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쥬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쥬단
작품등록일 :
2023.11.28 13:30
최근연재일 :
2024.01.18 18:3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8,412
추천수 :
233
글자수 :
185,684

작성
23.12.05 10:50
조회
271
추천
8
글자
11쪽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DUMMY

며칠 후 순영이네 이사 가는 날,


동네 사람들이 신작로에 다 나와 모였다.


“순영엄마, 이거 기찻간에서 먹어. 이?”


최호승 엄마가 달걀 삶은 걸 보자기에 싸서 순영엄마 품에 안겼다.


“이거 감자 떡이야. 내 밤새 빚어 새벽같이 쪘다야. 쉬니깐두루 가믄서 다 먹어야 돼?”

“이거 옥시기야. 서울 가서 쪄 먹으라. 쉴까 바서 날 걸로 갖고 왔으니.”


천달수 엄마와 장흑수 엄마에 이어,


“성님. 보고 싶어서 어떡해요. 이거 조청이랑 다식이에요.”


해선 엄마 민경선이 자투리 천을 모아 만든 조각 보로 곱게 싼 것을 내밀었다.


순영이 엄마는 연신 옷 자락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눈가가 퉁퉁 부어 소복했다.


보따리, 보따리 싸 들고 나온 엄마들과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돌아서서 다시 잡고 울었다.


“아이고. 이러다 날 저물어두 못 가. 영 다시 못 볼것두 아닌데 왜들 기래? 어이, 순영엄마, 순영인 어디 가고 안 보여?”


순영이 아버지가 나서서 교통 정리를 했다.


눈물을 찍어내던 순영이 엄마는 그제야 사방을 살폈지만 어디에도 순영인 보이질 않았다.


***


월-월ㅡ.


이쁜아, 조용히 해!


끼이잉-.


“흐어엉..어,엉엉..”


순영이가 아까부터 담장 아래서 목 놓아 울고 있다.


그 날, 포도알을 문질러 초록 물이 든 리본 달린 하얀 원피스에 끈 달린 빨간 구두를 신은 채였다.


며칠 전 해선일 얼음 만들어 놓고 도망치던 용기백배 순영인 온 데 간 데 없고, 그저 열 두 살, 조그만 꼬맹이였다.


이쁜아, 가서 순영이 좀 안아줘.


끼잉?


꼬리를 한껏 아래로 내린 채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순영에게 다가가는 이쁜이.


“저리가아ㅡ흑흑. 아, 가라고오ㅡ!!”


이쁜인 순영이와 해선일 번갈아 보다가 그대로 앉아 앞발을 모아 제 얼굴을 올렸다. 어째 이 짓도 못해 먹겠단 표정.


울지 마. 울지 마라. 순영아.


열 세 살의 해선도, 앞선 삶을 살다 온 해선의 영혼도, 지금 이 순간은 도무지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답답했다.


순영에게 다가갈까 말까 망설이던 그 때,


치맛바람을 날리며 순영이 엄마가 나타났다.


“아유. 이 지지배가 왜 여기서 울고 지랄이여. 챙피허게. 언능 안일어날텨? 이러다 기차 놓치믄 어쩔라고. 아, 일어나-.”


“흐아아앙ㅡ. 글쎄 나는 서울 가기 싫다니까? 엄마, 아부지 혼자 가라고오오!!!”


제 엄마 손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순영인 고개를 돌려 해선이쪽만 보며 두 발로 버텼다.


급기야 순영이 아버지가 와서는 덜렁 들어 안아 어깨에 메고 가면서 해선에게 작별의 말을 고했다.


“해선아. 공부 잘 허고. 엄마 말씀 잘 듣고이?”


해선은 말없이 허리를 반으로 접어 인사했다.


방금 전까지 순영이 주저앉아 울었던 담장 아래로 뭉그러진 봉선화가 수북하다.


옷에 봉숭아 물 들었겠네...


이제 순영인 다신 볼 수 없는 건가.


