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연재수 :
178 회
조회수 :
130,389
추천수 :
5,473
글자수 :
930,491

작성
16.07.16 23:28
조회
801
추천
34
글자
12쪽

로망스(3)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다음날 날이 밝기 무섭게 타니엘은 모든 인맥을 동원해 한 가지를 확인했다.

권력보다 황금이 더 무서운 때가 있는 법이다. 오후가 되자 타니엘은 원하는 정보를 들려줄 사람과 은밀히 마주앉을 수 있었다.

“어째서 그런 것을······.”

타니엘의 질문에 왕실 의관 베네라 아뎀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모후와 공주의 월경주기를 알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녀가 굳은 낯으로 타니엘을 쳐다보았다.

“말하기 곤란하다면 가부만 대답해도 무방하네. 모후마마의 월경이 그믐 무렵으로 일정한가?”

베네라는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타니엘을 보고 있다가 이윽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월경통이 심하신가?”

“예.”

“하루나 이틀 정도는 몸져누워야 할 정도로?”

“그렇지요.”

드러내서 말할 일이 아니고, 남성이 여성의 월경주기나 월경통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 것이 낯설 뿐, 비밀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처음에 당황했던 베네라도 점점 의원답게 침착함을 되찾았다.

“공주 전하도 월경통이 심하다고 들었네만, 그분 역시 그믐 무렵으로 일정하고.”

“모녀지간이시니 닮는 것이 이상할 것 없겠지요.”

“고통이 심하신데 의관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나?”

“모든 방법을 써봤지만 효과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전임 때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그 후로는 의관의 도움을 받지 않으셨고, 공주님의 경우는 처음부터 의관도 사제도 싫어하셔서······.”

그녀의 대답에 타니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부드러운 표정인데도, 베네라는 자신 앞에 앉아있는 귀공자가 문득 도사려 앉은 커다란 구렁이처럼 느껴져 오싹 떨었다.

“그렇다면 말이야,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 전의 일인데 자네가 왕궁에 갓 들어왔을 때다. 자네는 모후를 측근에서 모시던 전담 의관 밑에 있었지? 그러니 분명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네. 모후께서 회임하셨을 때, 그때도 그믐이면 옥체 고한(苦恨)하셨던가?”

베네라는 그의 질문에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는 조금 웃었다.

“타니엘 경. 회임 중에는 월경이 없습니다. 당연히 그믐이라고 해서 월경통이 생기지는 않지요.”

“잘 생각해 보게. 월경통이 아니라도 다른 이유로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고 하루 정도, 몸져누우시거나 홀로 계신 적은 없는지.”

베네라는 잠시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확신하나?”

“당시 모후마마의 진단기록을 제가 작성하였습니다. 다른 때는 모르겠으나, 회임 중에 그믐마다 탈이 나셨다면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잊겠습니까. 확실히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베네라는 단언했다.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지······.”

베네라가 떠나고 나서, 혼자 남은 타니엘이 중얼거렸다.

“누군가 에듀아드 코스탄딘을 죽이고, 그것을 공주가 살리고······. 그렇다면 공주가 바로 선왕 시해의 공범이자 불길하기 짝이 없는 세다의 각인자라는 말인가.”

세다의 각인자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고 래번에게 말했었지만, 그것은 낮은 확률까지 포함했을 경우의 이야기였다. 한밤중 모후의 침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가능한 사람은 훨씬 적어진다.

만일 공주였다면 쉽다. 당시 열한 살이었던 왕자와 공주는 모후의 거처 가까운 곳에서 지냈다. 밤중에 시녀를 보내 어린 딸을 데려오는 것 정도는, 이상한 일일지 몰라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타니엘은 시녀들이 정성껏 빗어 묶어준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평소의 그녀를 생각해보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정황상 공주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세다의 각인자에 선왕 시해의 공모자······. 그렇다면 에듀아드 코스탄딘을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용의자는 적지만 누구라고 예상해도 문제였다.

복잡한 머리를 쥐어뜯는 그에게 심부름 보냈던 부관이 돌아왔다. 타니엘이 조급하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래번은 상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힐끗 보고 대답했다.

“허락 받았습니다. 참관할 수는 없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답에 대한 증언도 가능하답니다. 사제의 방문은 내일 아침으로 약속되었습니다.”

래번의 말에 타니엘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놓고 입에서 나온 말은 불평이었다.

“어지간히 뜸을 들이는군.”

“메칼로의 각인자로서는 당연하겠지요. 대답하지 않는 상대로부터 정보를 꺼내오라는 요구이니까요. 감추고 싶은 능력의 발현 조건이나 범위가 드러나게 되는 일을 쉽게 하겠다고 할 리가······.”

“아아, 그 지독한 놈. 이렇게까지 하게 만들다니 정말 두 손 들었다.”

