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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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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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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8,691

작성
23.06.0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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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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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1쪽

바보와 멍청이는 언제나 큰 쪽을 선호한다. (15)

DUMMY

토비의 입장에서 보자면 처음 조우했을 때부터 루나의 태도는 시건방진 것이었다.

물론 토비는 얄팍한 아돌프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인간이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억지로 겁을 주거나 화를 낼 정도로 얄팍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토비는 불쾌했다.

루나의 태도가 스스로를 의심에 빠지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토비는 쭉 어떤 의심을 품고 있었다.

예컨대 자신이 인간들 틈에 너무 오래 섞여 있던 나머지, 아돌프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위엄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종류의 의심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루나의 제안은 그런 의심을 없애버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아무튼 몇 살 먹지도 않은 꼬마 아이에게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루나의 방해하지 말라는 말은, 반대로 루나가 자신을 위협적인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꽤 유치한 생각이었지만 아무튼 토비는 그 점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생각을 마친 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납득하지 못할 이유도 아니니 받아들이지. 그런데 그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너는 어떻게 그, 저주를 사용할 수 있는 거냐?"


"내게 친절히 알려줄 의무라도 있나?"


"음. 물론 네게 그런 의무야 없지. 하지만 내가 알기로 저주라는 것은 분명..."


"마녀!"


대화를 도중 갑자기 큰 외침이 들려왔다.

토비와 루나가 거의 동시에 눈썹을 모으며 리버를 바라보았다.

리버는 황급히 자신은 절대 아니라는 의미의 손사래를 쳤다.

가게 안의 세 사람이 어리둥절함을 느꼈을 때 다시 한번 외침이 들려왔다.


"마녀는 순순히 모습을 드러내라!"


이번에는 세 사람이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고 있었기에 소리의 출처는 명확해졌다.

고함 소리는 가게 안이 아닌 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루나가 인상을 찡그리자마자 다음 외침이 들려왔다.


"안에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루나가 더욱 인상을 구겼고, 토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한편 리버는 그 목소리가 상당히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기억을 오래 곱씹을 필요는 없었다.

불과 이틀 전에 술집에서 함께 떠들던 목소리였으니 틀림없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오랜 친구였다.

리버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마빈?"


바깥에서 들려오는 건 분명 마빈의 목소리였다.

리버는 곧바로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불쑥 루나가 팔을 들어 리버를 제지했다.

루나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카니쿨라 같은 놈들이 벌써 냄새를 맡았군. 시간 없으니 빨리 대답해. 이 가게에 저기 말고 다른 출입구는 없어?"


아돌프 앞에서도 여지껏 당당했던 루나는 왠지 모를 초조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리버는 그 태도 변화에 의아함을 느꼈다.

리버는 루나를 안심시켜주기로 했다.

리버는 지금 가게를 찾아온 것은 자신의 오래된 친구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

또 가게에 놀러 온 친구를 마중 나가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라는 점을 설파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루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대꾸했다.


"그래 네 친구겠지. 그리고 폴 영지의 치안대원일 테고."


리버가 충격 받은 얼굴로 루나를 바라보았다.

다만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냐'든가 혹은 '그렇다면 설마 그저께 마빈과 함께 릴리에게 추근댔던 사실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따위의 질문을 꺼낼 틈은 없었다.

그런 의문을 내뱉으려던 순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외침이 가게 안에 울렸기 때문이다.


"진입해!"


단순한 세 음절이자 깔끔한 한 어절의 외침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불러 일으킨 효과는 전혀 깔끔하지 않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 외침 이후의 상황은 꽤나 난잡했다.

가장 먼저 퍼석-하는 소리를 내며 정면에 있던 통유리의 중심이 가게 안으로 움푹 파였다.

당연한 수순으로 다음 순간 유리는 허물어지며 박살 났다.

조각조각 부서진 유리들이 바닥에 구르고, 박히고, 저들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가게를 메웠다.

이어서 가게 안으로 박차고 들어온 것은 폴 영지의 치안대원들이었다.


물론 리버의 만능 잡화점에 그간 성정이 사납다거나, 혹은 난폭하다고 불릴만한 손님들이 아주 방문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토비만 해도 꽤 사나운 손님이었다.

그러나 가장 거친 손님들도 고작해야 가게 문을 부서져라 열고 들어오는 정도에 그쳤다.

지금 치안대원들처럼 실제로 가게를 박살내면서 진입하는 손님들은 일절 없었다.


그때까지 쭉 문 앞에 서 있던 토비는 바로 뒤에서 들리는 갑작스러운 파열음에 몸을 한 번 움츠렸다.

그러더니 곧바로 황망한 표정으로 원래의 자세를 취했다.

몸을 꼿꼿이 세운 토비는 자신이 몸을 움츠렸다는 사실에 약간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겁을 먹어서 몸을 움츠렸다는 것은 당연히 언어도단에 가깝다.

움츠린 것은 아돌프들의 청각이 지독하게 예민하기에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토비는 스스로를 꾸짖고 싶은 심정이었다.

토비는 진작 저들의 접근을 알아채지 못한 점을 자책했다.

저토록 시끄럽게 접근했다면 한참 전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하지만 루나에게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었던 탓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토비와 달리 루나는 갑작스러운 난입에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싸늘해진 표정이었다.

루나는 차가운 얼굴로 침입자들을 쏘아보았다.

마지막으로 리버의 경우 무서울 정도의 살의를 내뿜고 있었다.

가게의 전면 유리를 죄다 박살 낸 무례한 침입자는 총 세 명이었다.

