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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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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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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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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6)

DUMMY

어떻게 발생했는지 모를 연기는 무서운 기세로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잡화점은 그리 넓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가게 내부는 순식간에 뿌연 연기로 뒤덮였다.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시야가 막혔을 때, 한 병사가 거의 절규하듯이 외쳤다.

용케 집까지 도망치지 않고 버틴, 맨 처음 토비에게 하수인이라고 외쳤던 바로 그 겁 많은 병사였다.


"요술이야... 마녀가 요술을 부렸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었을 빈약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상황과,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그 병사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치안대원들은 당황한 채 마구잡이로 서로에게 저주니 마녀니 하는 외침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빈은 난생 처음으로 사람을 찌르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발악하듯 외쳤다.

물론 이 경우 마빈이 찌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맨 처음 분란을 조장한 그 병사였다.


"당황하지 마! 어차피 도망칠 곳은 없으니까! 대형을 유지하고 입구를 지켜!"


마빈은 각근히 노력했지만 치안 대원들의 소란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순간 마빈은 자신들이 이 정도로 당황하고 있다면 세 사람도, 그러니까 리버와 마녀 그리고 아돌프 역시 당황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빈은 방금 전까지 세 사람이 있던 장소로 고개를 홱 돌렸다.

연기에 가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


병사들이 소란에 빠진 사이 리버는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리버 역시 적잖이 당황하기는 했지만 치안대원들 만큼은 아니었다.

아무튼 사태가 발생한 곳은 리버에게 더없이 익숙한 공간이었다.

리버는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매캐한 연기를 막기 위해 천을 가져다 대려 했다.

그 순간 시야 속에서 누군가 리버의 손을 잡고 강하게 잡아 끌었다.

리버가 반사적으로 손을 뿌리치려하자 얼굴 바로 근처에서 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일단 가게 안쪽으로 안내해!"


그 내용에 설득됐다기보다는 그때까지 보여준 적 없던 루나의 다급함이 리버를 움직였다.

리버는 홀린 기분을 느끼면서도 앞장 서서 루나를 이끌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뿌연 연기 속에서 더듬거리며 가게 안쪽으로 이동했다.


한편 토비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리버가 공간의 익숙함 덕에 침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였다.

아돌프의 후각은 청각과 마찬가지로 지독하게 예민하다.

토비는 단지 냄새를 맡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의 위치를 꽤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냄새를 맡는 행위 자체는 약간 고통스러웠다.

연기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토비는 그중에서 두 사람의 냄새를 추적했다.

두 사람의 냄새는 가게 안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토비는 두 사람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연기는 무서운 기세로 퍼지고 있었지만 아직 가게의 내부까지 잠식하고 있지는 않았다.

누구보다 지형지물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리버가 가장 먼저 가게 뒤 편의 생활 공간으로 들어섰다.

이어서 리버의 손을 꽉 잡고 있던 루나가 다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뭉클거리는 연기 속에서 큰 형체 하나가 더 튀어나왔다.

리버와 루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소스라치며 몸을 틀었다.

연기 속에서 등장한 것은 두 사람을 뒤따라 온 토비였다.

토비는 코가 가려운지 검고 촉촉한 코를 계속해서 씰룩거리고 있었다.

토비가 따지듯이 말했다.


"젠장할... 물케꽃을 뭉쳐서 태운 건가? 냄새 한 번 지독하군."


루나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표시였다.

한 가지 의문점을 해소한 토비는 곧장 다른 의문을 해소하기로 했다.


"그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난리냐? 아까 네가 마녀라는 말은 또 뭐고?"


"설명하고 있을 시간은 없어. 하지만 살고 싶으면 이 영지에서 도망치라는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겠네."


그 뒤에 토비가 뭔가 불만 섞인 말을 중얼거렸지만 루나는 그것을 전부 일축해버렸다.

루나는 리버를 향해 다그치듯 말했다.


"그래서 다른 출입구는 어디에 있지?"


질문할 것은 오히려 자신 쪽에 잔뜩 쌓여 있다고 생각했지만 리버는 일단 루나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사실 도망치는 것 외에는 적절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리버는 마녀로 지목되어 끌려간 처녀들의 최후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더불어 하수인으로 지목 당한 자신과 토비가 받게 될 심문 또한 다분히 인간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결국 마녀사냥에 지목되었을 때 적합한 해결책이란 두 가지 정도 밖에는 없다.

마을 광장에 매달린 채 발 끝부터 불타 죽거나.

혹은 그렇게 매달려 죽기 직전까지 도망치거나.


별다른 고민 없이 리버는 도망치는 쪽을 택했다.

방법이 그것 밖에 없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결론을 내렸다면 다음은 수단을 강구할 차례였다.

아무튼 자신의 가게였으므로 리버는 어렵지 않게 다른 출입구를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리버가 떠올린 곳은 단지 건물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선 출입구와 공통점이 전혀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리버는 지금은 그 정도라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다락방에 창문이 하나 있어!"


루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곧바로 계단을 오를 태세를 취했다.

그때 리버가 황급히 외쳤다.


"잠깐만!"


두 사람이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리버는 서둘러 어떤 서랍장 앞으로 뛰어갔다.

리버는 서랍장 가장 밑 칸을 열고 그 안에서 가죽 꾸러미 하나를 꺼내 들었다.

꾸러미를 재빨리 품 속에 챙긴 리버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됐어. 따라와!"


루나와 토비는 짤랑거리는 소리에서 주머니 안에 든 것이 돈이라는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대번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리버에게 뭔가 말하려고 입을 꾸물대던 루나는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런 사소한 일로 꾸물거리고 있을 계제는 아니었다.

루나와 토비는 리버를 따라 곧바로 건물의 위층으로 뛰었다.


