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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390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28 17:40
조회
124
추천
4
글자
11쪽

25화 딱 한번만 (1)

DUMMY

“왜, 안 먹어. 입에 안 맞아?”

“...뇨. 맛있어요.”

“좋아할 줄 알았는데...어떡하지. 다른 거 먹으러 갈까.”

“...”

“..왜 울어...”

“...”

“...”


까맣게 윤기가 돌던 짜장면이 퉁퉁 불 때까지 앉아 만 있다가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민경선은 지난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멀리서 뛰어오는 것만 봐도 한쪽 가슴이 아려오는, 민경선에게 아들이 흘리는 눈물은 심장을 도려내고도 모자라 소금을 뿌려 짓이기는 것만 같았다.


속이 깊어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아이,


다른 집 아이들처럼 그리 철 없이 크길 바랐다.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는 아들이 고마웠지만, 일부러 묻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챘을 땐 마음이 아리고 미안했다.


언젠가 물어올 날을 대비해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서도 그 날이 영 오지 않기를 바랐다.


오늘,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겼던 걸까.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온 가족이 출동한 친구들과 달리 졸업식에 달랑 제 엄마만 간 게 속상했을까.


아니다. 졸업식 내내, 버스를 타고 읍내에 도착해서 까진 평소와 같았다.


아무래도 ‘동화반점’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부터 인 듯하다.


잠깐이었지만 주춤하며 낯빛이 창백해 지더니 휘청였고,


잘 비벼 앞에 놓아준 짜장면을 한 젓가락 입에 대다 말고 주루룩 눈물을 흘렸다.


왜 그리 우느냐고 길게 따져 묻지 못했다.


쉬이 대답할 것 같지 않았기도 했지만, 우는 연유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까닭이다.


아기 때부터 배가 고파도 울지 않던 아이 아니던가.


지난해 여름, 낮잠을 자고 난 후 이쁜일 찾아 뛸 때 한 번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걸 본 것도 같다.


가슴이 철렁 하긴 했지만, 곧 환히 웃으며 돌아왔기에 금방 잊었다.


아침이 되어 아들을 보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야속하게도 벌써 날이 밝아온다.



***


해선은 따라 나서는 이쁜일 두고 혼자 개울로 나왔다.


이쁜이 아깃적 꼬리를 닮은 버들강아지들이 고개를 내민 개울가,


얇고 투명한 얼음 밑에서 까맣게 무리 지어 노니는 물고기들,


색을 잃은 채 황량한 들판을 달리다 품 안으로 파고드는 바람,


봄이 머지 않았음을 알리는 그 모든 것들의 기운을 감지하며 고요한 심상 위에 오직 한 가지 생각 만을 띄웠다.


지난 생을 얼마나 궁금해 했던 가. 장막에 가리워진 듯 일렁일 뿐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것들을 떠올리려 애쓰며 답답해 했었다.


엄마를 잃고 난 후의 내 삶에 이모가 존재했다.


나를 만나기 이전의 이모 삶이 어땠는지 알 순 없으나, 나를 만난 후 이모의 삶 대부분은 내가 전부였음은 분명하다.


이모는 그 곳에 살까. 가면 이모를 만날 수 있을까. 이모는 나를 알아볼까.


뭉치는, 뭉치도 있을까.


이모는 내 졸업식 날 그놈으로부터 도망치다 죽음을 맞았다.


과거로 돌아와 엄마를 구하고, 모든 게 달라진 지금,


이모의 삶에 내가 없어도 이모의 죽음은 똑같이 반복될까.


이모는 지금 이 순간도 그놈의 폭력에 하루하루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엄마에게 물어볼까. 이모의 존재에 대해?


지금까지 엄마가 혈육에 대해 이야기 한 적도, 만나는 것도 본 적이 없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다시 과거로 돌아온 걸 알았을 땐 기억의 불분명 속에서도 모든 게 명확했었다.


오직 엄마만 구했으면 됐으니까.


나를 이 곳으로 다시 보낸 존재는,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가.


그런 존재가 있기는 한 건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가? 애써 하지 않아도 알아서 행해 지는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심상을 재우고 띄운 생각은 하나였으나 거미줄처럼 얽혀 드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용광로처럼 끓어오른다.


이모를 찾아야 해. 그 놈으로부터 구해야 한다.


얽혀 드는 거미줄을 걷어내고 결론을 내리자 끓어오르던 머릿속 용광로가 식어갔고,


월-월-


멀리서 두 귀를 젖힌 채 저를 향해 뛰어오는 이쁜이.


