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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394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13 09:00
조회
207
추천
5
글자
11쪽

16화 '도마네' (1)

DUMMY

“엄마-. 가요. 이쁜아, 가자!”


월월ㅡ.


‘도마네’ 아버지 부름을 받아 가는 길,


저만큼 앞서 뛰는 해선과 이쁜일 보는 민경선의 마음이 편칠 않다.


겨울 채비 하느라 목화 솜 이불 바느질 때문에 요 며칠 ‘도마네’ 집에서 살다시피 했던 민경선은, 어제 ‘도마네’ 아버지가 해선을 찾을 때부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대부분의 날을 ‘도마네’ 집에 가 일을 하면서도 실상 '도마네' 아버지를 직접 보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데, 직접 저를 불러 해선이 내년이면 중학교에 가는지 묻고는 아이를 한 번 보고 싶으니 같이 오라고 한 것.


무슨 일일까. 한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민경선은 해선이 일곱 살 되던 해 ‘도마네’ 아버지가 찾았던 때를 떠올렸다.


새 출발 할 마음을 먹는다면 기꺼이 해선을 자식처럼 거두겠노라 했었다.


새삼 이제 와 그럴 리 만무하다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엄마-.”


그리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뛰다 말고 뒤돌아 큰 소리로 부르며 손까지 흔드는 해선.


저릿ㅡ.


다른 사람들도 제 아들을 보며 이렇게 아플까.


가슴 저 아래 차곡차곡 쌓였던 감정들이 불쑥 치고 올라왔지만 마주 손 흔들며 애써 웃어 보였다.


***


화라리에서 가장 상징적인 곳, ‘도마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면, 화라리의 모든 길은 ‘도마네’ 로 통한다.


산길, 밭길, 물길, 왼쪽, 오른쪽, 어느 길, 어느 쪽을 택해 가더라도 ‘도마네’ 땅이었고, 그곳은 결국 ‘도마네’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디 길 뿐이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화라리 사람들은 ‘도마네’를 가장 먼저 찾았다.


단순히 돈만 많은 욕심쟁이 고집불통 영감이었다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 그만큼 덕망과 신망이 높았음이다.


‘도마네 집’ 은 해선이 생각했던 것보다 호화롭지 않았다.

소문대로라면야 아흔 아홉 칸도 부족할 만큼 큰 집이어야 했지만, 넓고 깊은 마당에 곧은 대청마루, 장독대가 즐비한, 정갈한 집이었다.


음머ㅡ.

음ㅡ머.


옆으로 누워 되새김 질 하던 외양간의 누렁소들이 민경선과 해선이 들어서자 긴 울음으로 반갑게 맞았고,


멍ㅡ.


이쁜이가 평소 답지 않은 귀여운 짖음으로 화답했다.


“안녕하세요.”

“왔느냐.”

“춥다. 이리, 이리와 앉거라. 여기, 먹을 것 좀 내오시게.”


‘도마네’ 아버지가 부젓가락으로 뒤적여 불씨를 위로 올라오게 한 후 다독거린 화로를 해선 쪽으로 밀었다.


가까이서 본 ‘도마네’ 아버지는 체구가 그리 크지도, 나이가 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딱히 그럴만한 이유가 없었음에도 해선의 머릿속 ‘도마네’ 아버지는 엄청난 거구에 나이 지긋한 노인으로 여겨졌던 바,


동네 사람들 누구나가 우러르며 찾으면서도 막상 대하기 어려워 하는 사람이라 그리 생각했던 걸까.


음? 그러고 보니 ’도마네‘ 아버지 눈동자도 나처럼 갈색이었네.


“그래. 내년에 중학생이 된다지?”

“예.”

“의젓하구나. 잘 컸어.”

“감사합니다.”

“허허. 편하게 대하거라, 편하게. 어찌 그리 어미를 빼닮은 것이냐.”

“....예.”

“듣자 하니 공부도 잘하고, 책 읽는 걸 좋아한다던데. 꿈이 무엇이냐. 커서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는고?”


해선은 잠시 망설였다.


이렇게 갑자기 꿈을 물어볼 줄 몰랐네.


