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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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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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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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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먹는 것과 뱉는 것의 차이 (9)

DUMMY

『...사람이 단순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행복 역시 단순하게 쟁취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모든 행복과 불행은 단 두 가지로 경우로 쉽게 분류된다.

아주 단순하다.

사람은 먹을수록 행복해지고 뱉을수록 불행해진다.』


-수잠의 저서「말할 수 없는 것」중-



*



한 해의 끝을 알리는 네 번째 만이 져버릴 때쯤이면 북부의 인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면 준비에 들어가곤 한다.

물론 여느 동물들처럼 북부인들이 실제로 겨울잠을 자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런 인간들이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북부인들은 겨울잠을 대비하는 동물들과 비슷하게 행동한다.

동물들이 한껏 먹이를 비축한 채 제 둥지에서 나오지 않는 것처럼, 북부인들 역시 가장 추운 계절이 다가오면 식량을 비축한 채 집에서 잘 나오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성정 사나운 북부의 사내들이라 할지라도 가장 추운 계절에 밖을 쏘다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행위는 용기라기보다는 만용에 가까우며, 사내다움이라기보다는 멍청함에 가깝다.


때문에 세 번째 만이 끝난 후부터는 북부의 여러 도시에선 항상 식량의 비축이 일어난다.

저마다 혹독한 계절을 버틸 준비를 하는 것이다.

겨울을 날 준비는 대개 차분하게 이루어지지만, 역설적으로 이 시기의 북부는 가장 활발한 때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북부인들의 식문화에 원인을 두고 있다.


우선 건조되거나 훈연된 식품들은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특성으로 겨울 식량으로 각광 받곤 한다.

다만 북부의 모든 가정에서 식품을 건조하고 훈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시기의 북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건조된 음식을 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곤 한다.

거기에 더해 건조나 훈연, 그리고 보온을 위해서는 마른 장작도 상상 이상으로 많이 필요하다.

필연적으로 각종 식품과 장작에 대한 엄청난 수요가 발생한다.


이 엄청나게 많은 수요에 따라, 필연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공급 또한 일어난다.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공급을 담당하는 것은 당연히 상인들이다.

따라서 지금 가장 추운 계절이 오기 전 북부는, 상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대목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현재 동면 준비에 한창인 북부의 모든 도시들은 수 많은 상인들의 이동으로 분주했고 또 활기찼다.

랑그는 이 시기의 북부를 꺼지기 전의 초에 비유하곤 했다.

가장 존경 받는 시인답게 이 비유는 참으로 적절했다.

확실히 지금 북부는 꺼지기 전의 촛불처럼 가장 활발하게 타오르는 모습이었고, 얼마 뒤엔 꺼진 초처럼 죄다 잠잠해질 것이다.


지금 나데자를 향해 움직이는 카니쿨라 썰매 역시 이 시기의 분주함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약간 결이 다른 점은 썰매를 끌고 있는 것이 상인이 아니라 주교라는 점이었다.

썰매를 조종하고 있는 건 디스토니아 교단에서 가장 젊은 나이에 주교의 자리에 오른 두 인물이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썰매 위에서 스니블은 카니쿨라의 꽁무니를 무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카니쿨라들은 남부의 볼품없는 녀석들과 다르게 털이 풍성했다.

녀석들의 털은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 싸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춤추고 있었다.


스니블은 그 역동적인 뒷모습을 쭉 지켜보았다.

물론 평소부터 카니쿨라에 대해 엄청난 애정을 품고 있었다거나, 혹은 고된 노동을 하는 카니쿨라들에게 동정심이 들었다거나 하는 이유로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북부의 머리에서 무벤까지 향하는 길엔 수 많은 눈과, 그 눈으로 덮인 대지와, 서늘한 햇빛이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 지독하게 정적인 풍경에 질려버린 스니블은 차라리 역동적인 카니쿨라들의 꽁무니를 쳐다보는 것이 낫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느 순간 스니블이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이어서 시각을 확인한 스니블은 살짝 감탄 섞인 시선으로 카니쿨라들을 바라보았다.

이전 마을에서 출발한 지 벌써 한나절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카니쿨라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아직 활발하게 썰매를 끌고 있었다.


스니블은 자신들의 썰매가 말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이동 수단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인간의 이동 수단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말이다.

아무튼 말은 달리지 않으면 죽는 생물이고, 스니블은 그 특성이 인간에게 더없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거라 생각했다.


