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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411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4.01.15 17:20
조회
76
추천
4
글자
10쪽

35화 화라리 in 화라리 (2)

DUMMY

때때로,


거미줄처럼 촘촘히 잘 짜여진 계획도 무너질 때가 있다.


계획에 허점이 있어서도, 실행함에 게으름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건, 순수한 개인의 계획에 전혀 예상치 못한 외부에서 불어온 거대한 바람의 영향 때문일 때가 더 많았으니,


화라리의 역대 사건을 단번에 갈아 치운 쓰나미 급 사건이 발생했다.



1993년 가을,


조카 류장원이 급히 ‘도마네 아버지’ 신만원을 찾았다.


화라리, 개나리, 수오리, 3개 마을을 이으며 흐르는 개울 상류를 막아 댐을 건설한다는 소식을 들고서 말이다.


기실,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이야기였으나 이리 갑자기 물꼬가 터지듯 임박할 줄 꿈엔 들 알았으랴.


강림 지역의 광역 상수도로 하루 수만 톤의 공급을 가능케 하고, 전기도 만들며 강 하류의 홍수 예방 역할을 위함이었으니,


개나리와 수오리 일부는 수몰을 피할 수 없고,


어디를 밟아도 ‘도마네’ 로 이어지던 화라리는 수몰은 피했지만 대 격변이 일 것이 분명했다.


‘도마’ 가 말문을 닫았던 10년의 세월 동안 세상일에 눈과 귀를 닫고 살았던 때문일까.


사람의 힘과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게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도 저도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을까.


화라리 사람 모두가 뒤숭숭해 하며 몇 날 밤을 지샜지만, ‘도마네 아버지’ 는 그저 평온했다.


세상이 변하면 그 변화에 순응 해야 하는 법!


‘도마네 아버지’ 신만원은 서울에 머물고 있는 ‘도마’ 와 해선을 조용히 불렀다.


“아버지.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노래가 아닌 다른 건 아무것도 모릅니다. 생각도 없고요. 전 재산을 다른 곳에 다 쓰신다 해도 아버지 뜻에 따를 겁니다.”


‘도마’ 의 선언이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서울로 보냈을 때,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택했을 때부터 익히 각오했던 일이었다.


‘도마네 아버지’ 신만원의 눈길은 곧 박해선에게로 향했고,


‘설마 알고 있었던 것이냐.’


그리 묻고 있었다.


그럴리가요. 저 또한 꿈에도 몰랐습니다.



역대 급 쓰나미는 그러나!!!


해선이 그린 그림과 맞춰나가야 할 퍼즐에 당위성까지 부여해준, 순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으니!


'도마네 아버지' 신만원의 의지까지 더해지자 퍼즐의 수가 몸집을 키웠고,


이젠 해선의 머릿속 퍼즐이 실체 화 되어 눈앞에 펼쳐질 날이 멀지 않았음이다.


***


5년 후 봄,


‘도마네 아버지’가 나갈 채비를 하고 대문을 나섰다.


"같이 가시지요."

"자넨 할 일이 있지 않은가. 혼자 감세."


득환이 따라 나섰지만 만류하고, 신작로 끝, 뽕나무 밭을 지나 개울까지 천천히 걸었다.


이렇게 천천히 걸어본 게 얼마 만인가.


뽕나무 가지에 오디가 새까맣게 달려 가지가 곧 찢어질 듯 하지만, 어른들 눈을 피해 나무에 올라 입술이 까매지도록 오디를 따먹는 아이들은 이제 없다.


논에도 밭에도 허리 숙여 일하는 건 죽을 날 받아 놓은 노인들 뿐, 개울까지 오는 동안 마주친 젊은 사람 또한 없었다.


신작로엔 자전거와 경운기 대신 시멘트와 자갈 돌을 실은 트럭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줄을 지어 개울 상류로 올라갔다.


얼마 안 가 이 신작로도 아스팔트가 깔리고 차들이 씽씽 달릴 터였다.


