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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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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407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06 11:06
조회
265
추천
6
글자
12쪽

10화 울지마, 누렁소 (1)

DUMMY

하재숙 동생 재희도 그 때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 밖으로 나온 거였다.


겨울 동안은 괜찮았는데 봄이 되자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언니 하재경이랑 하재숙이 재희를 키우다시피 했다.


숙제를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들쳐 업고 엄마가 일하고 있는 밭에까지 가서 젖을 물렸다.


학교에 올 때는 엄마가 밭에 데리고 나가서 큰 나무에 묶어 놓고 일을 했다.


재희는 무슨 잠이 그렇게 많은지 일하다 말고 가 들여다보면 콧구멍, 귓구멍 가득 개미가 꼬여도 모르고 잤다.


언니 하재경이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하재숙이 도맡게 되었는데.


그러자 자주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하재숙에게 편미영 선생님은 재희를 학교에 데리고 와도 된다고 했다.


처음엔 재희를 업은 채 수업을 들었지만 선생님이 책상 밑에 포대기를 깔고 그 위에서 자게 했다.


재희는 신기하게도 수업 중일 땐 쌔근쌔근 잠만 잤다.


그러다 점심 시간이 되면 눈을 똑 뜨고 일어나 언니, 오빠들에게 밥을 얻어 먹었다.


재희가 첫 걸음마를 떼었을 때 우리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고, 편미영 선생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


드르륵-


아, 편 미영 선생님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짧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긴,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스물여섯 선생님.


지난 생 해선의 기억엔 분명 선녀처럼 예쁜 선생님이었는데, 돌아와 다시 만난 선생님은 만화 속 ‘영심이’ 처럼 앳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얘들아~ 방학 동안 잘 지냈지? 다들 깜댕이가 됐구나? 너네들, 방학 숙제랑 일기는 다 썼고? 이따가 걷을 거야.”


아니, 숙제랑 일기 얘기 하시는데 왜 다들 나를 보는 거야?


“오구 오구, 우디 재희. 이더케 마이 커떠요? 얼럴럴루! 까꿍!”


"꺄하-까르르르ㅡ."


재희가 언제 울었냔 듯 꺄르륵 웃었고, 친구들은 선생님의 혀 짧은 소리에 책상을 두드리며 웃어 댔다.


하하. 재희, 사람 가릴 줄 아네? 그런데 아기 앞에선 다들 저렇게 혀 짧은 소리가 나는구나.


오늘은 개학 날이라 숙제만 걷어서 제출하고 일찍 끝났다.


몇몇 애들은 장흑수 얘기를 마저 들으러 운동장으로 몰려가고, 여자애들은 서로 자기가 업겠다며 재희 쟁탈전을 벌였다.


그렇다면 내가 좀 도와줘야겠군.


“박해선-.”

“네, 선생님-.”


장흑수 무리와 여자애들 무리 사이에서 대충 마음을 결정하고 서있는데, 편미영 선생님이 해선일 불렀다.


“해선아. 방학 동안 선생님이 준 책들 다 읽었니?”

“네. 다 읽었습..어요.”

“흐흥, 뭐야. 해선이가 말을 다 버벅대고?”


아이고, 선생님. 그러니까요.


“방학 때 선생님 서울 집에 갔다 왔거든? 해선이한테 주고 싶은 책이 많더라? 그래서 다 갖고 왔으니까, 언제 자전거 타고 와서 다 가져가서 읽어봐.”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상하다? 정말 방학 동안 어른이 다 된 거 같은데? 암튼, 선생님이 잘 묶어 놨으니까. 언제든 가지러 오면 돼.”

“네. 선생님.”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등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친구들 대할 땐 아무렇지 않은데, 어른들 대하는 건 정말 힘드네. 아이고, 되다.


그래도 일단 할 일은 해야지.


탁,탁,탁,탁ㅡ.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 나갔던 교문을 지나 화라리 방향으로 뛰었다.


재희를 업은 여자애들이 벌써 다리께까지 가고 있었다.


단숨에 달려가 따라잡은 해선은 그만 큰 소리로 웃을뻔했다.


아니, 얘들아! 재희 밑으로 다 빠져 나왔거든?’


잘 자고, 잘 먹고, 사랑까지 듬뿜 받는 재희의 발육은 참 남달라서 무럭무럭 컸다.


아무리 열 살 차이 언니들이지만 언제 아기를 그렇게 업어봤겠는가.


독 같은 아기는 처음엔 등에 붙어있었지만, 한참 가다 보면 점점 내려와 엉덩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금방이라도 쑥 빠질 것만 같았다.


걸음을 멈추고 힘껏 추켜 올려 보지만 몇 걸음 안 가 다시 내려온다.


참 착하구나. 내 친구들...


