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농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새글

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최근연재일 :
2024.06.30 23:56
연재수 :
164 회
조회수 :
10,778
추천수 :
573
글자수 :
1,068,691

작성
23.06.13 16:43
조회
119
추천
8
글자
12쪽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5)

DUMMY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는 잡화점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그 남자에게서 물러나며 길을 터주었기에 그 등장은 꽤나 장엄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주위 반응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느긋한 걸음걸이였다.


마침내 남자가 잡화점 입구까지 도달했다.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남자가 그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입구 근처에서 발을 멈췄다.

남자는 입구에 멈춰 선 채 가게 바닥을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남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일하게 리버 만이 남자가 멈춰 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잡화점 입구에 박힌 유리 조각을 염려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리버는 개탄스러움을 느꼈다.

오늘 하루 가게를 방문한 모든 손님들이 가게의 위생 상태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지만 리버에게 있어서 그 사실은 적잖이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때 망설이고 있던 남자가 뭔가 결심한 듯 움직였다.

남자는 종종걸음으로 네 사람 앞까지 다가왔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남자가 이윽고 후드를 벗었다.

드러난 남자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초로의 나이처럼 보였다.

후드를 벗고 가게 안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남자가 루나를 발견하고서 시선을 고정했다.

남자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루나인가?"


루나는 남자가 자신을 관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를 마주 관찰하고 있었다.

어느 시점에 루나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너는 푸조인가?"


루나의 대꾸에 리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나의 말이 맞다면 지금 등장한 남자는 자신이 내일 상자의 감정을 부탁하려 했던, 그러니까 폴 영지의 유일한 마법사였다.

푸조는 루나의 도발적인 대답에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소문대로 꽤 당돌한 편이구나."


"붙임성은 꽤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얼핏 듣기에 두 사람의 대화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끼리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처럼 들렸다.

두 사람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고, 말투 역시 부드럽고 온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리버는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현재 말이나 행동보다는 눈빛을 통해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짧은 인사를 마친 루나와 푸조는 잠시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관찰하는 시선이 이어졌고, 무겁게 가라앉은 정적이 가게 안을 메웠다.

시간이 얼마간 흐른 후 푸조 쪽에서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거 참 이상하군. 정말 이상해. 나는 인간에게서 이런 기운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너는 대체 무엇이지?"


말을 끝낸 후에도 푸조는 루나를 바라보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처럼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푸조의 그런 행동은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곧 가게 안의 모든 시선이 루나에게 쏠렸다.

하나같이 어서 자신들도 대답을 듣고 싶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시선을 불러본 루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만의 빛이 얼굴에 내려 앉은 탓에 루나의 미소는 약간 음산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루나는 일견 장난스러워 보이는 태도로 대답했다.


"그건 바보 같은 질문이군. 방금 너희들이 말했잖아. 그럼 나는 마녀겠지."


그때까지 루나를 변호하고 있던 리버가 대번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토비는 반대로 그제서야 어떤 의문이 해소되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병사들의 경우엔 세상의 어떤 심원한 진리를 엿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푸조는 그 대답이 의외라는 듯 입술을 모았다.


"호오. 그건 재판에서 상당히 불리하게 해석될 여지가 다분한 답변이군. 지금 네 말은 스스로 마녀임을 인정했다고 봐도 무방한 것인가?"


"그 멍청하고 의미 없는 재판에서 해석을 내리는 쪽이 인간이라면,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불리하게 해석되겠지. 그러니 네 마음대로 생각해. 부정해도 의미가 없다면 굳이 부정하는 비생산적인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지나치게 비관적인 태도로군. 재판은 언제나 공정하게 이루어진다. 너는 인간을 믿지 않나?"


"믿어. 네가 요괴를 믿는 만큼은."


"흐음 그렇군. 그래."


두 사람은 시종일관 평온한 태도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어째서 교단의 주교나 추기경들이, 교리 문답을 위해 방문하는 사제들을 그토록 꺼려하는지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루나는 푸조와 마빈 그리고 병사들을 한 번 둘러본 후에 나직하게 말했다.


"그나저나 이런 보잘것없는 시골에도 자드가 기르는 카니쿨라들이 꽤 많군. 못 보던 새에 농장이라도 하나 새로 차린 건가?"


그 말에 여태까지 온화했던 푸조의 인상이 갑자기 구겨졌다.


