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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401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4.01.08 17:20
조회
92
추천
3
글자
10쪽

31화 나비 (3)

DUMMY

아카시아 향이 바람에 미치도록 실려오는 5월 끝자락,


해선과 재학은 하교 후 집에 가다 말고, 개울로 내려가 물 수제비를 떴다.


납작한 돌멩이가 햇살에 반짝이는 개울 물을 튕기며 끝도 없이 날아가자, 재학인 펄쩍 펄쩍 뛰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짜식, 엄청 좋은 가보네. 그럼, 한 번 더!


촤-촤-촤-촤-촤-촥-!!!!!


한 템포 늦게 던진 해선의 돌멩이가 재학이 던진 돌멩이와 평행으로 떠 물을 튕기며 살처럼 날아갔다.


“우와아아!!”

“너, 좀 한다?”

“아, 씨. 이거 애들이 다 봤어야 되는데.”


글쎄다. 아마, 안 될걸?



“재학아.”

“어.”

“공부 재밌냐?”

“...?”


개울가 커다란 돌 위에 걸터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던 해선이 뜬금없이 그리 물었다.


“니가 이렇게 까지 열심히 할 줄 몰라서. 좀...”

“모르겠다, 나도. 그럼 뭐하냐. 죽어도 너 못 따라 갈걸.”

“왜. 나, 따라잡고싶냐?”

“됐다.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다. 그냥 그렇다는 거지.”

“재학아.”

“...”

“더 열심히 해, 공부. 나는 다른 거 할 게 있다. 공부 대충 할 거야.”

“...???”

“대충 해도 니가 따라올진 모르겠다 만?”

“아! 새끼가 뭐라는 거야!!!”

“하하, 너 뭐냐? 욕 했어? 나한테?”

“그래, 새꺄. 했다, 어쩔래? 니도 하든가.”


어째 욕을 하는 사람도, 욕을 듣는 사람도 얼굴 가득 햇살이 퍼졌다.


오늘,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 든 친구들의 희비가 엇갈렸는데,


반 1등, 전교 1등은 당연히 박해선,


놀랍게도 박재학이 반에서 2등, 전교 3등, 원차웅도 10위권 안에 들었다.


장흑수, 김영선, 최호승, 하재숙은 반이 다르기도 했지만, 비밀결사대라도 결성했는지 입을 꼭 다물어 알 길이 없었고.


1학년 1반의 꼴찌는 아무래도, 오늘 집에 못 들어간다 선포하던 천달수 인가보다.


그깟 성적이 무어 대수겠냐만, 학생의 본분은 여전히 공부인 걸 어쩌겠는가.


은월주막을 떠들썩하게 할 박재학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



“그래, 학교생활은 재밌느냐.”

“예.”

“1등을 도맡아 한다지?”

“...예, 뭐.”

“편하게 앉거라. 편하게.”

“내, 오늘 너를 부른 것은...”


‘도마네 아버지’ 신만원이 해선을 집으로 불렀다.


민경선에게 먼저 의중을 물었으나, 아이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며 뒤로 한 발을 뺐기 때문이다.


“어떠냐.”

“생각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저는 여기가 좋습니다.”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더 크는 법이다.”

“...”

“그럼, 생각을 좀 더 해 본 후에 다시 말해보겠느냐.”

“아닙니다.”

“...알았다. 꼭 지금이 아니어도 좋으니 언제라도 생각이 들면 말하거라.”

“예. 감사합니다.”


끄응!


방에서 나가는 해선을 보는 ‘도마네 아버지’ 입에서 긴 침음이 흘러나왔다.


하긴, 제 어미를 그리 생각하는 아이니 쉽게 응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난 겨울 화로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 할 때만 해도 발그레 하던 뺨의 소년이 그새 훌쩍 커버려서 어른을 마주한 듯 대등했다.


두 번 말을 못하게 하니, 참.


미련이 남아 해선이 나간 방문을 활짝 열고 답답함을 풀어보는 ‘도마네 아버지’ 였다.


***


“형님ㅡ.”

“...그래. 자주 좀 오라니까. 그 님 자는 좀 빼면 안되겠냐?”

“하하. 뺄게요. 형.”

“존대도 하지 말고.”

“응, 형.”

“좋네.”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야?”

“여기가 더 편하거든.”