잠시 후 잡화점 옥상의 작은 창문에서 토비가 낑낑대며 기어 나왔다.

리버와 루나는 이미 지붕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건물이 꽤 높았던 덕에 세 사람은 영지의 상황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마빈의 말대로 처음에 왔던 병사들은 일부분이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자 영지의 곳곳에서 횃불을 든 채 잡화점으로 모여드는 병사들이 보였다.

포위망은 촘촘했고, 아무리 살펴봐도 도망칠 곳은 없었다.

토비가 투덜거렸다.


"건물에서 빠져나오면 뭐하냐, 어차피 이 좁은 영지를 벗어날 수가 없는데!"


루나는 토비를 한 번 쏘아보았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결국 루나마저 약간 침울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을 때 상념에 빠져있던 리버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어쩌면... 거기로 가면 될지도 몰라요."


"뭐? 어디 말이냐."


토비가 되물었다.

리버는 두 사람에게 확신에 찬 눈빛을 보내면서 자신이 생각한 것을 전부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루나의 인상이 구겨졌다.

리버가 달래듯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어. 이 영지는 좁으니까 어디로 도망치든 금방 붙잡힐 거야."


루나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거림이 신호라도 되는 양 세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지붕을 탔고, 몇 개의 건물을 이동했다.

마침내 마지막 건물에서 세 사람은 조심스럽게 영지의 지면으로 내려 섰다.

그곳은 리버의 가게가 있던 곳과 비슷한 으슥한 골목길이었다.

골목길로 내려선 후 리버는 골목의 한 구석으로 이동했다.

두 사람 역시 리버를 따라 움직였다.

잠시 후 리버가 바닥에 있는 둥근 모양의 철판 앞에 섰다.

리버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철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다음 순간 토비가 허리를 숙였다.

토비는 바닥의 둥근 철판을 들어 올리며 무심하게 말했다.


"망설일 시간 없다."


세 사람은 서로 눈빛을 짧게 한번 주고 받은 뒤 차례대로 둥근 철판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있던 뒷골목에서 덜컹-하는 소리가 한 번 크게 울려 퍼졌다.

이내 폴 영지의 지상에서 인간 남녀 한 쌍과 아돌프의 모습을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수도의 사다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다만 축축했고, 무지하게 더러웠다.

루나는 의도적으로 마지막을 자처했다.

루나는 토비의 털이 훌륭한 헝겊 역할을 해줄 거라 생각했다.

그리 틀린 추측은 아니었다.

토비가 짚은 자리들은 그나마 깨끗했다.

마침내 가장 뒤에서 내려오던 루나의 발이 하수도 바닥에 닿았다.

그리고 발이 닿은 것과 거의 동시에 알 수 없는 방향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윽스윽-하는, 마치 바닥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것 같은 소리였다.

가장 먼저 소리를 포착한 토비가 말했다.


"빗자루로 바닥을 쓰는 것 같은 소리군. 잠시만, 우리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하수도를 윙윙 맴도는 탓에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토비 역시 정확히 유추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은 확실했다.

토비와 루나가 곧바로 인상을 구기며 전투에 대비하는 자세를 취했다.

루나는 단검을 빼냈고, 토비는 손톱을 빼냈다.

리버는 잠자코 선 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 하수도 안을 울리던 기분 나쁜 소리가 불현듯 뚝 하고 멈췄다.

토비와 루나는 숨 죽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수도 안이 지독하게 어두웠으므로 그리 큰 실효성은 없는 행동이었다.

리버는 긴장했다.

그러나 옆의 두 사람이 긴장하고 있는 이유와는 전혀 다른 이유였다.

리버는 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곧 만나게 될 사람에 대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긴장이 낯선 것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했다면, 리버의 긴장은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에 대한, 일종의 어색함에 가까웠다.


기묘한 정적이 흐르던 와중, 부지불식간에 세 사람의 눈 앞에서 환한 불빛이 터졌다.

불빛이 터짐과 동시에 그 아래에서, 정확히는 세 사람과 거의 서너 발자국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한 형체가 불쑥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빛에 쏘여졌고, 또 여태 들리던 소리의 정체가 등장한 탓에 토비는 화들짝 놀라며 손톱을 세웠다.

토비가 금방이라도 손톱을 휘두를 자세를 취했다.

그때 리버가 황급히 토비와 의문의 형체 사이로 뛰어들었다.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리버는 양팔을 쫙 벌렸다.

누가 봐도 싸움을 중재하려는 동작이었다.

토비와 루나는 미간을 모으면서도 일단 살기를 거뒀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얼마 동안 어정쩡한 자세로 멈춰 있던 토비와 루나는 잠시 후에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어떤 무스였다.

그때까지 들려오던 소리는 그 무스의 꼬리가 바닥에 쓸리는 소리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스는 세 사람의 바로 앞에서 램프에 점화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갑작스러운 무스의 등장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자 리버가 중재하기 위해 벌렸던 양 팔을 접었다.

리버는 무스를 향해 돌아섰다.

이어서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무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요 에이튜."


호의적이고 의례적인 인삿말이었다.

그래서 토비는 당연히 상대 쪽에서도 비슷한 인삿말을 건네 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에이튜라 불린 무스는 살갑게 대꾸해주지 않았다.

에이튜는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리버를 응시했다.

리버는 말없이 그 눈을 마주 보고 있었다.

문득 에이튜의 커다란 앞니 두 개가 드러났다.

에이튜는 세 사람을 향해 낮게 읊조리듯 말했다.


"리버. 내가 다시는 이곳에 내려오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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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11) 23.06.17 108 7 13쪽
25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10) 23.06.16 110 6 13쪽
24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9) 23.06.16 120 7 17쪽
23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8) 23.06.15 119 8 14쪽
22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7) 23.06.14 126 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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