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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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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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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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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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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면기 (7)

DUMMY

"설명해 봐라. 어째서 삶에 목적을 두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거냐?"


누보는 토비의 의문에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누보는 가만히 자신의 팔꿈치 언저리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큰 의미는 없는 행동이었다.

깊은 생각에 빠진 채로 그저 아무데나 시선을 둔, 그런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누보의 시선을 따라가던 토비는 약간 찔리는 듯한 기분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누보가 응시하는 그의 오른팔은 털이 뭉텅이로 뽑힌 상태였다.

그리고 비록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곤 해도 팔을 저렇게 만든 건 토비였다.

토비는 부채감 비슷한 언짢은 기분을 느꼈다.

어느 순간 그런 토비의 시선을 눈치챈 누보가 괜찮다는 의미로 미소를 내걸었다.

그 뒤 마침내 할 말을 결정한 듯 누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는 재담가가 아니라서 이것을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모르겠군. 하지만 내가 방랑 도중에 얻게 된 것들에 대해서 대강이나마 설명해보겠어. 첫방랑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까, 네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말이야."


"설명해."


"아까 전의 얘기를 다시 해보자. 토비 네 목적이란 결국 앞의 수식어들, 그러니까 수단들을 전부 만족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는 것들이야. 방금 전 내가 우두머리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했을 때, 실제로 너는 만족하지 못했으니까. 그렇다면 이 경우에 수단들은 또 다른 각각의 목적이 되는 셈이야. 네 처음 목적은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었겠지만, 그 과정에서 나를 쓰러뜨리는 것 역시 네 또 다른 목표가 돼버렸을 테니까. 그렇지?"


토비가 동의의 눈빛을 보냈다. 누보가 설명을 이었다.


"바로 그 점이 최초의 목적을 초라하게 만들어버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생기는 수 많은 다른 목적들이, 진정한 목적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고 없애버리기 때문이지. 처음에 삶에 대단한 목적을 부여하는 일이 초라하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야. 삶에는 진정한 목적이 없어. 있다 해도 그 목적을 향해 걷는 순간, 주변에 수 많은 다른 목적들이 생겨버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생긴 것들과 처음의 목적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구분할 수 없어.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지. 사실 애초부터 수단과 목적이라는 두 단어의 차이점은 미미해. 미미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 서로 끊임없이 바뀐다는 표현이 정확하겠지."


"목적과 수단이 끊임없이 바뀐다고?"


토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누보가 잠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뒤에 말했다.


"그래 그 두 가지는 쉼 없이 바뀌어. 너 역시 열세 번의 도전을 하며 느꼈을 거야. 우리의 손톱이 부딪히는 어느 순간엔가, 너는 우두머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은 전부 잊은 채, 오로지 나를 쓰러뜨리는 일에만 집중하곤 했을 거야. 그렇지?"


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그 순간 네 수단 중 한 가지가 목적으로 바뀐 셈이고, 그것이 진정한 목적이 된 셈이지. 그러니까 구분할 수 없어. 정확히 어느 순간에 그 일이 목적이 되고 수단이 되는지도 알 수 없지. 특히 인간들의 경우 이 두 가지를 아주 쉽게 혼동하더군. 또 혼동하면서도 자신이 그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하고 말이야."


"인간들이?"


아직 인간을 만나본 적 없었던 토비는 그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토비는 아돌프들의 방랑이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보가 계속 설명했다.


"그래. 내가 방랑 중 만났던 인간들은 전부 많은 돈을 벌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어. 그것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꿋꿋하게 믿으면서 말이야. 물론 은화나 금화의 생김새, 혹은 번쩍거림 자체를 사랑하는 인간이라면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도 별 문제가 없겠지.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 이상에야 역시 돈은 수단에 불과해. 무언가를 사고 팔 때 서로 건네는 화폐 말이야. 그런데도 인간들은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며 살더군.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버는 식의 행동을 매일매일 지겹도록 반복하면서."


그 시점에 누보가 지그시 토비의 눈을 쳐다 보았다.

내부를 들여다보는 듯한 묘한 시선이었다.

토비는 적잖이 부담스러움을 느끼며 어정쩡하게 시선을 돌렸다.

