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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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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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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5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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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석 (7)

DUMMY

듀라트 영지의 유일한 아돌프는 멍한 표정으로 저택의 정원을 감상하고 있었다.


해는 숨었지만 그럼에도 청명한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부슬거리며 떨어졌고, 정원은 축축하게 젖어있다.

밤의 정원이 은밀함과 비밀스러움으로 차 있다면, 낮의 정원은 생동감으로 가득 차있었다.

초목들이야 오랜만에 만난 비가 반가울 테지만, 작은 곤충들은 역시 비가 성가시다는 듯 이미 저마다의 은신처로 숨어 들었다.


지금 토비가 있는 곳은 정원 중에서도 특히 물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곳이었다.

진하지만 결코 과하지는 않은 우아한 물케꽃향이 토비의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토비는 이렇게 기분 좋은 향이 어째서 꽃을 태우기만 하면 고약한 냄새로 변해버리는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향기는 아찔할 정도로 계속 풍겨오고 있었다.

토비는 콧잔등을 한 번 씰룩거리며 정원의 곳곳으로 시선을 보냈다.


듀라트 저택의 정원은 아돌프의 시선으로 보아도 훌륭한 정원이었다.

물론 자연 그대로의 숲과 비견할 수는 없다.

아마 숲과 정원 중 하나를 고르라면 토비는 망설이지 않고 숲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간 정원을 감상한 후에 토비는 인간이 가꾼 숲도 꽤나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의 것들은 다채롭고, 조화로우며, 바로 그 때문에 아름답다.

시냇물이 제 멋대로 흘러가는 소리.

비 내린 후 바위에 고여 있는 물 냄새.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뙤약볕.

너무 익어버려 땅에 떨어진 으깨진 과일 냄새.

그것들은 그 자체로 숲이며, 제 아무리 뛰어난 조경사도 숲 자체를 옮겨다 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지만 지금 진한 향기를 뿜어 대는 물케꽃 군락 같은 것은 오히려 자연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토비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식물에게 쓰기 힘든 표현이지만 물케꽃은 지나치게 예민하다.

물론 숨어서 핀 몇몇 개체야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환경을 가꿔주지 않으면 군락이 형성되는 일은 없다.

따라서 지금처럼 짙은 물케 향을 맡는 것은 토비에게도 꽤 생경한 경험이었다.

토비는 어째서 귀족이라는 작자들이 그토록 저택의 정원에 신경을 쓰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더불어 이 정도의 향취를 언제든지 느낄 수 있다면, 자연을 모방하는 일도 꼭 나쁜 것 만은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사실 정원을 제외하더라도 저택은 전체적으로 토비의 마음에 들었다.

특히 어젯밤 머무른 숙소의 바닥이 그랬다.

딱딱한 삼나무를 이어 만든 바닥은 적당히 서늘해서 등을 비비기 딱 좋았다.

식사 역시 가짓수가 좀 적긴 해도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음식 쪽이 아니라 도중에 나온 포도주들이 더없이 훌륭했기에 만족스러웠던 것이긴 했지만.


이처럼 대부분은 만족스러웠지만 대기가 축축하다는 점은 약간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것은 어차피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니 불평할 건덕지는 되지 않을 것이다.

물끄러미 정원을 둘러보던 토비의 시선이 문득 한 지점에 머물렀다.

시선이 머무른 곳은 정원 중앙에 있는 거대한 연못이었다.

토비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발을 떼 연못 앞으로 움직였다.


거대한 연못 앞에 다다른 토비는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안을 들여다보자 연못 바닥에 희끄무레한 것들이 이리저리 헤엄치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연못의 표면에 무수한 파문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므로 정확히 볼 수는 없었지만, 대강 어림잡아도 상당히 많은 수였다.


토비는 이번에는 깊은 곳이 아닌 연못의 가장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얕은 곳에서 헤엄치고 있는 녀석들 중에서, 다른 녀석들보다 유달리 통통하게 살이 오른 한 녀석이 토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문득 토비는 자신이 아직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떠올리자마자 곧바로 공복감이 밀려왔다.


여전히 연못 앞에 쭈그리고 앉은 채, 토비는 눈썹을 모으며 사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

넓은 정원에는 자신 뿐이었다.

토비는 다시 연못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못이 거대했던 만큼 그 안에 있는 메기의 수도 상당해 보였다.

토비는 그렇다면 저 중 한 마리쯤은 자연으로 돌려 보낸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처음부터 토비가 눈여겨 보고 있었던 통통한 녀석이 마침 수면 근처에 머무르고 있었다.

마침내 토비가 연못에 손을 담그려 했을 때, 등 뒤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게 아돌프 양반!"


토비는 대경실색하며 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밀러가 저편에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토비는 다가오는 밀러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부슬대며 내리는 빗방울 탓에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밀러는 미간을 약간 찡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얼핏 생각하기에 내리는 비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은 것 같기는 했지만 토비는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직 인간의 표정을 보고서 속마음을 알아낼 만큼의 재주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비는 지금 밀러의 표정이 '정원에서 도둑질을 하고 있는 아돌프를 발견했을 때의 인간의 표정'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완전히 지우지는 않았다.


토비가 의심에 빠진 순간에도 밀러는 점점 토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적당한 대처를 생각할 수 없었던 토비는 마지막에 가서 뻔뻔하게 대처하기로 마음 먹었다.

만약 밀러가 방금 전 자신의 점유물 이탈 행위에 대해서 지적한다면, '어차피 너희들도 자연의 것을 훔쳐온 것이 아니냐'는 말로 응수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 뭘 하고 있었나?"


