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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383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07 11:00
조회
239
추천
6
글자
11쪽

11화 울지마, 누렁소 (2)

DUMMY

[누렁소야, 왜 이렇게 슬픈 거냐.]


알아들을 리 만무하다 여기면서도 왠지 누렁소가 알아들을 것만 같았다.


[누렁소야. 무엇이 너를 이리 슬프게 하는 건지 말해 보거라. 내가 너의 슬픔을 덜어 줄 수도 있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한순간도 생각한 적 없지만 마음이 알아서 그리 전하고 있었다.


무엇으로도 포장 하지 않은 , 오직 순수한 마음, 그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실낱 같은 떨림을 담고 누렁소를 향했다.


누렁소가 슬픔이 가득 찬 눈망울을 들어 해선의 갈색 눈을 들여다 본다.


[그래. 그래. 어서 말해 보거라.]


한마디라도, 아니 느낌으로라도 듣고 싶었다.


들은 들 어쩌겠냐 만은, 들은 들 천달수 아버지에게 무어라 설명하겠냐 만은,


그래도, 그래도 누렁소의 슬픔을 듣고 싶었다.


이윽고,


우우우우웅ㅡ.


누렁소의 목덜미를 잡고 있는 해선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며 부유감이 느껴졌다.


따뜻한 바람을 동그랗게 뭉쳐 잡을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건,


누렁소가 전해주는 말이었다.


주루룩-


해선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명치 끝이 저릿저릿 아파왔다.


끼잉-끼잉ㅡ.


해선이 눈물을 흘리자 이쁜이가 다가와 꼬리로 안으며 안절부절 못했다.


해선은 볼을 타고 흘러 내리는 눈물을 훔쳐냈다.


고삐를 쥔 채 돌아서서 먼 하늘만 보느라 해선이 우는 걸 보지 못한 천달수 아버지.


문제는 이걸 천달수 아버지한테 어떻게 전하느냐다.


아, 뭔가 묘 수가 있어야 해.


음머ㅡ.


누렁소가 다시 울었다.


아까의 그 슬픈 울음이 아니라 뭔 가 박해선을 재촉하는 듯한 울음으로 들렸다.


[기다려봐, 누렁소야. 나도 지금 죽겠다고.]


자신의 내면에서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면 무얼 하겠는가. 드러내 써먹을 방도가 없는 것을.


아, 생각났다. 통할지 모르겠지만.


“아저씨.”


“이? 해선이 시방 보니 무섬을 안타네. 어째 누렁이가 얌전해진 것두 같으구. 착하다, 누렁이. 인제 그만 가보자이?”


천달수 아버지가 다시 누렁소 고삐를 바짝 그러 쥐었다.


음ㅡ머!!


“아, 아저씨! 아저씨!! 누렁이 새끼 말이에요.”


“으이?”


“선생님이 그러시는데요...”


선생님이란 말에 바짝 조여 앞으로 당기던 고삐를 멈추고 해선일 보는 천달수 아버지.


그래, 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된다고 여기는 시절 아니던가.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엄마 소가 멀리 갈 땐 꼭, 꼭 자기 새끼를 한번 보고 가야 한대요. 안 그럼 엄마 소도, 아기 송아지도 보고 싶어서 병이 난 댔어요.”


음머ㅡ음머ㅡ.


아기 송아지 이야기가 나오자 누렁소가 애달프게 운다.


[누렁아, 조금만 참아봐. 아기 송아지 꼭 보게 해줄게.]


이게 통할까? 자신이 생각해도 참 궁색한 말이었다.


그렇다고,


‘누렁소가 그러는데 아기 송아지가 너무 보고싶대요. 아저씨랑 아줌마가 많이 사랑해 준거 아는데, 그래서 가야 되는 거 아는데, 그래도 가기 전에 아기 송아지 꼭 한번만 보고싶대요.’


이렇게 말할 순 없지 않는가.


이럴 때 차라리 같은 어른이었다면 오히려 말하기가 쉬웠을 테지.


‘거, 떠나보내는 마당에 제 새끼 얼굴 한번 보게 해주지 그러나.‘ 라고 말이다.


해선이 머릿속으로 자신을 나무라며, 다음 해야 할 말을 떠올리고 있던 그때였다.


털썩ㅡ!


고삐를 그러 쥐었던 천달수 아버지가 바닥에 주저앉더니 꺽꺽 소리 내어 울었다.


