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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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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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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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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착석 (10)

DUMMY

사람들은 루나를 응시했다. 분노에 찬 시선에 기가 죽을 법도 했지만 루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루나는 묘한 눈빛으로 길버트를 한번 훑으며 말했다.


"훌륭한 식사였어. 대접에 감사를 표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접에 대한 빌미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야. 너도 잘 알고 있을 테지. 마침 어젯밤에 나는 여기 찾아온 목적을 해결했어. 그러니 더 이상 이곳에 볼 일은 없어."


거기까지 말한 뒤 루나는 리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량한 동정심 때문에 네가 여기 남아 영지민들을 도와주고 싶은 거라면 말릴 생각은 없어. 너는 네가 생각한 대로 행동하면 돼. 나는 네 보모가 아니니까, 너는 내게 따로 의견을 물을 필요는 없겠지."


누가 듣더라도 지독하게 냉정한 말이었다. 리버는 루나의 입을 틀어 막고 싶은 심정으로 슬며시 식당 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예상대로 길버트와 두 노인 모두 침중한 표정이었다. 리버는 그들을 대표하는 심정으로 반문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우리를 도와줬잖아. 우리의 은인이야. 도움을 받았다면 도움을 주는 게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도리가..."


"은인이라고?"


루나는 리버의 말을 끊고서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리버는 당연하다는 투로 얘기를 이었다.


"그래 은인이야. 이 사람들이 첫날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우린 그 파도에 그대로 휩쓸려버렸겠지. 그러니까 생명의 은인인 셈이지. 그리고 그건 나와 토비 만이 아니라 루나 너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야."


"나는 도와 달라고 부탁한 기억이 없어. 이 사람들이 멋대로 도왔을 뿐이지."


"그런 억지가..."


리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루나가 자신 앞에 놓인 냅킨을 집어 들었다. 이어서 루나는 리버의 가슴께에 묻은 얼룩을 냅킨으로 훔쳤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리버가 당황한 표정으로 루나를 쳐다보았다. 루나는 무덤덤하게 냅킨을 탁자 위에 내려 놓았다.


"나는 지금 너를 도와줬어. 네 얼룩을 닦아줬지. 그럼 이제 나도 네 생명의 은인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루나. 그건 억지야. 고작 얼룩을 닦아준 것과 목숨을 구해준 게 똑같을 리가 없잖아."


"방금 네 옷에 묻어 있던 것은 스튜 자국이었어. 음식 냄새가 배어있었지. 만약 네가 그 사실을 모른 채 이곳을 떠나 숲 근처에 다가갔다면, 예컨대 유달리 스튜 냄새에 환장하는 어떤 요괴가 널 덮칠지도 모를 일이지."


리버는 벙찐 얼굴로 루나를 바라보았다. 리버는 그것이 어린아이가 떼 쓰는 식의 논리라고 생각했지만 반박할 말이 곧바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다만 리버는 루나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는 했다.


"위험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거야?"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군. 그래, 가령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려는 남자가 있다면, 그 장면 바라보는 사람은 그 남자가 다소 과격한 물장난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이 영지에 우리들이 도착했을 때의 상황도 마찬가지야. 그 베르미들과 스퀼라들로 이뤄진 파도는 물론 위험해 보이긴 했지. 하지만 그 요괴들의 진의는 알 수 없어. 그것들은 우리를 덮치지 않고 그대로 지나칠 수도 있었어. 아니, 이제 와서 이런 가정은 필요 없겠지. 실제로 그것들은 우리에겐 아무 관심도 없어. 우리는 그 장소에 가만히 서 있었어도 어떤 문제도 없었을 거란 얘기야.

따라서 이 사람들을 생명의 은인이라고 보는 관점은 다소 부적절해. 요컨대 이들은 얌전히 밥을 먹고 있는 인간에게 다가가서 그릇을 죄다 엎어버린 후에, '음식이 목에 걸려 죽을지도 모르니 밥을 먹는 행위는 위험하다'고 경고한 꼴이지."


거기까지 말한 후에 루나는 길버트와 두 노인을 슬쩍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거야. 아마 우리 중에 아돌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리버 네 말처럼 생명의 은인이 되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우리를 도와줬겠지. 토비에게 지극히 염치없는 의뢰를 맡기자면 아무래도 그런 입장에 있는 것이 훨씬 수월하니까."


어떤 대답을 할까 잠시 고민하던 리버는 결국 어떤 대답도 꺼내 놓지 못했다. 리버는 자신에게 웅변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어제 저녁쯤에는 스스로를 좋은 이야기꾼이라 여긴 적도 있었지만 역시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다.

직접 루나에게 대답하는 대신 리버는 길버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시선을 보냈다. 곧 길버트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음으로써 리버의 기대를 완벽하게 배반했다. 리버와 길버트가 멀뚱하게 서로 마주 보고 있었을 때 루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길버트의 얘기는 아주 적절해. 그래, 마지막 만이 끝났으니 지금쯤이면 북부에선 적어도 하루에 몇 명씩은 얼어 죽고 있을 거야. 아마 남부에선 귀족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하루에 몇 명씩은 참수 당하고 있을 테고, 동물들은 저보다 아래의 것들을 잡아 먹고 있을 테지. 그리고 이 순간에도 인간들은 수 백 마리의 가축을 도축하고 있겠고, 또 아돌프들은 지금도 짐승이나 물고기를 사냥하고 있겠지."


