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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byss : 추락한 자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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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킹
작품등록일 :
2022.04.05 17:26
최근연재일 :
2023.02.2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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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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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5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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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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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오크원정대(12)

DUMMY

준비해두었던 간식이 바닥을 보일 때쯤 다소 어설프기는 했지만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도비쿠스 표 역사 이야기도 막을 내렸다.


관객들은 도비쿠스가 극찬에 얼굴빛이 빨갛게 될 정도로 환호와 힘찬 박수로 답례해 주었다.


그 스스로 만족스러운지 한껏 미소를 머금었다.


처음 듣는 세상 이야기에 와이트들은 깊은 여운이 남았는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사건들을 하나하나씩 더듬어보며 자기들끼리 토론을 했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예언해보는 재미에 푹 빠져 집안은 어느덧 시끌시끌한 시장바닥이 됐다.


“감히 신하 주제에 왕좌를 넘보다니 아주 건방지군요! 그런 쓰레기들은 모두 쓸어 담아야 마땅합니다. 아주 말끔하게 먼지 한 톨도 남지 않게 말이에요.”


“재대로 된 사고방식을 가지셨군요!”


“도비쿠스님과 아그리사님이 이렇게 훌륭한 분들인 줄은 몰랐습니다. 영광스러운 일을 하고 계시군요. 존경스럽습니다!”


카이스도 다른 와이트들 못지않게 이야기에 푹 빠졌었는지 한동안 크리스탐에 대한 욕설과 비난을 쏟아 냈다.


그 사이 단잠에 빠졌었던 아그리사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앉아 헝클어진 머리와 부스스한 얼굴로 목을 긁으며 멀뚱멀뚱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다 끝났어?”


야수의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던 그녀의 입에서 처음 나온 간드러진 목소리와 말투는 작은 새의 지저귐처럼 설레게 했고 도비쿠스의 두 뺨이 발그레해졌다.


그녀가 달라져 보였고 도비쿠스도 내친김에 목소리를 내리깔고 중저음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본인 스스로 만족스러운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잘 잤어요?”


그녀가 다시 야수로 변하는 데에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굳어진 표정과 꽉 쥔 두 주먹이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도비쿠스는 자신이 부린 추태에 깊이 후회했다. 그래서 그녀가 손찌검하기 전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말인데요. 카이스님 저희를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와이트가 합류해 준다면 결사대는 큰 힘을 얻을 것입니다.”


카이스는 도비쿠스의 뜻밖의 제안에 놀란 듯 식탁을 정리하던 손을 놓고 다리를 꼬고 앉았다.


“네? 저희가요? 말라비틀어진 저희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너무 과대평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리고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저희는 빛이 피부에 닿게 되면 갈라지고 타버려서 먼지가 되어 버립니다. 보세요. 집에 창이라고는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카이스는 원형 나무 식탁 중앙에 우두커니 서서 빛을 뿜어 내고 있는 황금색 5구 촛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우리에게 유일한 빛은 이 촛불뿐입니다. 사실 이것도 손님분들을 위한 것이지 저희는 빛이 없어도 어두운 곳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런 비리비리한 저희가 어떻게 빛의 기사와 함께 싸울 수 있겠습니까.”


아그리사와 도비쿠스가 아쉬움에 표정이 식기전 카이스가 무릎을 ‘탁’치며 말했다.


“그러나!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대신에 여러분들이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걸 선물해 드릴게요. 잠시만요. 엘마. 나 좀 도와주겠어?”


카이스는 아내 엘마와 함께 옆방에 있는 지하실로 내려가 커다란 상자 하나를 가지고 올라와 도비쿠스와 아그리사의 발아래 내려놓고 상자를 열어 보여주었다.


상자 안에는 손안에 넣고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앙증맞은 약병에 바다 연꽃처럼 진한 푸른색을 띠는 마나 물약이 담겨 있었다.


색만큼이나 농도가 짙어서 그런지 물약을 흔들자 병의 표면에 끈적하게 붙어 흘러내렸다.


“이게 뭔가요?”


“고농축 마나 물약이에요. 저희가 개발한 신약이죠. 일반적인 마나 물약에 약 2배 그리고 증류해 만드는 물약에 4배 정도로 강한 물약이에요.”