몸을 일으켜 떠오른 해를 등에 지고 마주 걸었다.


꼭 쥐어진 해선의 주먹 손가락 사이로 옅은 황금 빛이 깜빡이다 사라졌다.


***


새벽 먼 동이 트기도 전, 발소리를 죽이고 나갔던 아들이 해를 등지고 뛰어오고 있다.


또다시 쿵! 가슴이 떨어졌지만, 민경선의 몸은 평소처럼 바삐 움직인다.


스릉-


가마솥을 열어 밥을 푸고, 멸치 다시에 된장 풀어 푹 끓인 배춧국을 뜨고, 땅속 깊이 묻은 항아리에서 김장 김치도 새로 꺼내와 썰었다.


그런데, 감자 반찬을 왜 이리 많이 한 걸까. 감자조림에 감자 채 볶음까지...


“엄마ㅡ! 배고파요. 빨리 밥 먹어요.”

“응? 응. 아유, 코가 빨개졌네.”

“엄마, 감자 옹심이 먹고 싶어요. 저녁에 해주세요.”

“으응, 감자옹심이?”

“네. 감자옹심이요.”

“그,래. 그럼 밥 먹고 감자 깎아야겠네?”

“네. 저도 같이 깎아요, 엄마.”


밥상에 오른 감자조림과 감자 채 볶음을 보며 감자옹심이를 떠올린 건, 어떤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해선의 강박이 불러온 의식의 흐름이었을까.


분명 전과 다른 기류가 흐르고 있음에도 어색함을 감춘 채 아침 밥상을 마주한 시간이 지나갔고.


민경선은 부엌에서, 해선은 책상 앞에서,


휴ㅡ.


그렇게 각자의 공간에서 조그맣게 안도의 숨을 내쉬는 두 사람이었다.


***


“얘들아. 지난주에 선생님이 말한 거 기억하지? 선생님, 내일 서울 집에 간다? 니들도 이제 졸업했으니까 선생님만 찾지 말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재희 보러 매일 오시는 건 선생님인 것 같다는 말을 해선은 물론 친구들 누구도 하지 않았다.


“재학아, 차웅아. 오늘 득환이 삼촌이랑 공부할 거지?”

“어? 어.”

“그럼, 먼저 가라.”

“너,는?”

“나중에 갈게.”

“그, 래. 알았다.”


왜 같이 안가냐고, 궁금해 죽겠으면서도 먼저 가는 박재학과 원차웅.


불과 몇 달 전까지도 천둥 벌거숭이던 친구들이 갑자기 변한 게 반갑긴 하지만, 왠지 적응하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선생님.”

“응? 해선이 아직 안 갔네? 중학교 가도 가끔 선생님 만나러 올 거지?”

“네.”


어차피 재희 보러 우리 동네 자주 오실 거잖아요.


“선생님, 부탁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해선이가? 궁금하네. 무슨 부탁일까?”

“...내일 선생님 서울 가실 때, 저도 같이 가고 싶어서요.”

“응? 서울을?”

“네. 서울 꼭 가보고 싶은데, 혼자 간다고 하면 엄마가 걱정 하실 것 같아서요. 선생님 귀찮게 해드리지 않을게요.”

“아니야, 귀찮긴. 선생님은 좋지. 안 그래도 선생님 부모님이 해선이 엄청 보고 싶어 하셔. 호흐흥, 선생님이 네 자랑을 엄청 했거든? 잘됐다. 서울 구경도 하고. 해선이가 나중에 다닐 대학교도 가보고. 큰 서점에 가서 책도 보고. 아, 창경원 가서 동물들도 보고 말야.”


선생님 남자친구 없으시구나.


편미영 선생님 표정은 벌써 해선과 함께 종로 한복판을 걷고 있는 듯 보였다.


***


그 날 ‘동화반점’에서 아들의 눈물을 보지 않았다면 흔쾌히 허락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무언지는 모르겠는데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자꾸만 민경선의 감각을 건드렸다.


그럼에도 허락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혼자가 아닌 선생님과의 동행이라니 딱히 안 된다 할 이유를 찾기 힘들었음이다.


“엄마. 졸업 여행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가고 싶어요.”


크면서 단 한번도 무얼 조른 적 없는 아이다. 저리 단호하게 말하는 걸 무슨 재간으로 말리겠는가.


옷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얼마의 돈을 꺼내 책도 사고 선생님이랑 맛있는 것도 사 먹으라 내밀자 군 말없이 받는다.


이것마저 받지 않았다면 몹시 서운했으리라.