스니블은 말이나 마차가 고풍스러운 이동 수단이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이동 수단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말은 고작해야 삼십 분 정도의 시간을 전력 질주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설령 구보 정도의 속도라 해도 기껏 반나절 밖에 이동하지 못한다.

반면 카니쿨라들은 제때 먹이를 주기만 하면 하루 온 종일 달릴 수도 있다.

거기에 먹이라곤 말의 십분 지 일밖에 먹지 않는다.

효율성 면에서 보자면 말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정도다.


문득 스니블은 북부인들이 카니쿨라를 잡아 먹는다는 남부의 미신을 떠올렸다.

스니블은 맨 처음 그 미신을 만들어낸 작자가 지독하게 경제적 관념이 떨어지는 놈일 거라 생각했다.

그것은 어떻게 생각해봐도 도무지 효용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카니쿨라가 북부에서 자원처럼 취급되는 것은 맞다. 저것들은 썰매를 끄는 주요한 자원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잡아먹을 수 없다.

카니쿨라가 없으면 북부의 교통은 마비된다.

목이 마르다고 해서 독약을 마시는 인간이 있을 리 없다.

스니블이 카니쿨라들을 보며 이런 감상에 빠져있었을 때, 갑자기 바로 옆에서 스니블의 외침이 들려왔다.


"멈춰!"


남부에서 봤다면 고삐를 쥐는 대신 말에게 멈추라고 명령하는 꼴이었다.

남부인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스칼에게 멍청하다는 평가를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말과 달리 카니쿨라 썰매에는 고삐가 없다.

따라서 썰매에 관련된 모든 명령은 목소리로 이루어진다.

카니쿨라들은 가속력을 계산하여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너무 급하게 멈출 경우, 뒤에서 따라오는 썰매가 엉덩이를 들이박는다는 사실을 카니쿨라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썰매가 완전히 멈췄다.

스니블이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친구를 바라봤다.

아직 다음 도시인 나데자까지는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썰매를 멈춘 스칼이 능청스럽게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선 말했다.


"밥 시간이야. 눈도 꽤 쌓였으니 이쯤에서 쉬어가자고."


"알겠어."


스니블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이 경우 자신과 스칼의 배고픔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카니쿨라들의 굶주림은 중요한 문제다.

카니쿨라들의 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그렇지만 현재 썰매 위에는 눈도 어지간히 쌓여 있었으므로 그것들 역시 치워줘야 한다.

썰매가 무거워지면 카니쿨라들의 체력이 더 빨리 소진돼버리기 때문이다.


마침 근처에 눈을 피할 만한 지형이 있어서 스니블과 스칼은 그곳에 썰매를 놓은 뒤 자리 잡았다.

스니블은 썰매에서 장작을 몇 개 꺼내 익숙한 손놀림으로 모닥불을 피웠다.

이 휴식의 목적과 마찬가지로 두 인간의 몸을 덥히기 위함은 아니었다.

모닥불은 카니쿨라들의 몸을 덥히기 위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카니쿨라들에게 씌어진 마구 비슷한 것을 풀고 있었을 때, 한 남자가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지나치게 덩치가 크고, 또 북부인 치고는 피부가 거무스레한 남자였다.

스칼이 다가온 남자에게 명령했다.


"더글라스. 우리 세 사람의 식사를 준비 해둬. 우린 이 녀석들을 먹일 테니."


더글라스라 불린 남자는 고개를 한 번 조아리고서 묵묵히 명령을 따랐다.

시간이 꽤 지난 뒤에 배가 빵빵해진 카니쿨라들이 하나 둘 기분 좋게 자리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할 일을 끝마친 스니블과 스칼은 더글라스가 피워 놓은 모닥불 쪽으로 이동했다.

모닥불 위에 뭉근한 수프가 끓고 있었다. 들어간 내용물은 흔히 볼 수 있는 마른 재료들이었다.

더글라스는 그릇을 꺼내 두 사람 분을 덜었다.

그릇을 받아 든 스칼이 질색이라는 얼굴로 수프를 들여다보며 투정했다.


"젠장, 이 맛대가리 없는 걸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 거야?"


"얌전히 먹어 스칼. 북부에는 이 정도 음식도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넘쳐 나니까."


"뭐 그야 그렇지만 우리는 북부의 머리잖아. 우선 머리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야 그 부속들 역시 제대로 기능하는 것 아니겠어?"


