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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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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388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11 11:00
조회
204
추천
5
글자
12쪽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DUMMY

이들이 없어진 걸 처음 발견한 건 천식이 아저씨였다.


순천이 고향인 천식 아저씨는 피붙이 하나 없는 이곳 화라리에서 송윤정 아버지, 송경묵과 형제처럼 지냈다


송경묵 또한 타지에서 ‘도마네’집으로 일하러 왔다가 하나, 둘 식구들을 불러 들여 정착했기에 동병상련 이었을 것이다.


해거름녘이면 약속 없이도 ‘은월할멈’ 주막에서 만나 막걸리 한 사발 하는 게 두 사람 하루 일과 마지막이었는데.


사 나흘이 지나도록 그림자도 비치 질 않아 가봤을 땐 이미 텅 빈 집이었다.

얼마 안 되는 추수한 곡식들을 마당과 헛간에 쌓아둔 채 사람들만 없어졌다고 했다.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 인지까지 다 알고 지내는 화라리 사람들에게 이 일은 충격이었고, 때문에 며칠 동안 마을이 뒤숭숭 했었다.


그러나, 이들이 왜 갑자기 없어졌는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으니. 올 때 누구에게 허락 받고 오지 않았듯 갈 때도 그렇게 홀연히 사라진 거였다.


그 와중 병든 노모와 아직 어린 딸까지 데리고 가려면 치밀하게 준비를 했을 것이기에 다들 혀를 내두를 뿐.


형제처럼 지냈던 천식 아저씨는 ‘도마네’ 집에 일하러도 안 가고 ‘은월할멈’ 주막에서 식음전폐 술만 펐다.


그러다 산 목숨 놔 버리겠다고 다들 뜯어 말려도 꿈쩍 않던 천식 아저씨는,


뒷짐 지고 나타난 ‘도마네’ 아버지 ‘에헴’ 한마디에 그 길로 일어나 ‘도마네’ 집으로 가 탈곡기를 밟았다.


다만,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무성했다.


그동안 이 집 저 집서 조금씩 빌렸던 돈이 엄청 많다느니, 서울서 큰아들이랑 장사하던 송윤정 엄마가 바람 나서 잡으러 갔다느니, 애시당초 화라리 사람이 아녔으니 다 두고 미련 없이 떴을거라느니.


하지만,


‘도마네’ 아버지는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니 당분간은 곡식들이며 집을 그냥 두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울러, 눈으로 보고, 듣지 않은 일들을 입에 올리지 말란 입 단속도 함께.


추석을 앞두고 가을걷이에 한창 바빴기에 사람들은 금세 잊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갔다.


***


노모를 모시고 함께 간 게 아니었어. 여기, 이 곳에 버리고 간 거야.


지난 설날 친구들과 세배하러 갔던 때가 떠올랐다.


참새들 마냥 나란히 서서 절 하는 우리들에게 일일이 약과를 쥐어 주던 송윤정 할머닌 엄마가 싸 준 음식을 이빨 하나 없이 잇몸 만으로도 오물 오물 잘 드셨었다.


그 때만 해도 이렇게 까지 쇠하진 않았었는데.


‘치매’ 라는 병은 이 때만 해도 ‘노망’ 또는 ‘망령 들었다’는 말로 불려졌다.

시골에서 노인들에게 ‘노망’이 오면 대부분 먹을 것을 조금만 주는 것으로 시작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게 다였다.


지극정성 보살피던 며느리들도 똥 싸서 장롱 밑에 숨기거나 벽에 바르고, 이년 저년 욕설에 머리끄덩이 잡히는 수모를 겪는 날이 길어지면 다 그렇게 됐다.


그런다고 해서 누구도 손가락질 하거나 욕하지 않았다.


‘노망’은 그런 거였다.


그럼에도, 눈 앞에 펼쳐진 참혹함에 박해선의 몸이 떨렸다.


끼이-끼잉-


이쁜이가 해선의 손등을 꼬리로 감싸며 올려다 봤다.


노모를 버리고 갔어. 그들은 돌아오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지? 어른들한테 알려야 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해선이 생각을 모으느라 이마를 찡그릴 때였다.


"...?!"


바싹 마른 나뭇가지처럼 부서질 것 같은 할머니의 손이 해선의 손 위에 올려졌고, 놀랍게도 힘을 주어 쥐어왔다.


“···.”


무어라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목을 긁는 쇳소리만 날 뿐이었다.


해선이 두 손으로 할머니 손을 잡았다.


누렁소에게 그랬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할머니에게 말을 전했다.


[할머니.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하세요. 그냥 마음으로, 마음으로 하시면 돼요. 제가 들을 수 있어요.]


