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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392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23 20:30
조회
152
추천
4
글자
12쪽

23화 졸업, 그리고

DUMMY

아무래도 박재학이 미친 것 같다.


그날 이후 각성이라도 한 걸까.


편미영 선생님이 영어 배우고 싶은 사람 신청하라고 했을 때,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요즘 공부에 불이 붙었다.


박재학 아버지는 은월할멈 주막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아들 자랑에 여념이 없고.


“이, 그러니깐두루 이것이 좀 늦되는 아아들이 있잖은가 왜? 재학이가 딱 그것이지. 허긴, 지 성 머리 안따라가믄 그것이 더 이상헌 것이고. 자, 자, 한 잔 쭉 하라고. 오늘 술은 내가 다 살테니깐두루.”


원차웅은 한 술 더 떴는데,


편미영 선생님 숙소에 모여서 영어 공부 하고, 끝나면 해선의 집으로 와서 같이 공부 하자고 조른다.


아니, 얘들아. 나는 공부하기 싫다고.


“얘들아, 너네들. 웬일이야? 너무 이렇게 열심히 하면 안되는데? 선생님 서울 집에도 못 가게 하고 말이야. 호호흥.”


저기요, 선생님. 그렇게 예쁘게 웃으면서 말씀하시면 아무도 안믿는다고요.


아무튼,


단체로 철이라도 든 건지, 다들 공부 재미에 단단히 들려서 어쩌면 화라리에 용이 떼로 날 지도 모르겠다.


***


“아유, 공부 너무 많이 하면 키 안 크는데? 이것 먹고 들 해?”


공부 많이 하면 키 안 큰다고 어디에 있는데요, 엄마?


해선 엄마 민경선이 만 면에 웃음을 얹고는 과즐과 구운 가래떡, 조청을 쟁반에 담아 방 안으로 들여 놓았다.


“엄마,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호호흥, 그럼 먹고 놀면서 해? 엄만 동미네로 마실 갔다 올게.”

“네, 엄마. 길 미끄러우니까 조심하시고요.”

“네 네, 아드님?”


음? 왜 이렇게 뒤통수가 뜨겁지?


돌아다 보니 장흑수, 원차웅, 박재학이 입을 헤 벌린 채 해선의 뒤통수와 살며시 문을 닫아 주시는 엄마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왜? 뭐??


쟁반을 친구들 앞으로 밀며 눈으로 그리 물은 박해선이었지만,


“와아, 이거 찹쌀 강정이다. 나, 이거 디게 좋아하는데.”

“새꺄, 니가 안 좋아하는 것도 있냐?”

“왜 없어, 인마. 나는 메뚜기도 못 먹고, 깨구락지도 못 먹는데.”

“그게 얼마나 맛있는데, 빙신아.”

“그럼 니나 많이 먹어, 인마.”


훗ㅡ!


박해선은,

어느새 철이 확 들어버린 친구들을 금세 알아챘다.


지난 여름,


뱀 굴에 가려던 친구들을 말리느라 저도 모르게 튀어나와 버린, 어른도 애도 아닌 말투를 흉내 내며 얼마나 놀려 댔던 놈들인가.


방금 전, 자신들과는 사뭇 달랐을 엄마와 해선의 대화를 듣고 당황했음에도 놀리지 않는 걸 보니 알겠다.


친구들은 겨울방학 동안 몸만 큰 게 아니라 마음까지 훌쩍 커 버렸다는 걸.


저리 밑도 끝도 없는 말장난으로 제 감정들을 숨길 줄도 알고.


너네들, 정말 철 든 거 맞구나. 왠지 좀 섭섭하네. 철, 그까짓 거 좀 천천히 들어도 좋은데.


***


한겨울에도 이쁜이와 달음박질 다니는 해선을 위해 민경선은 며칠 밤을 새워 특별한 걸 만들어 주었다.


토끼 털로 만든 귀마개와 장갑, 조끼였는데,


이쁜이도 등에서부터 배까지 감쌀 수 있도록 해선의 것과 똑같이 세트로 말이다.


개가 털 옷을 입고 다니다니, 참 개가 웃을 일이라고 혀를 차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둘이 하고 다니는 걸 보고 화라리 뿐 아니라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주문(?)이 폭주하여 엄마 민경선은 자꾸만 생각지도 않게 돈이 벌린다고 좋아 했다.


하여,


손가락 아프고, 눈 침침해지고, 허리 꼬부라지는 건 생각도 못하는 바보 같은 엄마를 위해 해선도 최선을 다 하는 중인데,


엄마. 바느질은 꼭 그렇게 밤에만 해야 하는 건가요?


영혼은 어른이지만 몸은 아직 한참 잠과 친할 나이이니, 때 아닌 졸음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음이다.


그래도, 엄마가 졸다가 바늘에 찔리면 큰일이니 밀려오는 잠 따위 가볍게(사실은 힘겹게) 쫓아내고 엄마가 수월하게 바느질 할 수 있도록 최하위 기술 시전을 아낌없이 하는 해선이었다.


