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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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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403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12 11:00
조회
204
추천
6
글자
11쪽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DUMMY

“익성 할아범, 판성 할아범. 이리로 오시게.”


'도마네' 아버지의 부름에 두 할아범이 소맷자락에 코를 팽 풀고는 대청마루 위로 올라섰다.


득환이와 천식 아저씨가 뒤에 세워졌던 병풍을 앞으로 옮겨 하얀 천과 동네 사람들 사이를 막았다.


“살펴 보시게.”


익성 할아범이 허리 춤을 더듬어 술병을 손에 쥐고 벌컥벌컥 들이키자, 더는 기다리지 못한 듯 판성 할아범이 술병을 나꿔채 한입에 벌컥 털어 넣었다.


익성, 판성할아범이 양쪽으로 나누어 세세히 살피기를 한참.


두 할아범은 눈빛을 나눌 때마다 말없이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윽고, 두 할아범이 천을 다시 덮으며 일어서자,


“무슨 말이든 해보시게 들.”


평소 같지 않게 두 할아범을 재촉하는 ‘도마네’ 아버지.


“기거이, 아무래도 간밤에 송경묵이가 다녀간 거 같으이.”

“송경묵이가?”

“이. 기거이 아니믄 이거이 말이 안되니깐두루,”

“뜸 들이지 말고, 사족 달지 말고, 짧게 말해보시게.”


익성할아범 말은 이랬다.


<송윤정 할머니가 숨을 거둔 건 지난 밤이다. 병세가 깊어 먼 길을 모시고 가기도 힘들었을 거고 화라리가 타지 이긴 하나, 그래도 노모가 마지막을 보낸 곳이니 이곳에 묻히길 바란 것 같다. 여기 금가락지와 은 비녀, 약간의 돈을 두고 가니 부디 장사를 좀 치러 달라. 후에 반드시 돌아와 사죄하고 어머님을 모시겠다.>


‘아니, 이 양반이 무슨 소설을 쓰고 자빠졌네.’ 라는 표정을 담아 ‘도마네’ 아버지가 익성 할아범을 쏘아봤고,


‘형님.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거냐’ 며 쌍둥이 동생 판성 할아범이 눈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크흠..큼...”


그러니까,


익성 할아범은 지금 자신의 주댕이가 왜 멋대로 지껄여지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환장할 것만 같았다. 쌍둥이 아우 판성 할아범 손에서 술병을 빼앗았으나 빈 병이었다.


“하이고! 송경묵이 이거, 이거. 사람 아니었구만? 상주도 없이 즈그 어매 장사를 치르라고?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만. 잘못 봤어.”


천식 아저씨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꺼이꺼이 통곡했다.


한편,


‘도마네’ 아버지는 긴 생각에 잠겼다.


익성할아범 말이 궤변일 수도 있겠으나 이 아침 일어난 모든 일들은 분명 상서롭지 않다.


본디 소는 조상님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묶여있던 소들이 스스로 고삐를 풀고 송윤정 할머니 죽음을 알리려는 듯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끌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빈 집이었던 이곳에 대체 누가 송윤정 할머니 시신을 갖다 두었단 말인가. 병이 깊었기도 하고 굶주려 돌아가신 듯 하나 마지막 수습은 잘 했는지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


이 지경이 되도록 형편을 살피지 못한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깊은 침음을 흘리며 ‘도마네’ 아버지가 마루에서 무릎을 떼고 일어났고, 사람들은 모두 '도마네' 아버지 입만 바라봤다.


“득환인 내 편지 한 장 써줄 테니 이 길로 진관리로 가 장원이한테 전하고.”

“예.”


류장원은 군청에 근무하는 ‘도마네’ 아버지 이종 조카다.


“익성, 판성 할아범은 장사 채비 하시게. 청년들은 상여 준비하고. 음식은 ‘도마’ 어미에게 일러 놓을 테니 의논껏들 하면 될 터이고. 장지는 송경묵 아버지, 송만복 묘 옆에 모시기로 하세. 내, 조카에게 이리 해도 탈이 없는지 알아보고 다시 얘기 하도록 하지.”


“제가 상주를 해도 되겠습니까요.”

“그리 하게.”


