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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385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16 18:40
조회
190
추천
5
글자
12쪽

18화 '도마네' (3)

DUMMY

"...아,버,지..."

"...!!!"


아들이 말문을 여니 이제 내가 말문이 닫힌 것인가.


어찌 목구멍에 걸린 가시 마냥 뱉어 지질 않는가. 이 답답함을 그리 오래 겪었던 것이구나. 그 긴 세월을 어찌 견뎠느냐.


"...엄,마..."

"오냐..오냐, 내 새끼."


제 어미가 말을 다 맺지 못하고 '도마'를 품에 안고 운다.


"아버지...아버지...엄마.."


하고 싶었던 숱한 말들, 듣고 싶었던 많은 말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직 서로를 부르고 부둥켜 안고, 눈물 흘리며 그 밤을 꼴딱 지새웠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세월이 앗아간 많은 것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흘리는 눈물과 부둥켜 안으며 전해오는 체온에 다 녹아 없어졌다.


지나간 세월과 아픔은 다 지나간 일, 이제부터 어찌 살 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도마네' 아버지 는,


아들의 손을 잡고 날이 새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



-큼큼,,,마이크 테스트,,하나 둘, 하나 둘. 큼, 다들 잘 들리십니까. 이장입니다. 간밤에 잘 들 주무셨지유? 소식은 다들 들으셨을테니깐두루 간단히 말허겄습니다. 오늘부터 닷새 동안 '도마네' 집에서 잔치가 열릴 것이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식구들 다 와서 밥 먹구 가시믄 됩니다이? 하루 열 번을 와도 되고, 친척들이랑 와도 된다니깐두루 그리들 아시고요이? 감사 헙니다.


대부분의 날을 굳게 닫혀 있던 '도마네'집 대문이 활짝 열렸다.


깊은 안마당에서부터 멀리 신작로 뽕나무 밭까지 멍석이 깔리고 천막이 쳐졌다.


한겨울 매서운 북풍에 모든 게 얼어붙어 댕강거리고 손만 대도 쩍쩍 얼어붙었지만,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잔칫집으로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도 파안대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커다란 드럼통에선 장작이 활활 타올랐고,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진동 했으며 가마솥에선 하루 종일 만둣국이 설설 끓었다.


어디까지 소문이 퍼진 건지 달리는 일손을 돕기 위해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지금까지 화라리에 이보다 더한 경사가 있었던가.


-고생들 많습니다. 며칠만 더 애써 주시구려. 내, 사례는 충분히 하리다.

-고맙소이다. 많이들 드시게 들.

-이리, 이리로 오거라. 와서 맘껏들 먹거라.

-왜 또 술을 내시었소. 이러시면 내가 서운하지요. 돈을 받지 않으면 내, 은월주막 발을 끊으리다.

-익성 할아범, 오래 오래 건강하시오. 판성, 할아범도.

-어이쿠, 교장 선생님. 이리 와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평소 좀체 얼굴 보기 힘든 '도마네 아버지' 는 닷새 내내 만 면에 웃음을 띄우고 사람들을 맞았다.


"어허이, 저냥반 저렇게 말 많이 하는 거 '도마' 돌 잔칫날 보고 첨이구먼."

"아이고 성님,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춤 출 일 아니겄소."

"이기, 그 비얌들이 아주마니들 물 맞으러 못 가게 요사를 부린 게 아니라 거꾸로다가 좋은 징조였나보이."

"이이. 그러니까말여. 그 송경묵이 엄니 장사 치를 적에두 누렁소들이 다 나서지 않았던가?"

"이거이, 다 저냥반이 덕을 쌓았으니 그 보답을 받은 것이지. 속이 시커멓게 문드려졌어두 어디 티를 내기나 했는가 말이지. 이제 근심 거리가 하나두 읎으니 얼매나 좋겄나."


잔치의 마지막인 닷새째 되던 날,


'도마네' 아버지가 이장님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큼, 안녕하십니까. 신만원 올시다. 엄동설한 자식 놈 일에 수선 떨어 염치 없고 송구하외다. 그럼에도 한걸음에 와 축하해주시니 감사 허고, 감사 헙니다. 자식이 평탄히 살지 못한다면 천금, 만금이 무에 소용이겠습니까. 저, 신만원, 이제 여한이 없시다. 하여, 나와 내 일가가 이룬 재산의 많은 부분을 좋은 일에 쓸 생각이외다. 또한, 명년부터 3년 동안은 추수한 곡식을 받지 않을 것이며, 곡식이 떨어졌거나 급전이 필요한 분들은 이자 없이 융통해줄 터이니 '도마어미'를 찾으면 됩니다. 많이들 자시고 가시오.