***


해선은 오늘도 엄마의 토끼 털 겨울템을 풀 장착 하고 추위 따위 물렀거라, 신 나게 뛰었다.


언제나 마지막 코스는 개울가.


꽁꽁 얼어붙은 개울 얼음 판 위에 동네 꼬마들이 모여 썰매를 타고 있다.


서서 타는 애들, 앉아서 꼬챙이로 얼음 판을 지치는 애들, 썰매를 밀고 가다 올라탄 후 외 발로 타는 애들,


그런데, 서서 구경하는 애들은 하나도 없고 모두 자기 썰매를 타고 있었다.


원래 썰매가 없는 애들은 썰매 있는 애들을 뒤에서 밀어주고 한번씩 얻어 탔는데,


올 겨울엔 ‘도마네 아버지’ 가 득환이한테 일러 썰매를 만들어 줘서 이제 다들 자기 썰매를 가지고 와서 탔다.


자기 것이 있다는 건, 참 신기하다.


나무판자를 이어 붙인 바닥에 날 대신 굵은 철사를 대어 만든 허름한 썰매였지만, 난생 처음 생긴 자신의 것에 그토록 애지 중지 하여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으니 말이다.


넘어지고, 구르고, 부딪히면서도 재밌기만 한 아이들,


참 좋을 때다.


“박해서어언ㅡ!!!”


다리 기둥 아래 드럼통에서 타오르는 장작불을 쬐던 장흑수가 손을 들어 해선을 부른다.


“이쁜아, 너도 썰매 타고 싶어?”


월-월-


꼬리를 말고 빙글빙글 도는 걸 보니 여태 참았나 보다.


아이들만 북적대던 얼음 판 위에 이쁜이가 등장하자 떼로 달려들어 서로 자기 썰매를 태워주겠다고 난리 법석이다.


“야, 넌 얼음 판에서 굴러도 안 디, 안 죽겄다?”


젖은 양말을 벗어 들고 불 가까이에서 말리던 장흑수가 실실거리며 해선을 위아래로 훑는다.


“얼음 판에서 왜 구르냐? 이거 귀마개 너 할래?”

“...너나 해라.”

“그래? 알았다.”

“...!”


한 번 더 권할걸 그랬나. 왠지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다른 애들은 어디 갔냐.”

“어, 공부하러.”

“...어디서?”

“드카, 득환이 삼,촌.”

“뭐?”


지금 해선이 놀란 건 두 가지 이유 때문,


장흑수가 득환이를 삼촌이라 부른 것과, 친구들이 편미영 선생님도 저도 아닌 득환이와 공부를 한다는 것.


그럼 다른 애들도 이젠 삼촌이라 부르는 건가? 잊고 있었네.


그런데, 득환이랑 공부를 한다고?


아이들보다 더 철 없이, 때로는 기꺼이 바보가 되어 놀아주던 득환의 모습과 공부를 가르치고 있을 득환의 모습에 괴리감이 너무도 크지 않은가.


어째 알면 알수록 궁금증을 주는 사람이네.


“넌 왜 같이 안 갔는데?”

“새, 아, 그딴 걸 왜 물어. 하기 싫으니까 안갔겄지.”


욕 없이는 대화가 거의 안되는 장흑수는 이상하게 해선에게만은 그 욕이 잘 안 나왔다.


“흑수야.”

“어.”

“너, 왜 돈 벌러 서울 간다고 했다가 취소 한 거냐?”

“몰라, 인,,,아, 그냥! 나도 모르니까 묻지 말어이?”


욕을 못하니 말도 잘 안 나오고 답답해 죽을 것 같은 장흑수가 속으로 후회했다.


‘새끼, 그냥 가게 놔 둘걸. 괜히 불렀어.’


아직 다 마르지 않아 김이 나는 양말을 그대로 뒤집어 신는 장흑수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미안하다, 장흑수. 너, 자식아. 집 나가면 그 길로 고생 길 훤히 열리는 거야. 지금 네 마음이 바뀐 걸 네 인생 최고로 잘했다 여길 날이 올 거다.


***


공연히 심사가 뒤틀린 장흑수는 제 누나 장월수가 밥 먹으라고 부르자 구세주를 만난 듯 가버렸다.


지치지도 않고 얼음을 지치던 아이들도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니 썰매 대신 바람만이 내달리는 얼음 판을 독차지한 이쁜이,


바람이라도 잡으려는 걸까. 아주 신이 났다.


해선은 어느새 다 타고 사그라져 온기만 남은 드럼통 안으로 살짝 바람을 불어 넣었다.


화르르륵!!!


바알갛게 살아 오르며 넘실넘실 춤 추는 불꽃,


바람을 따라 다니던 이쁜이가 휙 돌아 보더니 슬며시 해선의 곁으로 다가와 엉덩이를 붙인다.


이런, 털이 다 젖었잖아.