"...끔찍한 정치관이군. 수도원에서 네 교육을 담당했던 녀석들이 지금 그 말을 들었으면 아마 울고 싶어졌을 거야."


"실컷 그러라지. 어차피 이제 나도 그 녀석들과 같은 주교니까 말이야. 그보다 나데자까지는 얼마나 남은 거야? 나는 이 황량한 풍경에 넌덜머리가 난다고."


참을성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스칼의 태도를 지적하려던 스니블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주변의 풍경은 백색일색이었고, 스니블 역시 그 풍경들에 슬슬 질려가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스니블은 스프를 한 입 마신 뒤 대답했다.


"앞으로 삼 사일 정도면 될 거야. 신전에서 나데자까지의 거리를 감안해보면 우리는 정말 말도 안되는 속도로 달려온 거야."


"내가 가장 좋은 카니쿨라들을 선별해 온 덕 아니겠어?"


스니블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스프에 집중했다.

맞는 말이었지만 칭찬을 건네기는 싫었다.

식사는 북부의 전통에 따라 꽤 오래 이어졌다.

모닥불 하나를 피워 놓은 것 뿐이지만 온도는 충분했다.

썰매에서 정면으로 찬 바람을 맞은 탓에 얼어 있던 피부가 모닥불의 온기에 차츰 풀어졌다.


마침내 냄비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글라스는 냄비를 치우고 평소처럼 차를 준비했다.

식후에 차를 마시는 것 또한 북부의 전통이다.

곧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과 함께 화사한 향이 모닥불 주위에 맴돌았다.

스니블이 차를 한 잔 들이켜는 것과 동시에 스칼이 혼잣말하듯 말했다.


"스니블. 그런데 말이야. 우리들의 계획이 정말 성공할 거라 생각해?"


"멍청한 소리 하지마 스칼. 애초에 실패할 거라 생각하고 세우는 계획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음, 맞는 말이야. 맞는 말이고말고. 하지만 계획을 실행하는 도중에 안될 거라고 깨닫는 경우는 있잖아? 바둑 기사들은 모두 이기기 위해 계획을 세우지만, 어떻게 되든 마지막에 가면 결국 한 쪽은 이기고 한 쪽은 져버리잖아?"


더없이 적절한 비유였다. 스니블은 자신의 친구를 칭찬하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솟아나는 것을 애써 잠재우며 말했다.


"좋아, 한번 말해봐 스칼. 도대체 계획의 어떤 부분이 널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거지?"


"어떤 부분이라니, 일단 우리는 성물의 정확한 역할조차 모르고 있잖아. 도대체 그걸 다 모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네가 파스토르에게 한 방 먹이려는 속셈이라면 적어도 우린 그 효과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스니블은 다시 차를 들이켰다. 이어서 잠시 머리를 환기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더글라스 쪽은 뒷정리에 한창이었다. 더글라스는 북부의 전통에 따라 눈을 한움큼 퍼낸 뒤 그것들을 문질러 식기들을 닦고 있었다.

스니블의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생각해보자고 스칼, 만약 너와 마주치자마자 너를 죽여버릴 수 있는 어떤 인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구. 그럼 너는 어떻게 행동하겠어?"


"간단한 얘기잖아? 녀석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죽여버리겠지."


"...이건 사고 실험이야 스칼. 좀 더 일반적으로 생각해봐. 때론 범인들이 가지는 사고방식도 중요한 법이야. 평범함이 없다면 특별함도 없으니까. 그럼 이렇게 말해 볼게. 녀석과 같은 공간에 있는 순간 무조건 너는 죽어버려. 그 어떤 인물은 그런 말도 안되는 능력의 소유자야. 그럼 어떻게 하겠어?"


"음 그것 참 불합리한 능력이군. 반격의 여지가 조금도 없는 거라면 아마 내 쪽에서 피해 다니지 않을까? 뭐, 그런 방법 밖에 없을 것 같은데."


"좋아 그럼 거기에 이런 가정을 덧붙여보자. 녀석과 네가 한 도시에 살고 있다면? 둘 모두 도시를 벗어날 수 없어. 즉 너는 녀석과 같은 도시에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아야 해."


"점점 복잡해지는군. 그런 경우라면..."


스칼은 차를 마시는 것도 잊은 채 한참 동안이나 생각에 골몰했다.

