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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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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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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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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3)

DUMMY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폴 영지의 병사들은 현재 리버의 만능 잡화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가장 냉정하게 보더라도 치안대원들은 모두 평화로운 시골 영지를 사랑하는 순수한 청년들이었다.

순수하긴 했지만, 고작 애향심 하나로 아돌프와 맞서 싸우겠다는 만용을 부릴 만큼 멍청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병사들은 마빈의 명령에 따라 기세 좋게 가게 안으로 쳐들어가기는 했다.

그리고 병사들의 사나운 기세는 정확히 거기까지였다.

치안대원들은 자신들이 대적해야 할 상대가 아돌프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출동 전에 놔두고 온 장비가 있다'거나, 혹은 '카니쿨라의 저녁밥을 챙겨주는 것을 깜빡 잊고 왔다'는 등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를 하나 둘 떠올리기 시작했다.


참고로 그 자리에 있던 병사들 중 몇 명은 이전에 토비가 폴 영지에 머물렀을 때 토비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영지를 산책하는 토비를 흘끗 봤던 것이 고작이었던 그때와는 달랐다.

지금 토비는 자신들과 직접 대면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화난 사람처럼 보였다.

이 경우 앞쪽 보다는 뒤 쪽의 이유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병사들은 토비를 화나게 만든 것이 자신들이 연출한 폭력적인 상황과, 각종 소음 때문이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해력이 가장 빠른 병사 한 명이 슬금슬금 가게 밖으로 물러났다.

공포는 순식간에 전염됐고, 이내 다른 병사들도 그 이해력 빠른 병사와 똑같은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마빈을 제외한 모든 병사들이 마치 자신과 이 상황은 아무 관계도 없다는 듯 딴청을 부리게 되었다.

다만 치안대원들은 차마 임무를 등지고 도망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잡화점의 입구 앞에서 반원을 그리며 포위진을 만들기는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병사들이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토비가 자신들이 아닌 마빈에게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두 번째는 잡화점의 주인이 그들의 오랜 친구였다는 점이었다.

일단 병사들은 카운터에 서 있는 괴상한 차림의 여자나, 혹은 분노에 찬 아돌프를 자신들이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여자와 아돌프는 마빈에게 주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병사들이 상대해야 할 건 평소 술집에서 함께 농담이나 따먹던 잡상인이 분명했다.


토비는 병사들이 전부 자신에게서 멀어진 것을 보고서 시원스레 콧김을 한번 내뿜었다.

겁에 질린 인간들의 모습에서 토비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 같은 것을 느꼈다.

물론 평소라면 그런 얄팍한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지만, 루나의 시건방진 태도를 겪은 이후라 그렇게 느껴졌다.

역할이 애매했던 토비는 일단 아돌프들의 전통에 따라 사태를 관망하기로 결정했다.

보통 아돌프의 분쟁은 부족의 우두머리끼리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토비의 생각에 지금 이 장소에는 두 명의 우두머리가 있었다.

일단 마빈이라는 남자는 병사들의 우두머리가 분명했다.

그리고 이 가게의 주인은 당연히 리버였다.

토비는 우두머리끼리 대화로 잘 풀어갈 수 있다면 굳이 자신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 리버는 가게를 한 번 둘러본 것만으로 그 모든 상황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리버는 마빈에게 시선을 돌리고선 닦달하듯 말했다.


"지금 너희가 하고 있는 짓이 황제의 칙령이라는 말이야? 내 가게를 죄다 때려 부수는 것이 황제의 칙령이라고?"


"아냐 리버. 이건 마녀 사냥이야. 여기 숨어 있는 마녀를 잡아 들이라는 분부가 수도에서 떨어졌다고, 그것도 무려 아드리안 황제가 직접 말이야! 지금은 일단 가까운 곳에 있는 치안대원들만 데려 왔지만 조금 있으면 아마 영지의 모든 치안대가 몰려 올 거야."


"...전부 온다고?"


"그만큼 중요한 임무야. 황제의 칙령이잖아. ...그렇게 노려봐도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고. 어차피 나 같은 말단은 지시 받은 대로 움직일 뿐이니까. 너도 알잖아?"


다시 화를 내려던 리버는 문득 작금의 사태에 상당히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로 미루어봐서 치안대원들이 받은 임무란 마빈의 말대로 마녀사냥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라면 황제의 칙령이 내려왔다는 점은 아무래도 수상쩍다.

일단 영지에 마녀가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흔한 일이다.

발견하자마자 서기관에게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근처에 돌아다니는 시민들 중 아무나 붙잡고 얘기해도 어차피 결과는 비슷하다.

어차피 얘기를 들은 시민이 곧바로 서기관에게 신고할 테니까.

그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마녀사냥은 결코 황제가 나설 만큼 중대사가 아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페루스 잡는 칼로 카니쿨라 잡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사태가 의심스러웠지만 그보다 리버는 자신의 감정이 들끓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리버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내부에서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역겨움 같은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마빈이 마녀 사냥이라는 단어를 꺼낸 직후부터였다.

리버는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았다.

우선 리버는 자신의 친구가 치안대원이라는 사실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리버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여기에 마녀는 없어 마빈."


"아니 있어."