"감당할 수 없는 말은 자제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대부분의 인간들은 보통 자신도 모르는 새에 허튼 말을 지껄이는 바람에 제 명대로 못사는 법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해석하려 드는 멍청이들이 남의 삶을 재단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바보 같고 유쾌한 말을 늘어 놓는 쪽이 더 견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제 보니 시시한 관념론자였군."


"너처럼 순진한 유물론자로 사는 것보단 낫겠지."


곧바로 다시 대꾸할 거라 생각했던 푸조가 이번에는 잠시 말을 멈췄다.

어느 순간 루나가 가벼운 미소와 함께 농담처럼 말했다.


"자드 공작은 아직도 나를 겁탈하고 싶어 하나?"


리버와 마빈, 병사들은 물론 토비까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루나를 바라보았다.

유일하게 푸조의 얼굴만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그때까지 희미하게나마 미소 짓고 있던 푸조가 명백한 분노와 함께 외쳤다.


"마빈!"


마빈은 자신이 주목 받는 상황이 오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빈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푸조를 바라보았다.

마빈의 당황과는 관계없이 푸조는 준엄한 태도로 지시했다.


"당장 저 셋을 체포해라."


"예!... 예?"


마빈의 첫 번째 대답은 폴 영지의 유일무이하며 지고한 마법사님의 명령이라면 어떤 것이든 기꺼이 따르겠다는 군인으로써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한 박자 늦었던 두 번째 대답의 경우 '나머지 두 사람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잔뜩 겁 먹은 병사들을 데리고서 아돌프를 체포할 수 있겠냐'는 인간으로서의 지당한 의문이었다.

잠시 후에야 푸조는 마빈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지 깨달았다.

푸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토비의 앞으로 걸어갔다.

지근거리에서 푸조는 고개를 쳐들고 토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보시오 아돌프 양반."


푸조의 말투가 마치 하대하는 것처럼 들렸기에 마빈과 병사들은 순간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토비는 그런 식의 말투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토비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래 인간 마법사. 그러니까 지금부터 너희들이 나를 체포한다는 말이냐? 그것도 내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그렇소. 내게는 그럴 권한이 있으니까."


"권한이라고! 너도 방금 전 떠들던 놈처럼 내가 저 조그마한 인간 계집의 하수인이니 뭐니 하는 얘기를 떠들 셈이냐!"


팔짱을 끼고 있던 토비의 팔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병사들은 질겁했고, 푸조가 당장 도망치고 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변의 기대와 달리 푸조는 침착했다.

이어진 푸조의 대답은 무미건조한 동시에 지극히 사무적인 것이었다.


"그것과는 다르지만 내겐 분명한 권한이 있긴 하지. 그리고 그 권한이란 종교전쟁 이후 제정되었던 인간과 아돌프 양자에게 모두 적용되는 특별법에 의거하오."



*



처음에 토비는 푸조가 어떤 대답을 내놓는다고 해도 일말의 수용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토비는 여러 사람들이 추측한 것처럼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인간들의 틈바구니에서 꽤 오래 생활하긴 했지만 토비는 여전히 아돌프였다.

인간에게서 마녀의 하수인이니, 체포니 하는 소리를 듣는 일은 당연히 모욕적이었다.

실제로 하수인도 아니었으니 억울함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푸조의 권한이라는 것을 듣고 난 후 토비는 곧장 화를 내거나 할 수는 없었다.

모르는 것에 대해 화를 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토비는 어쩔 수 없이 질문했다.


"특별법이라고?"


"그렇소. 특별법 제 6조 5항은 마녀의 일로 야기된 분쟁을 다루고 있소. 현장에서 마녀를 추정할 때 그 옆에 있는 사람, 요괴, 동물이 마녀의 하수인으로 의심되는 경우 치안 대원의 선에서 체포하고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명시되어 있지. 아무리 봐도 당신은 사람이니 우리에겐 당신을 체포하고 심문할 권한이 있는 거요."


푸조는 사무적인 투로 대꾸했다.

이번에 토비는 되묻거나 할 수조차 없었다.

푸조가 하는 말의 거의 대부분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비가 마땅한 말을 찾기 위해 머뭇거리고 있었을 때, 불쑥 리버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하지만 푸조 마법사님. 분명 그 밑의 항에는 사람, 요괴, 동물이 하수인으로 의심 받을 만한 충분하고 합리적인 상황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도 명시되어 있겠죠?"