“누렁아, 이눔자식. 새끼가 보고 싶었던 것이냐. 기렇지. 기래. 기랬어. 내 기것도 몰랐구나 야. 미안타. 미안타.”


음머ㅡ.

음머ㅡ.


누렁소가 같이 운다.


***


천달수 아버지, 천광호는 자식 같은 누렁일 보낼 생각에 지난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다.


몇 번이고 나와서 외양간 기둥을 잡고 달밤에 혼자 울었다.


오랜 세월을 자식으로 여기고 살아온 누렁소였다.


그 많은 농사일을 이 누렁소가 없었다면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서울서 대학 다니는 큰아들 등록금 부쳐 주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새끼 송아지와는 생 이별 시킬 수 없어 며칠 전 장흑수네 외양간에 맡겼다.


마누라는 누렁소 보내는 거 차마 못 본다고 어제 읍내 사는 먼 친척 집으로 갔다.


소 장수가 오는 날까진 일도 안 시키려고 외양간에 묶어 만 두었는데, 자신이 팔려가는 걸 알기라도 하는지 며칠 전부턴 아예 먹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누렁소가 좋아하는 개울가 신선한 풀이라도 먹이려고 간신히 달래서 끌고 나왔지만, 허사였다.


그 좋아하던 풀도 안 뜯고 서럽게 울며 목쉰 소리를 냈다.


천달수 아버지는 누렁소보다 더 울고 싶었다.


“그리야. 가자. 가서 니 새끼 보자. 이이, 기럼. 기래야지. 보구 가야 하고 말고.”


저벅-저벅-

턱-턱-


머리를 휘젓고 앞발로 버티며 울던 누렁소가 앞장서 걸었다.


천달수 아버지는 고삐를 느슨하게 쥐고 누렁소보다 몇 걸음 뒤에서 힘없이 걸었다.


도랑가 조그만 다리를 건너 ‘도마네’ 뽕나무 밭을 지나자, 누렁소가 장흑수네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허어ㅡ!”


천달수 아버지가 짧게 탄식 했다.


턱-턱-턱-턱-


누렁소의 걸음이 빨라진다.


음머ㅡ음머ㅡ음머ㅡ.


아기 송아지를 부르는 거야.


음-메ㅡ음메ㅡ.


아기 송아지도 엄마를 부른다.


누렁소와 아기 송아지의 애절한 울음소리를 듣고 동네 사람들이 장흑수네 집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며칠 만의 상봉에 누렁소와 아기 송아지는 얼굴을 부비며 서로를 핥았다.


누구 하나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중,


“...아부지!”


소 장수로 보이는 두 사람이 울어서 퉁퉁 부은 천달수를 앞세우고 장흑수 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 중 땅딸막한 소 장수가 손에 든 나무 망치를 빙빙 돌리며 천달수 아버지 앞으로 와서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아자씨. 사람을 이렇게 지달리게 허믄 안되지유. 근디 워째 소가 첨 봤을 때보다 마른 거 같으네유?”


소 장수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나무 망치로 누렁소 여기저기를 쿡쿡 찔러 대자 아기 송아지가 머리로 소 장수를 밀어냈다.


"하이고. 꼴에 지 에미라고 하는짓좀 보게나?"


음머ㅡ.


누렁소가 아기 송아지 앞을 막아 섰다.


박해선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자씨, 새끼는 어디루 좀 보내라고 했더니만. 왜 일을 만든대유. 귀찮게. 고삐 이리 줘유.”

"그러지 말고 좀 기다려 봐. 내 잘 달래 볼테니깐두루."

"뭘 더 기다려유. 다 생각이 있으니깐두루 이리 줘유."


소 장수는 다짜고짜 천달수 아버지 손에서 고삐를 나꿔채 바짝 당겼다.


음머ㅡ!!!


누렁소가 앞발로 버티며 고개를 처 들고 울음을 토했다.


“아이구, 이눔아. 얼렁 가, 얼렁. 기냥 가.”


천달수 아버지가 땅바닥에 풀썩 주저 앉았고,


"으허헝, 누렁아아!!"


천달수는 두 다리를 뻗고 엉엉 울었다.


움머-움머-!!

음메-음메-!!


아기 송아지가 제 엄마 곁으로 바짝 붙어 같이 운다.


사람들이 차마 못 보고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훔쳤다.


“에잇! 시간 읇구먼. 확!!!”


소 장수가 나무 망치 든 손을 높이 들었다.


저, 저 미친 인간이! 뒤질라고!!