결국 스칼은 들고 있던 차가 차갑게 식어버렸을 때 즈음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녀석을 죽여버리라고 지시하면 돼! 그 누군가는 내가 아니니 녀석의 능력이 통하지 않겠지?"


"...내가 생각한 일반적인 답은 항상 그 녀석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었어. 그 녀석이 어디에 있는 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마주칠 일 또한 없을 테니까. 하지만 타인을 이용해서 죽여버려도 결과는 똑같을 테니 일단 정답으로 처리해줄게."


시무룩하게 얘기를 듣던 스칼이 마지막에 가서 정답이라는 말에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 그게 파스토르의 계획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네 말처럼 우리는 성물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어. 아니, 고대인이 아니라면 그것의 정확한 쓰임새는 대륙의 어떤 사람도 알 수 없겠지. 당연히 파스토르도 모를 테고. 하지만 벽화를 떠올려봐."


"벽화?"


"그래. 신전 지하에 있는 고대인들의 그림 말이야. 벽화는 분명 성물에 위대한 힘이 깃들어 있음을 암시하지. 이쯤에서 방금 예시를 떠올려봐. 성물을 그 지나치게 위험한 인물이라고 가정하는 거야."


"잠시만 뭔가 알 것 같은데... 그러니까 파스토르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성물을 흡수한 놈들을 죽여버리려는 건가?"


"죽인다는 얘기에서 좀 벗어나라 스칼. 죽이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그들을 죽이면 성물은 그냥 다른 물건에 깃들어버릴 테니까."


"영 모르겠는 걸."


그 답변에 스니블이 빙긋 미소 지었다.

저런 스칼의 태도는 스니블이 언제나 마음에 들어하는 것이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물론 스칼이 용기를 가지고 저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런 얘기야 스칼. 우선 파스토르는 신중한 늙은이야. 계획을 아무리 치밀하게 세워도 아주 작은 요소 하나로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단 말이지. 사실 성물은 작은 요소라고 할 수도 없어. 그건 언제든 계획을 망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물건이지. 세상에 위험한 물건은 차고 넘치지만, 이 경우는 알 수 없다는 점이 주효해. 무지는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법이거든."


"두렵다고? 그 늙은이가 성물을 두려워하고 있단 말이야? 잘 상상되질 않는데."


"두려워 해. 분명한 사실이야. 그래서 파스토르는 아마 성물과 관련된 인물을 찾아낸 뒤에, 그들을 대륙 각지에 묶어버릴 생각일 거야. 어쩌면 감금하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사지를 잘라내 버릴지도 모르지. 방법이야 파스토르의 마음이지만, 그것들이 절대 한 자리에 모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벽화에 따르자면 성물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고대인들은 멸망했으니까. 그리고 파스토르의 계획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자드가 결국 우리의 사업에 동의했으니까."


"흐음. 남부를 먹어 치우면 그 모든 일이 자연스레 가능해진다는 말이군. 하지만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데."


"그건 더 쉽지. 아무튼 파스토르 곁엔 그 남자가 있으니까."


그쯤에서 스칼이 자신의 손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차를 발견하고 울상을 지었다.

더글라스가 두 사람의 등 뒤로 다가왔다.


"이만하면 오래 쉬셨습니다."


스니블과 스칼은 대화를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카니쿨라들이 어서 달리고 싶다는 듯 혀를 내빼고 헥헥거리고 있었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사람은 다시 카니쿨라들에게 마구 비슷한 것을 씌웠다.

잠시 후 다시 달릴 준비가 끝났고, 썰매에 선 스칼이 카니쿨라들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가자!"


카니쿨라들은 달렸다.

처음에 조금씩 전진하던 썰매는 마찰력을 이겨낸 순간부터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세 사람 근처의 대지는 마치 매끈한 흰 두건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썰매가 이동하는 자리마다 흰 두건 위에 두 개의 깊고 기다란 줄이 좍- 그어졌다.

쉭쉭 하는 소리와 함께 썰매는 끝없이 미끄러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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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먹는 것과 뱉는 것의 차이 (11) 23.09.09 39 3 16쪽
64 먹는 것과 뱉는 것의 차이 (10) 23.09.09 35 3 17쪽
» 먹는 것과 뱉는 것의 차이 (9) 23.09.05 43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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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먹는 것과 뱉는 것의 차이 23.08.10 52 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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