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연재수 :
178 회
조회수 :
130,655
추천수 :
5,473
글자수 :
930,491

작성
16.08.31 11:01
조회
709
추천
32
글자
9쪽

나들이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로우벤의 음독이 수도로 전해지자 착한 사람들은 불운한 소년 왕을 동정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망자를 위해 세다에게 꽃을 바쳤다.

코스탄딘 왕가의 하나뿐인 왕녀는 자신의 처소에서 자숙하던 중이었으나 쌍둥이 형제를 애도하기 위해 외출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태어나는 아이의 수만큼 죽는 사람도 많았지만 세다를 위한 신전은 없었으므로, 공주는 대신 아누쉬의 신전으로 향했다.

그녀는 아직 감시를 받는 중이라 신전으로 가는 마차는 서향 기사단이 호위했다. 말을 탄 기사 네 명과 50여 명의 병사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공주는 시녀 대신 메칼로와 산디아를 대동했다.

날씨가 화창했다. 여름이 머지않아 공기가 따뜻했고 바람은 아직 건조했다.

“오라버니는 지금쯤······.”

창밖을 무심히 내다보던 다피나가 문득 중얼거리다가 입을 다물고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마차 안에 메칼로와 산디아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금쯤 남북대로와 교차하는 십자로에 거의 도착했을 거다. 닷새 후면 카누엘 산을 지날 테고 엿새나 이레쯤이면 바다에 있겠지.”

다피나가 입속으로 삼킨 말을 메칼로가 대신했다. 그리고 무심히 덧붙였다.

“너도 같이 갈 수 있다. 아르반을 떠나도 이프린 섬에서 며칠 정박하겠다고 했으니까.”

다피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나도······ 테리아에?”

문득 물었다가 그녀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런······ 가능할 리가 없지 않으냐. 궁에서도 밖에서도 항시 기사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저렇게 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능해. 우리가 쓰려고 만들어 둔 탈출로가 아직 건재하니까.”

쉬운 일처럼 메칼로가 대꾸했다. 아니, 정말로 그에게는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고 다피나는 생각했다.

“테리아에······.”

꿈꾸는 듯한 눈을 하고서 그녀가 중얼거렸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그곳은 전설과 신화 속에만 존재하는 야만의 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로우벤이 가려는 곳이고 그녀 자신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정말 그곳에서는 비 대신 물고기가 내리느냐?”

언젠가 메칼로가 했던 말을 기억해내고 다피나가 물었다. 산디아가 눈썹을 움찔거리고 메칼로는 씩 웃었다. 그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아서 신디아가 대신 설명했다.

“드문 일이지만 해안에서 회오리가 일어 바닷물을 끌어올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수면 가까운 곳의 물고기들이 함께 휩쓸렸다가 땅에 물이 뿌려지면서 물고기도 함께 떨어지지요.”

“그 이야기는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당연하잖아.”

메칼로가 불만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실망스러우니라. 비 대신 물고기가 내린다면 위험하게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필요가 없으니 누구라도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었노라.”

“누구에게나 살기 좋은 나라 같은 건 없어.”

메칼로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여기보다 낫다고도 못하겠고. 하지만 적어도 너에게는 더 나을 수 있겠다. 로우벤처럼.”

그것은 그랬다. 로우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피나에게는 위안이 되었다.

“로우벤에게도 그 편이 더 좋을지 모르지. 나몬의 백성은 인도자가 필요한 법이니까.”

메칼로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몬이라는 말에 산디아도 다피나도 안색이 변했지만 그는 태연히 말을 이었다.

“어떤 신에게 선택받았는가에 따라 그 사람과 운명이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생각해 봐. 하코브는 언제든 어디에서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고 반드시 그렇게 했다. 그는 결코 길을 잃지 않는 셈레의 백성이었으니까. 편안함이 없는 여행자 신의 신자이기도 하고.”

메칼로의 얼굴에 혀끝으로 쓴 것이 닿은 듯한 표정이 스쳤다.

“아무 것도 아닌 자, 그림자 왕. 나몬이 공연히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게 아니야. 자신의 특성 같은 것은 하나도 없이 남의 것만을 빌려 존재하지. 그러니 나몬의 백성에게는 정체성을 찾아줄 누군가가 필요한지도 모르지. 로우벤에게 그 사람이 모후였을지 너였을지 모르겠다만 누군가 필요하다면 갈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잖나.”

