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소다킹★

The abyss : 추락한 자들의 세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소다킹
작품등록일 :
2022.04.05 17:26
최근연재일 :
2023.02.26 12:33
연재수 :
179 회
조회수 :
8,495
추천수 :
77
글자수 :
955,741

작성
23.01.01 06:29
조회
33
추천
0
글자
12쪽

147화 바일라(4)

DUMMY

미스낙은 바일라에게 물통을 하나 건넸고 테이블 위에 싱싱한 과일을 올려놓으며 빛을 이용해 상처 치료를 시작했다.


“세상에나 고문을 당하신 건가요?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죠? 온몸이 상처투성이에요.”


바일라는 물과 과일을 먹는 데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눈앞에 앉아 있는 리자드가 신기한지 그녀의 눈, 코, 한 번씩 스르륵 튀어나오는 갈라진 그녀의 혀를 유심히 관찰했고 기억 속에 담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리자드를 처음 보세요?”


바일라는 그제 서야 고혹적인 그녀의 외모와는 다르게 쉰 목소리에 반응했고 대답했다.


“아... 미안해요. 포로로 잡히기 전에는 꽤 많은 지역을 모험하며 다양한 종족들과 만났지만, 리자드를 보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요. 너무 뚫어져라 쳐다봤죠?”


“이해하기는 하지만 부담스러우니 너무 그렇게 대놓고 보지는 말아주세요. 제 독니가 가득 차 뿜어내고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똬리를 틀고 있던 검은 바탕에 주황색 줄무늬가 있는 튼튼한 그녀의 꼬리가 스르륵 움직이자 흠칫 놀란 바일라는 허리를 곱게 펴고 포도 한 송이를 따 입안에 넣었고 눈치를 살폈다.


바일라의 허벅지보다 훨씬 두꺼운 저 꼬리에 조이게 된다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고자 바일라는 자신을 미스낙에게 소개했다.


“우리 통성명이나 할까요? 전 바일라라고 해요. 모험가이고 활을 잘 다뤄요. 그쪽은?”


미스낙은 치료하던 손을 멈추고 바일라를 힐끔 바라보고는 노란 독이 뚝뚝 떨어지는 독니를 들어내며 대답해 주었다.


“미스낙이에요. 예전엔 창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보시다시피 이 마법봉을 이용해 부상당 한 이들을 치료하죠. 창으로 살을 찌르는 것보단 지금처럼 살을 복원시키는 게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미스낙은 고개를 끄덕였고 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그... 류미님을 주인님이라고 다들 칭하던데...”


바일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스낙은 바일라의 팔을 꽉 붙잡고 끌어당겨 꼬리를 움직여 몸을 휘감았고 날카로운 독니를 들어내 촉촉해져 생기가 도는 입술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쉬이~ 보이지 않는 귀가 사방에 있어요. 한 번만 더 주인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시면 제가 먼저 물어 버릴 거예요. 하찮고 작은 이 독니로 황소 한 마리는 너끈히 쓰러뜨릴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바일라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낙이 팔을 얼마나 세게 붙들었는지 그녀가 팔을 놓아주었을 땐 새빨간 피멍이 들어 있었고 욱신거렸다.


여자 리자드임에도 악력이 오크만큼이나 강력했다.


“이제 치료에 집중할게요. 그러니 치료를 하는 동안 조용히 앞에 놓인 과일이나 마저 드세요.”


대체 류미는 이들에게 어떤 존재이길래 나긋나긋하던 미스낙의 눈빛을 순식간에 사냥꾼의 눈빛으로 변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고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시 그녀와 직접 대면해 들어봐야 알 것 같았다.


그날 저녁은 오랜만에 침대가 딸린 선실에서 묵었고 이른 새벽 리자드들이 우르르 몰려와 바일라와 재커리를 끌고 해안가로 데려갔다.


그곳엔 바일라가 타고 왔던 어선이 있었고 전사들은 창을 들어 위협하며 두 사람을 파도에 출렁이는 어선에 태웠다.


바일라와 재커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전사들을 바라보았지만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고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또는 출발하지 못하게 했다.


아무래도 밤새 기다렸던 류미가 이곳에 올 모양이었다.


10분쯤 밖에서 기다리던 그때 저 멀리 만티코어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포효하며 괴수가 날아오자 재커리는 벌벌떨며 황급히 몸을 숨겼지만 바일라는 그 자리에 서서 전사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에구머니나! 저게 뭐야! 만티코어에요! 바일라님. 빨리 몸을 숨기세요. 그렇게 넋놓고 있다가는 놈의 간식거리가 될지도 모른다고요!”


“진정해요. 캐저리.”


전사들은 재커리와는 다르게 괴수의 등장에 움츠러들기보다는 턱과 어깨가 한껏 올라갔고 눈에도 힘이 바짝 들어갔으며 당당하고 근엄한 자세와 표정으로 정면만을 응시했다.