물기에 젖은 할머니의 속눈썹이 힘겹게 몇 번 눈꺼풀에 닿았다.


***


‘이쁜이가 있으니 괜찮겠지?’


벌써 갔다 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해선이 안 돌아오자 민경선은 막 집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터벅-터벅-


평소라면 이쁜이가 먼저 달려와 헥헥 숨을 고르고, 뒤이어 해선이 뛰어와 치사한 녀석 어쩌고 하면서 티격태격 할 터인데. 웬일인지 둘이서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밥상을 마주하고 앉았지만 거의 손도 대지 않는다.


“엄마. 떡을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 밥이 들어갈 배가 없어요. 엄마 많이 드세요.”

“응? 엄마도 그러네? 그럼 우리 상 치우고, 내일 아침밥 많이 먹을까?”

“네, 엄마. 저 숙제가 좀 많아서. 숙제 할게요.”


처음 본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엄마랑 마주 앉아 밥 먹는 걸 제일 좋아하는 아들이 아닌가.


이쁜일 내려다 봤지만 제 오빠가 들어간 방문 앞에 쭈그려 앉아 앞발에 얼굴을 파묻는다. 하긴, 물어본들 대답을 할 리도, 알아들을 리도 없다. 아들을 붙잡고 무슨 일 있었냐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만한 일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만 할 뿐.


평소 민경선의 성정이기도 했고, 요즘 아들이 좀 어려워진 때문이기도 했다.


민경선은 조용히 밥상을 치웠다.


한편,


방으로 들어간 해선의 고민이 깊어졌다. 머릿속 수많은 생각들이 서로 싸우며 고지를 점령하려 했다.


쌓고 허물고, 허물고 쌓고...


마침내 생각의 끝에 다다랐을 때엔,


자신의 판단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구심, 두려움, 송윤정 할머니의 마지막 숨소리가 떠올라 가슴에 시린 바람이 윙윙 대며 울었다.


***


달빛마저 잠든 밤,


해선이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왔다.


이쁜이가 소리 없이 뒤를 따른다.


스슷-스슷-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슬에 젖은 풀잎들이 발등을 스쳤다.


인적을 줄였음에도 멀리서 한번씩 '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서낭당 가까이 다다르자 이제까지와는 다른 서늘함이 몸을 휘감았다.


주저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시키지 않았어도 이쁜인 따라 들어오지 않고 울타리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할머니의 표정은 편안했다.


두 손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이미 온기 같은 건 없다. 금방 이라도 바스라져 가루가 될 것만 같다.


해선은 할머니의 손을 놓고 하얀 이불호청 위에 할머니를 누이고 잘 감쌌다.


두근, 두근ㅡ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뛴다. 손을 놓고 눈을 감았다. 다시 갈등의 바람이 인다.


[괜찮다. 아가. 괜찮아.]


할머니의 편안하게 감겨진 눈이 그리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리 믿고 싶었다.


할머니를 감싼 호청을 가만히 품에 안았다. 검불처럼 가벼웠다.


문 밖으로 나서자 이쁜이가 일어나 다가왔고, 졸고 있던 달빛이 깨어나 해선의 발 앞을 비췄다.


밤 이슬에 할머니를 감싼 호청이 젖지 않도록 따스한 바람을 일으켰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송윤정네 집.


정적과 음습함이 감돌았지만 해선이 들어서자 금세 온기가 돌았다.


아들 내외, 그러니까 송윤정의 아버지와 엄마가 기거했던 방에 할머니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루 밑 깊숙한 곳에서 먼지투성이 보퉁이 하나를 끄집어냈다.


바람을 일으켜 먼지를 털어내고 보퉁이를 풀자, 보자기 안엔 또 다른 보자기가 있었다. 닳아 해진 할머니의 적삼을 바느질로 이어 붙여 만든 거였다.


싸고 또 싸맨 보자기 안에서 나온 건,


은 비녀 하나, 금가락지 하나, 꼬깃꼬깃 접혀진 종이 돈 한 묶음, 송윤정 아버지와 찍은 젊은 시절 할머니의 사진.


곱게 빗어 쪽진 머리의 여인이 까까머리에 배꼽을 드러낸, 주근깨 투성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빛바랜 흑백 사진 속 앳된 엄마의 눈길이 아이를 향해 있었다.


***


[아가...]


네, 할머니.


[우리 집 마루 밑, 거기 윤정 애비한테 줄 게 있다.]


아저씨는 어딨는데요?


[오면. 오면 꼭 좀 전해 주거라.]


안 오면요?


[...올 거야. 올 거다. 그리고 날 좀, 영감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련?]


···.


할머니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려 했다. 처음엔.