누보는 그런 토비의 모습에서 처음 방랑을 떠날 때의 자신을 발견했다.

누보가 말했다.


"최종적으로 보면... 모든 목적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말이야. 그래, 한순간의 번쩍임 같은 것들이야. 어떤 위대한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해도, 결국 그 과정에는 반드시 수단이 필요하게 되니까. 그리고 그 수단은 다시 목적으로 바뀌고, 그것이 영원히 반복될 뿐이야. 그러니 목적을 추구하는 삶이란, 허상을 추구하는 삶과 다르지 않아. 내가 처음에 말한 것도 그런 의미야. 삶에 목적을 두는 일은 어떻게 되든 결국엔 초라해져버려."


"......"


거기까지 말하고 누보는 입을 다물었다.

한번에 너무 많은 말을 해서 그런지 약간 지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누보의 옆에 있는 토비 역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당연히 누보와는 다른 이유였다.

토비는 누보의 말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평소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누보는 결코 뜬구름 잡는 얘기나 할 아돌프는 아니었다.

따라서 지금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금 전 누보가 직접 말한 것처럼 실질적인 조언일 가능성이 높다.

토비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대답하는 것이 실례처럼 느껴졌다.


사실 토비는 누보와의 대화 시작 지점부터 반박하고 싶은 기분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물론 여태 누보는 시종일관 나지막하게 말하고 있다.

누보의 태도 역시 경험 많은 아돌프가 젊은이에게 건넬 만한 자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결코 유쾌하다고 볼 수 없었다.

삶에 목적을 두는 일이 초라하다면, 지난 몇 년간 누보에게 도전했던 자신의 모든 행동이 초라했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을 누군가에게 의미 없는 일이라거나, 초라하다고 지적 받는 일은, 보통 고깝다.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고, 누보는 언제까지라도 토비의 말을 기다릴 셈인 듯했다.

긴 사고의 끝에 결국 토비는 인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누보의 말이 옳다는 건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으니까.


"무슨 말인지 대강 알겠다. 그래서 결국 네 말은 나더러 목적 없는 방랑을 하라는 거냐?"


누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행동은 토비를 지극히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며, 종당에는 약간의 폭력성마저 불러 일으켰다.

토비는 조금 언성을 높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냐? 방랑의 목적을 가지라는 건지 아닌지 둘 중 하나만 해!"


"네가 찾아야 해. 바로 그걸 찾아내기 위해 우리들은 방랑을 떠나는 거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토비가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서열정리를 재개하고 싶어하는 그 모습에 누보가 한쪽 송곳니를 슥 드러내며 웃었다.

누보는 토비에게 심심하게 사과한 뒤 설명을 이었다.


"자, 진정하라구 이 친구야. 나는 그냥 방랑에 너무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는 말라는 충고를 하고 싶었던 거야. 여태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고작 그 정도야. 그래, 단순한 문제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아니겠어? 예를 들면 내 첫방랑의 목적은 세계 정복이었지."


언뜻 듣기에도 어이없는 발언이었고, 자세히 듣고 있던 토비는 실제로 어이가 없었다.


"세계 정복? 이 자식, 나에게 목적을 가지는 건 허무하다고 말한 주제에 너는 그런 터무니 없는 목표를 세웠단 말이냐?"


"들어봐라 토비... 나도 너 같은 시절이 있었어. 하루하루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서 멀쩡한 나무를 부러뜨리고 다녔고, 어떤 때는 이유도 없이 산맥의 이곳저곳을 날 뛰고 다녔지. 그리고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당시 부족의 우두머리에게 여러 번 도전하기도 했어."


그 대목에서 토비가 크흥-하고 콧바람을 불었다.

누보는 과거를 회상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세계를 정복하고 싶다는 것도 그런 일의 연장선이었어. 젊음의 치기였지. 하지만 방랑 도중에 나는 깨달았어. 우리 아돌프들이 너무 나약하다는 사실을 말이야."


"점점 알 수 없는 소리만 하는군. 우리보다 강한 종족은 없다. 첫방랑을 하는 애송이들을 놀리는 것처럼 날 놀리려는 거냐? 나는 인간이나 무스들 몇십 명이 달려들어도 혼자서 거뜬히 상대할 수 있다고."