그 지독한 놈이란 붙잡혀 심문받은 지 오래인 토로스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섭정공이 움직이자 타니엘은 가장 먼저 왕궁 지하 감옥을 점령하고 토로스를 빼돌렸었다. 공주를 습격한 죄인은 거기에서 고문이나 심문을 당한 흔적이 조금도 없이, 에밀리오에게 다쳤던 몸을 치료받던 중이었다.

황금창 기사단은 죄인이 죽어버리면 곤란하니 먼저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부상이 치명상이 아니라는 것을 타니엘은 알고 있었다.

서향 기사단 건물로 옮겨진 토로스는 그로부터 계속 고문 전문가를 동원한 심문을 받고 있었다. 생명에는 지장 없이 고통만 주는 전문가의 수법이 얼마나 악랄했던지 지켜보던 기사들 중 토하거나 달아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바위라도 입을 열고 없는 죄까지 실토했을 것 같은 고문을 받았지만 토로스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고문이 생명에 지장 없는 방식이라고 해도 계속된 고통은 몸을 약하게 만든다. 결국 토로스의 상태가 악화되자 타니엘도 포기하고 메칼로의 각인자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죽어가는 죄인이다. 이런 사람을 상대로 진실을 알아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각인자가 대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래번의 말대로다. 이런 제약 속에서 진실을 알아낸다면 각인자의 능력에 대한 정보가 누출된다. 그로서는 위험부담이 컸다.

마침내 승낙이 떨어진 것은 타니엘에게도 다행한 일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어. 메칼로의 각인자가 증언한다면 토로스가 자백한 거나 매한가지일 테고. 래번, 알아보고 있는 건 어떻게 됐어?”

“아직 하루도 안 지났습니다.”

“증거가 필요해. 누가 봐도 의심할 수 없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증거 말이야. 우리 상대는 그런 증거 없이 쓰러뜨릴 수 없어. 정황증거 따위는 아무리 모아도 회초리지 칼이 아니란 말이야.”

래번은 드물게 초조해 보이는 상관을 힐끗거렸다. 일은 분명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흐르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타니엘에게는 평소의 여유가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불안해 보입니다.”

래번이 결국 물었다. 타니엘이 얼굴을 찡그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넌 불안하지 않아?”

“실마리가 풀려가는 중이며 아직까지 우리에게 불리한 정황은 없습니다만.”

“일일이 설명해 줘야만 하는 거냐······.”

타니엘이 불평했다. 보통 때라면 쾌활하게 놀려대며 할 말이었지만 지금은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 래번이 잠자코 기다리자 타니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 어째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포고스 백작은, 도대체 왜 테리아로 간 거지?”

“그야 선왕께서 시해 당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범인이 가까이 있으니······.”

“범인을 짐작했다면 더욱 더 테리아로 가서는 안 되는 거잖아. 섭정공이 있어. 외국에 가서 도움을 청할 바에는 왕제 전하께 사실을 말하는 편이 나았어. 애초에 포고스 백작은 양 진영의 영역싸움 따위에 관심도 없었잖아. 그런데 왜······.”

“그것이 지금 중요합니까?”

래번이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 타니엘의 의문을 이해하기는 했다. 그의 말을 듣자 래번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것에 신경을 쓸 때인가. 아르반이 반으로 나뉠 판이고 선왕의 시해자가 왕족 가운데에서 나올 판인데.

“이 모든 일의 시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냔 말이다. 래번, 포고스 백작이야. 하코브 네르세스라고. 그가 7년 전의 일을 우리 앞에 던져 놓았어. 선왕 시해 사건이니 우리에게 펼쳐놓은 것은 당연하지만 어째서 테리아 인들을 여기에 끌어들였는지는 젠장, 모르겠단 말이다.”

래번은 타니엘의 말을 들어주다가 한숨을 뱉었다.

“부탁입니다만 고민하더라도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난 뒤에나 해 주십시오. 여기에서 그런 일로 흔들리면 우리에게는 고민할 미래도 없습니다.”

냉정한 말에 타니엘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 말이 정답이지. 인정하기는 싫지만.”

타니엘은 부관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날 왕궁을 나가지 않고 기사단 숙소에 남았다. 당직 기사들이 있었지만 안심하지 않고 한 명씩 교대로 감옥을 지켰다. 잠시 고문이 중지된 토로스는 시체처럼 움직일 수 없는 몸인데도 재갈과 밧줄로 결박당한 채 밤을 보냈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래번은 메칼로의 신전으로 가서 각인자인 사제를 데려왔다.

사제란 신자 혹은 각인자 가운데 신전에 종사하는 자들이다. 수호신의 금기를 지킬 능력이 없는 사람이 신전의 도움을 받기 위해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도움을 받는 대신 신전의 명령을 받아 능력을 사용한다. 그런 관계이므로 대개 신전에 종속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메칼로의 각인자가 사제라면 오히려 그 반대였다. 신전이 메칼로의 각인자에게 종속되었다······ 라는 쪽이 맞을 것이다.