천식 아저씨가 잔뜩 쉬어 갈라진 목소리로 허락을 구했고,


“술은 내가 준비하겠네."


은월주막 할머니였다.


“아니올시다. ‘도마’ 어미에게 다 맡기시지요.”


“정신 멀쩡할 때면 한 번씩 나한테 찾아온 적이 있네. 사이좋게 저승길 동무 하면야 좋겠지만, 혹시라도 먼저 가게 되면 막걸리나 한 동이 놔 달라 했지. 이 양반 그냥은 못 먹어도 막걸리에 밥 말아주면 그리 잘 먹던 인사(人士) 아니던가. 이리 먼저 갈 줄 알았나보우. 내 그 약속 지키리다. 그래야 저승에서 다시 만나 동무 하지 않겠는가.”


‘도마네’ 아버지가 더 무어라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마네’ 아버지가 부자로 이름이 났다면, 은월할멈은 언사(言辭)로 자자했다.


홀로 술을 팔긴 했지만 기개가 곧은 데다 논리가 분명하여 아무리 주정꾼이라도 은월할멈네 주막에선 ‘이제 그만 마시게.’ 한마디면 다들 슬금슬금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도마네’ 아버지가 결단을 내리자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누구 하나 토를 다는 사람 없이 언제나 그러했듯 각자의 할 일을 찾아 자리를 떴다.


어미 소와 새끼 송아지들도 제 주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


후ㅡ.


고갯마루에서 송영순네 집을 내려다 보던 해선이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잘했다. 누렁소들아. 새끼 송아지야. 정말 잘했어. 죄송해요. 익성 할아버지.]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할 수 있었고, 할머니 또한 그리 부탁했지만 그건 사람으로 할 짓이 아니라 판단했다.


사라진 송윤정네 가족을 찾는 것도 생각 했었다. 찾기만 한다면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되돌리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어디에서 그들을 찾는단 말인가.


어쩌면 송윤정 아버지 송경묵은 이 곳을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또 어쩌면 생각보다 일찍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


할머니를 이대로 둘 순 없다.


사람들, 그중에서도 '도마네 아버지' 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건 무얼까.


생각은 길지 않았고, 결론은 참으로 간단했다.


태어날 때 부터 떠날때까지 일생을 함께하는 존재, 간혹 어떤 이유인가로 일찍 작별을 맞기도 하지만,


그들을 움직였을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박해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어줄 존재,


그건 바로 누렁소였다.


그리고,


누렁소들의 움직임에 더하여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외롭지 않게 떠나도록 준비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익성, 판성 할아범!


늘 그랬듯 판단이 서고 마음을 굳히자 다음 일은 마치 처음부터 순서가 정해져 있었던 듯 해선의 의지대로 이뤄졌다.


어쩌면, 실패할 수도 있다. 그 땐 어떻게 해야하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결국, 온전히 자신을 믿기로 마음먹은 박해선은,


동이 터오기 전부터 온 마음과 정신과 의지를 누렁소들과 익성 할아범에게 모으고 집중할 뿐이었다.



***


또한, 해선은,


‘도마네’ 아버지가 몹시도 이채로웠다.


보통의 부자들에게서 보여지는 자린고비 행태도 없을 뿐더러, 필요할 경우에만 나서되 사리에 어긋남이 없다.


사람들 신망이 두터운 이유가 있었군.


그리고,


마음속을 가득 채우며 떠오르는 또 한 사람,


‘도마’...


할머니 장사 치르고 나면 만나봐야겠어.


누렁소와 약속했던 그 일을 아무래도 조금 앞당겨야 할 것 같다.



***


다음날,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주오.

-어-허- 어허야-.

-꽃 진다고 설워마라-명년삼월 다시 피네.

-어-허- 어허야-.

-가요. 가요. 나는 가요. 내가 가면 아주 가나.

-어-허- 어허야-.

-아주 간들 잊을 소냐-.


구슬픈 상여가와 요령 소리가 동구밖까지 퍼졌고, 펄럭이는 만장을 든 아저씨들 뒤로 꽃 상여를 맨 청년들이 뒤따랐다.