누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육체적인 강함일 뿐이야 토비. 물론 아돌프는 힘이 세지. 하지만 투쟁이라는 것은 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해. 진정으로 우리가 더 강했다면, 지금 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건 아돌프였어야 해. 그렇지만 현실을 봐, 실제로 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어느 종족이지?"


"...뭐 그야 인간들이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불현듯 토비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다른 종족에 대한 지식이 충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간이 아돌프보다 나약하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토비는 팔짱을 꼈고, 그 모습을 본 누보는 대번에 토비의 고민을 알아차렸다.

어느 순간 누보가 불쑥 숲 쪽을 향해 팔을 들어 올렸다.

이어서 검지 손톱으로 숲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부근을 한번 봐라."


그때까지 절벽 밑을 보고 있었기에 토비는 일단 돌아 앉은 뒤, 누보의 손 끝에 맞춰 시선을 옮겼다.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누보가 가리킨 곳은 그저 평범한 숲이었다.

눈을 씻고 봐도 무성한 잡초들과 그럭저럭 생긴 나무들이 전부였다.

토비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누보를 쳐다보았다.

누보는 눈빛으로 나무 껍질을 벗기기라도 할 것처럼 그 지점에 세심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아, 여기서는 무성한 잡초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군. 저곳은 얼마 전에 생긴 오피디아 군락이 있는 곳이야. 지금 당장은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군."


눈을 가늘게 뜬 토비는 이내 누보가 가리킨 지점에 있는 오피디아 군락을 발견했다.

하지만 왜 갑자기 저것을 보라고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화하다 말고 갑자기 저건 왜 보라는 거냐? 혹시 저것들 영역이 더 커지기 전에 뽑아버리자는 말이냐?"


그 식물의 특징을 알고 있었기에 토비는 그런 식으로 대답했다.

오피디아는 언제나 제 멋대로 성질을 바꾸곤 한다.

여기서 성질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생존에 있어서 굉장히 유리한 요소다.

추워도, 더워도, 습해도, 건조해도, 일조량이 많건 적건 간에 끊임없이 생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저 군락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부근을 장악할지도 모른다.

기후가 변화무쌍한 곳에선 실제로 숲이 온통 오피디아로 덮이는 일이 자주 일어나곤 하니까.

누보는 토비의 오해를 알아채고 그것을 정정했다.


"뭐 발견한 이상 뽑기는 해야겠지. 이 근처는 날씨가 자주 바뀌니까. 하지만 그걸 위해서 보라고 한 것은 아니야. 나는 저 식물이 인간과 꼭 닮았다는 말을 하려 했어."


"인간들과 닮았다고?"


"그래, 너도 알겠지만 오피디아는 토양과 환경에 따라 성분이 바뀌곤 하지. 그래서 생명력이 약한 식물들을 잡아먹으며 숲을 뒤덮기도 하고 말이야. 내가 보기엔 말이지, 인간들도 마찬가지야. 인간들은 계속해서 성질을 바꾸고 있어. 그래서 그들은 강하고 우리는 약해, 또 그래서 인간들이 오피디아처럼 대륙을 덮은 것이고, 우리는 대륙 한 구석에서 살아가는 것이지."


"도대체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건지 감을 못 잡겠군. 변화하는 건 어떤 사람도 마찬가지잖냐. 우리들도 어떤 부모 밑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커. 그게 어째서 강함의 이유가 된다는 거냐?"


"개인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야. 종 자체를 말하는 거지. 그러니까 이런 얘기야 토비. 인간들은 우리처럼 위협적인 손톱이 없지. 그래서 그들은 칼과 창을 만들었지. 또 그들은 우리처럼 튼튼한 다리가 없기에 마차를 만들었어. 그리고 그 마차를 끌 수 있게 말을 길들였고, 또 마차가 편하게 다니도록 끊임없이 산과 들에 도로를 만들고 있지."


"뭐 그야 그렇겠지. 그래서?"


"그건 세계에 맞춰서 종 자체를 변화시키는 행위야. 오피디아가 어떤 숲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식물로 크는 것과 똑같지. 그 변화가 바로 인간의 강함이야. 그들은 언제나 세계에 맞춰 변화해 왔고, 다른 종족들이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대륙을 덮어버렸지."


