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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410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1.28 13:55
조회
885
추천
18
글자
11쪽

1화 돌아오다

DUMMY

솨아아-

헉헉헉-


한 소년이 빗속을 뛰어가고 있다.

소년은 시뻘건 흙탕물에 떠내려 오는 살림과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피해 앞으로 나아갔다.


번쩍-

우르르 쾅-


번개와 천둥에 수없이 하늘 문이 열리고 닫힌다.


후다다닥-!!


도망치듯 제 집에서 튀어나와 빗속으로 사라지는 허연 물체.


“엄마ㅡ!”


활짝 열려있는 부엌 문과 안방 문, 방 안엔 옷가지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엄...마...?”


***


머리맡에서 두런거리는 소리들로 귓가가 웅웅거렸다.


-쯧쯧, 저 어린 것을 두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믄 저리 삼일 밤낮을 잠만 잘까유.

-언능 일어나야 지 엄마 장사를 치를 긴데. 아이고, 불쌍해서 참말로.

-대체 언 놈이 그랬을까유? 이쁜이까정 저리 된 걸 보믄 필시 지 주인을 지키려다 그리 됐을 것인데. 이게 다 뭔 일인지 모르것네유.

-천벌을 받을것이여. 천벌을...



벌떡ㅡ!


또 같은 꿈이다. 아니, 꿈이 아니다.


열 세 살,

장마로 온 동네가 물에 잠겼던 그 날,


엄마는 누군가에게 참혹하게 유린 당한 채 세상을 떠났다.


아빠 없이 엄마와 살던 삶에서 혼자 남게 된 박해선.


차마 눈에 다 담아두지 못했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박해선의 내면 깊숙이 또아리 틀고 도사린채 그의 삶을 지배했다.


그것은 트라우마라는 폭력으로 아이에게서 웃음과 꿈을 앗아간 채 어른으로 성장하게 했으며,


매년 장마가 질 때면 같은 꿈으로 나타나 망각이라는 신의 축복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때때로 빛나고, 즐겁고, 따뜻해서 더없이 행복했던 날들...


그 날들은 그리움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박해선에게 숨통을 열어주고 언덕이 되어 주었다.


사는 동안 내내 자신을 괴롭혔지만, 미치도록 돌아가고 싶었던 그 순간...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그날 그 순간과 마주 할 수 있다면,


엄마를 지킬 수 있을까.


엄마가 어떤 순간을 맞았었는지,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그 무언가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한번만, 한번만 엄마를 볼 수 있다면, 엄마와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다면, 엄마를 불러 볼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것이다.


***


휴우ㅡ.


땀으로 흥건한 몸을 일으켜 텔레비전 리모컨을 눌렀다.


[다음은 날씨입니다. 며칠째 이어지는 비로 도로 곳곳이 침수되어 교통이 통제 되는 지역이 늘어가고....상습 침수 지역 주민들에겐 긴급 대피령이....]


툭-!


전원을 끈 박해선이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다.


하늘은 아예 빗장을 연 채 물 폭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우르르-쾅-

쏴아아-


어두운 하늘을 가르는 번개와 우르릉 거리는 천둥소리,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 부러질 듯 휘청이며 춤추는 나무들,


박해선은 저것들을 뚫고 밖으로 나갈 용기를 내지 못한 채 벌써 며칠 째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저 비는 언제 그칠까. 몇 번 더 꿈을 꾸어야 장마가 끝날까.


자신의 내면에 또아리 튼 그것을 몰아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눈을 가린 채 12차선 왕복 도로에 내던져 진 것 같은 원초적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다.


다행인 건,


1년 중 한 달, 아니 보름, 아니 일주일...어떤 땐 더 짧게,


그 시간만 견디어 내면 그럭저럭 살만했다.

지독하게 외롭고 추웠지만 일에 묻혀 살다 보면 시간은 알아서 흘러가 주었다.



부르르르-


정적을 울리며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그대로 뒤집었다. 잠시 후 다시 이어지는 진동 벨. 발신자는 아까와 똑같다.


박해선의 휴가에 회사에서 전화를 두 번 이상 한다는 건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네.”

-아, 팀장님. 죄송합니다. 연락 안 드리려고 했는데···.

“무슨 일입니까.”

-그게. 아무래도 팀장님이 나서셔야 될 일이라서요.

“···.”

-고객 상담 부서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담 부 김수연 사원이 진상 고객, 아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으면서 욕...을...하. 고객이 항의가 들어왔는데, 녹취록 내놓으라고...직속상관 찾고...