전사들의 반응을 본 바일라는 어제 저 무시무시한 괴수에 올라타 해적의 섬 주요시설에 최상위 마법인 메테오 마법을 사용한 것이 류미였음을 알게 되었다.


만티코어의 거대한 날개가 하늘 바다를 가렸고 그의 날갯짓에 해안가의 고운 모래가 흩날리며 바일라의 시야를 흩트려 놓았다.


모래바람이 거세지자 바일라는 고개를 돌렸고 그사이 만티코어는 해변에 내려앉았다.


전사들은 양쪽으로 갈라져 창을 비스듬하게 양쪽에서 기울여 류미가 지나갈 수 있도록 문을 만들어 주었고 바일라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땐 류미가 이미 바일라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바일라는 어선에서 내려 류미에게로 걸어갔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섰다.


류미는 인사 대신 무한의 가방을 열어 바일라의 활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고 손을 뻗어 바일라가 타고 갈 어선에 보호막을 씌워주었다.


“괴수어들이 공격은 하겠지만 강력한 물리 보호막을 걸어뒀으니 평화의 항구까지 무사히 도착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안심하고 바다를 건너셔도 돼요.”


“고마워요. 류미님.”


바일라는 류미에게 한 발 더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고 손바닥에 드롱이 끼고 다니던 붉은색 루비가 박힌 한 쌍의 반지를 올려놓았다.


“드롱님이 생전에 끼고 다니던 반지에요. 주인을 만났으니 돌려 드릴게요.”


류미는 가만히 작은 손 위에 올려진 반지를 내려다보았지만 반짝이는 루비의 속에 드롱은 없었다.


얼굴과 그의 채취, 말투, 음성, 다부졌던 그의 몸, 모든 것이 또렷하게 기억났지만 메말라 가는 류미의 감정의 샘에는 더는 그가 머물렀었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고 자그마한 기억의 고리 속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부르튼 류미의 입술이 씰룩 씰룩거려 바일라는 류미가 슬퍼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반지를 되돌려 받자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제겐 이 반지가 필요 없어요. 다시 가져가세요.”


“뭐라고요!? 그동안 드롱님이 류미님을 찾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아세요? 매일 밤 에리자엘의 빛을 보며 류미님을 그리워하며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했다고요. 드롱님이 죽기 전날 밤에도요.”


류미의 목소리에 힘이 조금 실렸다.


“궁금하지 않아요. 그런 것 바라지도 않았고 시키지도 않았어요.”


바일라는 류미의 손을 붙잡고 허리를 숙여 그녀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예요? 지금 제 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로 류미님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워요.”


류미는 그녀의 손에서 손을 빼내며 말했다.


“전 변하지 않았어요. 이게 제 진짜 모습이라고요. 그동안 바일라님이 보았던 건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착하고 순간 사람의 가면을 쓴 제 빈껍데기였을 뿐이에요.”


류미가 예전의 모습을 그리고 기억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기를 바랐던 바일라는 크게 실망했고 그녀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서 한숨을 내뱉었다.


“류미님이 왜 이렇게 변하게 됐는지 전 알아요. 그 검은책 때문이죠? 그렇죠? 하지만 류미님 걱정하지 마세요. 맹세코 그 저주받은 책으로부터 류미님을 구해 드릴 거니까.”


바일라의 걱정어린 말에 류미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푸훗. 저주라니요. 이 책은 제게 축복을 주었어요. 누구도 절 얕보지 못할 힘을 줬다고요. 그런데 바일라님은 아직도 절 예전의 풋내기 마법사로 보고 계시는 것 같아 살짝 기분이 언짢네요.”


“얕보다니요. 절대 그런 의도는 없었어요.”


“그렇겠죠? 후후.”


숨어 있느라 두 사람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지만 재커리는 류미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웃어 보이자 이야기가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해 숨어 있던 곳에서 빠져나와 모습을 드러냈고 바일라의 뒤쪽으로 쭈뼛쭈뼛 걸어와 고개를 숙여 류미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어제 저희의 목숨을 구해주신 분이시죠? 어젠 정신이 없어 미처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그리고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요.”


류미는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전 재커리라고 합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존함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류미는 성가시다는 듯 얼굴을 구겼고 마지못해 말해주었다.


“류미.”


“고운 마음씨만큼이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계시군요. 대단하십니다.”


류미는 그가 겁을 이겨내고 단순히 아부나 감사의 인사 따위를 전하러 굳이 배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재커리는 류미를 똑바로 바라보기보다는 계속 곁눈질로 턱을 괴고 엎드려 있는 만티코어에게 더 눈길을 많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독의 아들이죠? 우물쭈물하지 마시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하세요. 제가 있는 동안은 점박이가 당신을 집어삼키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재커리는 이젠 편안하게 눈을 감고 졸고 있는 만티코어를 확인하고는 조금 전과는 다른 태도와 힘이 조금 실린 어조로 말했다.