눈썹 위 똑 단발, 앙 다문 입매, 세수 하러 가자며 아침 잠을 깨우던 모습, 별 거 아닌 일에 고개를 젖히며 까르륵 까르륵 웃던 모습...


조그만 키, 조그만 손, 조그만 얼굴, 온통 조그만 한 그 아이가 크게 크게 동그라미를 그리며 가슴을 헤집는다.


돌아서는데 바람에 살풋 실려오는 꽃 내음.


코 끝이 싸아하게 매웠다.


***


“떠났는가?”

“예...”

"끄응ㅡ."


‘도마네’ 아버지가 벽을 보고 돌아 누우며 앓는 소리를 냈다.


‘도마네’ 아버지는 순영이가 몹시도 탐이 났다.


새까맣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머리카락보다 더 까맣게 빛나는 눈동자, 이 촌구석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백옥 같은 살결, 거기다 똑똑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신작로 한 가운데서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는 순영일 보고 물었다.


“더운데 뙤약볕에서 무얼 하는 게냐?”

“길에 씨가 떨어져서요. 밭에다 뿌리는 거예요.”

“누가 알려 주더냐?”

“알려준 사람은 없어요.”

“그럼 그것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냐?”

“몰라요. 꽃이 피면 열매가 달릴 거고. 안 나면 거름이라도 되겠지요.”

“허ㅡ.”


기가 찼다.


'도마네' 아버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순영이를 며느리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그런데,


아카시아 향이 온 마을에 퍼지던 봄 무렵, 순영 아버지 서기철이 ‘도마네’를 찾아왔었다.


“...우리는 여서 지속 살고 싶지유. 기래두 순영이 외가에서 자꾸만 올라오라고 허니깐두루...지송해유,”


순영이 외가가 있는 서울로 이사를 간다고, 빌려주셨던 돈은 논, 밭으로 대신 갚겠노라고 했다.


‘도마네’ 아버진 잠자코 들으며 생각을 더듬었다.


‘내가 순영일 욕심 낸 걸 안 것인가? 입 밖으로 낸 적이 없는데. 혹시 마누라가...?’


“알았네. 내, 순영이 고것이 참으로 욕심 나서 며느리로 점찍었었는데. 이리 됐구먼.”


“어이구, 무신. 가당치도 않지유. 순영이 그 지지배 철딱서니두 읎구. 기냥 천둥벌거중이가 따로 읎대니까유? 서울 간다니께 아주 바람이 잔뜩 들어가꾸서는....”


순영이 아버지 서기철은 저렇게 말이 긴 사람이 아니다.


어차피 이리 된 마당에 슬쩍 운을 떼봤을 뿐인데 주절이 주절이 늘어 놓는 게...진즉 마누라 입 단속을 시키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다.


배움도 가진 것도 많지 않지만 자식을 끔찍하게 아끼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재물이 많다고는 하나 말 못하는, 병약한 ‘사위’를 들이고 싶겠는가.


“허허. 사람 하고는. 땀이나 닦으시게. 여기 선산도 있고. 영 다시 못 볼 것도 아니긴 하나 섭섭은 하구먼. 창식이네도 곧 서울로 떠난다 하고. 이러다 동네가 텅 빌 날도 올까 싶고 말일세.”


순영 아버지가 손바닥을 연신 옷 섶에 문지르는 걸 보고 ‘도마’ 아버진 더 이상 말하기를 멈췄다.


***


화라리와 개나리, 수오리를 통틀어 제일가는 부잣집 ‘도마네’.


우스갯 소리로 이제 막 걸음을 떼고 말문을 연 아이들조차 이 동네 제일 부자는 ‘도마네’ 란 걸 알 정도였으니.


원래부터 부자였는지, 열심히 모아서 부자가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누군가 태어나 보면 '도마네' 가 제일 부자였고, 그들이 사는 내내 제일 부자였으니, 죽을 때 쯤엔 더 큰 부자가 되어 있을 거라 믿을 밖에.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도마네’ 집에서 밭이나 논을 벌어 먹었고, 송아지를 데려다 어미 소만큼 키워서 갖다 주고 다시 송아지로 받아왔다.