삼일 밤낮 굶어도 될 만큼 실컷 먹고 가자며 왁자지껄 소란스럽던 좌중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정적을 깬 건 익성 할아범,


"부자는 하늘이 내린단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지. 암만."

"경사로구나. 허허이, 누가 빨리 죽는 게 소원이라고 했는가? 자고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지. 암만."


그렇게 깨진 정적은 닷새 내내 동안 들려왔던 그 어떤 소리보다 시끄러웠고, 그 중 제일 큰 소리는 다름 아닌 웃음소리였다.



***


'도마' 가 말문이 열렸단 소식은 삽시간에 화라리를 넘어 수오리, 개나리, 인근 마을까지 퍼졌지만,


누구도 이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본디 말을 못하던 아이가 아니었던 데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다시 말문이 열릴 거라는 말들을 건너 건너 들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단 한 사람!


'도마네 아버지' 가 박해선을 찾았다.


"어찌 한 것이냐."


불씨를 위로 올려 다독인 화로를 옆으로 밀어낸 '도마네 아버지' 가 해선의 무릎에 자신의 무릎을 바짝 붙이곤 그리 물었다.


"그게...아무것도요.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

"..."


'도마네' 아버지 갈색 눈동자가 해선을 향한다. 어찌나 깊은 눈빛으로 들여다 보는지 숨이 다 막힐 지경.


아니, 그렇게 뚫어져라 보셔도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라니까요.


해선은 '도마네' 아버지 가 당연히 저를 찾을 거라 생각 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묻는 것도 당연지사.


집으로 부르지 않고 직접 찾아 오다니.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설명할 순 없다. 한들 믿겠냐 만.


그날,


모든 일은 무아에서 일어났다.


'도마' 는 아무것도 기억 하지 못한다.


마지막 순간 박해선과 '도마' 의 사이를 팽팽하게 이어주던 감정의 선을 끊을 때 '도마' 가 자각 했던 모든 것들도 함께 끊었으니까.


다만, 누렁소의 의지는 그대로 남아 '도마'를 움직일 테지만, 그게 누렁소가 전해준 말이란 걸 '도마'는 기억하지 못할 테다.


"...얘야, 해선아."


아이고, 또 다정하게 부르시네. 무슨 부탁을 하시려는 건가.


"...부탁이 있구나. 들어주련?"

"..."


예. 어찌 된 일인지 캐묻는 것만 아니라면 다 들어 드리지요.


"내, 네가 아주 갓난아기일 때부터 달리 보았니라."

"..."

"자주, 자주 놀러 오거라."


'도마네' 아버지는,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으나 하지 않겠다는 표정을 굳이 감추지 않은 채 해선에게서 눈빛을 거두고 일어섰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칼바람이 살을 에일듯 품 안을 파고 든다.


-.....아무것도요.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그 아이, 박해선이 그리 대답했지만 믿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이 자신에게 그리 확신을 주고 있었다.


'그 날도 바람이 이리 차가웠지. 그 때 저 모자(母子)가 내 집에 온 건 천운이었던가. 만약 그대로 내쳤다면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구나.'


얼음장같은 바람이 뺨을 쓸었지만 뜨겁게 뎁혀진 '도마네' 아버지, 신만원 의 가슴이 그 날의 기억을 불러왔다.


***


민경선은 이 곳 화라리 태생이 아니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윙윙 울어 대던 어느 해 겨울,


행색은 갈 데 없는 거지인 듯 초라했으나 달빛보다 곱고 어여쁜 민경선이 갓난아기를 안고 ‘도마네’ 집 문을 두드렸다.


기실 십 리 밖에서도 일거리를 찾아 ‘도마네’ 집을 찾는 외지인들은 수 없이 많았으나, 그건 농사일이 한창인 봄부터 가을까지였다.


엄동설한에 문전박대하면 객사하기 딱 좋은 젊은 여자와 아기를 외면할 수 없었던 ‘도마네' 아버지 는 ‘쯧쯔’ 혀를 몇 번 차곤 민경선을 안으로 들였다.


방안에서 보니 허름한 입성에도 불구, 미모가 혀를 내두를 만큼 출중했다.


