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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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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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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6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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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면기

DUMMY

『요괴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것이 그저 요괴라는 점 뿐이다. 우리는 요괴를 정의할만한 어떤 수단이나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다.』


-룰러의 '요괴 대백과' 중-



*



길버트는 고삐를 느슨하게 쥐고 상체를 뒤로 틀었다.

뒤편에선 방금 전 자신들의 옆을 아슬하게 지나쳐 간 마차가 멀어지고 있었다.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으므로 이미 마차와의 거리는 꽤 멀어져 있었다.

마차를 바라보던 길버트는 의아함에 눈썹을 조금 찡그렸다.


물론 마부가 과격하게 마차를 몰았다는 점이 의아했던 것은 아니다.

어차피 외진 곳이었으니 마부 입장에서는 속도를 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아마 이런 외진 곳에서 세 필이나 되는 말을 만나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불어 이런 좁은 포장 도로에서 마차와 마주치게 되면 보통 말을 타고 있는 쪽이 길을 양보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부 역시 똑같이 생각했기에 마지막까지 진로를 틀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토비와 루나는 그런 당연한 예절에 무지했다.

만약 길버트가 다급히 가장자리로 물러날 것을 권고하지 않았다면 부상을 입게 됐을지도 모를 아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길버트의 의문은 마부의 심리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길버트가 의문을 품고 있던 것은 마차의 목적이었다.

마차와 스쳐 지나가던 찰나, 마차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길버트는 마차 안을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내부에는 피부가 하얗고 몸이 호리호리한 남자와, 두꺼운 후드를 입은 초로의 남성이 마주 본 채 앉아 있었다.


척 보기에도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고, 함께 여행하고 있는 것 치고 전혀 친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건 둘째로 치더라도, 그 어색한 여행자들이 타고 있는 마차의 진행 방향에는 듀라트 영지를 제외한 어떤 것도 없다.

지독하게 길을 헤매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마차는 분명 듀라트 영지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길버트는 바로 그 점이 의아했다.

듀라트 영지에는 몇 달 간 방문객이라곤 우연히 찾아든 리버 일행 외엔 전무했다.

당연히 행상인들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행상인들은 위험에 관해서 특히 민감하니 이미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그래서 길버트는 방금 전 두 남자가 행상인이나 피서객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피서를 즐길만한 시기도 아니며, 어차피 듀라트 영지 근처에는 적당한 피서지도 없다.


잠시 고민하던 길버트는 이내 생각을 멈췄다.

타인의 의도를 추측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우며,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아무래도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추격자들이 듀라트 영지를 헤집고 다니다 보면, 결국 자신까지 추격의 범위 안에 넣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 많은 사람들의 눈을 전부 피할 수는 없다.

분명 누군가는 자신이 이 일행에 끼었다는 사실을 목도했거나, 혹은 숲에 불을 놓기 전부터 특별히 어울려 다녔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이틀 간의 여로는 순조로웠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

루나의 말대로 다사다난한 여로가 될 것이 분명했다.


"난폭한 놈들이었죠?"


리버의 목소리에 길버트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들자 리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버트는 리버의 오해를 알아챘다.

인상을 찡그린 채 쭉 마차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타인이 보기에 화를 내고 있다고 오해할 여지가 충분할 것이다.

길버트는 고개를 작게 가로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난폭하긴 했지만 화가 난 것은 아닙니다. 잠시 저 마차의 목적을 생각해보고 있었습니다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닐 테니 관뒀습니다. 아마 저들은 소문에 굉장히 둔감한 자들이겠지요. 그나저나 운이 좋다고 해야겠군요. 몇 일 전에 왔다면 저들은 듀라트 영지 근처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을 테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길버트는 더 이상 마차에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길버트는 여행객들의 축복을 한 번 빌어준 다음 다시 정면을 주시했고, 리버 역시 다시 루나의 등에 기댔다.

얼마간 말발굽이 따그닥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 규칙적인 소리가 의식을 휘감아 돌기 시작했을 때쯤, 앞서 가던 리버가 다시 불쑥 상체를 돌리며 길버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길버트씨가 저택에서 했던 말 있잖아요?"