고개를 가로 저은 마빈이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마빈의 손가락 끝은 루나를 향해 있었다.

곧바로 부정하려던 리버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면 루나의 결백을 주장할 마땅한 근거가 없었다.

루나는 겉모습도 괴상한 데다 행동이나 말투도 낯설었다.

이 경우 리버에게 있어서 낯설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낯선 감정이었다.

리버가 가진 특이한 직업은 몇 년 동안 수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토비가 말했던 저주도 있었다.

그것이 마법이었다면 상관없었겠지만 루나는 본인의 입으로 분명 저주라고 말했다.

아무리 모른 척 외면하려 해봐도 모든 상황은 계속해서 한 가지 결론으로 치닫는 것 같았다.

리버가 입을 다물고 있자 마빈이 명백하게 동정 섞인 눈빛으로 속삭였다.


"리버. 네가 왜 마녀 사냥을 끔찍하게 여기는지는 알고 있다. 그걸 내가 모를 리 없지. 네가 이 일에 휘말리게 된 건 진심으로 유감이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나도 결코 이 짓거리를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야. 웬만해선 나서고 싶지 않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고. 이건 황제의 칙령이니까 말이야."


마빈의 눈빛을 본 리버는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 자신이 마빈에게 필사적으로 반박하고 있는 이유는, 혹여 무고한 인간이 억울하게 체포되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리버는 단지 자신의 인생에서 두 번째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꼴을, 그것도 눈 앞에서 벌어지는 꼴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거기에 가져다 붙이는 다른 모든 이유는 기만이며 합리화였다.

리버는 인간성의 전락을 두 번이나 겪을 자신도 없었을 뿐더러, 그로 인해 인간을 더욱 혐오하게 되는 상황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꽤 오랫동안 고민하던 리버는 잠시 후 결론을 내렸다.

리버는 자신이 첫 번째 마녀사냥을 경험했을 때 가졌던 신념을 끝까지 고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어떤 무스는 난처한 사람을 눈 앞에서 보게 된다면 반드시 손을 내밀라고 말했다.

이 경우에 난처한 사람이란 당연히 루나일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신념이며, 결코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지만 사실 의미 없는 말이다.

어차피 모든 신념과 합리성은 개인의 것이다.

리버는 루나를 계속해서 변호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곧 리버가 어떤 결의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


"증거 있어? 대체 어떤 증거가 있어서 루나가 마녀라고 확신하는 거지?"


리버의 말을 듣던 와중 마빈의 눈이 일순 둥그렇게 커졌다.

뭔가 대답하려던 마빈이 생각을 바꿨는지 대답 대신 황급히 품 속에 손을 집어 넣고 뒤적거렸다.

잠시 뒤 마빈이 품 속에서 꺼내든 것은 질 좋은 양피지였다.

마빈은 양피지를 위 아래로 여러 번 훑었다.

마빈의 시선이 어느 지점에서 뚝 멈췄다.

이어서 마빈은 양피지를 리버가 볼 수 있도록 반대로 돌렸다.

그러고선 양피지의 한 부분에 검지를 올려 놓으며 그 부분을 리버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검지가 위치한 곳에는 라르토 루나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방금 전에 너, 분명 저 여자를 루나라고 불렀지? 그래 저 애가 루나였군. 여기 적힌 것 보이지? 라르토 루나. 좋아 일단 이름은 정확히 일치하는군."


마빈의 말을 이해한 리버는 자신의 뺨을 세게 후려갈기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제 사람을 착각했다고 시치미를 뗄 수는 없어졌다.

변호를 시작하자마자 피고인이 빠져나갈 구멍 하나를 틀어 막아버린 무능한 변호인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대꾸했다.


"그게... 증거가 될 순 없어 마빈. 이름이야 누군들 못 적겠어? 나도 당장에 양피지 한 장을 구해다가 내가 아는 마을 처녀들의 이름을 얼마든지 적어 넣을 수 있다고."


물론 그렇게 날조된 공문서에는 황제의 인장이 찍혀있지는 않을 것이다.

리버는 당연히 그런 사실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리버의 말에 마빈은 고민하지도 않고서 확신에 가까운 투로 곧장 대꾸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봐. 결국 알게 될 테니까."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하냐고 되물으려던 리버는 입을 다물었다.

루나가 카운터를 벗어나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두 사람 앞까지 다가온 루나는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 폴 영지의 자랑스러운 치안대원 마빈. 그 양피지에는 뭐라고 적혀 있지?"


그 질문에 마빈은 리버와의 어깨동무를 풀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 태세를 취했다.

치안대원답게 마빈은 체격이 건장한 편이었다.

루나와 비교하자면 머리통 하나 정도는 차이가 났다.

하지만 루나를 바라보는 마빈은 긴장감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자신보다 한참 작은 여자에게 보이는 태도치곤 과했지만 마빈을 비웃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폴 영지는 시골에 가까운 곳이며, 무릇 시골에서는 미신이나 전설이라는 말이 과학이나 역사라는 말과 거의 똑같은 의미로 쓰이는 법이다.

옆에서 마빈을 지켜보던 리버는 곧바로 자신의 친구가 겁을 집어먹었음을 깨달았다.

마빈이 소리쳤다.


"가...가까이 오지 마라. 이 마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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