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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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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405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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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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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17화 '도마네' (2)

DUMMY

‘도마’ 에게 박해선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아버지는 어째서 말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만나보게 하시려는가. 심지어 자신보다도 나이가 어린 ‘아이’라고 하셨다.


그 ‘아이’가 책을 좋아하니 그저 책 구경이나 좀 시켜 주라고.


하나, 아버지의 속마음에 다른 뜻이 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시지 말라고, 더는 애 끓이시지 말라고 그리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 그 말들은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따뜻하게 잡아오는 두툼한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 건, 과연 어떤 ‘아이’가 저리도 아버지를 사로잡았을지 사뭇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막상 그 날이 되자 아침부터 내내 속이 불편해지며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찬 공기를 마시면 좀 나아질까.


마당으로 나와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주홍 빛 감을 올려다 봤다. 파랗게 시린 하늘 아래 홀로 외로운 모습이 꼭 저를 닮았다.


가지가 찢어지게 감이 열리면 득환이를 졸라 무등을 타고 저 꼭대기 감을 따서 아버지께 갖다 드리곤 했었다.


‘도마’가 말문을 닫고부터는 희한하게도 감이 잘 열리지 않았다. 벌써 몇 해째 그저 서운하지 말라는 듯 몇 개 열리는 게 다였고. 아무도 따지 않으니 몽땅 까치들 차지가 되었다.


찬바람을 맞고 서있으려니 메스꺼움이 좀 가라앉는다.


하지만,


만나고 싶지 않다. 그 아이...


이제라도 문을 닫아 걸고 뻗대어 볼까.

갑자기 병이 난 듯 이부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말까.

봐서 무엇 하겠는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바깥 사람들을 본 지 너무 오래 되었다.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아버지와 약속을 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 작은 한숨이 나오던 그 때,


발그레한 뺨의 밤톨 같은 아이가 자기 몸집 만한 하얀 개를 앞세우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이쁜아. 춥다. 저기 햇살 드는 곳에서 기다려?”


월-월-


“그래. 착하지. 이쁘다.”


살랑-살랑-


차가운 공기를 일순 따뜻하게 만드는 아이의 말에, 찹쌀떡처럼 하얀 개가 탐스런 꼬리를 살랑이며 제 주인을 올려다 본다.


무심히 바라보던 ‘도마’의 입꼬리에 아주 옅은 웃음이 얹혔지만, 이내 알 수 없을 슬픔으로 바뀌었다.


가슴이 저릿하는 먹먹함에 당황한 것도 잠시, 몸을 일으켜 돌아서는 아이의 갈색 눈동자가 자신에게로 향하며 마주친 순간,


쿵ㅡ.


‘도마’ 의 가슴에서 북 소리가 울렸다.



***


‘도마네’ 아버지가 득환일 불렀다.


“... ‘도마’ 가 그 아일 제 방으로 들였다고?”

“예.”

“그래. 아이들은 어쩌고 있던가.”

“...그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알 수가 없습니다요.”

“...그 아이, 해선이가 책 읽는 소리도 안 들린다는겐가?”

“....”

“알았으니 나가 보게.”



난다 긴다 하는 의원들을 다 찾아 다녔었다.


누구도 속시원히 답을 준 이가 없었다. 언젠가 다시 말문이 트일 거라는 그 ‘언젠가’ 는 대체 언제인 것인가.


박해선,


겨우 열 세 살, 내가 그 아이에게 바랐던 건 무얼까.


그 날로 돌아가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 아이, 민경선의 아들이 불쑥 불쑥 떠오른 건 아이를 부르기 며칠 전부터였다.


처음 하루, 이틀은 그것 참 희한타 생각하는 게 다였는데, 요상할 정도로 아이가 맴돌며 머릿속을 가득 채워 오니 부르지 않고는 배겨날 재간이 없었던 것.


그리고,


아이의 볼을 빨갛게 달구었던 화로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놀랍게도 두 시간 여.


살면서 누구와 그리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적 있었던가.


심지어 아이의 나이 고작 열 세 살,


흐뭇하여 웃다가, 탄복하여 무릎을 치다가, 그렇게 홀리듯 아이에게 끌려 들어갔다.


흔들림 없이 자신을 바라다 보던 아이의 눈빛이 심장을 파고들며 불씨를 당겼었다.


아들의 불행을 지켜보며 돌부처보다 더 단단하게 굳어져 버린 심지를 일 순간에 흔들던,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감정을 불러 일으켰던 아이.