섬이나 해안지대가 아닌 이상 메칼로 신전의 힘은 각인자로부터 나왔다. 각인자가 없다면 신전의 의미가 없는 것이 내륙의 메칼로 신전이었다. 당연히 그 능력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각인자 자신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다.

타니엘이 신전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각인자와 직접 타협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서향 기사단의 감옥으로 들어간 사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갈 것과, 부를 때까지 가까이 오지 말 것을 요구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어림없는 말이었으나 타니엘은 순순히 기사들을 내보냈다.

그 후 한 시간 가량, 사제는 감옥에서 나오지 않았다.

기사들 모두 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궁금한 나머지 체면 팽개치고 문에 귀를 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뭘 듣지는 못했다. 고문 받는 죄인의 비명이 들리지 않도록 두껍게 만들어진 벽과 문이다. 애초에 기대할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사제가 좀처럼 나올 기색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기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해졌다.

안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토로스란 자가 보통 독종이 아니니 사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확인 정도는 해봐야 한다. 아니, 그랬다가 사제가 방해했다며 화를 내면 도움받기 힘들어진다. 더 참아보자.

부하들이 논쟁을 벌이는 동안 타니엘은 묵묵히 문 맞은편 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당직 기사들과 함께 번을 섰던 그는 잠이 부족해 뻑뻑한 눈을 습관처럼 비볐다. 다행히 그의 눈두덩이 붉어지기 전에 감옥 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온 사제는 타니엘 못지않게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의 손에는 감옥에 들어가기 전 타니엘이 건네 준 종이가 들려 있었다. 토로스에게 할 질문을 적어놓은 것이다. 타니엘이 감옥에서 번을 서며, 그물을 짜듯 촘촘하게 짜고 엮은 질문들이었다.

그 종이에 낯선 필적으로 새로운 글자가 보태진 것을 타니엘은 금방 알아보았다. 사제의 답변이었다.

사제로부터 되돌려 받은 종이를 재빨리 훑어보는 타니엘의 얼굴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래번만이 눈치 챘다. 그것은 좋은 패를 받은 타니엘 일리스의 표정이었다.

래번 외의 누구에게도 차갑고 무서워 보이는 얼굴로, 타니엘이 명령했다.

“서향 기사단과 예하부대를 전원 소집해. 전쟁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메칼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9 어둠으로부터(4) +20 16.10.08 675 26 11쪽
88 어둠으로부터(3) +14 16.10.07 575 29 13쪽
87 어둠으로부터(2) +16 16.10.05 562 27 13쪽
86 어둠으로부터(1) +16 16.10.04 626 23 13쪽
85 <2부. 바그랏트의 메칼로 - 프롤로그> +29 16.10.01 696 29 18쪽
84 <1부 완결 후기> +39 16.09.02 799 26 2쪽
83 <1부. 아르반의 메칼로 - 에필로그> +14 16.09.02 834 30 9쪽
82 니델린 성으로 +22 16.09.01 865 37 13쪽
81 나들이 +14 16.08.31 708 32 9쪽
80 르기노 탑(3) +15 16.08.31 720 33 14쪽
79 르기노 탑(2) +18 16.08.29 629 32 11쪽
78 르기노 탑(1) +16 16.08.27 757 30 10쪽
77 흐르는 기억(4) +18 16.08.25 730 34 10쪽
76 흐르는 기억(3) +14 16.08.25 641 32 12쪽
75 흐르는 기억(2) +18 16.08.24 841 32 11쪽
74 흐르는 기억(1) +22 16.08.23 848 30 11쪽
73 터럭 한 올의 차이(6) +16 16.08.21 939 32 8쪽
72 터럭 한 올의 차이(5) +16 16.08.20 880 33 12쪽
71 터럭 한 올의 차이(4) +16 16.08.19 802 34 12쪽
70 터럭 한 올의 차이(3) +8 16.08.18 742 31 12쪽
69 터럭 한 올의 차이(2) +14 16.08.16 759 33 12쪽
68 터럭 한 올의 차이(1) +18 16.08.15 689 32 13쪽
67 부정 +24 16.07.29 853 36 15쪽
66 로망스(7) +18 16.07.26 758 34 10쪽
65 로망스(6) +22 16.07.22 712 33 14쪽
64 로망스(5) +20 16.07.19 839 36 11쪽
63 로망스(4) +14 16.07.18 737 35 11쪽
» 로망스(3) +14 16.07.16 802 34 12쪽
61 로망스(2) +38 16.07.15 1,000 36 10쪽
60 로망스(1) +24 16.07.14 654 35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