“그럼 주저하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어제 저희와 함께 묶여 있었던 남성분도 저희의 일행이었는데 왜 살려 주시지 않으시고 죽이신 거죠?”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도리어 따져 묻는 그의 태도에 류미는 불쾌함을 느꼈다.


“두 분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분과는 다르게 그 사람은 몹쓸 저주에 걸려 있던데요. 저조차도 쉽게 풀 수 없는 처음 보는 저주였어요. 공교롭게도 이곳에 거주하는 해적들은 모조리 그 저주를 달고 있더군요.”


재커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럼...?”


“노예로 쓰기엔 접합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다 쓸어버리라고 했어요. 한편으로는 그걸 바라지 않았나요? 재커리?”


재커리는 발밑에 있는 모래를 고르며 씁쓸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후후... 그렇기는 하지만 막상 모두 죽어버렸다니 마음이 아프군요. 그들은 저주받기 이전에 제 동료였고 이웃이었으며 가족이었으니까요.”


“다 부질없는 인연의 고리일 뿐.”


“그런데 어떻게 해적들이 저주를 받은 몸이라는 걸 알아차리셨죠? 외적으로는 전혀 티가 나지 않던데요.”


“전 두 분이 보지 못하는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바일라는 눈에 힘을 주며 따져 물었다.


“그것 또한 검은책의 힘이겠죠?”


류미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몸을 타고 흐르는 힘을 음미했다. 종일 맛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갈망했다. 처음엔 제어하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스스로가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는 줄곧 느껴지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지내왔다.


“말씀이 없으신 걸 보니 그런가 보네요. 이젠 놀랍지도 않아요. 그럼 제게도 뭔가 보이시겠죠?”


“네?”


“재커리님은 한 번도 오베릭 제독의 아들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어!... 그러게요?”


“음... 그건.”


바일라는 류미의 손을 잡고 자신의 심장에 가져다 댔다.


“어때요? 이렇게 하면 볼 수 있나요? 이 손으로 제독과 해적들을 죽였으니 뭔가 보셨겠죠?”


손안에 바일라의 펄떡거리는 심장을 꺼내 올려놓은 것처럼 그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류미는 황급히 바일라의 손을 뿌리쳤고 뒤돌아섰다.


마음 한편으로는 바일라도 끌어들여 가지고 싶었지만 가까이했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곁에서 죽어 나가는 걸 더는 보고 싶지 않았고 그녀마저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


류미는 아직 소중한 존재였던 휘나의 죽음에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가지려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몇 남지 않은 소중한 인연들을 저주받은 자신에게서 지키고 싶었다.


“이제 그만 가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The abyss : 추락한 자들의 세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0 150화 내전(5) 23.01.05 27 0 12쪽
149 149화 내전(4) 23.01.03 26 0 12쪽
148 148화 내전(3) 23.01.02 34 0 11쪽
» 147화 바일라(4) 23.01.01 34 0 12쪽
146 146화 바일라(3) 22.12.30 36 0 11쪽
145 145화 바일라(2) 22.12.27 31 0 11쪽
144 144화 바일라(1) 22.12.26 31 0 11쪽
143 143화 위슈트리나(4) 22.12.25 30 0 11쪽
142 142화 위슈트리나(3) 22.12.23 34 0 12쪽
141 141화 위슈트리나(2) 22.12.20 32 0 11쪽
140 140화 위슈트리나(1) 22.12.19 32 0 12쪽
139 139화 내전(2) 22.12.18 33 0 12쪽
138 138화 내전(1) 22.12.16 30 0 12쪽
137 137화 오크원정대(19) 22.12.13 31 0 12쪽
136 136화 오크원정대(18) 22.12.12 31 0 11쪽
135 135화 미넬리아 공성전(2) 22.12.11 29 0 12쪽
134 134화 미넬리아 공성전(1) 22.12.09 31 0 12쪽
133 133화 신의 군대(8) 22.12.06 32 0 12쪽
132 132화 신의 군대(7) 22.12.05 30 0 11쪽
131 131화 신의 군대(6) 22.12.04 35 0 11쪽
130 130화 오크원정대(17) 22.12.02 36 0 12쪽
129 129화 오크원정대(16) 22.11.29 36 0 12쪽
128 128화 흔적을 찾아(2) 22.11.28 36 0 11쪽
127 127화 흔적을 찾아(1) 22.11.27 38 0 12쪽
126 126화 오크원정대(15) 22.11.25 36 0 13쪽
125 125화 오크원정대(14) 22.11.22 37 0 12쪽
124 124화 오크원정대(13) 22.11.21 37 0 12쪽
123 123화 오크원정대(12) 22.11.20 37 0 11쪽
122 122화 오크원정대(11) 22.11.18 35 0 12쪽
121 121화 오크원정대(10) 22.11.15 37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