그러니 로우벤을 위해 테리아로 가라.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들은 것과 같았다. 다피나가 눈을 깜박이며 메칼로를 쳐다보았다.

“그대는 테리아 인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테리아 인답다고 생각했으나 의외로 다정하고 세심하구나.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니 감탄했노라.”

공주가 생각하는 테리아 인이 뭔지 정확히 모르는 산디아는 어째서 메칼로가 그녀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피나는 눈을 내리뜨며 이어서 말했다.

“오라버니는 괜찮으니라. 나는 조금도 근심하지 않노라. 오라버니는 17년 동안 그 무서운 악신과 홀로 싸우면서도 우리를 지키셨느니. 바란 적 없고 선택한 바 없는 길에서도 그러하셨으니 스스로 택한 길 위에서 어찌 강강(剛剛)하지 않으리. 경솔히 돕고자 오라비를 못 믿는 어리석은 누이가 되지 않겠노라.”

그녀의 말은 다짐인 것도 같았다. 메칼로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뭐라 대꾸할 것 같았지만 볼을 조금 실룩거리다 말뿐이었다.

다피나는 소리를 내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휙 들더니 야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생각을 해 보아라. 고향을 등지고 모험을 떠난 왕자의 뒤를 누이동생이 뒤쫓아 가더라는 이야기가 어디에 있더냐. 아니지. 어느 공주가 사랑하는 기사나 첫눈에 반한 왕자님 대신 오라비를 쫓아간단 말이냐.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느니.”

“나도 너 같은 공주는 들어본 적 없다.”

메칼로가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그가 더 설득하지 않았으므로 마차 안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다피나는 다시 창밖을 내다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사냥제가 이즈음이로다. 메칼로, 사냥제에서 내 호위기사가 되어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반대다. 네가 멋대로 나를 호위기사로 삼겠다고 떼를 썼지.”

“그대는 도무지 배울 줄을 모르는군. 이럴 때는 말이다······.”

다피나가 한숨을 포옥 쉬고는 로망스의 남주인공이 해야 할 대사와 태도를 열심히 가르쳤다. 메칼로는 귀찮은 얼굴로 건성건성 대꾸했고 산디아는 웃음을 감추려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차는 알마스트를 벗어나 굽이진 길을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야트막한 언덕이나 작은 숲을 따라 길이 몇 번이나 휘어졌다.

굽은 길을 이동하는 마차가 숲과 언덕에 감춰졌다 드러나곤 하는 모습은 근처 농가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보리밭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던 사내가 기사와 병사들의 호위를 받는 마차를 빤히 바라보았다.

“고일 씨, 신호는요?”

사내의 발밑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물었다.

“없습니다.”

“뭐요?”

고일이라고 불린 사내의 대답에 보리밭에 엎드려 있던 남자가 상체를 불쑥 일으켰다. 그리고 노란 보리이삭 사이로 자그마한 마차를 노려보았다. 그는 뭔가를 찾는 것처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결국 중얼거렸다.

“없어······.”

‘그러니까 없다고 말했잖아.’

불평하려던 고일이 그의 눈치를 힐끗 살피고 입을 다물었다. 안 그래도 혈색이 안 좋은 남자가 잔뜩 피곤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리는 중이었다. 짜증내기 직전의 표정이라는 것을 아는 그가 슬그머니 옆으로 피했다.

“메칼로님이 설득에 실패했다고······? 순진한 계집아이를 상대로?”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중얼거렸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도 모르잖습니까. 서향 기사단 측에서 뭔가 눈치를 챘다든가, 오늘따라 감시가 심하다든가. 아니면 다른 용건이 생겼다든가. 토비아스님의 계획이라도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고일이 위로하듯 말하다 문득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입술을 움찔거렸다. 과연 토비아스의 피곤한 얼굴에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제 계획은 항상 들어맞습니다. 아니라고 생각했다니 유감이군요.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당신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고일 씨, 당신은 본래······.”

‘아니야. 이해해요. 하지 마. 잘못했어요!’

고일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이제부터 기분이 단단히 상한 토비아스에게 몇 시간에 걸쳐 인생의 역정을 탈탈 털리게 될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멀리 보이는 보리밭에서 한 남자가 절망에 빠진 줄도 모르고 공주의 마차는 착실히 신전을 향해 갔다. 어쨌든 화창한 날이었고, 핑계는 로우벤을 위한 애도였으나 다피나에게는 오랜만의 나들이였다.