바닥을 드러낸 개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쪼개지는 햇살을 받으며 흘렀던 다정한 물소리를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콰앙!

꽝!!!


연이은 폭발 음이 고막을 때리며 기억을 방해했다.


절로 눈썹이 일그러져 인상을 썼으나 바람에 실려오는 꽃 향기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모든 게 변했음에도 꽃 향기 만은 여전히 그 대로구나.'


기꺼이 몸을 돌려 꽃 향기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되짚어 걸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뽕나무 밭을 지나 울퉁불퉁한 황토 길을 걸으려니 점점 짙어지는 꽃 향기,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까지 더해져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듯했다.


아직 물이 찼지만 양말을 벗고 도랑에 발을 담궜다.


뼛속까지 차가웠지만 머리가 맑아지니 더없이 좋았다.


가만히 돌을 들자 숨었던 가재란 놈이 겁도 없는지 꼼짝 않고 엎드려 있다.


'기이한 지고. 매일 와 봐도 올 때마다 다르지 않은가.'


다시 또 얼마를 걸었을까.


이윽고,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지게 지고 산에 올라 허기가 질 때면 진달래꽃을 따 먹던 어린 시절, 그때의 화라리가 고스란히 눈 앞에 있었다.


걷기를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다 눈가를 꾹꾹 눌러 물기를 닦아내는 ‘도마네 아버지’ 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또 다른 소리,



“히이익. 간지럽다, 간지러워. 이히익.”

“꺄아하-.”

“좋았어. 소라야-. 꽉 잡어? 간다-!”

“우히히-.히이익-항복이다. 항복, 항복!!!”

“꺄아아하-.”


왈-왈-왈-

끼이-끼잉-낑-


햇살 가득한 흙 마당을 뒹구는 생명체들이 내는 소리였다.


“하부지-.”

“아니야. 곽.소.라! 따라해? 할,아,버,지!”

“...할..지?”

“스읍, 다시! 할.아.버.지!”

“하,아버지..?”

“하하. 그만, 되었다. 이리들 오거라.”


'유라' 와 '소라' 가 두 팔을 벌린 ‘도마네 아버지’에게 와락 달겨들어 안겼다.


뒤이어 멋쩍게 웃으며 툭툭 털고 일어나는 해선,



“어디 다녀 오시는 길이십니까.”

“다녀오긴, 너 보러 왔니라.”

“저를 부르시지요.”

“바람도 쐴 겸, 좀 걸었다.”

“예.”

“저 두 아이들은 제 엄마를 똑 닮았구나. 영특해 보이는 게.”

“하하, 예. 선생님들은 신경도 안 써요. 제 언니 유라가 소라를 키우다시피 합니다.”

“아이들은 다 그렇게 크는 것이지. 내, 다시 어린아이 웃음소릴 들을 줄 몰랐니라. 좋구나.”

“...예.”

“그래, 이쁜이가 새끼를 낳았다고? 노산인데 고생 했겠구나. 내, 이나이 먹도록 저리 나이 먹은 개가 새끼 낳는 건 처음 보았니라.”

“예. 벌써 많이 컸습니다.”

“허허. 딱 애미랑 똑같이 생겼구나. 애비가 서운하겠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뭉치가 새끼인 줄 알 겁니다. 하하.”


뭉치는 저의 얘기를 하는 것도 모르고, 그저 이뻐 죽겠는지 제 몸보다 몇 배는 큰 해피를 쭉쭉 빨고 난리도 아니다.


"여긴 조용하구나. 신작로만 해도 난리 통인데.”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곳으로 거처를 옮기시지요.”

“괜찮다. 하루 종일 나는 소리도 아니고.”

“예.”

“얘야. 해선아.”

“...”

“내일 집으로 좀 오거라. ‘도마’ 도 불렀다.”



얘야, 해선아.


‘도마네 아버지’ 가 저를 그리 불렀다.


실로 몇 년 만에 들어보는, ‘도마네 아버지’ 로부터 불리워지는 이름,


해선의 갈색 눈동자에 전에 없는 어두운 빛이 어렸다.