갑작스럽게 등장한 리버의 말에 푸조는 물론이고 토비마저 약간 놀란 듯했다.

리버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지금의 경우는 고작 병사 한 명이 하수인이라고 소리쳤을 뿐이에요. 만약 그런 식의 해석으로 저희를 체포한다면 저는 저기 있는 병사들 중 아무에게나 똑같이 할 수 있을 테죠 '저 녀석은 마녀의 하수인이다!' 라는 식으로요. 그럼 그 병사도 체포되어야 하는 건가요?"


"...이 가게의 주인이냐? 상인 주제에 꽤 해박하게 알고 있구나."


푸조는 말을 하던 와중에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리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만... 너는 뭔가 이상한데..."


가게에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은 푸조의 반응에서 그의 감정을 유추해내거나 할 수는 없었다.

그 자리에서 마법사에 대해 익숙하다고 할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루나는 알 수 있었다.

루나는 유일하게 마법사에 대해 알고 있는 인간이었다.

루나는 그 시점에서 푸조가 어떤 시선으로 리버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아챘다.

푸조의 표정은 마법사들이 신기한 것을 발견했을 때 보이곤 하는, 흥미와 호기심이 뒤섞인 것이었다.

푸조는 한참 동안 리버의 위 아래를 훑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둥그렇게 커진 눈으로 푸조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푸조는 검지를 뻗어 리버를 지목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푸조의 손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푸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네가... 어떻게 천한 상인 주제에 그것을..."


뭔가 충격 받은 듯한 얼굴로 말하던 푸조는, 그러나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그 표정 그대로 앞으로 허물어졌다.

푸조가 앞으로 쓰러졌기에 바로 앞에 있던 리버는 어쩔 수 없이 푸조를 온 몸으로 부축해야 했다.

리버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푸조를 받아냈다.

그리고 끌어안은 푸조의 어깨 너머로 단검을 거꾸로 쥐고 있는 루나를 발견했다.

루나는 단검의 손잡이 부분을 거꾸로 쥐고 있었다.

리버는 그녀가 푸조의 뒷덜미를 가격해 기절 시켰다는 것을 알아챘다.


"너 이게 무슨 짓...!"


리버는 당혹감에 소리 지르려 했지만 말을 끝 맺지는 못했다.

루나의 반인륜적인 행위를 지적하려던 순간 가게 바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연기가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간농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6 착석 (7) +2 23.07.25 68 5 12쪽
45 착석 (6) +2 23.07.24 68 6 17쪽
44 착석 (5) 23.07.23 75 8 14쪽
43 착석 (4) 23.07.22 64 7 14쪽
42 착석 (3) +1 23.07.19 71 8 13쪽
41 착석 (2) +1 23.07.17 66 8 14쪽
40 착석 23.07.17 61 6 14쪽
39 말할 수 없는 것 (12) +1 23.07.15 79 8 15쪽
38 말할 수 없는 것 (11) +1 23.07.12 100 8 11쪽
37 말할 수 없는 것 (10) 23.07.11 96 7 16쪽
36 말할 수 없는 것 (9) +2 23.07.10 92 7 16쪽
35 말할 수 없는 것 (8) +1 23.07.03 100 7 17쪽
34 말할 수 없는 것 (7) 23.07.02 98 7 15쪽
33 말할 수 없는 것 (6) 23.06.29 94 7 16쪽
32 말할 수 없는 것 (5) 23.06.28 94 9 13쪽
31 말할 수 없는 것 (4) 23.06.27 97 8 15쪽
30 말할 수 없는 것 (3) 23.06.26 115 7 16쪽
29 말할 수 없는 것 (2) 23.06.18 113 8 14쪽
28 말할 수 없는 것 23.06.18 105 7 15쪽
27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12) 23.06.17 113 8 15쪽
26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11) 23.06.17 109 7 13쪽
25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10) 23.06.16 110 6 13쪽
24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9) 23.06.16 120 7 17쪽
23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8) 23.06.15 119 8 14쪽
22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7) 23.06.14 126 7 17쪽
21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6) 23.06.13 140 7 12쪽
»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5) +2 23.06.13 120 8 12쪽
19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4) +2 23.06.11 140 8 11쪽
18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3) 23.06.11 136 6 11쪽
17 기우뚱하게 바라보기. (2) 23.06.10 133 9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