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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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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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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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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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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68,691

작성
23.06.11 23:22
조회
139
추천
8
글자
11쪽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4)

DUMMY

루나는 흥미롭다는 말투로 그러나 전혀 흥미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너희들은 날 잡으러 왔잖아. 나는 폴 영지의 치안대원들이 멀리서 용의자를 포박할 수 있는 흥미로운 마법을 배웠다는 정보는 입수하지 못했는데."


"떨어져라! 그런 식으로 날 현혹하려 해 봤자 소용없으니까!"


마빈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주변이 지나치게 적막했던 탓에 스릉-하며 검이 미끄러지는 소리는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선명하게 들렸다.

루나는 장검을 마주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태연했다.

오히려 토비 쪽에서 약간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마빈의 행동에 놀란 것은 가장 놀란 것은 오히려 병사들인 듯했다.

치안대원들은 마빈과 그의 장검을 바라보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물론 웅성거림의 내용은 주로 마빈의 정신상태에 관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서 리버가 외쳤다.


"그만! 검을 집어 넣어 마빈!"


리버는 자신이나 루나가 다칠 것을 염려하고 있지는 않았다.

리버가 걱정하고 있는 쪽을 굳이 고르자면 검을 들고 있는 마빈이었다.

일단 검을 뽑는다는 것은 도저히 유쾌한 상황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행위이다.

특히 아돌프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리버는 마빈의 검술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동네 꼬마들 앞에서 마빈은 훌륭한 검사지만, 그 외의 경우 같은 길이의 나무 몽둥이보다 다루지 못할 게 뻔했다.

리버는 마빈이 능숙하게 장검을 다룰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검을 내려놔 마빈.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검을 휘두르는 것 보다는 건실하게 대화를 나누는 편이 언제나 나았으니까."


"너는 가만히 있어 리버! 저 여자를 잡아가는 것이 내 임무니까!"


마빈이 소리쳤다.

가게 밖에 있던 병사들은 아돌프 앞에서 검을 뽑아 든 채 소리 지르고 있는 마빈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토비는 이제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마빈을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빈은 자신이 모두의 이목을 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얼떨결에 검을 뽑아 들긴 했지만 마빈은 감히 사람을 상대로 그것을 휘두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무튼 폴 영지에서 치안대원들의 주요 업무란 주정뱅이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귀가시키는 것이지, 늦은 오후에 검을 들고서 사람들을 위협하며 소리 지르는 일은 아니었다.

마빈은 문득 평소에 그렇게 밉살스럽던 치안 대장이 그리워졌다.

아마 치안대장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적어도 자신보다는 훨씬 의연하게 대처했을 것이다.

마빈은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자신은 그저 비번에 우연히 불려 나와 대장 행세를 하고 있는 촌놈에 불과했다.


평소였다면 마빈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곧바로 검을 집어 넣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마빈은 집에서 나오기 전의 음주로 인해 약간 취해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마빈은 현재 자신의 감정이 용기와 만용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사실 용감한 것과 무모한 것은 언제나 종이 한 장 차이이며, 취기란 그 얇은 종이마저 인식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마빈은 한참을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자신은 검을 휘두를 수 없을 거라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미 검을 뽑은 이상에야 물러설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점 또한 자각했다.

비록 임시였지만 아무튼 마빈의 현재 직책은 분명 치안대장이었다.

이미 상황은 벌어졌다.

여기서 어수룩하게 검을 다시 집어 넣는 것은 마빈 본인의 명예와, 직책을 맡긴 치안대장, 심지어는 그 직책에 담겨있는 모종의 권위까지 실추되어버릴 것이 뻔했다.

더불어 좁은 영지의 소문은 빠르다.

여기서 벌벌 떨었다는 소문이라도 나는 날에는, 앞으로의 진급은 물거품이 되고 말 거라는 일말의 불안감도 작용했다.

종내에 마빈은 마치 스스로도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인간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마빈이 발악하듯 외쳤다.


"리버! 그 여자를 넘겨! 그 여자는 마녀다!"


리버는 친구의 외침에 순간 어이없는 기분을 느꼈다.

리버는 딱히 루나를 구속하거나 붙잡아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후에 리버는 마빈이 토비나 루나 대신 자신에게 말을 거는 행동이 상당히 영리한 대처라는 점을 깨달았다.

마빈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리버가 느끼기기에 마빈의 외침은 일종의 생존 본능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하기보다는 익숙한 것에 기대는 편이 낫다는 그런 생존 본능.

이 경우 마빈에게 익숙한 것은 당연히 리버다.

리버는 마빈을 진정시키기 위해, 또 한편으론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최대한 침착한 태도로 말했다.


"마빈, 진정하고 검을 집어 넣어. 분명 뭔가 오해가 있었을 거야."


"아니. 어차피 이제 곧 밝혀질 거야. 어이 너희들! 이 세 사람을 체포해라!"


리버가 어떻게든 설득하려 애썼지만 마빈은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어서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만 병사들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마빈의 명령에도 병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마빈이 악을 쓰듯 명령했다.


"내가 치안대장의 대리인이야! 그러니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너희들 모두 불복종으로 처벌하겠어!"


그때 그나마 가까이 있던 병사 하나가 가게 안으로 쪼르르 달려 들어왔다.

평소에 마빈과 가장 많이 구르던 친구였고 리버 역시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병사는 마빈에게 바짝 붙은 채 억울하다는 듯 속삭였다.