농번기엔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새벽부터 나가 도마네 농사일을 도왔고, 그럴 땐 그 집안 식구 모두가 도마네 집에 가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 뿐인가,


급 전이 필요할 땐 달려가 융통을 해 썼다.


작달막한 키에 다부진 몸, 두텁두텁한 손, 그냥 딱 봐도 ‘돈’ 이라고 써 붙인 얼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인정이 있고, 자애로워 사람들의 신망이 높았다.


하지만,


그 부잣집에도 없는 게 있었으니, 자식 복이었다.


‘도마’ 위로 두 자식이 더 있었지만 모두 돌을 넘기지 못했다.


어찌어찌 ‘도마’가 태어났을 땐 이미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


‘도마’가 첫 돌을 무사히 넘겼을 땐 사흘 밤낮 동네 잔치를 했었다.


그런데,


아홉 살을 막 넘긴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말문을 닫았다.


한다 하는 의원들을 찾아 전국을 다 돌았으나 아무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다만, 처음부터 말을 못한 게 아니었고, 들을 수는 있으니 언젠 가는 다시 말문이 트일 거라는 속 터지는 말 뿐이었다.


답답함에 이름 난 절을 찾아 법력 높은 스님 앞에 아이를 데려갔을 때 스님이 말하길,


"때가 되면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나무타미 관세음보살."


그 때가 언제인지 묻는 말엔 공손히 합장을 하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난초 같은 해사한 얼굴을 하고 먼 곳을 바라보는 아들을 보면,


‘하, 이깟 재물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도마’ 아버지는 홧병에 제 명대로 못 살 것만 같았다.


***


드디어 개학 날이다.


6학년 1반 담임 편미영 선생님을 다시 보면 어떤 기분일까? 우리들이 첫 제자였던 선생님은 오르간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제일 좋아 하셨다.


나를 참 많이 예뻐하셨지.


교실은 여름 내 새까맣게 타서 눈만 반짝이는 애들로 시끌벅적했다.


방학 내내 거의 매일 같이 멱 감고, 꼴 베러 다니고, 누구네집 대청마루에 모여 찐 옥수수 먹으며 배 깔고 놀던 사이였지만, 교실에서 보니 또 새롭다.


해선은 자기 책상을 찾아 자리에 앉아 소란스런 투닥거림을 즐겼다.


“야,야. 너네들 일루 와 봐. 내가 지인짜 무서운 얘기 해주께.이?”

“어, 뭔데. 뭔데?”

"안 무섭기만 해라."


수다쟁이 장흑수가 애들을 모은다.


무슨 얘길 할지 뻔하군. 필시 그 날의 뱀 이야길 하려는 걸테지.


“그니까, 으이? 아침에 엄마들이. 으이? 마악 가다가. 으이?”

“아, 참말로. 그, 으이? 으이? 좀 하지 말고 쫌 하라니까?”


장흑수가 다시 입을 떼려던 그 때,


우애앵-으앵ㅡ!!!!!


하재숙 동생 하재희의 울음소리가 교실의 소란스러움을 일시에 덮었다.


우루루-


“오구, 울 애기. 시끄러워쪄여?”


단박에 재희 곁으로 간 아이들이 손짓 발 짓을 해 가며 재희를 달랬다.


“야ㅡ!! 장흑수! 니들이 떠드니까 울 재희 깼자너!”


“야야, 기따가 운동장에로 모이믄 내 다시 해주께? 재희, 울지마.이? 우룰룰루-까꿍ㅡ.”


***


작년 겨울, 화라리엔 유난히 갓난아기 울음이 끊이질 않았는데, 하재숙도 그 겨울 열 살 터울의 동생이 생겼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서울 갔던 동미 언니 향미가 명절 쇠러 오면서 원두커피를 가져왔다.


향미가 한 번씩 왔다 가면 사람들을 불러 선물 꾸러미 자랑하는 게 낙이었던, 동미 엄마 이인숙씨가 사람들을 자기 집으로 불렀다.