쿵쾅거리며 요동치던 박해선의 심장이 일순 고요해졌다.


그리고,


“어? 어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무 망치를 든 자신의 한쪽 팔을 올려다 보는 소 장수와,


사람들도 뭔 일인가 싶어 덩달아 소 장수를 바라보던 그 때,


소 장수가 꽉 움켜쥐었던 나무 망치를 정확히 자신의 오른쪽 발등 위로 떨어뜨렸다.


따악ㅡ!


“크아아아아아악ㅡ!!!”


소 장수가 깨금발을 뛰며 몇 바퀴 돌다 퍽 주저앉았다.


얼굴이 보라색으로 변했다.


“아니, 저냥반 혼자서 왜기런데?”


누가 봐도 혼자서 쌩쇼(?) 하는 걸로 보이는 상황에 명수아저씨가 한마디 했다.


속으로는 무척 고소해 하면서.


같이 온 사내가 순식간에 부어오른 소 장수 발등을 보고 도대체 이게 뭔 일인가 싶어 입을 떡 벌린 채 눈만 꿈벅였다.


해선이 마음속으로 조용히 누렁소를 불렀다.


[누렁소야. 괜찮다. 괜찮아.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새끼 걱정 하지 말거라. 절대로 너처럼 팔려가게 두지 않을게. 너와 한 약속 잊지 않을게...이제 울지 말거라.]


음-머-.


누렁소가 처 들었던 머리를 숙여 천천히 아기 송아지를 핥았다.


아기 송아지도 제 어미를 핥았다.


언제까지라도 핥고 또 핥으며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


누렁소와 아기 송아지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잠시 후,


천으로 발등을 감싼 소 장수가 절뚝거리며 누렁소 고삐를 쥔 다른 사내를 따라 길을 떠났다.


소 장수는 누렁소 등에 올라 타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누렁소가 끝내 제 등을 내 주지 않았다. 해선이 그리 하게 놔두지 않았다.


신작로 끝,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수없이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누렁소.


땡그렁-땡그렁-


누렁소가 안보이고도 한참 동안 워낭 소리가 온 동네에 구슬피 울렸다.


***


그날 밤, 박해선은 쉬이 잠들 수 없었다.


누렁소가 내 말을 알아들었어. 나도 누렁소 마음을 들었고. 그날 밤 일은 꿈이 아니었던 거야. 그날 내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어. 조금만 더 가까웠으면 얼굴을 알아봤을텐데....


다음에 또 그런 현상이 찾아온다면 그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반드시 마주 볼 테다.


해선은 그리 다짐했다.


또한, 계속된 실험과 훈련 끝에 얻어낸 몇 가지 결론.


대상은 동물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통한다, 순간적인 힘이나 폭발력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움직이는 상태에서도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건 집중력, 자신과 대상의 사이에 장애물이 있으면 약해지거나 중단된다, 자신의 일방적인 시전이 아니라 쌍방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시전 대상자 또한 간절히 원하고 서로 집중해야 한다, 누렁소처럼.


그런 몇 가지 결론들에 도달하며 해선은 잠들기 전 자신의 몸을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괴물로 변하는 건 아닐지, 자고 일어났는데 또다시 엄마가 없는 혼자만의 세상에서 눈을 뜨는 건 아닐지.


무섭고 두려웠다.


그래서,


멈추고도 싶었다.


이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라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주의 어떤 기현상과 조우해 일어난 것이었을 뿐이라고.


누구든 살면서 한 번쯤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아주 우연하고도 기이한 일에 마주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러니, 자신 또한 그런 걸 거라고.


후우-


방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 봤다.


칠흑같이 새까만 밤하늘에 무수히 빛나는 크고 작은 별들이 하늘 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마당으로 쏟아져 내린다.


저 하늘, 저 별빛 너머 어느 곳에도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그도 나처럼 어쩌면 두려워 하고 있을지도...


차가운 밤바람이 방안에 감돌자 엄마가 뒤척이며 이불을 끌어올렸다.


이런, 엄마 감기 드실라.


달칵-!


그때,


컹ㅡ.


아주 긴 꼬리의 밝고 빛나는 하얀 불덩이가 담장 옆 우물 속으로 떨어지는 걸 보고 이쁜이가 벌떡 일어나 짖었지만, 해선은 방문을 닫느라 미처 보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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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나비 (4) 24.01.09 90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2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5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5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4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3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7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4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8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2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4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0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1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0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7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4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4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1 6 11쪽
»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1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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