물론 그 병사는 속삭였다고 생각했지만 주위가 적막했던 탓에 그 대화는 모두에게 잘 들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마빈 세 사람이라니? 우리가 체포하는 것은 저기 마녀 한 명이 아니었냐? 나는 아돌프를 체포하러 왔다는 얘기는..."


그 친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마빈이 도중에 윽박 질렀기 때문이다.


"마빈이 아니라 대장님이라고 불러 이 멍청한 놈아! 그리고 저 여자를 제외한 두 사람은 이 사건의 참고인이다! 어서 포박해!"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토비였다.

토비는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마빈을 쳐다보았다.


"날 체포한다고? 너희들이!"


팔짱을 푼 토비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빈에게 성큼성큼 걸어가 바로 앞에 우뚝 섰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토비의 그런 행동은 사태를 전혀 호전시키지 못했다.


미리 말하자면 토비는 자신의 웃는 모습이 인간들에게 썩 유쾌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 정도야 알고 있었다.

평소 토비의 미소는 가끔 타인을 식사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곤 했다.

마찬가지로 토비의 눈빛은 때때로 피에 목 마른 짐승의 그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었다.

토비 역시 그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 경우에는 시기가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운이 없었다.

병사들은 저녁 나절에 들이닥쳤고, 그들이 소란을 피우는 사이 어느새 시간은 밤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은 평소의 노랗고 부드러운 빛이 아닌, 약간은 섬뜩한 진홍빛에 휩싸여 있었다.


만이 타오르며 뿜어낸 붉은 빛은 바닥에 조각난 유리에 반사되어 가게 안에 골고루 흩뿌려졌다.

당연하게도 그 진홍빛은 토비의 몸에도 잔뜩 스며들어 있었다.

아마 평소였다면 토비의 모습은 그렇게까지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몸에 피를 칠갑한 고대의 괴수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또 한 가지 운이 없었던 점은 그곳에 유달리 겁이 많은 병사 한 명이 끼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 겁 많은 병사는 만의 미신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부류였다.

그 병사는 거의 졸도하기 직전의 인간처럼 벌벌 떨다가, 다음 순간 토비를 가리키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마...마녀의 하수인이다!"


토비는 그것이 설마 자신을 향한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야 토비는 의문을 표시했다.

토비는 짙은 눈썹을 구긴 채 송곳니를 드러내며 물었다.


"이봐. 설마 그 마녀의 하수인이라는 게 나를 말하는 거냐?"


"히익!"


토비가 대답을 요구했지만 병사는 토비와 심도 깊은 토론을 벌일 생각은 조금도 없는 듯했다.

병사는 토비가 말을 걸자마자 몸을 돌렸고, 그대로 가게 밖을 향해 전력으로 달아났다.

도망치는 병사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마빈은 욕지기가 치밀어 오를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병사들에게 외쳤다.


"이탈하지 말고 자리를 지켜! 이 사람은 그냥 평범한 아돌프잖아!"


그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표현이었다.

마빈은 어서 소란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교묘하게 아돌프라는 말 앞에 평범하다는 수식어를 붙였다.

하지만 어차피 병사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평범하다는 불확실한 수사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아돌프라는 확실한 명사였다.

앞에 어떤 수식이 붙건, 당장 눈 앞에 존재하는 아돌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빈은 벌벌 떠는 병사들의 모습에 실소하며 이마를 짚었다.

현재 잡화점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병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곳을 전선이라고 보는 것에는 그리 위화감이 없었다.

루나와 토비는 순순히 체포 당할 마음이 없었으며, 만약 병사들이 억지로 포박을 시도한다면 언제든 전투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따라서 방금 토비에게서 달아난 한 병사의 행동은 전선에서의 패주로 여겨지기에 충분했다.

심지어는 싸워보기도 전에 도망을 치는 행위였으니 치안대원들은 더더욱 사기가 꺾였다.


마빈은 어떻게든 상황에 대한 주도권을 잡으려 애쓰고 있었지만 그 역시 운이 나빴다.

마빈의 경우에는 평소 병사들과 친분이 아주 돈독한 관계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실제 전쟁이었다면 상관이 부하들과 함께 생활하며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올바른 태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 같기는 해도 잡화점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쟁이 아니었다.

병사들에게 있어서 마빈은 상관이 아니라 어제까지 같이 연병장을 구르던 동료에 가까웠다.

현재 마빈에겐 권위라고 할 만한 요소가 턱없이 부족했다.

마빈 역시 그 사실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마빈은 마지막에 가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었다.

마빈은 그때까지 병사들을 통제하려 소리치던 것도 멈추었다.

병사들은 토비가 고함이라도 한 번 치면 그대로 자신의 집까지 달아날 것처럼 겁을 집어먹은 모습으로 한데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가게 밖의 소요가 일순간에 가라앉았다.

갑작스러운 정적은 때론 갑작스러운 굉음보다 훨씬 더 신경을 자극하는 법이다.

잡화점 안팎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게 밖에서 로브를 깊게 눌러 쓴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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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3 v5id
    작성일
    23.06.12 09:29
    No. 1

    텍스트 파일이 잘못 올라간거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감괴
    작성일
    23.06.13 09:49
    No. 2

    19화 올린 후에 분명 수정을 했을 뿐인데 이상하게 같은 내용으로 20화가 불쑥 새로 생겨버렸습니다. 삭제도 안돼서 어쩔 수 없이 놔뒀습니다. 버그인 듯 하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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