“어디서 오셨는가?”

“...죄송합니다.”


대답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여긴 어찌 알고 오셨는가.”

“... 화라리 소문은 십여리 밖,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그 아이는...”

“제 아이입니다.”

“아이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는가.”

“죄송합니다.”


묻지 말아 달라는 뜻이었다.


‘도마네’ 아버진 말없이 젊은 아낙을 바라봤다.


이마가 반듯하고 인중이 단정하며, 묻는 말에 제대로 답하진 않으나 주저함이 없고 말씨에 예의가 배어 있다.


추위에 입성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여 손이며 입술이 텄고, 필시 몇 끼를 굶어 기력이 없을 진데, 아기를 꼭 안은 채 앉아 있는 자태에 흐트러짐이 없다.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게군. 평범한 여인네가 아니다. 품 속의 아이 또한 잠든 것 같진 않은데, 보채거나 울지 않고.’


“어찌 된 연유로 이곳 화라리까지 왔는진 모르겠으나, 내 집에 들인 이상 언 몸 추스르고. 갈 곳이 정해질 때까진 계시도록 해 줌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다만, 애기 엄마도 그냥은 불편할 터이니 할 수 있는 일이 있거든 도우시게.”

“고맙습니다.”


잠시 후,


하얀 쌀밥에 뜨끈한 소고깃국, 석쇠에 잘 구워진 자반고등어가 차려진 밥상이 들어왔다.


그러나,


하루가 이틀이 되고, 열흘이 한 달이 되도록 여인은 좀체 떠날 기척이 안보였다.


한겨울이라 농사일은 없었지만, 워낙 부자인 데다 큰 살림인 ‘도마네’는 화라리 마을 아낙네들이 돌아가며 와 품을 팔아도 모자랄 만큼 일거리가 넘쳤다.


그저 허기와 추위나 좀 달래고, 갓난아기 먹일 젖이 돌 때까지만 있게 하려던 ‘도마네’ 는,


봄이 되어 일손이 바빠지자 개울에서 조금 떨어진 신작로 가에 밭 딸린 초가 하나를 내주었다.


처음엔,


어찌하여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젊은 여자가 아기를 안고 오게 된 것인지 말도, 소문도 무성했다.


하지만,


‘도마네’ 아버지가 허락한 이상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예쁜 얼굴에 말 수도 적은 데다, 끊어질 듯 가는 허리로 밭 일은 물론이고 음식이며 바느질 솜씨가 엽엽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누구 혼인이나 잔치가 있을 때 바느질 감은 자연스레 민경선이 도맡아 했고.


한닢이라도 돈이 되는 일엔 몸을 아끼지 않은 데다, 아이를 그야말로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그래도 저리 곱고 젊은데 언젠 간 팔자 고쳐 떠날 테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사람들조차,


일거리 하나, 먹을 것 하나라도 챙겨주는 걸로 해선일 함께 키우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해선이 일곱 살 되던 해,


‘도마네’ 아버지가 민경선을 찾았다.


웬만해선 출타를 안 하는 ‘도마네’ 아버지가 직접 걸음을 하자 민경선은 바짝 긴장이 되었다.


“자네가 새 출발 하겠다 맘만 먹는다면 내 기꺼이 그 아이를 자식처럼 거둘 생각이네 만.”


민경선이 사색이 되며 몸이 굳었다.


“내 말 끝까지 들으시게. 자네를 지켜본 게 일곱 해, 그런 맘 먹을 사람이면 벌써 그리 했을 터.”


사색이던 낯빛이 돌아오며 민경선이 낮게 숨을 몰아 쉬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네. 아이가 다섯 살도 안돼 글을 깨쳤다 들었네. 이제 곧 학교에 들어갈 터이고, 잘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과 뒤안 밭 한마지기, 머짓골 밭 두마지기를 자네 앞으로 해 줌세. 벼 농사는 힘 드니 앞으로도 쌀은 ‘도마’ 어미가 내 주는 걸 받아가고. 아이가 장성 하면 다시 얘기하세.”


“어, 어르신. 어찌 그런....”


엄동설한, 갓난아기를 안고 와 거처를 구할 때도 울지 않던 민경선이 차마 말을 맺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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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나비 (5) 24.01.10 94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0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2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5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4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3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7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4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8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2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4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0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1 5 12쪽
»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7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4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4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1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1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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