손바닥에 온기를 담아 몇 번 쓰다듬어 주자 금방 뽀송해지는 털,


녀석은 아예 배를 주욱 깔고 엎드려 두 앞발에 얼굴을 얹는다.


뭐냐, 이거 본격 불멍 자센데?


자고로 불멍엔 나무 타는 소리가 진리.


장작 몇 개와 자잘한 나뭇가지, 덤불도 가지고 와 넣었다.


타닥,타닥,타다닥ㅡ.


그래, 이거지.


상념들을 다 재우고 불꽃을 바라본다.


춤추며 너울대는 불꽃과 나무 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얼굴도, 가슴속도 함께 타오르는 것 같다.


문득,


상념을 다 재웠음에도 울고 싶어 지는 기분이 들며 떠오르는 생각들,


이전의 생이었다면 나는 이 곳에 없었을텐데. 그럼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엄마가 안 계신 이곳을 떠난 건 분명하다. 그러니 사는 동안 내내 이 곳을 그리워 하지 않았겠는가.


엄마가 그토록 그리웠음에도 그 날의 진실을 외면한 채 살았던 것처럼, 어쩌면 그 후의 날들도 끔찍이 아프고 괴로워 기억 속에서 지운 걸까.


엄마를 다시 만나고, 엄마의 목숨을 구했으니 되었다고, 그저 이렇게 엄마와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면 그만 이라고,


그리 생각하면서도 지난 생에 대한 궁금증은 의지와 상관없이 한 번씩 고개를 들고 이렇게 제 앞에 나타났다.


할짝-할짝-


또 이마를 찡그렸던 걸까. 이쁜이가 몸을 일으켜 해선의 손등을 핥는다.


“하하, 그래. 가자. 벌써 어둡다.”


월-월-


마지막까지 다 사르고 재가 된 장작처럼 해선의 머릿속 거미줄이 걷히며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


겨울방학 하자마자 오겠다던 순영인 개학이 코앞인데 감감소식이다.


딱히 기다린 건 아니지만 궁금하긴 하다.

이렇게 안 올 아이가 아니잖는가.


한번씩 동미를 보면 혹시 소식 온 거 없느냐 물어보려 했으나, 동미는 해선을 무슨 귀신 보기보다 더 무서워 하고.


하긴, 소식이 있으면 벌써 와서 또 쪽지를 던져 주고 갔을 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순영이 왜 안 오는지 한번씩 궁금해지던 긴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운동장이 꽁꽁 얼어붙어 서있기만 해도 발이 동동거리게 추운 2월의 어느 날,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눈물의 졸업식,


편미영 선생님은 울어서 퉁퉁 부은 개구리 눈으로 우리들 한 명, 한 명을 아주 오랫동안 안아 주셨는데,


여자애들은 선생님을 부둥켜 안고 같이 울었고(하재숙이 제일 많이 울었다.)


남자애들은 엉덩이를 뒤로 빼거나,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부끄러워 했다.


***


“해선아, 졸업 축하해? 빨리 가자. 버스 올 시간 다 됐어.”

“네, 엄마. 이쁜아, 같이 못 가는 거 알지? 미안하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졸업식 날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다며 읍내에 나가 교복이랑 학용품도 사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자고 하셨다.


“엄마, 졸업식 날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따로 있어요?”

“호홍, 그럼. 있지요.”


사실 해선은,


꿩 고기와 김치를 다져 넣어 빚은 만둣국이 더 먹고 싶었지만, 졸업식 날엔 꼭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궁금증을 자아냈던 것.


왜 그리 많이 우셨는지, 하재숙 만큼이나 개구리 눈이 된 엄마와 버스를 타고 읍내로 향했다.


졸업식을 한 학교가 많았는지 읍내는 장이 서는 날이 아님에도 활기가 넘쳤고,


꽃다발과 졸업장을 담은 색색의 통을 든 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먹을 것을 파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해선의 손을 꼭 잡은 엄마가 걸음을 멈춰 선 곳은,


낡고 촌스런 빨간 간판에 하얀 페인트로 ‘동화반점’ 이라고 쓰여진, 허름한 식당.


드르륵-


엄마가 유리 문을 열자, 후욱 끼쳐오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냄새.


ㅡ???


순간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듯 아득해지며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빠져드는 느낌,


다급히 숨을 참았다 뱉어내며 정신을 다잡자 휘몰아치는 기억들...


기찻길, 코스모스, 솜 뭉치, 노랑 머리, 검정 벨벳 원피스...


그리고,


...???


이....모??!!!!!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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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화 웰컴투 in화라리(完) +1 24.01.18 100 4 13쪽
36 36화 웰컴투 in화라리 (1) 24.01.16 69 4 11쪽
35 35화 화라리 in 화라리 (2) 24.01.15 76 4 10쪽
34 34화 화라리 in 화라리 (1) 24.01.13 79 4 10쪽
33 33화 나비 (5) 24.01.10 94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0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2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5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4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7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8 5 12쪽
»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4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69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0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2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199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7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4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0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5 6 12쪽
9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1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1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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