“이거 우리 향미가 추석 때 갖고 온 것인데, 아주 귀한 거래유.”

“그거이 새까만 게 장물(간장) 아니래유?”

“모르는 소리 말어. 이거이 ‘코피’ 라는 것인데, 서울 사람들은 비싼 돈 내고 종지 만한 고뿌에다 먹는거래니깐두루?”

“코피? 이름 한번 고약허네. 색깔이는 꼭 밥 탄 거 낋인거 같구만?”


동미 엄마 이인숙은 봉지째 쏟아붓고 끓인 가마솥 안 ‘코피’를 바가지로 휘휘 저어 떠서 맛을 봤다.


"이상허네. 왜 이렇게 쓰다냐? 향미 고것이 타 줄 때는 달달 헌 것이 입에 착 붙었는데."


사람들이 목을 쭈욱 빼고 자꾸만 가마솥을 들여다 봤다.


“아, 얼렁 줘 봐유. ‘코피’ 맛이 어떤가.”

“조금만 지달려 봐유.”


이인숙은 눈치를 보며 아끼고 아끼던 설탕을 조금씩 부었다.


그래도 어째 계속 쓴 맛이 돌자 두 눈 꾹 감고 누런 설탕 봉지를 거꾸로 탈탈 털어서 들이부었다.


“으이. 요 맛이지. 인제 되었구만?”

“얼렁 줘 봐유.”


동네 사람들은 그날 달디 단 ‘코피’를 막걸리 사발로 원 없이 얻어 마셨고.


그로부터 사흘 동안 희한하게 잠 안 오는 밤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첫 눈이 오기 전, 화라리엔 며칠 간격으로 늦둥이가 셋이나 태어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회귀자의 소소한 컨츄리라이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7 37화 웰컴투 in화라리(完) +1 24.01.18 100 4 13쪽
36 36화 웰컴투 in화라리 (1) 24.01.16 69 4 11쪽
35 35화 화라리 in 화라리 (2) 24.01.15 77 4 10쪽
34 34화 화라리 in 화라리 (1) 24.01.13 79 4 10쪽
33 33화 나비 (5) 24.01.10 95 3 9쪽
32 32화 나비 (4) 24.01.09 91 3 10쪽
31 31화 나비 (3) 24.01.08 93 3 10쪽
30 30화 나비 (2) 24.01.05 116 5 10쪽
29 29화 나비 (1) 24.01.03 126 4 10쪽
28 28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2) 24.01.02 125 4 12쪽
27 27화 미안하다, 선물이야 (1) +1 23.12.31 124 4 9쪽
26 26화 딱 한번만 (2) 23.12.29 128 4 10쪽
25 25화 딱 한번만 (1) 23.12.28 125 4 11쪽
24 24화 또 다른 기억 23.12.26 129 5 12쪽
23 23화 졸업, 그리고 +1 23.12.23 153 4 12쪽
22 22화 북극성 23.12.21 155 5 12쪽
21 21화 파티 (Party 아이엠그라운드 지옥) +1 23.12.20 170 6 12쪽
20 20화 득환이 (2) 23.12.19 171 5 12쪽
19 19화 득환이 (1) 23.12.18 182 5 12쪽
18 18화 '도마네' (3) 23.12.16 191 5 12쪽
17 17화 '도마네' (2) 23.12.15 200 5 12쪽
16 16화 '도마네' (1) 23.12.13 208 5 11쪽
15 15화 송윤정네 할머니 (3) 23.12.12 205 6 11쪽
14 14화 송윤정네 할머니 (2) 23.12.11 205 5 12쪽
13 13화 송윤정네 할머니 (1) 23.12.09 211 7 11쪽
12 12화 하찮은 게 더 힘드네 23.12.08 232 6 11쪽
11 11화 울지마, 누렁소 (2) 23.12.07 240 6 11쪽
10 10화 울지마, 누렁소 (1) 23.12.06 266 6 12쪽
» 9화 순영이, 이사 가던 날 23.12.05 272 8 11쪽
8 8화 입술이 누에 같잖아 23.12.04 302 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