그렇다고, 저는 한번 살다 와서 꿈 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여기서 엄마랑 잘 먹고 잘 사는 게 꿈입니다... 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묻는 말에 냉큼 냉큼 대답하던 것과 달리 해선이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자, 갈색 눈동자에 일순 호기심이 어리는 ‘도마네’ 아버지.


“예. 꿈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아직 확실하게 정한 건 없습니다. 앞으로 생각하고 준비할 시간은 많으니까요. 그래도 두 가지는 확실히 정했는데...”


“그 두 가지가 무엇이냐.”


“하나는 제 자신의 영화를 위한 일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자는 거고요.”

“예를 들자면?”


“가난해서 끼니 걱정하는 사람들 돌보고, 공부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 없게 도와주고, 아프거나 다쳤을 때 돈이 없어 치료 못 받는 일 생기지 않게 도와 주고요.”


“그러려면 돈을 아주 많이 벌어야겠구나. 부자가 되어야겠어.”


“네. 돈을 많이 벌면 좋은데, 그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제가 아직 더 커야 하니까요. 하지만, 제가 직접 돈을 벌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아요.”


“그런 기막힌 방법이 있다는 게냐? 들어본 적 없는데. 그게 대체 무엇이더냐.”


“장학금 제도가 있긴 하지만, 장학금을 받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지역 유지 분들이 미래의 인재를 키운다는 마음으로 직접 도와주는 겁니다. 그 아이들은 커서 자신이 받은 걸 그대로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고 헌신할테니까요.”


“그 미래의 인재가 후원만 꿀꺽하고 뒤통수를 치면 어찌 하느냐.”


“농사를 지을 때 농사가 망할지도 모르니 짓지 않는 농부는 없을 것입니다. 흉년이 들면 속은 상하겠으나 그 속에서도 건질 것이 있고. 풍년이 들면 농부의 기쁨과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까요.”


“뭐라? 으하하하핫!-헛헛헛!!!”


‘도마네’ 아버지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못 알아들을 양반이 아니다. 봐라, 다 알아듣고 저리 호탕하게 웃지 않는가?


“좋구나. 그래, 그럼 또 하나는 무엇이냐.”


“예. 다른 하나는, 제가 아프지 않고 항상 건강하기만 하는 게 엄마 바람이라서 엄마의 바람을 꼭 지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네 엄마가 그리 말했느냐. 네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 한 게 바람이라고.”


“예. 제가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장 많이 들은 게 엄마의 그 말이니까요.”


“효자구나. 헌데, 아프고 안 아프고가 어디 뜻대로 된단 말이더냐.”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제가 건강한 몸을 가지려고 노력을 기울인다면 혹시 병이 찾아와도 이겨낼 수 있을 테니까요.”


“옳거니. 그렇다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


“그...게...”


“왜, 남몰래 먹는 보약이라도 있더냐?”


“그것이 아니고. 그...엄마가 해주는 거 잘 먹고요. 밤에 잘 자고요. 낮엔 이쁜이랑 땀흘리면서 뛰...고...또 엄마랑 웃으면서 얘기 많이 하고...”


망했다.

지금까지 잘하다가 왜, 어째서...천지 분간 못하는 애처럼. 하!


그러나,


“허ㅡ허헛!!”



‘도마네’ 아버지 입에서 초탈한 웃음소리가 났다.


그는 자신이 지금 이야기 하는 상대가 열 세 살, 소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열 세 살 아이와 대화 중이라는 걸 의식조차 못했다. 오히려 소년의 논리에 빠져 이야기가 끝날 즈음엔 무릎이 닿을 만큼 가깝게 다가 앉았으니 말이다.


화롯불에 발그레진 볼을 하고는 벌써 한 시간 여,


꿇어 앉은 무릎 위의 손을 한번도 떼지 않는 박해선을 보며 기특함을 넘어 기이함을 느꼈다.


진즉 다리가 저려와 콧등에 땀이 맺히고 몸을 꼬을 때도 됐건만, 처음 앉았던 자세 그대로 이다.


또한, 묻는 말에 생각을 정리하여 분명하게 답할 뿐 아니라 행동에 번잡스러움이 없다.


