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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399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4.01.10 17:40
조회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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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9쪽

33화 나비 (5)

DUMMY

참으로 신기한 게, 큰 일은 언제나 여름에 터졌다.


1992년 여름,


그간 화라리에 있었던 모든 사건을 다 뒤집을 만큼 역대 급 사건이 터졌으니.


친구 놈들이 울다 지쳐버린 매미 마냥 공부에 지쳐가던 여름날,


득환이 해선을 찾았다.


“삼촌.”

“공부 안 하냐?”

“하하. 대학도 안 가는데 무슨 공부요.”

“아이고, 모르겠다. 니들 깊은 속을 내 어찌 알겠냐 만.”

“저 말고 또 누구 속을 모르는 건데요?”

“있다. 그런 놈이. 서울 ‘도마’ 보고 오는 길이다. 너한테 전해 주라더라.”

“...?”


득환이 꽤 두툼한 흰 봉투를 건네주고 돌아갔고,


해선은 무려 일곱 장에 달하는, 봉투 속 ‘도마’의 마음을 읽어 내려갔다.


휴! 공부가 아닌 다른 걸 할 거란 건 눈치 챘지만, 이건 정말 상상도 못했네.



***


3일 후 일요일 밤,


화라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영선네’ 집 마당에 모였는데,


-큼큼. 하나둘, 마이크 테스트. 다들 들리지유? 오늘 다들 저녁밥 일찍 자시고, 이발소 집 마당으루 좀 모이셔야 하겄습니다. 그, 서울 간 ‘도마’ 가 큰 대회에 나가서 노래를 한다니깐두루, 응원을 좀 해야 안하겄습니까? 그라니까, 한 사람도 빠짐읎이 모이십시다이?


‘도마네 아버지’의 극구 만류에도 불구, 이장 심복수씨가 방송을 한 때문이었다.


1992년, 청년 가요제 결선!


다른 누구도 아닌, ‘도마’가 노래를 한다는 데 누군들 모이지 않겠는가.


김영선 네 집 안방에 놓였던 텔레비전이 마루로 자리를 옮겨졌고,


누군 가는 멍석 위에서, 누군 가는 평상 위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했다.


처음엔 하품도 하고, 저게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 거냐고 도통 모르겠다 던 사람들은,


떼로 몰려 나와 요란스러웠던 사람들과 달리 기타 하나 달랑 멘, 하얀 얼굴의 한 청년이 나타나자 숨을 죽였다.


청년은 감은 눈을 한번도 뜨지 않고 노래했다.


노래가 끝나고 감은 눈을 떴을 때 서야 사람들은 알았다.


왜 눈을 뜰 수 없었는지를.


‘도마’...그의 커다란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1992년, 청년가요제, 영예의 대상! 참가 번호 39번, 39번 신동화!!! 축하 합니다!"


신동화, '도마' 의 본명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꽃다발과 대상 트로피를 든 ‘도마’ 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이 노래를 아버지께 바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사랑한다는 말이 연애 하는 사람들이 아닌, 부모 자식 간에도 할 수 있다는 걸 화라리 사람들은 처음 알았다.


자정이 훨씬 지났지만 누구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랫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하이고, 말문 트인 것도 감사한데 노래까정 허네이. 그, 대상이 1등이 맞는가? 상금도 주고, 이?”


천달수네 아버지가 찍은, 그 밤 이야기꽃의 정점이었다.



***


“왔구나.”

“...예. 좀 어떠신지.”

“보면 모르겠느냐. 괜찮다. 이리, 더 좀 가까이 와 보거라.”

“...”


‘도마네 아버지’ 신만원,


해선을 바라보는 노회한 이의 갈색 눈동자는 이제 더 끈적하지도, 타오르지도 않았다.


“솔직하게 말해 보거라. 다 알고 있었던 것이냐.”

“아닙니다. 몰랐습니다.”

“...참말이냐.”

“...예.”

“...”

“속상하십니까.”

“아니다. 그 반대였다.”

“...?”

“많이 아팠니라.”

“...!”


‘도마네 아버지’ 신만원이 카세트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


잔잔한 기타 선율에 낮고 나른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얹히며 텅 빈 공간을 꽉 채워 왔다.


[당신에게 난 언제나 겨울이었네.

당신의 바람은 언제나 따뜻했다오.


난 그 속으로 들어가 바람에 누워

꽃을 피우고 싶었지.


어느 밤, 어느 꿈,

당신의 가슴 속으로 들어갔을 때 알고 말았어.


그곳은 살이 터지고 피가 얼어붙는

혹독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걸.


온몸 불태워 시린 바람 감추고

따뜻한 바람 만을 주셨나요.


따뜻함 다 내어 주고 얼마나 추우셨나요.


우-우우~


당신이 주었던 따뜻한 바람 이제 돌려 드려요.


내 심장 붉은 얼음 꽃 되어 부서진 대도,


당신처럼 나, 피하지 않기를.

당신처럼 나, 피하지 않기를.]


‘도마’ 의 노래였다.


말없이 바라 만 보는 두 갈색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다.



***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사건 사고도 본시 연달아 오는 법,



“야!야!야! 니들 봤어? 봤어?”


