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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연재수 :
17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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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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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30,491

작성
16.07.1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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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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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로망스(5)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그리고 모든 것은 타니엘의 말대로 되었다.

아이딘 네르세스가 메칼로의 부하들과 함께 아베디스 루신의 집에서 벗어났다는 보고를 듣자 프리다는 곧장 입궁했다. 이때는 이미 모든 대신들이 정전에 모인 후였다.

그녀는 서향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국정실이 있는 건물로 가던 도중 길목을 지키고 있던 메칼로와 만났다. 기사들이 앞을 가로막았으나 프리다가 그들에게 말했다.

“잠시 시간을 주시오. 그와 할 이야기가 있소.”

호위하던 기사가 난색을 띠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지체하다 누구의 눈에라도 띄면 모든 일이 허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나를 가르치는 게요?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는 경보다 내가 더 잘 아오.”

기사는 프리다보다 일곱 살 어릴 뿐이었지만 그녀의 엄한 목소리를 듣자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은 아이처럼 시선을 떨어뜨리고 옆으로 비켜섰다.

메칼로와 프리다는 자리를 옮겨 건물들로부터 좀 떨어진 곳으로 갔다. 왕국만큼이나 나이 들어 보이는 굵은 나무둥치 뒤편에 마주서자 감추는 것도 두려운 것도 거리낌도 없는 시선이 서로에게 가서 부딪쳤다.

프리다가 먼저 입을 뗐다.

“아이딘을 잘 보살폈더구나. 고맙다.”

“그러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코브를 뒤쫓은 자가 토로스라는 것과, 그를 사주한 사람이 모후라는 걸 알고 있니?”

프리다의 담백한 물음에 메칼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한 것 중 하나다.”

“쌍둥이 중 하나가 선왕 시해에 관련되었을지 모르고, 섭정공이 그들을 노린다는 것은?”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알마스트를 떠날 생각은 없는 거니?”

메칼로는 대답 대신 찡그리는 듯한 미소를 띠었다.

프리다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것을 내쉬며 그녀가 말했다.

“오늘 정전에서 탄원을 하고 나면, 포고스는 섭정공의 보호를 받아야만 한다. 포고스 주변의 모든 영토가 동부 귀족들의 영지니까. 나는 내 남편의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걸 테고, 가로막는 자는 누구든 용서하지 않겠다. 네가 헬리온 클라우스의 명령을 지킨다면 섭정공은 물론 내 적이 될 수도 있다.”

“알아.”

“헬리온의 명령이 나와 적이 되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거니?”

“프리다.”

메칼로가 그녀를 불렀다. 아르반을 떠난 후로 누구에게도 한 적 없는 다정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알고 있을 거다. 나는 당신을 어머니와 같이 여기고 있어. 그러니 아들로서 간청하겠다. 당신의 복수를 에키드와 시세멘이 허락한 곳에서 멈춰줘. 하코브도 당신이 적의 피로 물드는 것은 원하지 않을 거야.”

프리다의 얼굴이 복잡한 감정 속에서 일그러졌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정의를 수호하는 에키드도, 판단하여 벌주는 시세멘도 하코브를 지켜주지 않았으니 나 또한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겠다. 미안하지만 리안, 그럴 수는 없어. 원수의 피와 생명을 내 손으로 끊고 그들의 멸망을 이 눈으로 보겠다. 그것이 복수자인 시니레 앞에서 내가 한 맹세다. 설령 네가 내 적이 되어도······.”

프리다의 작은 몸에 메칼로의 팔이 감겼다. 그의 품에 안긴 채로 프리다는 이를 악물었다.

“나는 절대로······.”

“알아, 용감한 프리다.”

메칼로가 애정을 담아 그녀의 이마에 입 맞추고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당신은 내 적이 아니다. 그것을 말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이제 가겠다.”

메칼로는 망설이지 않고 떠났다. 프리다의 마음을 흔들고 그녀로부터 원하는 대답을 듣게 만들 말을 알았지만 그는 하지 않았다.