아이를 돌려 보낸 후 저녁상도 물린 채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었다.


무엇 때문에 흔들렸는가. 그 아이에게서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이 자신에게서 근심과 우수를 지우고 소망을 갖게 하였는가.


답은 얻지 못했다.


지켜보면 알 일, 아이는 약속을 잘 지켰다.


아이가 오는 날은 괜시리 마음이 들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그냥...마당에서 잠시 보고 간 게 답니다요.

-그 하얀 개, 예, 이쁜이요. '도마' 가 그 개를 한참 동안 봤습니다요.

-...마루 끝에 앉아서...앉아 만 있다가 갔습니다요.


득환이로부터 그 아이, 해선과 ‘도마’의 두 번의 만남을 전해 들은 후엔 실망감과 허전함을 느껴야 했다.


‘내가 나이를 헛 먹은 것인가.’


하나, 무얼 바란 건 아니었으니.


‘이 아이를 ’도마‘의 곁에 두고 싶다. 아니, 내 곁에 두고 싶다.’


단지 그 뿐이다.


후우-.


마음을 침식해오던 갈망과 욕심을 애써 밀어내고 문 밖을 내다 봤다.


깍-깍-까악-!


감나무 꼭대기에 걸린 홍시를 독차지한 까치가 오늘 따라 정겹게 운다.


‘허허.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으려는겐가.’


***


'도마’ 와 해선의 세 번째 만남.


자신의 방으로 들이길 꺼렸던 ‘도마’ 가 제 방으로 해선일 들였다.


방안은 책으로 가득했다.


방바닥에서부터 위쪽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책들은 언뜻 무질서해 보였지만 대충 쌓은 게 아니었다. 특이하게도 방 가운데 서까래가 있고, 서까래를 빙 둘러 손때 묻은 책들이 쌓여있는 모습은 마치 탑을 보는 듯 했다.


앉아서도, 누워서도, 뒹굴뒹굴 구르면서도 손만 뻗으면 보고 싶은 책을 꺼내 볼 수 있는 구조.


이 형님, 딱 내 스타일이네.


방으로 들어선 지 벌써 한 시간 가까이 박해선의 눈이 ‘도마’ 가 아닌 오롯이 책으로만 향해서였을까.


처음 만나던 날 ‘도마’의 가슴에서 울리던 북 소리가 점점 소리를 키우며 아이에 대한 호기심으로 번졌다.


저 아이,

아직 내게 한마디도 건네질 않는다. 내가 들을 순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텐데.

왜 한마디를 안 하는 걸까? 정말 책 구경만 하러 온 건가? 정말 그런 거라고?

아니다.

아버지가 무언가를 하실 때엔 반드시 그럴만한 까닭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니 어서 말을 해.


그 날 바깥의 저 하얀 개에게 했던 것처럼 그 따뜻한 목소리로 내게 무슨 말이라도 어서 해 보란 말이다. 대체 내 아버지를 무엇으로 현혹 시킨 건지, 나도 한번 현혹 시켜 보란 말이다.


아, 미치겠다. 말을 걸고 싶다. 무슨 말이든 꺼내어 하고 싶다.


‘도마’는 말문을 닫은 이후 처음으로 이리도 강렬히 말을 하고파 하는 자신의 모습을 아직 인지하지 못한 채 갈망하고 있었다.



***


방안을 감도는 알 수 없는 기운,


속내가 읽히지 않는 박해선의 갈색 눈동자,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도마’의 갈망,


그 모든 것들이 소리 없이 부딪치고 뒤엉키며 적막한 방안을 채워간다.


더는 빈 공간이 남지 않았을 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오직 두 사람의 심장 박동 소리만이 남았을 때,


박해선이 첫 마디를 건넸다.


그러나,


첫 날 들었던, 그 하얀 개에게 했던 아이의 따뜻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우우우우웅-

우웅-


그건 ‘도마’의 귀가 아닌, 심상을 흔들며 전해져 오는 울림.


누렁소 가 전해주는 말이었다.


‘도마’의 두 손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


들판에서 풀을 뜯다가 ‘도마’가 다가오면 엎드려 등을 내주던 누렁소,


‘도마’ 가 제 몸에 기대 책을 보다 잠들면 되새김 질을 하며 옆구리로 아코디언을 연주해주던 ‘도마’의 친구 누렁소.


누렁소가 자기를 꼭 닮은 새끼 송아지를 낳았을 때는 득환이를 졸라 아버지 몰래 쇠 죽도 주고, 작두에 여물 써는 것도 도왔다.