***


“왔구나. 보고 오는 길이냐.”

“네, 아버지.”

“그래, 어떻드냐.”

“하하, 아버지. 좀 앉으세요.”

“그래, 그래. 앉거라.”

“얼굴이 전 같지 않으세요. 아버지.”

“세월 앞에 장사 있겠느냐. 묻는 말에 아직 대답 안했니라.”

“...눈물이..났습니다. 가슴이.. 뛰었고요.”

“아비랑 같은 생각을 했구나. 어미는, 어미도 보고 온 게냐.”

“...예. 볕도 잘 들고, 발 아래 화라리가 굽어 보이는 게 더없이 좋았습니다.”


잠시의 침묵이 이어지며 부자(父子) 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어떠냐. 네가 바라던 것이 이런 것이었느냐.”

“...”

“아직도 생각에 변함이 없는 것 인지를 묻는 것이니라.”

“아버지. 제가 무엇을 바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바라는 게 있었는지도 실은 모르겠고요. 지금 드는 생각을 말하라면 그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냐.”

“...제가, 제 생각이 참 옳았다는 것입니다.”

“고연놈. 누가 애비 아들 아니랄까봐, 어찌 그리 닮은 것이냐.”

“그래서 싫으신 겁니까.”

“그럴 리 있겠느냐. 하루에 한번씩 화라리에 가보는 게 요즘 내 낙이니라. 죽어 그곳에 묻힌다 생각하면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았구나 싶고.”

“...”


그때, 득환이가 해선이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어서 오거라. 왜 이리 늦었느냐. 기다렸지 않느냐.”

“덕분에 이야기 많이 나누셨잖습니까.”

“하하, 맞았다. 득환이, 밖에 있으면 좀 들어오게.”


그 날,


밤 깊도록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


뒤로는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앞으로는 화라리가 굽어 보이는 , 높지도 낮지도 않은 볕이 잘 드는 곳,


‘도마네 엄마’ 곁에 ‘도마네 아버지’의 안식처가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모두 산을 내려가고 ‘도마’와 해선 만이 남아 마지막 술잔을 올린 후 석양을 마주하고 앉았다.


“고맙다.”

“...”

“아버진 화라리가 영원할 거라 믿으시더라. 정말 좋아하셨어. 더없이 편하게 떠나셨고. 이게 다 네 덕분이지."

"큰 숙제를 주셨으니, 숙제를 잘 해야지. 그 생각 말곤 드는 게 없네."

"이미 다 끝내 놓은 거 안다. 누굴 속이려고."

“다시 서울로 갈 거야?”

“그래야지.”

“자주 와.”

“당연하지. 나중엔 영 안 갈 수도 있다.”

“그럼 더 좋고.”

“너, 그거 아냐?”

“...?”

“내가 다시 말문을 열었던 그 날 말이다.”

“...”

“십 년 동안 아주 깊고 깊은 물속에 잠겨 숨이 쉬어지지 않았었거든, 내가. 그런데 그날 물 위로 올라와 숨이 쉬어졌을 때, 눈을 뜨니 앞에 네가 있었다.”

“...”

“뭘, 그리 심각한 거냐. 그랬다고.”

“...?!”

“우리도 그만 내려가자.”



앞서 내려가는 ‘도마’의 머리 위 하늘이 붉게 타올랐다.


하늘보다 더 붉게 타오르는 ‘도마’ 의 뺨 위로 조용히 눈물이 흘렀고,


해선은 끝을 맺지 않은 그의 말이 무얼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순간,


불현듯 박재학이 떠올랐고, 그 까닭 또한 알 것만 같은 해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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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화 웰컴투 in화라리 (1) 24.01.16 69 4 11쪽
» 35화 화라리 in 화라리 (2) 24.01.15 77 4 10쪽
34 34화 화라리 in 화라리 (1) 24.01.13 79 4 10쪽
33 33화 나비 (5) 24.01.10 95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1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3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6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5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8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9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5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70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1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2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200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8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5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1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6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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