토비는 나무 작대기 하나를 집어 들고서 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이리저리 굴려 댔다.

누보는 토비에게 잠깐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잠시 후에도 토비가 말이 없자 결국 누보 쪽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들은 천천히 쇠락하고 있다 토비."


"쇠락? 아돌프가 말이냐?"


"그래. 우리는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우리 뿐만이 아니지. 쿠니나 무스들도 마찬가지야. 그들 역시 쇠락하고 있다. 인간들이 발전하면서 숲은 점점 사라지고 있고, 심지어는 롭스 산맥의 가장 험한 부분마저 내부가 점점 드러나고 있지. 그건 다른 종족들이 무용한 짓이라 여겼기에 하지 않은 일들이야. 하지만 인간들은 했어. 더 많은 길을 만들고, 더 빠른 이동을 하고 싶다는 목표 아래에서 말이지."


"...마치 내게 인간들을 따라하라는 말처럼 들리는군."


퉁명스러운 대꾸에 누보가 약간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부족이 사는 이 숲은 대륙 전체로 보자면 작고 미비한 곳이야. 그리고 이 작은 숲이 바로 우리의 세계지, 턱없이 좁은 세계. 이곳에서 내가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도 없어. 더불어 네가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나를 꺾는 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 이 좁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들 뭐하겠어? 결국 대륙은 인간의 것인데 말이야."


거기서 잠시 숨을 돌린 누보는 돌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종교 전쟁 때 남부의 인간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지. 더 넓은 숲을 가질 수 있을 거란 말과, 또 인간들이 만든 각종 편리한 물품을 제공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나는 거의 확신하고 있어. 언젠가 인간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명령을 하게 될 거야. 장담할 수 있어. 대륙의 모든 것들은 해가 지날수록 인간들의 의지로만 움직이고 있으니까."


"인간들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린다고!"


"안타깝지만 분명 그렇게 될 거야. 그리고 만약 한 종족이 다른 종족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다면... 그건 종족의 쇠락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 말을 끝으로 누보가 입을 다물었다.

토비는 첫 대화로부터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알아챘다.

대화의 시작 지점에서 지평선 위에 둥둥 떠 있었던 태양은 어느새 지평선을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노을이 사라졌다.

두 남자가 있던 곳에 금세 어둠이 찾아 들었다.

토비는 물끄러미 숲을, 정확하게는 오피디아 군락을 관찰했다.

누보의 말은 틀린 점이 없었다.

지금 작은 영역을 구축한 저 오피디아들은 숲에 자신들을 맞추어 나가다가, 결국 이 부근을 전부 자신들의 종으로 채워나갈 것이다.

한참 동안 뚱한 표정으로 있던 토비가 어느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어서 가슴을 한번 탕- 치며 소리쳤다.


"좋아. 결정했다!"


갑작스런 행동에 누보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토비는 결연한 얼굴로 누보를 마주 보며 외쳤다.


"내가 관찰하고 오겠다!"


"토비?"


"내 방랑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이 광활한 대륙을 죄다 지배할 수 있었는지 관찰하고 오겠다는 말이다! 배울 점이 있다면 배우겠어. 만약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훔쳐야겠지. 누보 네가 말한 것처럼 우리 종족이 변화하지 못해서 쇠락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걸 두고 볼 수 없다."


토비다운 호쾌함이어서 누보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두 남자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털에 묻은 흙을 털어낸 두 남자는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란히 숲으로 걸었다.

그리고 두 아돌프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던 바로 그날 밤, 토비는 숲에서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에 토비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부족에서는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물론 누보는 토비가 어젯밤 곧장 방랑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 것 같았기에 그리 당황하지는 않았다.

비록 주인공인 토비는 이미 떠나고 자리에 없었지만, 부족에서는 아돌프들의 전통에 따라 그의 방랑을 축복해주는 행사를 열었다.

부족 창고에 있던 주요한 물건 몇몇 개가 토비와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을 누보와 부족장이 알아챈 것은, 그 행사로부터 꽤 여러 날이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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