다음날,


새벽 첫 차를 타고 손 흔들며 떠나는 해선을 배웅하는 민경선과 이쁜이의 표정은 나라를 잃은 듯 무거움으로 가득했고.


“새끼!!! 오기만 해. 죽었어. 아주.”

“우리도 가자.”

“지랄하네. 차비도 없는데 어딜 가.”

“빙신아, 차비 있음 뭐하냐. 선생님 집도 모르는데.”

“창경원 가서 호랭이랑 사자도 보겄지?”

“아ㅡ!! 치사 빤스 새끼!!!”


뒤늦게 해선의 행방을 알게 된 친구들은 부러움과 배신 감에 분기탱천(憤氣撐天) 하여 이를 박박 갈았다.


***


3일,


3일 안에 모든 걸 끝내야 한다.


모든 기억이 다 선명하게 떠오른 건 아니지만,


이모의 손을 잡고 걸었던 철길, 짜장면을 먹으러 갔던 기차역 맞은편 ‘이화반점’, 교복을 맞췄던 ‘아라사’ 양복점, 3년 내내 오르내린 중학교 교정...


도화지에 밑그림이 그려지고 색채가 입혀지듯 하나씩 하나씩 떠올랐다.


문제는 선생님이었지만,


“선생님, 내일은 저 혼자 서점에 가볼게요.”

“응? 안돼. 그러다 길 잃으면 어쩌려고.”

“버스 타고 겨우 세 정거장인 걸요. 오늘 선생님이랑 다녔던 곳 머릿속에 다 사진 찍어 놨어요. 하루 종일 서점에서 책 볼 거에요.”


선생님도 친구 분들 만나서 영화도 보고, 시간 보내세요.


“그,럴까? 그럼? 선생님 집 주소랑 전화번호 갖고 있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


계절 탓일까, 아프고 어두운 기억 때문일까.


시골보다 더 시골 같은 수색 역,


파란 하늘과 한들 거리는 코스모스가 그렇게 예쁘고 정겨웠던 해선의 기억 속, 철길 옆 조그만 동네는 더없이 쓸쓸했다.


저를 향해 날아오는 놈의 발길질을 온 몸으로 막아냈던 사람,


주먹 만한 눈송이가 펑펑 내리던 날,

아이처럼 눈을 받아 먹으며 철 길을 걷다 말고 저의 꿈이 무언 지를 물었던 여자,


품속에서 잠들었는지 오르락 내리락 작은 숨을 쉬던 하얀 털 뭉치,


여기, 이렇게 서 있으면 만날 수 있을까.


그때였다.


무언가 저를 끌어 당기는 듯한 저항감에 몸을 돌린 건.


그리고,


조금 휘청이지만 높고 뾰족한 구두를 신고 자갈 돌 위를 또각 또각 잘만 걷는,


짧은 치마에 손바닥 만한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철 길을 건너 오는 노랑 머리를 한 여자,


...이모...다.


작고 가냘프다.


저 몸으로 나를 막아줬어.


시간이 멈춰버린 기차역 철길 위,


차갑고 무심했던 해선의 갈색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는 뜨겁고 뭉클한 감정에 휩싸여 물들어 갔다.


***


노랑 머리의 여자, 아니 이모가 저를 지나쳐 간다.


힐끔 한 번 보기는 했지만, 가다가 철길 너머 뚝방 끝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또 한번 쳐다보긴 했지만,


몇 모금 빨던 담배를 비벼 끄고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 보곤 좁다란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그게 다였다.


나를 못 알아 본다.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아니, 그럴 리 없다.


이모를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후 줄곧 그려온 두 가지 중 이제 하나는 제외다.


이모가 화라리에 처음 찾아왔던 날의 기억이 그랬다.


'니가 해선이구나?'


저의 존재를 알긴 했지만 이모는 그 날 해선을 처음 봤을 거란 생각이 맞았던 것.


뜨거운 게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며 꽉 막았지만, 해선의 머릿속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차갑다.


...차가웠을 것이다.


“아아악!!”

“소리 내지 말라고! 시발년아!!”

“그, 그러지마, 수원씨. 정말 이게 다야.”

“뒤질래?”


..끼이-낑-낑


퍼억!!!


캐액ㅡ!!!


저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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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화라리 in 화라리 (2) 24.01.15 76 4 10쪽
34 34화 화라리 in 화라리 (1) 24.01.13 79 4 10쪽
33 33화 나비 (5) 24.01.10 94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0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2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5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4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7 4 10쪽
»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8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2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4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0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1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7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4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1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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