그리고 세 명 중 선두에 있는 인간은 리버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리버는 차라리 낯선 괴한이었다면 이토록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장 오래된 지인이 자신의 가게를 박살 내고 있다는 점은 리버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한편 선두에서 진입한 마빈은 상당히 기세가 등등한 상태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폴 영지의 치안대장이 몇 일 전부터 출장을 나간 상태였다.

그 바람에 마빈은 이 중대차한 임무를 맡을 수 있었다.

마빈은 자신이 떠맡은 이 임무가 일종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물론 임무의 수행 과정에서 친구의 가게를 부숴버린 부분은 찜찜하긴 했다.

하지만 어차피 이 임무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리버는 적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아니, 오히려 협조만 잘 해주면 둘 다 영달하게 될지도 모르지.'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내기만 하면 자신에게도 친구에게도 출세의 기회가 될 것이 확실했다.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 현장에서 벌어질 예기치 못한 일들에 대한 예상.

비록 임시이지만 현재 치안대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

이 모든 요인들로 인해 마빈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적잖이 흥분한 상태였다.

그래서 마빈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기세 좋게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폴 영지의 치안대다! 마녀는 순순히! ...응?"


의기양양하게 외치던 마빈은 말을 끝 맺지 못했다.

대신 짧은 의문성을 내뱉었다.

마빈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인간이 이상하리만치 몸집이 큰 데다가 털까지 지나치게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문스러움과 함께 마빈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쯤이면 머리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위치에 가슴이 있었다.

부연하자면 털에 덮여있어도 알 수 있을 만큼 탄탄한 근육질의 가슴이었다.

마빈은 이미 그쯤에서 핼쑥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럼에도 마빈은 거의 타성적으로 턱을 좀 더 치켜들었다.

마침내 마빈은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인간이 아니었다.

마빈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아돌프가 서 있었다.

정확하게는 지나친 소음 탓에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는,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화가 잔뜩 난 듯한 모습의 아돌프였다.



*



어느 쪽이냐 하면 마빈은 자신의 주량보다는 갑작스러운 호출 쪽이 문제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 전이나, 아니 최소한 세 시간 정도 전에만 임무의 내용을 알려주었더라면 술을 몇 잔 걸친 채 출동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 지금처럼 취한 탓에 인간을 아돌프로 착각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빈은 차라리 자신의 정신 쪽에 문제가 있길 바라며 눈을 한 번 부볐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의 앞에 있던 우락부락한 아돌프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아돌프가 왜 여기에...?"


마빈은 마치 토비가 곧 자신이 잡아 먹기라도 할 것처럼 몸을 떨었다.

마빈에게 용기가 부족하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확실히 현재 토비는 타 종족이 보기에도 썩 기분 좋은 표정이 아니었고, 성난 아돌프란 어느 종족에게도 더없이 부담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마빈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에게 덤벼든 것은 토비가 아니었다.

그때까지 상황을 주시하던 리버가 불시에 움직였다.

리버는 살기등등한 기세로 카운터를 훌쩍 뛰어 넘었고, 이어서 저돌적으로 마빈에게 돌진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대로 부딪히고 말 거라고 생각한 순간 리버는 멈춰 섰다.

정확히 마빈과 한 발자국 정도 남겨 놓은 지점이었다.

마빈은 얼빠진 표정으로 코 앞까지 다가온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리버? 안에 있었다면 어째서..."


마빈은 대답을 해줬더라면 굳이 가게를 부수는 난폭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됐을 거라는 의미로 말하려 했다.

하지만 리버는 듣고 있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리버는 철천지원수를 대하듯 사납게 마빈을 노려보며 외쳤다.


"야이 미친 자식아! 너 저 유리가 다해서 얼마인지는 아는 거야? 게다가 이 놈들은 다 뭐야? 얼씨구 조피에 드릭슨까지? 평소처럼 릴리의 술집에서 술이나 퍼 마실 것이지, 왜 치안대원들이 멀쩡한 남의 가게를 때려 부수고 있는 거냐고!"


바로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토비마저 한 걸음 물러서게 할 정도로 사나운 기세였다.

리버는 거의 토혈하듯 억울함을 토로하다가 종내에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이... 카니쿨라 같은 자식아! 내가 이 가게를 지으려고 얼마나...!"


그 급격한 감정 변화를 코 앞에서 바라보던 마빈은 미친 것은 네 쪽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유혹을 꾹 참았다.

마빈은 자신의 오랜 친구가 가게에 품고 있는 애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빈은 토비의 눈치를 한 번 살폈다.

그러고선 리버의 목에 팔을 두르며 상체를 숙였다.

두 사람은 마치 악당들이 소근소근 작당모의를 하는 듯한 모양새가 됐다.

리버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댄 마빈이 속삭이듯 말했다.


"일단 진정해라 리버! 유리값은 제대로 물어 줄 테니까."


"물어줘? 네가 무슨 수로? 저건 네 일년치 봉급이라고!"


가격을 듣고 나서 마빈은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한번 휘젓더니 다시 처음의 진중한 얼굴로 돌아왔다.

마빈은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어느 정도 침착함을 되찾은 마빈은 이내 뭔가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마빈은 마치 비밀스러운 얘기를 들려주는 인간처럼 낮게 외쳤다.


"가격이 얼마건 다 보상해줄 수 있어. 잘 들어라 리버, 지금 내가 맡은 임무는 아드리안 황제의 칙령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65 월향월향
    작성일
    23.07.25 00:30
    No. 1

    재미있는데 1편씩 장면전환되니 궁금한 스토리가 뚝뚝끊겨 아쉽기도 해요 무조건 1편씩 전환안하셔도 될거같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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