멀찍이서 기다리고 있던 페리는 그가 가까이 오자 옆으로 붙으며 물었다.

“그냥 보내도 돼? 백작부인이 이대로 가면 쌍둥이들에게 문제가 생긴다면서.”

“거짓말하기 싫은 날이네.”

메칼로가 대꾸했다.

프리다가 정전으로 가서 대신들 앞에 설 때, 메칼로는 공주의 처소로 돌아갔다. 테라스에서 아직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다피나가 유모와 함께 수를 놓고 있었다. 물론 바늘을 만지는 시간보다 테라스 앞의 정원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옆방에서 수다 떠는 시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더 많기는 했다.

알마스트에 드문 화창한 날씨였다. 태양은 따사롭고 바람은 부드러웠으며 공주는 기분이 좋았다. 화폭에 담긴 한낮의 풍경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메칼로는 곧 생길 일들을 잠시 머릿속에서 밀치고 그림 같은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평화는 짧을 테고 기억은 길 것이다. 그는 그것을 잘 알았다.

공주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정전에서는 아르반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을 사건이 일어났다.

플루투라 궁이 세워진 이래, 여성이라고는 여왕 외에 용납해본 적 없는 정전으로 검은 베일을 쓰고 상복을 입은 과부가 들어선 것이다.

그녀는 서향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정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섭정공의 옥좌 앞으로 갔다. 그녀가 섭정공을 향해 무릎을 꿇고 팔을 내밀었다. 그 전통적인 탄원자의 간청을 섭정공이 받아들였으며, 과부는 일어서서 베일을 걷고 대신들을 돌아보았다.

대신들의 절반 이상이 그녀를 알아보았다. 포고스에 머물며 좀처럼 사교계에 출입하지 않았으나 국왕과 모후로부터 매년 초대받는 귀부인이자 동부 귀족들이 모를 수 없는 그녀였다.

프리다는 섭정공과 대신들 앞에서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코브 네르세스의 죽음을 알리고, 그를 살해한 자에 대한 합당한 복수를 요구했다. 사람들이 포고스 백작의 죽음을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타니엘이 호출되었고 섭정공의 명령에 따라 그가 조사결과를 낱낱이 밝혔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한 동부 귀족들은 입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

하코브 네르세스가 죽었다. 그의 부인이 섭정공 편에 서서 탄원하고 있다. 포고스 백작의 시신에서 선왕 살해가 의심되는 증거가 나왔다. 서향기사단의 단장이 밝힌 범인은 바그랏트 인이다.

모든 주장이 비웃음이나 당할 것 같은 터무니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동부 귀족들 사이에서 고성과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믿을 수 없다거나 말도 안 된다는 소리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나마 절반가량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베디스 루신의 눈치만 봤다.

프리다의 탄원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아베디스의 옆자리에 있던 젊은 귀족이 그의 명령을 받고 정전을 빠져나갔었다. 아베디스는 백작부인과 섭정공을 번갈아 노려보며 말을 아꼈다. 그동안 타니엘의 증언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토로스의 배후가 모후라는 말에 정전은 그야말로 혼란에 빠졌다. 아베디스 루신조차 표정이 변한 채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동부 귀족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고 서부 귀족들이 거기에 맞섰다.

난장판이 된 장내에 기사들의 호위를 받는 메칼로 사제가 들어왔지만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섭정공이 호통을 쳐 사람들을 진정시켰을 때, 사제는 마치 어디선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메칼로의 사제는 대신들 앞에서 타니엘이 말한 내용을 한 번 더 증언했고 이런 일에서 메칼로의 사제가 흔히 하듯, 증언을 끝낸 뒤에는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을 거쳤다.