“오!!!”


“이런 대단한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팔면 떼부자가 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이 정도면 놈들을 쓰러뜨리고 그림자 숲을 떠난 후에도 사용하실 수 있는 양일 거예요.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한 저희의 보답입니다.”


“이렇게 귀한 것을 저희가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요.”


“어허~ 넣어두십시오. 널린 게 황금 사과인데 이런 건 또 만들면 되죠. 저희에겐 할 일이라고는 이런 것밖에는 없는걸요. 아! 그리고 이것도 가져가세요.”


카이스가 내민 건 증류기 설계 도면이었다.


“이... 이건. 뭐죠?”


“크흠. 제가 새로 개발한 증류기 설계 도면입니다. 여러분들을 이곳에 보내준 그 친구분에게 전해 주십시오. 분명히 아주 좋아할 겁니다. 흐흐흐. 그 증류기로 이 고농축 마나 물약을 만들 수 있으니 필요하면 더 만들어서 크리스탐인지 크리스탈인지 하는 녀석에게 아직 정의는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십시오.”


그는 가족들이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 후 카이스는 그의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지하실로 질질 끌려 내려갔고 뭇매를 맞아야만 했다.


지하실에서 올라오는 비명 카이스와 목소리와 그를 다그치는 호통 소리를 들어보니 그가 도비쿠스에게 건넨 상자가 문제였다.


지난 몇 년간 힘들게 모아온 것인데 가족회의는 물론이고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덜컥 내줬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후 그의 가족들 무언의 압박에 못 이겨 도비쿠스는 그들과 함께 과수원 일을 도와야 했고 발목을 다친 아그리사는 집안에 앉아 사과 선별 작업을 해야 했다.


- - - - -


3일이 지나고 아그리사의 발목이 완전히 회복되자 쫓기듯 불안해하며 서둘러 떠날 채비를 했다.


3일이라는 시간은 이곳에서 아주 긴 시간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레이스들은 안식의 사원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기 위해 몸을 던져댔다.


어쩌면 생명의 사원을 향해 대원들은 이미 떠났을 수도 있었고 그 반대로 됐을지도 몰랐다.


도비쿠스는 농축 물약이 든 상자를 행여나 마음이 바뀌어 도로 돌려 달라고 할까 봐 아그리사를 업고 달렸던 그때처럼 상자를 등에 업고 흘러내리지 않게 꽁꽁 싸맸고 고맙게도 와이트들은 호위를 자처하며 함께 따라나서 주었다.

안식의 사원으로 향하는 어두운 숲길이 더는 두렵지 않았다.


숲의 중심부로 들어서자 약속이라도 한 듯 레이스들은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모기들처럼 어느샌가 나타나 주위를 서성거렸다.


하지만 와이트들의 갑작스러운 출몰에 레이스들은 군침이 도는 먹잇감을 눈앞에 두고도 수사자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하이에나처럼 그저 멀리서 그윽하게 바라만 볼 뿐 선뜻 다가오지 못했다.


그렇지만 오직 그들의 날 선 시선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을 억누를 수 있었고 움츠러들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놈들이 저렇게나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장관이 따로 없군요. 아그리사 노파심에 드리는 말이기는 하지만 행여나 불필요한 행동으로 놈들을 자극하는 행동은 삼가세요.”


“내가 넌 줄 알아? 날 뭘로 보고.”


도비쿠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의 손에 움켜쥔 제멋대로 각진 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왜 그 돌은 주워 드신거죠? 녀석들에게 던지실 생각으로 주우신 것 다 알고 있습니다. 놈들이 지금은 겁을 먹고 다가오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수적 열세인 건 알고 계셔야죠.”


“흥! 그래 네 말대로 수적으로 열세이기는 하지만 실력으로 열세인 건 아니야. 얼마든지 덤벼보라 해. 머리통을 부숴버릴 테니까.”


아그리사는 침을 뱉으며 손에 쥐고 있던 돌을 놈들을 향해 내던졌다.