허공에 두 발을 바둥 거리는 재희도, 동생이 빠져나온 줄도 모른 채 친구들과 재잘거리는 재숙이도, 참 대견하고 기특해서 코끝이 찡했다.


해선은 뒤에서 따라가며 조용히 마음을 모았다.


귓전을 울리던 친구들의 재잘거림이 아스라히 멀어지며 무아가 된다.


등에서 허리, 허리에서 엉덩이까지 내려왔던 재희가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느슨하게 헐거워졌던 애기 띠가 조금씩 조여진다.


“꺄ㅡ?”


언니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며 발을 달랑 거리고 놀던 재희가 갑자기 뒤를 돌아본다.


아잇! 깜짝이야.


해선은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 입에 검지 손가락을 갖다 댔다.


쉬잇!


아직 돌도 안 지난 아기가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


하재숙이 무사히 집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다시 개울가로 왔다.


조르르륵-찰싹-

뽀르륵-철썩-


한여름보다 확실히 줄어든 개울 물이 크고 작은 돌을 만나 담소를 나누듯 속삭인다.


바람에 한들 거리는, 때 이른 코스모스 위로 고추 잠자리들이 원을 그리며 투명한 날갯짓을 했다.


그 중 한 마리가 사르르 개울 가까이로 내려오더니 순영이가 옮겨 달라 졸랐던 돌 위에 앉아 꽁무니를 까딱거렸다.


어쩐지 외로워 보이는 고추 잠자리를 보고 있자니, 문득 순영이가 떠올랐다.


그 날, 잘 가라고, 방학 때 놀러 오라고, 왜 그 한마디를 못해줬을까. 똑똑하니까 잘하고 있겠지?’


그때,


월-월-월-

헥,헥,헥-


“음? 어떻게 알고 왔어? 일로 와.”


제 주인이 올 때가 됐는데도 안 나타나자 직접 찾으러 나섰던 걸까.


해선의 앞으로 달려 온 이쁜이가 배를 까고 버둥거렸다.


“하하. 오늘 아주 애교가 장난 아니구나? 그래, 우리 오래 오래 엄마랑 행복하자?”


월ㅡ.


대답 하나는 참 잘한다.


***


일요일 아침,


아직 곤히 주무시는 엄마를 깨울까 조용히 마당으로 나와 싸리 비를 들었다.


촤락-촤락-촤악-


싸리 비 끝에서 찰 지게 나는 소리와 가지런히 쓸리는 흙 마당을 보니 괜히 후련하다.


흠. 역시 손맛이지.


웃기게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려는 건지 해선의 바로 뒤로만 따라 다니는 이쁜이.


"괜찮아. 발자국 좀 찍히면 어떠냐. 심심하지 않고 좋지."


그러자, 어느새 빙빙 돌며 발자국을 찍어 대는 녀석.


진짜 쟤는 한번 내밀 하게 살펴봐야 하겠어.


한가로이 빗자루를 들고 다니며 여유를 부리는 사이 엄마가 나오셨다.


“어머. 이쁜이 발자국이 꽃 같네?”


아니, 엄마. 제가 정갈하게 쓸어 논 마당은 보이지도 않는 거에요?


그래도 꽃 같단 표현은 좀 너무 소녀 감성인데?’


“엄마. 오늘은 아침밥 천천히 먹어요. 개울에 나갔다 올게요.”

“그래. 너무 늦지는 말고?”


엄마는 이쁜이가 찍어 놓은 꽃 발자국(?)을 요리조리 피해 뒤안으로 돌아가셨다.


하하. 귀여운 엄마.


***


순영이가 없는데도 박해선은 아침이면 개울로 세수 하러 갔다.


가을 하늘을 담고 흘러가는 아침의 개울 물 소리가 좋기도 했고, 사람들이 없는 아침 개울가에선 이것저것 훈련을 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이제 웬만한 크기의 돌들은 손을 대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다.


훈련 마지막엔 망을 봐 주는 이쁜일 위해 물고기들을 모아 공중에 뛰어 오르게 하는 이벤트도 열어줬다.


사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한 그 밤 이후로 모든 것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설마 이것도 될까? 슬며시 실행에 옮겼을 때 여지없이 이루어지는 광경을 보노라면 처음의 두려움과는 다른 감정들이 생겨났다.


어디까지 될까. 무의식적으로 연습을 하고, 하는 만큼 점점 정교하며, 강해지고 있다.


자신에게 왜 이런 불가해한 일이 생겼는지 더는 고민하지도 머리 아파 하지 않은지도 한참 되었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 능력으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만이 깊어질 뿐.


열 세 살, 이 나이 때는 어떤 고민이 어울릴까? 친구들은 무슨 고민을 할까.


아직 다 기억해 내진 못했지만, 춥고 외로웠던 날들에서 과거로 돌아와 엄마를 만났다.