숨 넘어 가는 장흑수 한마디에 공부고 뭐고 다 집어친 사내놈들이 다시 김영선네 집, 텔레비전 앞으로 모였다.


“너 인마, 잘못 본 거 아냐?”

“아, 시바. 아니라니까. 내가 두 눈 씻고 똑바로 봤다고.”

“안 나오자넘마. 니 두 눈이 썩었는갑지.”

“새끼, 나오면 어쩔 건데. 어? 야,야,야, 나왔다. 나왔다. 맞지, 맞지, 맞지!!!”


장흑수의 난리부르스가 아니어도 다 봤고, 다 알았다.


바람에 날리는 긴 머리가 뺨을 스치고, 남자의 커다란 가슴에 안겨 코트 깃을 당기며 웃는, 손에 쵸콜렛을 든, 미치도록 아름다운 소녀!


첫 장면에선 다들 미어캣이 되었고,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으나,


볼 우물을 머금고 미소 짓는 마지막 모습에선, 누구도 그게 순영인 걸 의심치 않았다.


이미 다른 화면으로 바뀌었지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사내놈들은 한참이 더 지나고서야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파아ㅡ!!

푸우-!


화라리 소년들의 첫사랑 순영이가, 서울이 아닌 아주 딴 세상으로 떠나버렸다는 걸 안 날이었다.



***


강림 고등학교 3학년 3반 교실,


돌덩이보다 무거운 침묵이 가라 앉은 지 30여 분,


곱슬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식식거리며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박해선이.”

“예.”

“이유라도 들어보자.”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는 거잖아, 지금.”

“...평범한 겁니다. 대학을 굳이 안 가도 할 수 있는.”

“얌마! 이건 학교로서도 나라에도 다 손해야. 너 같은 인재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하냐?”

“...학교와 나라보다는 제 개인의 삶이 더 소중해서요.”

“뭐얌마? 아, 됐고. 어머니, 어머니 모시고 와!”

“...”

“아니, 됐다. 모시고 오겠냐, 니가? 내가 간다!!”


강림 고등학교 3학년 3반 담임 채규호는, 화가 나다 못해 머리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다.


미친놈이 공부를 잘하지 말던가.


들어올 때 수석으로 들어와 3년 내내 전교 1등에, 전국 규모 각종 경시 대회까지 모조리 휩쓸던 놈이 대학을 안 가겠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단지 공부만 잘했다면 이렇게 까지 뚜껑이 열릴 일은 아니었을 터,


교직에 몸담은 지 20여 년, 똑똑한 놈들은 수도 없이 봐 왔다.


그러나,


박해선 이놈은 그 무수히 똑똑한 놈들과 궤를 달리 했기에 사뭇 저의 심장을 뛰게 하던 놈이 아니던가.


이건, 배신이다!


라고 규정 짓는 담임 채규호였다.


***


다음날 해선의 집,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어깨를 축 늘어뜨린 담임 채규호가 돌아갔다.


“엄마, 죄송해요.”

“죄송할 것까진 없지만, 속상한 건 사실이야.”

“네, 엄마.”

“엄마가 끝까지 공부 하라고 했으면 했을 거야?”

“그럼요. 제가 어떻게 엄마를 이겨요.”

“이거 봐, 이거 봐. 엄마가 질 거 다 알고 이러는 거.”

“하하. 아니에요. 엄마가 대학 가라고 했으면 저, 정말 갔어요. 그리고, 엄마. 대학은 가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거, 아시잖아요.”

“그래. 그렇지.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거야? 대학 졸업장 없으면 취직도 안될...”


민경선은 순간 멈칫해서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마지막 말을 삼켰다.


“맞아요, 엄마. 대학 졸업장 없이 취직을 어떻게 해요. 그래서 전 취직 같은 건 안 할 거에요.”


엄마, 시집도 보내 드리고요.


해선 또한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켰다.



***


1993년 1월,


‘경축! 박재학! 서울대학교 법학과 합격!’

‘경축! 원차웅! 서울대학교 농학과 합격!’


화라리에 커다란 플랑카드 2개가 나란히 걸렸고,


‘도마’의 말문이 열렸을 때 벌어졌던 닷새 간의 잔치보다 더 왁자지껄한 잔치가 열렸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은,


동네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중심축이 되어 이끌던 익성, 판성 할아범도,


팥방구리 쥐 드나들 듯 제 어미를 찾아 먹을 것을 받아가는 어린 아이들도 없다는 것이었다.



“자식들! 축하한다. 니들이 화라리 용이다.”

“미.친.놈!”

“개.새.끼!”


박재학과 원차웅이 욕으로 화답했고,


“장흑수, 너 서울 진짜 안가냐?”

“징그런 새끼, 몇 번을 묻고 지랄이여. 안감마!!!”


소리 없이 하얀 눈이 내려 쌓이는 겨울밤,


해선의 집 사랑 채에 모인 시커먼 사내놈들의 눈빛이 화롯불보다 더 뜨겁게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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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화 웰컴투 in화라리 (1) 24.01.16 69 4 11쪽
35 35화 화라리 in 화라리 (2) 24.01.15 76 4 10쪽
34 34화 화라리 in 화라리 (1) 24.01.13 79 4 10쪽
» 33화 나비 (5) 24.01.10 95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0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2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6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4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8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8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4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1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2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8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4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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