“조 대리님?”

-네.

“저한테 보고 할 땐 좀 정리를 해서 하라고 몇 번을 말합니까. 그러니까 김수연 사원이 고객 응대 중 상대가 전화를 끊기 전에 욕을 했고, 그 욕을 들은 고객은 녹취록을 요구하며 항의를 하는 거고. 부서 장이 직접 사과 하지 않으면 가만 있지 않겠다. 이런 겁니까?

-네. 바로 그겁니다. 그런데 지금 팀장님은 휴가 중이라 자리에 안 계신다고 했더니 더 열 받아서...지금 당장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지 않으면···.


박해선은 잠시 휴대폰을 떼고 창밖을 내다봤다.

이제 막 정오를 지난 시간., 대낮임에도 어두웠고 여전히 세찬 빗줄기가 유리창을 때렸다.


“고객이 있는 곳이 어딥니까.”

-그, 그게. 부산···.

“어디요?”


진상 맞구만. 이 비에 부산까지 와서 사과를 하라고? 그것도 지금 당장?


-아, 김수연씨가 자기 잘못이니 본인이 책임 지겠다고 지금 비행기 표,

“됐습니다. 1시간 후 사무실 도착 할 테니까 녹취록 따서 파일 만들어 놓고. 회의 준비 하세요. 김수연 사원은 일단 상담 업무에서 배제하고 대기 했다가 회의에 참석 시키고요.”

-넵!


사뭇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버벅거리던 조대리가 씩씩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치긴커녕 이젠 아예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창밖을 보니 이마가 절로 찡그려진다.


타의 추종을 불허 했던 타고난 머리, 주변의 어느 것들에도 관심 없는 박해선에겐 공부가 유일한 탈출구. 오롯이 자신의 실력 만으로 입사했고, 계열사와 여러 부서를 거치며 두각을 나타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과의 교류를 극도로 자제하는 박해선은 사람들을 대하는 일에서 가장 돋보였다.


계열사의 굵직 굵직한 분쟁들부터, 사소하지만 자칫 회사 이미지에 금이 갈만한 일들은 다 박해선이 처리했다. 지금은 그룹 내의 분쟁이나 블랙컨슈머의 응대까지 총괄하는 팀이 만들어졌고, 그 팀의 수장이 박해선이다.


이 비에 부산까지, 그것도 부서 장과 상담 당사자가 직접 와서 사과를 하라고 할 정도의 인성인 걸 보면 욕 들을만한 말을 먼저 했겠지.


그렇다고 맞대응 해서 욕을 하다니. 김수연 사원의 평소 모습을 떠올려 보니 좀 의아하긴 하네.


상담사에게 폭언이나 욕설을 하면 처벌 받는 법이 생기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저 법일 뿐. 중요한 건 상대는 갑 중의 갑인 고객이라는 데 있다.


정말 사과를 받기 위해 항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과 플러스 알파를 원하는 부류가 훨씬 많다.


박해선에게 그 사람이 어떤 부류인지 판단하는 건 어렵지 않다. 몇 마디 만 나눠보면 알 수 있고, 지금까지 한번도 틀린 적이 없으니까.


문제는 지금 저 빗속을 뚫고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 아직 집을 나서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조여온다.


녹취 파일을 전송 받아 확인하고, 고객과 통화를 시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단순히 어깃장을 놓는 것 만으로 끝내지 않을 뿐더러,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사과는 신속할수록 좋다. 늦으면 늦어지는 만큼 그 다음부턴 자존심 싸움이다.


물론, 박해선이 부산까지 갈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세상엔 별 그지 깽깽이같은 인간들이 많거든.


택시 앱을 실행했으나 폭우 때문인지 콜을 수락하는 기사가 없다.


잠시 망설이다 자동차 키를 들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촤아아아-

콸콸콸ㅡ


맨홀과 배수구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빗물이 도로와 인도 구분 없이 넘쳐서 흘러간다. 와이퍼를 작동 시켰지만 시야 확보가 거의 안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폭우인 데다 출근 시간대가 아니라 도로에 자동차가 별로 많지 않다는 것.


수년째 오가는 출 퇴근 길,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 아니던가.


심호흡과 함께 천천히 엑셀을 밟았다.


막상 도로 위를 달리니 생각보다 심장이 덜 쿵쾅거린다.


후- 이 정도면 괜찮네.

흡!! 하-!!!