메칼로 사제의 증언이 있었지만 동부 귀족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토로스가 모후의 명령을 받았다는 증거가 본인의 자백 외에 또 있는가. 누군가 그를 속여서 모후의 명령으로 믿게 만들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코브 네르세스를 뒤쫓았다는 말은 있지만 그를 죽였다는 말은 없지 않은가. 그의 죽음의 책임이 토로스에게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빈틈을 찾아 반격했으나 모든 질문은 또 다른 질문에 의해 봉쇄당했다. 타니엘이 사제에게 준 질문은 서부귀족들의 모든 질문에 대응하고 있었다.

거기에 시체나 다름없는 토로스가 묶인 채로 끌려나오고, 바그랏트에서 데려온 증인이 그의 신분을 확인했다.

마침내 아베디스 루신도 창백해져서 입을 다물 지경이 되자 섭정공은 마지막 공격을 가했다.

이 모든 의심에 답하여, 모후와 공주는 메칼로의 사제에게 심문받을 것이며, 공정을 기하기 위해 대신들이 동석한다.

이와 같은 섭정공의 판결에 동부 귀족들이 불가하다고 외쳤지만 그 목소리는 처음보다 훨씬 줄어들어 있었다. 포고스 백작부인의 탄원도 충격적이었지만 타니엘이 차분한 목소리로 하나하나 발표한 내용은 빈틈없이 모후를 옥죄었다. 동부 귀족들 중에서는 충격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며 아베디스 루신을 노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는 건 5할······ 정도일까?’

대신들의 반응을 확인하며 타니엘은 생각했다. 동부귀족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만큼 준비된 상황에서 반론은 어렵다. 결국 모후와 공주가 심문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결백하다고 해도 두 사람이 심문받는 데까지 이르는 것 자체가 동부 귀족들의 패배일 뿐이다. 만일 타니엘이 주장하는 내용 중 하나라도 사실로 밝혀지면 서부 귀족들은 그것을 물고 늘어질 터였다.

분명 위기를 느낀 동부 귀족들 가운데 5할은 빠져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당장 서부에 붙는 것은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동부 귀족들에게는 국왕을 지킨다는 명분이 있었다. 정전 밖으로 나가면 이 명분은 다른 무엇에 우선했다. 거기에 동서 어느 진영에도 붙지 않은 상당수의 귀족들이 지방에 분포해 있었다. 최악의 경우 동부 귀족들이 ‘국왕을 위해서’라는 기치를 내걸고 전쟁을 선포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그것을 잘 아는 귀족들이니 섣불리 서부로 옮겨가지도 않을 터였다. 하지만 모후나 공주의 심문 결과 그들이 선왕 시해에 관련되었다는 증언이 나오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거지? 그노스 백작.’

창백하게 굳은 얼굴로 섭정공을 노려보는 아베디스를 향해 타니엘이 마음속으로 물었다. 심문에 응해도 응하지 않아도 그에게는 벼랑 끝이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곳에서 나가는 즉시 병력을······.’

그때 타니엘의 생각을 자르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로 참람하며, 망극하기 그지없는 일이나, 모후께서는 결백하시니 메칼로 사제의 심문을 두려워하지 않으실 거요.”

‘뭐?’

타니엘의 눈이 커졌다. 아베디스 루신은 섭정공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 직접 모후마마께 주청드릴 것이오. 허나 참담하지 않은가. 오로지 말뿐인 헛된 증언에 남편을 잃은 부인과 아비를 잃은 딸에게 살해의 죄를 묻다니! 에키드와 시세멘의 이름에 맹세코, 결백이 증명되는 순간 이 모욕과 불명예의 대가를 섭정공께서 치뤄야 할 거요!”

혈색을 잃고 굳은 얼굴이었으나 아베디스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소란을 찢으며 날아가 섭정공을 쳤다. 섭정공이 둥근 눈을 뾰족하게 세우고 그를 노려보았다. 시선만으로 상대를 찢어발길 것 같은 두 사람의 대치에 장내는 단숨에 조용해졌다.

“물론이오.”

섭정공이 나직이 대꾸했다.

이것으로 그날의 정무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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