득환의 방에서 해선과 마주한 ‘도마’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넌 나랑 안 갈 거지?”

“...응. 미안.”

“미안하긴. 그럴 줄 알았다.”

“하하. 그랬어?”

“당연하지. 말 못하는 세월 동안 독심술이 생겼거든, 내가.”

“이거, 왠지 진짜 같은데?”

“넌 여기서 큰 그림 그려라. 난 서울서 큰 그림 그릴 테니.”

“...큰, 그림?”

“그래.”

“...형, 공부 안하고 혹시 다른 거 할 생각인 거야?”

“글쎄?”

“뭘 하든 무운을 빌게.”

“고맙다. 아, 근데 그 하얀 개, 이쁜이? 왜 안 데리고 왔어?”

“요즘 바뻐. 목하 열애 중이거든.”

“뭐? 하하. 어떤 놈인지 궁금하네.”



‘도마’ 와 해선을 함께 서울로 보내 공부를 시키려다 무산된 ‘도마네 아버지’ 의 서운함은,


사랑 채에서 들려오는 호탕한 웃음소리에 금세 풀렸다.



***



뙤약볕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축축 늘어지는 한 여름,


맴-맴-맴-맴-


지치지 않는 건, 하루 종일 울어 대는 매미 뿐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게 덥지만, 이제 해선도 친구들도 더 이상 자라바우를 찾지 않았다.


빤스만 입고 자라바우를 달려 물속으로 뛰어들던 깨복쟁이 친구들은,


저들의 몸이 변하고, 목소리가 변하고, 마음에 알 수 없는 바람까지 불어와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었고.


여름 어느 날,


마음에만 불던 바람이 태풍으로 몸을 키우며 구체화 되어 나타났으니.


야뽀이 따이 따이 예야~

야뽀이이 따이 따이 예~

야뽀이 따이 따이 야뽀이 토끼 토끼

야뽀이 토끼 토끼 예~



여름이면 천렵을 했던 개울가에서 들려오는 낭랑한 노랫소리,


단발머리를 한 수십 명 여자애들이 수영복 위에 반팔 셔츠만 입고 빙빙 돌며 춤추고 노래했다.


인솔하는 젊은 교사와 게임을 하고, 한명씩 나와서 발표를 하기도 했고, 그림을 그리거나 물놀이를 했다.


가마솥을 걸어 놓고 음식을 해 먹는 것 같았는데,


그 중 몇몇 소녀들은 어떤 때엔 된장을, 어떤 때엔 고추와 오이를 얻으러 왔다.


엄마들은 기꺼이 그것들을 내주었고, 까까머리 친구들은 방 안에 숨어 나오지 못했다.



“야,야. 쟤네들 서울에서 왔대.”

“걸스카웃? 그거라더라?”

“와, 씨. 순영이보다 예쁜 애 처음 본다.”

“아까 우리 집에 된장 얻으러 왔던 애가 나 보고 손 흔들어 줬다?”

“지랄. 퍽도 그랬겠다.”

“진짜염마.”

“나한텐 웃어주더라?”

“빙신. 뻥 까시네.”



아이고, 이놈들아. 그 애들 누구도 니들한테 관심 없거든?



소녀들이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남, 녀 교사 두 사람이 이장님을 찾아 밤에 개울가에 불을 피울 것이니 놀라지 마시라 알렸고, 장작도 얻어갔다.


밤이 되자,


개울에서 제일 먼 김영선네 집 마당에서도 보일 만큼 커다란 불꽃이 활활 타올랐고,


소녀들의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개울을 넘어 여름 밤 하늘로 퍼졌다.



“야, 우리도 저거 하자.”

“저걸 우리가 왜 햄마.”

“뭔 상관? 개울이 뭐 지네들꺼냐?”

“그래, 하자.”


우루루-!!


김영선의 한마디에 까까머리 네 놈이 장작과 깡통을 챙겨 개울로 몰려 갔고,


잠시 후,


커다랗게 타오르는 불꽃과 한참 떨어진 곳에서 작은 불꽃 여러 개가 춤을 추며 빙빙 돌았다.


미친놈들...!


갑자기 철 든 친구들을 보며 못 내 서운했던 해선이었건만, 이 지경이 되자 웃음만 났다.