제 엄마들이 와 일하는 날이면 먹을 것을 얻으려 팥방구리 쥐 드나들 듯 하는 또래 아이들과 달라도 어찌 이리 다르단 말인가.


“끄응ㅡ.”


십 수년 전 젖먹이를 안고 와 머리를 조아렸던 민경선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 보이며 불현듯 제 자식 ‘도마’가 떠올라 낮게 침음을 내고 말았다.


내 아들 ‘도마’와 마주 앉아 지금 저 아이처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이까짓 재물쯤 하루아침에 사라져도 아깝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지금도 이 집 어디선가 먼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짓눌려왔다.


***


한편,


박해선의 속내는 지금 거미줄이 수없이 얽히고 설키는 중이다.


너무 어른스러우면 안된다. 그렇다고 너무 어려 보여서도 안돼. 딱 그 중간 어디쯤이어야 해...하, 그런데 그게 더 어렵단 말이지. 중요한 건 진심이다. 진심이 전해져야 해.


박해선은 지난 며칠 내내 ‘도마네’ 아버지를 향해 자신을 찾아주기를 간곡히 전하고 있었다.


좀체로 바깥 출입을 않는 양반이니 직접 보는 건 어려울 터.


이쁜이와 동네를 뛰며 온갖 ‘도마네’로 향하는 모든 것들에 마음을 실어 보냈다.

만약 실패한다면 일하러 가는 엄마를 따라 무작정 찾아가자는 게 마지막 전략이었지만.


결국 박해선을 찾은 ‘도마네’ 아버지.


오늘 박해선은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뭐, 하나는 이미 된듯하지만.


***


“듣고 보니 네 말이 다 맞다. 내, 이 나이 되도록 몰랐던 걸 너는 다 꿰뚫고 있구나.”


그리 말하곤 팔짱을 낀 채 한참을 침묵하던 ‘도마네’ 아버지.


“얘야. 해선아.”


나직하고도 심히 다정하게 처음으로 해선의 이름을 불렀다.


“...”


“네가 아직 어려 행하지 못하는 그 꿈을 내 들어줄 터이니, 내 부탁 하나를...들어주겠느냐.”


“...예...”


자신이 하고자 했던 청을 도리어 부탁해오는 ‘도마네 아버지’.


겉으론 호수처럼 잔잔했으나 해선의 심상은 격랑이 일며 그야말로 폭풍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듯 했다.


그런 해선의 갈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노회한 이의 짙고 깊은 갈색 눈동자가 근심과 우수를 지우고 기대와 소망으로 물들고 있었다.


***


“얘야, 해선아.”


‘도마네’ 아버지가 그리 다정하게 제 이름을 불렀을 때, 박해선의 가슴은 이상하게 두방망이질을 했었다.


“...그저, 시간이 될 때 한번씩 ‘도마’를 좀 찾아봐 줄 수 있겠느냐. 책을 읽어줘도 좋고...그림을 그려도 좋고...같이 밥도 먹고...부탁을 들어 주겠느냐.”


태산보다 크고 단단하게 만 보여지던 ‘도마’ 아버지의 목소리는 한번씩 숨을 고를 때마다 갈라지며 미세하게 떨렸다.


그 뿐이겠습니까. 머지않아 곧 ‘아버지’를 부르는 아드님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노회한 이의 갈색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박해선은 속으로 그리 말했다.


지난 여름의 끝,


팔려가던 천달수네 누렁소가 전해준 이야기.


그때 했던 누렁소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야 했다.


수십 년을 살다 온 이전의 생과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말도 안되는 능력들을 감안하더라도 해선에게 ‘도마네’ 아버지는 마주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으니,


겉보기에 또래보다 어른스럽고 명석하다고는 하나, 누가 보더라도 그저 열 세 살 아이일뿐이질 않는가.


그러나,


송윤정네 할머니 장사를 치르며 알게 된 한 가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어쩌면 무한할 수도 있음이었다. 하고자 하면 그저 하면 될 일임을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하찮았지만, 박해선에겐 그리도 어려웠던, 허락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조금씩 점점 쉬워지며 자신의 의지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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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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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4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1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2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 16화 '도마네' (1) 23.12.13 208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4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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