"나는 그저 연못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절대 메기를 감상하려던 건 아니었다고!"


말을 끝낸 직후 밀러의 표정이 요상하게 일그러졌고, 토비는 자신의 갈기털을 쥐어 뜯고 싶어졌다.

물론 끔찍한 서순으로 인해 의도를 낱낱이 드러내버렸지만 밀러는 토비가 방금 전까지 뭘 하려 했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었다.

아무튼 우락부락한 아돌프가 연못 앞에서 그런 깜찍한 시도를 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먼저 인사를 건넨 쪽이 자신이었기에 밀러는 일단 화제를 돌렸다.


"식사를 준비해 놓았으니 같이 가세나."


밀러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다.

그래서 토비는 방금 전 행동을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짐작했고 이내 안도했다.

그리고 밀러의 말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기에 토비는 동의의 표시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정원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식당으로 통하는 복도를 나란히 걸었다.

작은 빗소리에 외엔 적막한 와중에 밀러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자네와 함께 있던 두 사람은 보이질 않는구먼?"


"음. 리버와 루나 말이로군. 그 친구들은 아직 자고 있어."


"이 시간까지 말인가?"


밀러의 말에 토비는 하늘을 쳐다봤다.

먹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해는 이미 높은 곳에 걸려 있었다.

밀러의 의문대로 아직 잠에 취해 있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토비는 이내 두 사람이 아직까지 자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다분히 의심스러워졌다.


이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예컨대 두 인간은 롭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그 험한 여정 속에서도 늦장을 부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리버의 경우 절대적인 체력이 부족하기는 했다.

다만 리버는 무엇보다 성실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아침마다 다소 비명을 지르고 비틀거리긴 했지만 결코 늦장을 부리진 않았다.

그리고 루나의 경우에는 애초에 이런 의문을 품을 여지조차 없었다.

아돌프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루나는 비상식적인 체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어떤 순간에는 무녀라는 직업이 어쩌면 타고난 요력보다 타고난 체력 쪽이 훨씬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한참 생각하던 토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군. 평소에는 언제나 빨리 일어나던 녀석들인데 말이야."


"그럼 깨워보지 그랬나?"


타당한 지적이었다.

애초에 토비가 낮까지 하릴없이 정원을 감상하고 있던 이유는 두 인간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서 식당으로 가기엔 좀 꺼림칙했던 토비는 결국 숙소와 식당 중간에 있는 정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밀러의 말처럼 두 사람을 깨울 생각은 들지 않았다.

토비는 어째서 자신이 두 사람을 깨우지 않았는지, 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이내 그럴듯한 대답을 떠올렸다.


"깨울 이유가 없잖아. 그래서 안깨웠다."


"깨울 이유가 없다? 흠... 보통 일찍 일어나는 것은 성실함의 척도가 되고, 반대로 늦잠을 자는 것은 게으름의 증거가 되는 법이네만."


"그래 인간들은 보통 그렇더군. 나도 인간들이 아침마다 서로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닦달하는 장면을 많이 보았지."


"인간들은? 그럼 자네들의 성실함의 기준은 다른가?"


"음. 그러고 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녀석이 더 성실하다는 생각은 여태 해본 적이 없군. 하지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그래, 우리에겐 그런 문화가 없다. 아침에 자고 있는 녀석을 억지로 깨우는 문화 말이야. 우리는 더 자고 싶은 녀석이 있다면 그냥 자게 내버려두지. 그것이 몸이 원하는 것이니까."


"몸이 원한다고?"


밀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기에 토비는 설명을 덧붙였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 아마 루나였다면 기가 막히게 설명했을 텐데 말이야. 그러니까, 예를 들어 배가 고프다는 것은 몸이 음식을 원한다는 말이겠지. 어때 이건 동의하겠지?"


밀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할 시간을 번 토비가 다시 설명을 이었다.


"그렇지. 몸이 음식을 원하니까 우리는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것이지. 목이 마른 경우도 그래, 몸이 물을 원한다는 말이니 우린 물을 마시지. 그럼 졸리다는 것도 마찬가지야. 졸리다는 것은 몸이 잠을 원한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그 경우에도 역시 몸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하지 않겠냐. 아무튼 자신의 몸과 사이가 틀어져서 좋을 건 없으니까."


밀러는 늦잠을 자는 것에 대해서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아리송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밀러가 깊은 고민에 빠지자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이후 말없이 부지런히 걷던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에 도착했다.


밀러의 말대로 이미 식사가 차려져 있는 것인지 식당 안에선 음식 냄새가 바깥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토비는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식당에서 준비하고 있던 하멜 집사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서 각자 자리로 안내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시장했던 토비는 꽤 성대하게 음식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제 식당에 없었기에 토비의 식사 장면을 처음 목도한 하멜의 눈썹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밀러는 토비의 맞은 편에서 작게 웃으며 그런 두 사람을 관찰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밀러가 불쑥 식사 중인 토비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보게 토비. 자네는 혹시 해결사인가?"


"일단은 그렇지. 그러고 보니 마지막 의뢰를 받은 지도 꽤 오래 지났군. 그런데 그건 왜?"


토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빵을 씹으며 대꾸했다.

하멜 역시 식사 도중에 갑자기 왜 그런 쓸데없는 얘기를 하냐는 얼굴로 밀러를 쳐다보았다.

밀러는 자신을 바라보는 하멜의 시선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해결사라니 마침 잘됐군, 다름이 아니라 자네에게 의뢰를 하나 맡기고 싶은데 말이야."


"이 염치없는 늙은이가!"


밀러의 말에 토비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옆에 있던 하멜이 대번에 역정을 내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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