마지막 대목에서 토비의 어깨가 살짝 움찔거렸다. 다행히 그런 토비의 반응을 보고서 낮에 있었던 토비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예시가 더 필요한가?"


루나는 얼마든지 더 말할 수 있을 것처럼 굴고 있었다. 그리고 리버는 이번에도 대답을 삼켜야 했다. 리버는 루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세상 모든 죽음 중에서 인간의 죽음만이 더욱 특별한 가치를 지니지는 않을 것이다.

리버는 그것이 올바른 가치관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루나에게 어떤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야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모든 생명의 스러짐이 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말은 합당해 보인다. 그렇지만 루나는 인간이다. 인간이라면 코 앞에서 다른 인간이 죽어가고 있을 때에는 다른 무엇보다 우선 연민이나 동정심을 가지는 것이 본능이다.

생각의 그 지점에서 리버는 루나를 바라보았다. 루나는 태연한 모습이었다. 리버는 그녀의 모습에서 연민이나 동정심 비슷한 감정을 조금도 찾아낼 수 없었다.


리버는 모종의 새로운 의심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인간이라면 그렇다는 말은 인간이 아니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리버는 여태까지의 행보를 곰곰이 되새겼다.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리버는 루나가 인간과 요괴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확신할 수 없게 됐다.

만약 루나가 인간이 아니라면, 그녀가 요괴 쪽에 더 가까운 거라면. 그렇다면 루나는 어쩌면 이 영지가 요괴들에 의해 사라지는 것 또한 지극히 '자연적인' 일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리버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자 어느 순간 불쑥 길버트가 앞으로 나섰다. 길버트는 조금 씁쓸한 얼굴로 루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쯤이면 됐습니다 루나양. 당신이 충분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이제 모두 알았을 것 같습니다. 예, 당신의 말대로 영지의 일은 오롯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물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겠지만 바로 그렇기에 도움을 거절하는 것 역시 당신들의 자유겠지요. 당신들은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면 됩니다. 애초부터 저는 당신들에게 무언가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길버트의 말이 끝나고 루나가 뭔가 대답하려 했을 때, 문득 그때까지 얌전히 팔짱을 끼고 앉아 있던 토비가 콧등을 구기며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토비는 끊임없이 코를 씰룩거리며 길버트 쪽으로 코 끝을 쭉 내밀었다. 토비의 표정은 마치 불쾌한 냄새를 맡은 사람처럼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굳이 인간의 예절에 따르지 않더라도 그것은 상당히 예의 없는 모습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토비의 행동에 당혹감을 드러내자마자 토비가 불쑥 밀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이봐 밀러."


"나 말인가?"


자신이 지목 당할 줄 예상하지 못했던 밀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켰다. 토비는 눈썹을 모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말이다. 너는 조금 전에 내게 의뢰를 맡기고 싶다고 했었지. 내 추측이 맞다면 그건 아마 지금 영지의 빌어먹을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달라는 의뢰였겠지."


"그 얘기로군. 확실히 그런 의뢰를 할 셈이었네. 다만 처음에는 분명 그런 생각이었네만, 이제 괜찮네. 저 아이와 길버트의 말대로 이것은 우리의 문제일세. 하멜이 말한 것이 맞구먼. 내 의뢰는 혼자 죽는 것이 두려워서 타인의 손을 부여 잡는 행위였네. 인정하고 사과하겠네. 염치없는 부탁을 해서 자네를 곤란하게 만들어버렸구먼. 미안하네."


"멋대로 단정 짓지 말라고. 나는 지금 그 의뢰를 수주하겠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응?"


밀러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토비는 밀러의 반응을 뒤로 제쳐둔 채 인상을 쓰며 길버트를 노려보았다. 이어서 토비는 힐난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길버트 너에게선 지금 상당히 고약한 냄새가 나는군."


누가 들어도 뜬금없는 소리여서 순간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토비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흘러도 토비는 부차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후 두 노인은 그냥 이해를 포기해버렸다. 루나와 길버트는 토비의 말이 어떤 은밀한 비유는 아닐지 진지하게 고심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식당 안의 사람들 중 토비의 의도를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리버였다.

타종족에 대한 상식을 웬만큼 함양하고 있던 리버는 아돌프들의 생리 역시 어느 정도는 숙지하고 있었다.

아돌프들이 인간을 향해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실제로 오랫동안 씻지 않은 인간에게 말한 경우다.

이 경우는 굳이 아돌프가 발화자가 아니어도 모든 종족이 쉽게 해석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두 번째는 오직 아돌프라는 종족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별한 능력에 의거한 해석이다.

아돌프들은 인간의 거짓말을 어느 정도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리버는 언젠가 무심결에 흘려 들었던 토비의 발언을 상기했다. 그때 토비는 인간의 말이 거짓말에 가까울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식으로 말했었다.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낸 리버는 본능적으로 지금 상황이 후자의 경우라는 것을 깨달았다.