작가의말

화요일 분량입니다앗.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4

  • 작성자
    Lv.99 크림
    작성일
    16.08.31 11:16
    No. 1

    근데 네르세스의 장자는 누구의 백성이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9.01 23:35
    No. 2

    너무 많이 알면 다치는 겁니다! ]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연두초록
    작성일
    16.08.31 11:27
    No. 3

    다피나도 강인한 여성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9.01 23:35
    No. 4

    그렇죠. ๑❤‿❤๑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16.08.31 11:35
    No. 5

    테리아로 가서 인형이 되느니 메칼로를 여기 붙잡아놓을 생각일까요. 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9.01 23:36
    No. 6

    그런 앙큼한 생각을?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8 혼운
    작성일
    16.08.31 13:38
    No. 7

    이번편도재미있게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9.01 23:37
    No. 8

    혼운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5 혼연무객
    작성일
    16.08.31 16:05
    No. 9

    일단 왕자도 무사히 건너가면 죽었다고 알려진 자를 죽이려고 쫓을 자도 없을테고
    공주도 안전하니?

    첫번째 에피 완료인가요?
    그리고 다음 에피가 있겠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9.01 23:37
    No. 10

    그렇죠. 잘 알고 계셔서 덧붙일 게 없엌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Rainin
    작성일
    16.08.31 17:12
    No. 11

    이제 슬슬 메칼로 어록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9.01 23:38
    No. 12

    앗. ㅎㅎ 그런데 메칼로 어록이란 건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 거예요? 대사 모음집 같은 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9 사만다
    작성일
    16.08.31 19:00
    No. 13

    테리아의 메칼로.... 볼 수 있을까요!! 마치 전설처럼 여겨지는 곳이라 점점 테리아가 너무 기대됩니다. 그나저나 로우벤이 생각할수록 너무 불쌍하네요. 나몬의 신자가 되기로 자기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흡 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마니
    작성일
    16.09.01 23:39
    No. 14

    아마도 3부가 테리아의 메칼로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2부는 1부보다 짧을 테니까 3부는 연말이나 신년에 볼 수 있지 않을까...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메칼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9 어둠으로부터(4) +20 16.10.08 680 26 11쪽
88 어둠으로부터(3) +14 16.10.07 577 29 13쪽
87 어둠으로부터(2) +16 16.10.05 564 27 13쪽
86 어둠으로부터(1) +16 16.10.04 629 23 13쪽
85 <2부. 바그랏트의 메칼로 - 프롤로그> +29 16.10.01 699 29 18쪽
84 <1부 완결 후기> +39 16.09.02 804 26 2쪽
83 <1부. 아르반의 메칼로 - 에필로그> +14 16.09.02 838 30 9쪽
82 니델린 성으로 +22 16.09.01 867 37 13쪽
» 나들이 +14 16.08.31 710 32 9쪽
80 르기노 탑(3) +15 16.08.31 721 33 14쪽
79 르기노 탑(2) +18 16.08.29 632 32 11쪽
78 르기노 탑(1) +16 16.08.27 761 30 10쪽
77 흐르는 기억(4) +18 16.08.25 733 34 10쪽
76 흐르는 기억(3) +14 16.08.25 642 32 12쪽
75 흐르는 기억(2) +18 16.08.24 844 32 11쪽
74 흐르는 기억(1) +22 16.08.23 849 30 11쪽
73 터럭 한 올의 차이(6) +16 16.08.21 942 32 8쪽
72 터럭 한 올의 차이(5) +16 16.08.20 882 33 12쪽
71 터럭 한 올의 차이(4) +16 16.08.19 803 34 12쪽
70 터럭 한 올의 차이(3) +8 16.08.18 743 31 12쪽
69 터럭 한 올의 차이(2) +14 16.08.16 762 33 12쪽
68 터럭 한 올의 차이(1) +18 16.08.15 692 32 13쪽
67 부정 +24 16.07.29 857 36 15쪽
66 로망스(7) +18 16.07.26 760 34 10쪽
65 로망스(6) +22 16.07.22 714 33 14쪽
64 로망스(5) +20 16.07.19 841 36 11쪽
63 로망스(4) +14 16.07.18 740 35 11쪽
62 로망스(3) +14 16.07.16 804 34 12쪽
61 로망스(2) +38 16.07.15 1,004 36 10쪽
60 로망스(1) +24 16.07.14 657 35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