할머닌 마지막까지 아들을 지키고자 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불효막심 패륜으로 손가락질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런 일은 없어야 했다.


짐짓, 할머니 생각에 동조했다.


그래서,


조용히 누구도 모르게 감히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 했었다.


하지만,


흑백 사진 속, 젊디 젊은 할머니 모습이 박해선을 흔들었다.


할머니의 서사가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한평생 아들 만을 위해 살았던 모진 삶이었다. 마지막을 그 아들에게 버림 받는 삶은, 한 인간에게 해서는 안될 짓이다.


그건,


죄악이다.


[할머니. 죄송해요. 할머니 부탁을 들어드릴 수 없겠어요.]


***


다음날 아침,


화라리가 발칵 뒤집혔다.


동이 터오는데도 닭들이 울지 않는 것을 시작으로 집집마다 키우던 소들이 어미, 새끼 할 것 없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고삐는 어찌 풀었으며 외양간 문은 또 어찌 열었단 말인가.


“재, 재학 아부지. 좀 나와봐유.”

“이기 뭔일이래? 아니, 왜들 다 저기루 가는기야?

”이? 송경묵이네 집 아니래?“


엄마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지난 여름을 떠올렸다.


화라리 뱀들이 다 기어 나와 오작교를 놓았던, 그 상서롭지 못했던 날을.


'급기야 무슨 일인가 터지는구나...' 라고.


기이한 건,


동이 튼 지 한참이건 만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았으며,


그 많은 소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으나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단 거였다.


어미 소와 송아지들은 송경묵네 집으로 모여들었고,


사람들은 ‘도마네’ 집으로 모여들었다.


“가 보세”


‘도마네’ 아버지가 움직였다.

웬만한 일로는 동네 일에 직접 나서지 않았으나 화라리에 사는 내내 이보다 더 큰일이 있었던가.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다 겁에 질려 있다.


‘도마네’ 아버지 말고는 앞 장 설 이가 없음이다. 천식 아저씨와 동네 사람들이 조용히 뒤따랐다.


몇몇 아이들이 따라 나섰으나 어른들이 손짓으로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송경묵네 집 앞에 당도 했을 때,


쿠당-


마당 안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간신히 버티던 나무 문짝이 쓰러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음에도 어미 소와 송아지들은 미동도 않고 한 방향으로 서 있었다.


‘도마네’ 아버지가 앞장서자 조용히 길을 트는 누렁소들.


대청마루에서 사랑채로 이어지는 통로에 병풍이 세워져 있고, 병풍 앞 하얀 이불호청에 덮인 무언가가 있었다.


“허-!”

“어이쿠ㅡ!!”


일순,

사람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송경묵네가 사라진 지 얼마나 됐다고, 스산함이 감돌던 빈 집이 아니었던 가.


지금 저 모습은 누군가 일부러 갖다 놓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얀 천에 덮인 저건 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 때,


음머ㅡ.


지난번 팔려간 누렁소의 새끼 송아지가 처음으로 긴 울음을 토해냈다.


사람들이 자신의 팔을 쓸어 내렸다. 까닭 모를 소름이 돋아 올랐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도마네’ 아버지가 대청마루 가까이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댓돌 위에 신발을 벗어두고 망설임 없이 마루로 올라가 하얀 천이 덮어진 바로 앞에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았다.


'도마네'집에 기거하며 일을 돕는 득환이와 천식 아저씨가 양 옆으로 섰다.


‘도마네’ 아버지가 천을 걷어내려 손을 뻗자,


“제가 하겠습니다요.”

“제, 제가 하겠습니다.”


천식 아저씨와 득환이 동시에 나섰다.


‘도마네’ 아버지가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가게 한 후 천천히 하얀 천을 걷었다.


“끙!”


털썩!!


‘도마네’ 아버진 한쪽 무릎을 마저 바닥에 대며 짧은 신음을 토했고, 천식 아저씨와 득환이 제자리에 주저 앉았다.


음머ㅡ.


누렁소 새끼 송아지가 다시 긴 울음을 울자,


음머-음머-


다른 어미 소와 새끼 송아지들이 따라서 긴 울음을 울었다.


동네 사람들 모두 주저 앉거나, 돌아선 채 소리 죽여 울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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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웰컴투 in화라리(完) +1 24.01.18 100 4 13쪽
36 36화 웰컴투 in화라리 (1) 24.01.16 69 4 11쪽
35 35화 화라리 in 화라리 (2) 24.01.15 76 4 10쪽
34 34화 화라리 in 화라리 (1) 24.01.13 79 4 10쪽
33 33화 나비 (5) 24.01.10 94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0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2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5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4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3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7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4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8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2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4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0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1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7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4 6 11쪽
»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1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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