찾았다.


그렇게 밀어내기만 하던 편미영 선생님은,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황금 들판의 허수아비보다 볼품없는 곽정범 선생님이 재희와 아이처럼 놀아주는 것에 반했다나, 어쨌다나.


뭐, 그렇게 사랑의 작대기를 이어 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재희였던 것이다.


그리고,


스승님을 하늘처럼 여기는 박해선 엄마 민경선은, 화라리에서 데이트 하시는 두 선생님을 위해 지극정성 식사 대접을 하셨다.


곽정범 선생님은,


가마솥에 푹 고은 닭 육수에, 시원한 무 숭덩숭덩 썰어 넣은 닭 곰탕을 그렇게도 잘 드셨다.


“하하, 어머니. 정말 이렇게 시원하고 맛있는 닭 곰탕은 처음입니다. 제가 다음에 올 때 닭 몇 마리 사오겠습니다.”


닭 안 사와도 되니, 두분 데이트는 여기 말고 읍내에서 하시라고요!!!


***


이듬해 봄,


지천에 꽃 향기 날리며 더 없이 아름다운 오월 어느 날,


수오리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두 선생님은 전통혼례식을 올렸고.


겨울이 채 오기 전,


편미영 선생님은 곽정범 선생님보다 더 부른 배를 갖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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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나비 (4) 24.01.09 91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2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6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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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8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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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4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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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8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4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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