"음? 뭘 말하는 겁니까."


"필립 사제가 편지를 읽어줬을 때 말이에요. 그때 길버트씨는 종교 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끝난 전쟁이라고 했었잖아요. 그때 분명 나중에 설명해주기로 했었죠? 그거 지금 해주는 건 어때요. 어차피 가는 길도 심심하니까요."


"뭔가 했더니 그 말이었군요. 음. 리버군, 미리 말하자면 전쟁이라는 것은 가장 짧고 단순한 전쟁조차, 지독하게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시간이 꽤 오래 걸릴 테지만... 어차피 말을 모는 데 입은 필요 없을 테고, 또 리버군의 말대로 달리 할 것도 없으니 그럼 설명해볼까요?"


리버가 흥미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옆에서 귀를 쫑긋거리며 두 사람의 대화를 훔쳐 듣고 있던 토비 역시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는 얼굴로 길버트 옆에 말을 가까이 붙였다.

두 사람의 반응에 길버트는 아주 오래전 콜텐 대학에서 했던 강연이 떠올랐다.

그때 학생들은 지금 두 사람처럼 어서 설명해 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길버트는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어떤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에게 설명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럼 종교 전쟁에 관한 제 나름의 의견을 피력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우선 이 사실부터 알아둬야겠군요. 종교 전쟁에 대한 해석에는 수 많은 견해가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학자들의 수 만큼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제 해석이 무조건 맞을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 전쟁안이 나왔을 당시 황궁에 있었으니 일반적인 학자들보단 더 정확한 해석을 내릴 수 있을 것 같긴 하군요."


"좋아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최대한 단순하고 쉽게 설명해주세요. 토비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말이에요."


무덤덤하게 얘기를 듣고 있던 토비는 얼마 후에야 자신의 지능이 유아 수준으로 격하 되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곧 토비가 맹렬하게 리버의 옆구리를 찔러 댔다.

평소라면 반격에 나섰겠지만 리버는 현재 말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 만으로도 벅찬 상태였다.

결국 리버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사과와 용서를 빌고 나서야 간신히 토비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한편 길버트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약간 망설이고 있었다.

종교전쟁은 간단하게 끝난 전쟁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는 전쟁이기도 했다.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끈질긴 작업 끝에 마침내 서순 정리를 끝낸 길버트는 설명을 시작했다.


"그럼 리버군의 요청대로 최대한 단순하게 말해보겠습니다. 종교전쟁이 실제로는 북부가 이긴 전쟁이라는 말의 뜻을 알기 위해선, 먼저 전쟁이 발발한 원인부터 알 필요가 있겠지요. 예시 하나를 들어보겠습니다. 알기 쉽게 리버군을 등장시켜서 말이죠. 자, 리버군이 술집에서 어느 남자와 크게 다퉜다고 생각해봅시다. 다툼의 원인은 아무래도 좋습니다만. 일단 그 남자가 당신을 크게 모욕했다고 쳐봅시다."


"뭐 실제로 저였다면 모욕 정도로 그렇게 크게 다투지 않았겠지만 예시니까 넘어갈게요."


리버가 얼른 끼어들며 말하자 길버트가 빙그레 웃었다.


"좋습니다. 동의한 것 같으니 예시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죠. 그런데 당신을 크게 모욕해서 결국 다툼까지 이어지게 만든 그 남자는, 사실 당신의 잡화점 바로 옆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당신과 똑같은 업종인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남자입니다. 솔직하게 대답해주면 얘기가 빠를겁니다. 이 경우 리버군은 술집에서 일어난 다툼의 원인을 어디에 둘 것 같습니까. 당신은 정말로 모욕을 당해 화가 나서 다투게 된 걸까요?"


리버가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말의 움직임에 맞춰 열심히 허리를 들썩이는 일은 잊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토비가 나섰다.