엄마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이쁜이와 달리고, 친구들과 하릴없이 장난 치고 노는 지금, 더없이 행복하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어떨까.

엄마랑 매일 맛있는 거 해 먹고, 이쁜이랑 달리고, 가고 오는 계절 느끼면서 나이 들어가는 거 말이다.


피식-.


생각을 하다 보니 자신이 참 한심해서 그만 웃음이 났다.


이거 아주 엄마 등골 빼먹겠다는거네?


고개를 저으며 실없이 웃다가 납작한 작은 돌멩이를 집어 물 위로 날렸다.


파바바바바바밧ㅡ!!


반대편 개울 끝까지 물 수제비를 뜨며 한없이 날아가는 돌멩이를 보고 이쁜이가 벌떡 일어나 짖었다.


컹-!


“놀랬냐? 오빠가 좀 하지? 가자. 엄마 기다리시겠다.”


가벼운 말과는 달리 이마를 찡그린 해선을 이쁜이가 꼬리로 토닥여줬다.


생각을 깊이 할 때면 저도 모르게 찡그려지는 이마. 과거로 돌아오고부터 생긴 버릇이다.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다가와 그리 길지도 않은 꼬리로 허리를 감거나 등을 토닥여 주는 이쁜이.


이 녀석, 마치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단 말이지.


“좋았어. 이쁜아, 우리 뛰어볼까?”


월ㅡ.

쌔앵ㅡ


아휴. 녀석. 한번도 져 주는 걸 몰라요. 아주.


***


내달리는 이쁜일 따라 뛰는데 도랑 가 풀숲에서 천달수 아버지가 누런 암소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 이눔시키가 왜 이리 말을 안 들어. 이? 이랴, 워,워,워ㅡ.”


“안녕하세요?”


음머ㅡ.


“이이, 해선...아이쿠야!”


철푸덕!


천달수네 소가 머리를 땅으로 처박으며 휘젓는 바람에 고삐를 쥐고 있던 천달수 아버지가 넘어졌다.


“이눔아, 어째서 자꾸 속을 썩히는 거여. 그만 가자, 가.”


누렁소를 나무라는 것처럼 들렸지만 왠지 울먹거리는듯 애달팠다.


해선은 뛰는 걸 멈추고 누렁소에게 눈길을 보냈다.


신경질적으로 흔들던 고갯짓을 멈춘 누렁소가 해선을 마주 봤다.


속눈썹이 긴, 커다란 눈망울에 가득 찬 슬픔.


해선의 가슴에 작은 일렁임이 일며 슬픈 감정이 전해져 왔다.


아프다.


명치 끝에서부터 목구멍까지 꾸역꾸역 올라오는 뜨거운 그 무엇.


먹먹한 아픔이었다.


“아저씨. 누렁소 왜 이래요?”

“난들 알것냐? 마지막으로 지눔 좋아 허는 거 배불리 먹여 줄라고 했더니만. 이눔 자식. 지 애비 속두 모르구, 기냥.”


천달수 아버지는 말하다 말고 울컥 하더니 옷깃에 코를 팽 풀었다.


마지막이라고?


“아저씨. 누렁소 어디 갑니...가요?”

“이이. 기따가 소 장수 오믄...아이구, 니들은 몰러두 돼. 기딴 건 다 어른들 일이지. 가자, 누렁아. 워-워. 이랴.”


누렁소 팔려 가는구나. 그래서 저렇게 슬픈 거야. 지금 겁먹고 있어.


“아저씨. 저 누렁소 좀 만져봐도 돼요?”

“이? 인석이 시방 꼬라지가 나서 뒷발질이라도 하믄 다쳐서 안된다. 해선이 니는 저만큼 비켜 서라. 이?”

“그냥, 그냥 한번만 만져 볼게요. 아저씨.”

“이? 그럼 뒤로 가지 말고. 여, 여 앞에서 한번만 만져봐라이?”


누렁소가 조금 진정된 모습을 보여서였을까? 아니면 해선의 간절한 주문이 닿은걸까.

마뜩잖아 하면서도 바짝 당겨 쥐고 있던 고삐를 느슨하게 고쳐 쥐고 곁을 내주는 천달수 아버지.


해선이 조금 더 가까이로 가자 누렁소가 바닥에 처박고 휘젓던 고개를 들어,


슬프디 슬픈 눈으로 해선을 바라봤다.


양손을 들어 가만히 누렁소의 목덜미에 갖다 댔다.


음머ㅡ.


누렁소가 고개를 하늘로 처 들며 길게 울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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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화라리 in 화라리 (2) 24.01.15 76 4 10쪽
34 34화 화라리 in 화라리 (1) 24.01.13 79 4 10쪽
33 33화 나비 (5) 24.01.10 95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1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3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6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5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8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9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5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1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2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200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8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5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6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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