학교에 가기 싫었던 박재학과 최호승은 몰래 상여를 따라가다 들켜 등짝을 후들겨 맞았고, 맷값으로 얻은 돼지 머리와 전을 손에 받아 쥐고 눈물을 찔끔 짜며 다시 학교로 갔다.


이 날 화라리엔 하늘을 나는 고추잠자리와 집에서 길러지는 가축들과 코흘리개 아이들만이 마을을 지키며 긴 하루를 보냈다.


송윤정네 아버지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


6학년 2학기도 거의 막바지,


온 산을 앞다퉈 물들였던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구자 스산한 바람이 산 허리를 휘감고 들판을 쏘다니며 위잉위잉 울어 대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들판을 쏘다니며 울어대는 바람보다 더 스산하고 음습한 기운이 교실에 감돌았는데...


중학교 진학을 하는 애들과 그렇지 않은 애들 사이의 어색한 기류가 흘렀기 때문이었다. 박해선네 반에서도 두 명이 해당됐다.


“야,야. 장흑수! 니 진짜루 중학교 안 가고 서울 갈 거야?”

“새끼가. 기딴걸 왜 자꾸 물어보고 지랄이여.”

“웅기네 성이 그러는데 서울 가도 별거 읎대.”

“시끄러. 니 소문내믄 죽는다이?”


아니, 쟤들은 저렇게 큰소리로 말하면서 뭔 소문을 걱정하는 거지?


맞다.


장흑수는 언젠가 나무 하러 갔다가 뱀을 만나 지게 까지 벗어던지고 혼비백산 도망 온 적이 있었다.


당장 가서 지게 찾아 오라고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고 가출(?)해서 박해선네 집에서 하룻밤을 잤던 그 날, 장대한 계획을 선포했었다.


졸업하면 무조건 서울로 돈 벌러 가겠노라...고.


이전 생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면 별 생각이 없었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너, 서울 가 봤자다. 어디 공장에 들어가 돈도 제대로 못 받고, 하루 종일 뺑이 돌아야 해. 밤이면 선배 못된 형들 담배 심부름에 라면 끓여다 받쳐야 하고.


제 의지로 중학교에 안 가고 서울 가겠다 벼르는 장흑수와 달리 원차웅은 집안 형편 때문이었다.


형도 못 간 중학교를 동생이 가면 쓰겠냐고, 아부지 따라 농사나 짓던가, 서울 가서 취직해서 돈이나 벌어 오라는 것.


“아부지. 나두 중학교 갈래유. 우리 반 애들 거진 다 간단말이에유.”


“이눔아. 중핵교를 어디 기냥 간다냐? 먹구 죽을래두 돈이 읎으니 못가는기지. 니 성두 못간걸.”


원차웅은 말수도 줄고 친구들을 슬슬 피해 다녔다.


편미영 선생님이 몇 번 가정 방문을 해서 부모님을 설득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


휘잉-

휘이잉-


밤새 바람이 미친 듯이 울어 대는 밤,


“끄응-.”


뒤척-뒤척-


잠을 못 이루는 건 찬바람만이 아니었으니.


장흑수는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데...원차웅이 문제다. 원차웅 부모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아니, 이건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마음을 돌리는 문제가 아니라 금전, 돈의 문제이지 않은가.


설령 어찌어찌해서 그런 부분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과연 자신이 다른 이의 삶을 바꿔도 되는지. 바꿀 수 있기는 한 건지.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나,


낮에 해선을 보고도 못 본 척 외면하며 다른 곳으로 피하던 원차웅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점점 잠이 멀리 달아났다.


새벽 바람에 문풍지가 파르르 몸서리를 치고, 수탉의 훼치는 소리가 동이 텄음을 알릴 때가 되어서야 박해선은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으니,


“얘들아-. 우리 반은 너희들 다 중학교에 진학하게 돼서 선생님이 정말 기쁘단다. 방학 동안 선생님한테 영어 배우고 싶은 사람 있으면 신청해라? 이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쳐 줄 테니. 설마 한 명도 신청 안 하는 건 아니겠지? 흐흥.”


편미영 선생님이 들뜬 목소리로 팔짝 뛰며 기쁨을 감추지 않은 건 바로 그 며칠 후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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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나비 (5) 24.01.10 95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1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3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6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4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8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9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4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1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2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8 5 11쪽
»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5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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