괜찮은 게 아니었구나. 아예 숨을 쉬지 않고 있었어.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 하고. 천천히. 천천히.


어느새 조대리와 약속한 1시간이 거의 돼 간다.


이제 저 앞 교차로에서 우회전만 하면 회사다.


녹색 신호가 떨어지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 엑셀을 밟는 순간,


번쩍-!!

콰콰쾅ㅡ!!!


어두웠던 하늘이 갈라지며 수십 다발의 빛줄기가 교차로 한가운데로 내리 꽂혔다.



끼이이이이이이ㅡ!!!!!!!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박해선의 자동차는 그대로 내달려 빛의 폭풍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


눈을 떴을 땐,


나뭇잎 타는 냄새가 났다.

아닌가? 밥 짓는 냄샌가?


문 고리 옆 창호지를 오려내고 끼운 손바닥 만한 유리로 빛이 들어온다.


얇고 하얀 이불호청은 풀을 먹여 빳빳했고, 햇살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어디지?

분명 벼락이 쳤는데...죽은 건가.


이불호청에서 엄마 냄새가 났다.


죽어서 엄마가 계신 천국에 온 건가···.


눈을 들어 천장을 본다.

오래된 나무로 방을 가로질러 놓여진 서까래에 신문을 찢어 빼곡히 붙인 게 보였다.


저거, 엄마랑 누가 먼저 찾나, 글씨 찾기 하던 거야.


벽을 훑어 내렸다.

얼룩진 흰 종이와 신문지 쪼가리로 도배가 되어 있지만 정갈하고 규칙이 있다.


밤이면 엄만 몇 년이나 지난 저 기사들을 자장가처럼 읽어 줬었어.


그리고,


벽 한쪽에 걸려 있는 하늘거리는 노란 원피스.


엄마다. 엄마가 입던 거다···.


왈카닥-!


방문을 열어본다. 싸리비로 쓸어낸 마당이 정갈하다.



아, 미쳤네!


가슴이, 심장이 두 방망이 질 친다.


이상한 건 공간만이 아니었다.


몸이 작아졌다. 손으로 문질러 본 머리도 까슬하다. 햇빛에 어지간히 그을렸는지 피부도 까무잡잡하다.


급기야,


“해선아. 일어났어? 무슨 낮잠을 그렇게 자?”


안개 속을 유영하듯 들려오는 따뜻한 목소리.


“엄...마?”

“아직 잠이 덜 깬 거야? 가서 이쁜이 찾아와요. 밥 먹어야지.”


목소리도 모습도 앳된 엄마가 서있다.


다시는 입 밖으로 꺼내어 부를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사는 동안 내내 가슴속에서만 후벼 팠던 이름,


엄마···.


목구멍이 뜨겁다.


대청마루를 뛰다시피 내려가 와락 엄마 품에 안겼다.


“엄마ㅡ! 엄마ㅡ!!”

“아구궁, 잠 덜 깬 거 맞네. 어리광을 피우고.”


뒤안 텃밭에 다녀오신 듯 들고 있던 광주리엔 호박이며 가지, 풋고추가 가득하다.

마루 끝에 광주리를 내려놓고 배꼽 아래로 내려간 해선의 바지를 추켜올려 주며 한마디 하시는 엄마.


“이것 봐. 키가 엄마만 한데 아직도 애기라니까?”

“이, 이쁜이 찾아올게요. 엄마?”


엄마를 뒤로 하고 내달렸다. 눈물이 주루룩 흘러 앞이 흐려졌다. 손등으로 훔쳐내면서 계속 달렸다.


“이쁜아ㅡ이쁜아ㅡ.”


헥헥헥ㅡ.


시골 똥개 답지 않게 새하얀 찹쌀떡 같은 이쁜이가 붉게 타는 서쪽 하늘을 등진 채 달려왔다.


끼잉- 낑-.

할짝할짝ㅡ.


이쁜이가 제 목을 끌어안고 철푸덕 주저앉는 박해선의 얼굴을 사정 없이 핥았다.


“이쁜아, 이녀석! 오빠다.”


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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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화 웰컴투 in화라리 (1) 24.01.16 69 4 11쪽
35 35화 화라리 in 화라리 (2) 24.01.15 76 4 10쪽
34 34화 화라리 in 화라리 (1) 24.01.13 79 4 10쪽
33 33화 나비 (5) 24.01.10 95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1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3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6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5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8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9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5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70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1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2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200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8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5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1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6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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