"뻔한 얘기군. 이 밴댕이 같이 속이 좁은 녀석은 평소부터 그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이유도 단순하겠지. 그 남자 때문에 돈을 더 적게 버니까 셈이 난 거지. 그래서 싸운 거야. 모욕을 받았다던가 하는 문제는 뒷전이고 말야."


"...저는 아직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요 토비."


길버트는 순식간에 투닥거리기 시작한 두 사람을 중재했다.

씩씩거리는 리버를 달랜 후 길버트가 설명을 이었다.


"자 그만, 다투지마십쇼. 그럼 리버군은 다른 생각입니까?"


"음... 아뇨,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도 그 이유가 가장 클 것 같기는 한데요. 실제로 그런 상황이라면 아마 저는 평소부터 그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에요. 그래서 그냥 넘길 수 있는 모욕에도 격하게 반응했을 것 같구요. 잠깐만요... 그러니까 길버트씨는 종교전쟁도 그 예시와 똑같은 경우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남부는 평소부터 북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아주 정확하게 들어맞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비슷하긴 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시에서는 모욕을 당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고, 평소에 그 남자에게 당신의 생계를 위협 받았다는 것이 심층적인 이유지요."


"흠.. 그럼 그 전쟁이 일어난 것도 표면적인 이유와, 실제로는 더 중요한 어떤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이군요."


길버트가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있습니다. 일단 남부가 전쟁을 일으켰던 표면적인 목표는 북부의 야만인들을 계몽 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듣기에 이건 그리 그릇된 목적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피오 교단의 교리는 조화이자 평화이고, 확실히 북부인들은 난폭하고 성정이 사나운 자들이긴 하니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북부에선 부족끼리의 다툼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런 점은 남부가 보기에 피오의 뜻에 반하는 생리였지요. 현재 남부에서 북부인들을 야만스럽다고 경멸하는 문화도 그쯤 시작됐다고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그럼 여기서 묻겠습니다. 리버군은 북부를 계몽하겠다는 이 표면적인 이유에서 어떤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상한 점이라..."


곧장 뭔가 대답하려던 리버가 인상을 잔뜩 구기며 정면으로 상체를 틀었다.

물론 해석이 복잡하다는 것도 리버의 인상이 구겨진 것에 일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길버트를 바라보기 위해 뒤틀고 있던 허리가 비명을 질러 대고 있다는 이유가 더 컸다.

리버는 승마의 첫걸음을 뗀 순간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말 위에서 보냈다.

현재 리버는 땅에 발을 댈 수 없는 생활이 얼마나 처절한지, 또 인간이 꼿꼿한 허리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점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면으로 상체를 향한 리버는 그대로 루나의 뒷목 부근에 얼굴을 거의 파 묻은 채 잠시 동안 그 자세로 얌전히 있었다.

누가 봐도 필사적인 모습이었기에 길버트는 잠시 회복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때 리버와 루나의 합동 승마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토비가 씨익 웃으며 리버 대신 대답했다.


"이상한 점이라면 있지. 북부인들이 난폭하기 때문에 피오의 뜻으로 그들을 계몽한다는 건 말이 안되는 얘기야. 종교전쟁 이전에는 진응왕이, 그러니까 지금의 아드리안 황제가 없었잖냐. 자세히는 모르지만 말이야, 아마 난폭함을 따지자면 통일되기 전이었던 그 당시의 남부가 훨씬 더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길버트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토비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토비가 약간 우쭐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길버트가 말을 이었다.


"놀라운 통찰력입니다 토비군. 당신의 설명은 정확합니다. 당시 남부는 이웃한 제후들이 언제 적으로 돌변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말처럼 난폭하다거나 혹은 야만적이란 말이 어울리는 것은 어떻게 보더라도 남부인들 쪽이었습니다."


그때 더 이상 토비의 콧대가 높아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리버가 대화에 서둘러 끼어들었다.


"그게 표면적인 이유라는 건 알겠어요. 그럼 길버트씨가 생각하는 종교 전쟁의 심층적인 이유는 뭐죠?"


그쯤에서 길버트는 앞으로 이어질 대화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짐작할 수 있었기에 길버트는 다소 씁쓸한 투로 얘기했다.


"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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