여물을 입에 넣고 맷돌을 돌리듯 씹는 누렁소를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득환인 아버지가 알면 역정 낼 거라고 하면서도 ‘도마’가 원하면 어떻게든 다 해 줬다.



‘도마’가 아홉 살 되던 어느 날,


낮잠을 자던 중 바깥의 소란스러움에 눈이 떠졌다.


아스라히 들려오는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 다시 잠에 빠져 들던 순간,


음머ㅡ.


누렁소의 애처로운 울음이 들려왔다.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을 때,


퍼억ㅡ!!!!!


누렁소의 이마를 내려치는 나무 망치 소리.


무릎을 꿇은 채 허연 침을 질질 흘리는 누렁소, 화가 나서 씩씩 콧김을 내뿜으며 누렁소의 고삐를 휘어 잡는 사내,


-음메


외양간 기둥에 묶여 어미 소를 향해 애처롭게 우는 아기 송아지,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가 한참을 서 있다가 차마 울지도 못했던,


그날의 충격이 ‘도마’의 머릿속에 필름처럼 펼쳐졌다.


처음엔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는 돈도 많으면서, 동네 제일가는 부자이면서 왜 자기 친구 누렁소를 팔았을까. 누렁소가 친구였던 걸 알기는 하셨을까.


그러다 제 자신을 원망했다.


그 때 왜 뛰어나가 누렁소를 보내지 말라고 아버지께 매달리지 못했을까. 어찌하여 두 다리 쭉 뻗고 우는 것조차 못했던 걸까.

다시 데려오자고 했으면 어쩌면 아버지는 누렁소를 데려 왔을까.


누렁소의 겁에 질린 커다란 눈망울이 밤마다 꿈마다 보였다.


엄마 소를 찾으며 매일 울던 새끼 송아지도 어느 날 천달수 집으로 보내졌다.


‘도마’는 새끼 송아지를 보러 갈 수 없었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서, 제 자신이 미워서, 누렁소가 보고 싶어서, 누렁소의 새끼 송아지한테 미안해서...


그렇게 말을 잃었다.


아버지가 저의 손을 붙잡고 우시며 까맣게 타 들어가는 입술로 말했다.


-‘도마야’. ‘아버지’ 라고 한 번 만, 한 번만 불러 다오.


부르고 싶었다. 불러 드리고 싶었다.


-...


어찌 된 일인지 하고 싶은 숱한 말들은 입 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가지 못하고 안으로, 안으로 삼켜졌다.


***


[아이야...슬퍼하지 말아라. 나는 원래 있던 곳으로 가는거란다. 네가 슬퍼하면 내가 못 간다. 우리는 다 좋은 곳으로 간다. 그러니 슬퍼하지 말아라.]


'도마' 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몸이 굳어왔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속이란 말인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깊고 고요한 갈색 눈동자와 저를 잇는 감정의 선이 끊어질 듯 아슬아슬 이어지며 다시 뜨겁고도 다정한 울림을 전해온다.


[내가 가도 내 아이가 있지 않느냐. 그 아이도 언젠 간 떠날 테지만. 또 남는 아이가 있지 않느냐. 그 아이들을 나를 대했듯 그리 해 다오.]


주르륵-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가슴을 부여잡은 손등 위로 떨어졌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게 올라와 목구멍을 막았다.


숨이 쉬어 지질 않는다.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온 목과 부풀어 오른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다.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 된 얼굴을 간신히 들어 눈 앞의 아이를 본 순간,


투-욱ㅡ.


두 사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이었던 감정의 선이 끊기며,


“끄으...끄윽..끅...”


안으로 안으로만 숨어들었던 소리가 울음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후우-


깊은 숨과 함께,


“너...너는...”


소리가 되어 방 안의 정적을 깼다.



이런, 미친...!!!!!


깊고 어두운 물속에 들어가 오랜 숨을 참았다가 희미한 빛을 따라 다시 물 위로 올라온 느낌이었다.


물속에선 어떻게 해도 쉬어지지 않던 숨이 저 위 빛을 따라 물 밖으로 올라왔을 때, 그저 알아서 숨이 쉬어지듯 그렇게 ‘도마’의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잠시 후,


소식을 들은 ‘도마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맨발로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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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나비 (4) 24.01.09 91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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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6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4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8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9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5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1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2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 17화 '도마네' (2) 23.12.15 200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8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5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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