***


“재학아, 너는 왜 안 갔냐?”

“너는 왜 안 갔냐?”

“...”

“...”

“집에 안가냐?”

“어. 여기서 잔다. 오늘.”



해선이 던진 옥수수를 받아 든 재학이 평상 위로 벌러덩 누웠다.


칠흑같이 까만 하늘에서 삼태기로 붓듯 별이 쏟아져 내린다.


“와! 별 봐라.”

“재학아, 우리 북극성 찾을래?”

“확! 뭘 찾아 인마. 딱 저기 있구만.”


해선의 의 중을 금세 읽어낸 재학이 한쪽 발을 들어 무릎 위에 올리고 까딱거리며 옥수수를 물어 뜯었다.


이쁜이가 평상 아래로 다가와 보초를 서듯 앉자, 웬일로 뭉치가 폴짝 뛰어올라 해선의 품에 안겼다.


“어우, 진짜 쪼끄만게. 귀엽냐.”


재학이 손을 뻗어 뭉치의 머리를 쓰다듬자, 두 귀를 접고 눈을 감는 녀석,


뭉치는 정말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것만 같다.



***



잠이 들었던 걸까.


끈적한 새벽 공기가 맨몸에 닿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눈을 떠 보니 쑥불도 꺼졌고, 이쁜이와 뭉치는 보이지 않는다.


모기에 물렸는지 재학이가 제 뺨을 사정 없이 때리더니 벅벅 긁는다.


깨워서 방으로 들어가려 던 그 때,


해선의 감각을 잡아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


개울 쪽을 바라보았지만 춤추던 불꽃들은 보이지 않았고, 정적과 고요에 싸인 어둠 뿐.


잘못 들은 건가.


“재학...?”


다시 재학일 깨우려 던 그 때, 머리 끝이 쭈욱 잡아당겨 지며 서늘함이 온 몸을 덮는다.


학교 쪽이야.


타앗ㅡ!


소리의 방향을 느낌과 동시에 해선의 몸이 쏘아졌다.



***


콰아앙ㅡ!!!


난데없는 천둥소리에 가장 먼저 눈을 뜬 건 김수영 선생이었다.


아이들 다 자러 들어가는 거 보고 누운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갑자기 천둥이라니.


아무리 여름날씨라지만, 이런 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건가?


김수영은 별 생각 없이 다시 잠을 청하려 했으나,


콰앙-!!!


쏴아아아-!!!


고막을 찢는 천둥과 함께 쏟아지는 비에 벌떡 일어나 밖으로 튀어 나갔다.


맙소사-!!!


운동장 한쪽 철봉 옆에 나란히 세워진 텐트가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고 있었다.


“이선생니이임!!! 최선생님!!!”

“얘들아!!! 일어나!!! 빨리!!!”

“으아앙-선생니임!!!”

“다들 침착해! 자, 자, 이쪽으로!”


어둠 속에서 아이들을 대피 시키던 김수영은 순간 멈칫했다.


ㅡ???


고막을 찢을 듯 우르릉 거리는 천둥과 함께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는 불길이 타오르는 텐트 한 곳만 향해 집중 돼 있었고,


분명 어둠 속에서 아이들을 피신 시키고 있다 생각했지만 불을 밝힌 듯 대낮처럼 환했기 때문이다.


우왕좌왕 하던 이 선생과, 최 선생, 아이들도 뒤늦게 이상함에 하늘을 올려다 봤다.


별빛만 가득한 까만 하늘의 틈에서 쏟아지듯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의아함에 모두들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던 그 때,


풀석-!

퍼시식ㅡ!


매케한 연기를 내며 폭삭 주저앉는 텐트를 본 김수영 선생이 모여있는 아이들을 향해 물었다.


“얘들아, 큰일 날 뻔했다. 다친 사람 없지?”


몇몇 아이들이 겁에 질려 울긴 했지만, 다들 무사했고.


등나무 넝쿨 뒤에서 숨을 고르던 해선이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가의말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야뽀이 따이따이예야 Epoi Tai Tai yeah’


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민요라고 합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I’ll BE HAPPY‘ 라고 하네요.


행복한 새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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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나비 (5) 24.01.10 95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1 3 10쪽
» 31화 나비 (3) 24.01.08 93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6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4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8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8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4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1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2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8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4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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