그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레이스들의 시선이 일제히 남쪽으로 돌아갔고 일제히 날아올라 검은 연기를 흩뿌리며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놈들의 움직임에 아그리사와 도비쿠스는 재빨리 몸을 숙였고 제아무리 놈들에게 강한 와이트라고 해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와이트들은 자세를 낮춰 잡았고 검의 손잡이를 잡고 반쯤 뺀 상태로 그들이 날아가는 것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카이스는 자세를 고쳐잡고 미간에 힘을 주며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축적된 그들의 행동에 관해 얘기해 주었다.


“다행인 걸까요? 새로운 먹잇감이 나타났나 본데요? 그런데 저렇게나 많이 몰려간다는 건 숫자가 많다는 건데...”


아그리사와 도비쿠스는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말했다.


“공격이 시작됐어!”


서둘러 대원들과 요정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와이트들에게서 멀어지는 즉시 조상들이 있는 곳으로 누구보다 먼저 가게 될 거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아그리사는 답답함에 발만 동동 굴렸다.


그 모습은 보고 있던 카이스는 뒤를 돌아 가족들을 지그시 바라보았고 그의 아내인 엘마는 카이스에게로 다가와 햇볕처럼 따스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의 손을 잡았다.


“내 사랑 카이스. 그동안 당신의 마음에 상처가 날까 봐 두려워 말 못 한 말이 있어요. 당신을 만난 건 제겐 축복과도 같아요.”


“엘마. 나도 마찬가지라오. 한데 내 마음의 평안을 주는 그 말이 어찌 내 마음에 상처를 준단 말이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라고 해도 생화의 싱그러움은 절대로 담아낼 수 없어요. 마치 지금의 우리 모습처럼 말이에요. 카이스. 당신이 날 위해... 아니 우리 모두를 위해 그간 희생하고 노력해 온 걸 비난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바랬던 우리의 사랑은 영원불멸함이 아닌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사랑하다 죽는 것이었어요. 이젠 우리의 운명을 받아들여요. 저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든지 전 당신과 함께할 준비가 되어있어요.”


제니타도 카이스 곁으로 다가왔고 뒤따라 여동생 제니와 후커삼촌의 가족들도 함께 따라왔다.


“형. 형수님의 말이 맞아. 우린 살 만큼 살았어. 아니 죽어있을 만큼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젠 때가 된 것 같아. 새로운 뼈를 찾아 숲을 돌아다니는 것도 이젠 지겹고 특히나 저 황금 사과는 정말이지 싫증이 난단 말이야.”


“크흐흐.”


“전염병에 걸려 시궁창보다 못한 곳에 격리된 우릴 구해내기 위해 그동안 애써줘서 고마웠어. 이 한 마디를 지금에서야 하게 될 줄은 몰랐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발을 빼기엔 너무 멀리 온 것 같지 않아? 만약 내 인생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하나 남겨야 한다면 저들을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카이스는 입 주변의 가죽이 찢어질 정도로 환하게 웃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품에 안았다. 제니타만 빼고 말이다.


“아... 저리 꺼지지 못해? 형제끼리 이건 아니잖아. 토악질 나온다고.”


카이스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가족들이 파도처럼 넓게 벌려 서서 도비쿠스와 아그리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해요? 안 갈 거예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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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142화 위슈트리나(3) 22.12.23 34 0 12쪽
141 141화 위슈트리나(2) 22.12.20 32 0 11쪽
140 140화 위슈트리나(1) 22.12.19 3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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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136화 오크원정대(18) 22.12.12 30 0 11쪽
135 135화 미넬리아 공성전(2) 22.12.11 29 0 12쪽
134 134화 미넬리아 공성전(1) 22.12.09 31 0 12쪽
133 133화 신의 군대(8) 22.12.06 32 0 12쪽
132 132화 신의 군대(7) 22.12.05 30 0 11쪽
131 131화 신의 군대(6) 22.12.04 35 0 11쪽
130 130화 오크원정대(17) 22.12.02 36 0 12쪽
129 129화 오크원정대(16) 22.11.29 36 0 12쪽
128 128화 흔적을 찾아(2) 22.11.28 36 0 11쪽
127 127화 흔적을 찾아(1) 22.11.27 38 0 12쪽
126 126화 오크원정대(15) 22.11.25 3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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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124화 오크원정대(13) 22.11.21 3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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