토비는 그 이후로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듯 몸을 돌린 채 있었다. 리버는 토비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대신 의심스러운 눈으로 길버트를 바라보았다. 리버가 보기에 길버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한편 그런 식으로 리버가 길버트에게 의구심을 품게 된 시점에는 길버트 역시 발화의 목적을 완전히 파악한 상태였다.

길버트는 놀라운 심정으로 토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돌프의 직관력에 대해서 들은 바는 많지만 직접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다만 여태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으므로 길버트는 청중들을 향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할 수 밖에 없었다.


"토비군이 어째서 고약한 냄새를 맡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토비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전적으로 오해이니 그런 눈빛은 거두어 주십쇼. 저는 여러분을 골려 먹거나, 스스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말을 아끼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단순히 말을 아낀 것 뿐입니다. 거짓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두 노인은 도저히 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밀러와 하멜은 어서 해명하라는 무언의 강요가 담긴 눈빛을 길버트에게 보냈다. 그리고 두 노인의 시선을 마주한 길버트는 왠지 모르게 약간 능글맞은 태도로 돌변했다.


"잠시 변명부터 하자면, 사실 저는 방금 전까지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아꼈습니다. 만약 미리 설명했다면 영감님과 집사님은 제 계획에 과한 기대나 희망 같은 것을 품게 됐을 겁니다. 그리고 계획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순간 기대했던 만큼의 좌절감을 느꼈을 겁니다."


밀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계획의 실현 가능성? 길 자네가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을 못 잡겠구만. 숲에 불을 놓는다는 계획은 사람 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시행하지 못하는 것이었잖나. 그게 이제와서는 갑자기 실현이 가능해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예, 제 추측일 뿐이지만 그렇습니다. 우선, 리버 군의 계획은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몇몇 우선순위를 만족하기만 하면 명쾌하고 현실적인 계획입니다. 저 역시 몇 달 동안 고민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해낼 수는 없더군요. 카투스 나무에서 대량의 기름을 뽑아낸 뒤, 숲에 불을 지르는 것 말입니다."


그 말에 밀러가 역정 내듯 대꾸했다.


"아니. 숲을 태우자는 방법은 이제 내가 반대하겠네. 내 생각이 짧았던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네. 지금 와서 자네가 숲을 태우겠다고 하면 오히려 내가 말리고 나설 게야."


밀러의 옆에서 하멜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멜은 토비를 한 번 쳐다본 후에 말했다.


"이 영감과 같은 생각이네. 솔직하게 말해서 길 자네에게 느낀 배신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네만... 이제 몇 천 명의 인간을 살리자고 산맥을 죄다 태워버릴 일에 찬성할 순 없네. 그것은 너무 이기적인 행동일 테지."


두 노인의 반응에 길버트의 입가가 슬며시 꿈틀거렸다. 문득 길버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버트는 천천히 식당 문 쪽으로 이동했다. 식당 문 앞에 도달한 길버트는 몸을 돌려 두 노인을 바라보았다.


"우선 두분 다 진정하십쇼. 저는 그런 식으로 숲을 죄다 태워버릴 생각은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태우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이라도 생각해냈다는 말인가?"


길버트는 창밖을 힐끗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창문에 덕지덕지 붙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길버트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가 이내 다시 식당 안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어제부터 듀라트 영지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온이 내려간 덕분에 지금 우리는 더없이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길버트는 갑자기 식당 문을 확 열어 젖혔다. 식당이 큰 만큼 문 역시 상당한 크기였다. 문을 열자마자 추적대며 내리던 빗방울이 바람과 섞여 식당 내부로 잔뜩 휘말려 들어왔다. 길버트는 그 시원함과 청량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그대로 비를 맞고 섰다.

그때 두 노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밀러와 하멜이 고함을 치기 직전에 길버트의 입이 먼저 열렸다. 길버트는 어떤 비밀스러운 사실을 말하는 사람처럼 은밀한 시선을 뿌리며 말했다.


"화내지 마십쇼. 본론을 말하겠습니다. 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식당의 출입문은 영지의 뒤 편을 향해 있습니다. 그렇지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길?"


두 노인은 길버트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그때 길버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리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리버는 식당 안으로 몰아쳐 들어오는 비와 길버트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크게 외쳤다.


"알겠어요 길버트씨! 비는 식당 안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바람이 영지를 향해 불고 있다는 말이죠?"


길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겁니다 리버군. 물론 불길을 잘 내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바람이 이 만큼이나 거세게 영지를 향해 불고 있다면, 불을 놓는다고 해서 롭스 산맥을 죄다 태워 먹을 일은 없을 겁니다."


대화를 듣고 있던 두 노인이 다음 순간 경악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길버트는 여전히 식당 문 앞에서 온 몸으로 비를 맞고 있었다. 길버트는 마치 즐거운 장난을 떠올린 어린 악동 같은 얼굴로 차분히 덧붙였다.


"기름을 준비합시다. 우리는 이 비가 완전히 그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그 지긋지긋한 것들을 완전히 소탕할 수 있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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