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오브라 윈브라 쇼(2)
설혁의 말을 들은 오브라는 벌떡 일어섰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 블랙로즈는 단순히 히어로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군요. 슈퍼 히어로라고 해야 하나? ”
오브라의 말을 들은 효민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 슈퍼히어로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이에요. 슈퍼히어로는 저의 동글이 같은 남자에게나 붙여줄 수 있는 말이죠. ”
“ 스노우맨도 블랙로즈처럼 굉장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까? ”
오브라의 말을 들은 효민이 입을 열었다. 이때까지 설혁이 효민의 장점을 칭찬했다면 이제는 효민의 칭찬 타임이었다.
“ 강해요. 남자는 강한 것 하나면 끝 아닌가요? ”
“ 오우! 블랙로즈 굉장히 마초적인 발언이네요. 강하기만 하고 배려심 없는 남자가 얼마나 쓰레기인지 모르나 보네요. ”
오브라의 말을 들은 효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 네! 제 동글이는 저에 대한 배려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배려심이 중요한지는 몰랐네요. ”
“ 와! 남자 자랑이 너무 심하네요. 하지만 블랙로즈만을 바라보고 중학생 시절부터 괴수를 상대하겠다고 나선 스노우맨 일화를 듣고 난 뒤라 그런지 블랙로즈를 향하여 욕을 하는 시청자가 없네요. 모든 시청자가 스노우맨을 가진 블랙로즈를 부러워하고 있어요. ”
오브라는 미소를 지었다. 블랙로즈와 스노우맨의 사이에 맴도는 핑크빛 기류에 취할 것만 같았다.
“ 세상의 모든 남자가 스노우맨 같았으면 좋겠네요. ”
오브라의 말을 들은 효민이 고개를 저었다.
“ 그러면 안 돼요. ”
“ 네? ”
“ 이 세상 남자들이 다 동글이처럼 되면 안 된다고요. 그렇게 되면 이 세상 남자가 모두 저만 바라볼 것 아니에요. ”
효민이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말하자 오브라가 뻥 터졌다.
“ 블랙로즈, 차갑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다 거짓말이었네요. 이렇게 재미있는 농담을 할 줄 아신다니.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니 웃을 수만은 없네요. 남자 시청자들이 자신이 스노우맨은 아니지만 그래도 블랙로즈와 사귀고 싶다고 말을 하네요. ”
오브라의 말을 들은 효민이 그 자리에서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 죄송해요. 저는 이미 동글이 것이라서. ”
효민이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이자 오브라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우리 방송은 여성 시청자가 80%인데 젊은 여성들의 우상인 블랙로즈가 한 남자의 것이라고 선언을 하면 어떡해요. 그럼 남자들이 너무 기고만장해지잖아요. ”
오브라의 말을 들은 효민이 피식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설혁에게 말했다.
“ 동글아! 안아줘. ”
효민의 한마디에 설혁은 카메라도 신경 쓰지 않고 그 자리에서 효민을 안아 들었다. 그러자 효민이 오브라를 보며 말했다.
“ 보시다시피 제가 동글이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글이가 제 탈것이기도 해서요. 오브라 쇼의 시청자들은 이런 식으로 남자를 다루는 것을 좋아하려나? ”
효민이 말을 하며 설혁에게 안긴 상태에서 팔을 뻗어 설혁의 까끌까끌한 머리를 쓰다듬자 시청자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 내 남자친구는 무겁다고 절 안 안아주던데 부럽네요. ]
[ 대박 스노우맨 너무 맘에 드네요. 저에게 넘겨요. 제가 사랑으로 키울게요. ]
[ 블랙로즈와 스노우맨 사이가 너무 뜨거워요. 스노우맨이 녹아버리겠어요. ]
[ 스노우맨을 대여해 줘요. ]
게시판을 확인하면서 오브라가 미소를 지었다.
“ 우리 오브라 쇼의 시청자들이 남자에게 이렇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군요. 정말 여성들의 꿈을 모아 만든 남자 같아요. ”
오브라의 말을 들은 설혁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 포장이 그럴듯하게 되어서 그렇지 그리 좋은 남자가 아닙니다. 제가 블랙로즈를 얼마나 많이 울렸는데요. ”
설혁의 말을 들은 효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동글아! 침대 위에서라는 말은 내가 붙여 주기를 원해서 빼 먹은 거야? ”
효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게시판이 다시 뜨거워졌다.
[ 제 남자친구는 나쁜 남자지만 밤에 강해서 5년째 헤어지지 못하고 있죠. 자상한 데다 밤에 강하다니 진짜 욕심나는 스노우맨이네요. ]
[ 눈사람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어요. 조금만 뜨거우면 녹을 텐데. ]
게시판을 보며 오브라가 씩 웃었다. 그리고 효민에게 말했다.
“ 눈사람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냐는 데요? 뜨거우면 금방 녹아버린다고. ”
오브라의 말을 들은 효민이 태연하게 말했다.
“ 눈사람이 눈으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잖아요. 특히 코는 제작자가 원하는 것을 달기 마련이죠. 스노우맨의 코는 뭐로 만들어졌을까요? 몸이 다 녹아도 단단함을 유지하는 스노우맨의 코가 뭔지 저도 궁금하네요. ”
효민의 말에 오브라가 고개를 끄덕거렸네.
“ 저도 궁금하네요. 스노우맨의 코를 지금 확인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방송사고가 날 것 같으니 참아야 하겠네요. ”
웃으면서 말하던 오브라는 갑자기 정색하더니 효민에게 날카로운 질문했다. 단순히 웃고 즐기는 토크쇼가 아니었기에 오브라 쇼는 지난 20년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 블랙로즈는 세상을 뒤흔들 힘을 손에 넣었고 세상 모든 여자가 꿈꾸는 남자를 손에 넣었는데 이제 이 세상을 위해 뭔가 할 생각은 없나요? ”
갑자기 오브라가 진지한 질문을 하자 효민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 그런 생각은 안 해봤네요. 사실 세상이 제게 해준 게 별로 없으니까요. 제가 막 각성했을 때도 한국정부에서 제 능력을 키워주기보다는 강제로 군대에 보내려고 했으니까요. 동글이가 없었다면 저는 명령밖에 모르는 평범한 군인이 되어 있었겠죠. ”
효민의 말을 들은 오브라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했다.
“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당신을 구원한 스노우맨도 이 사회의 일원이잖아요. 당신은 스노우맨에게 구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한국의 다른 어린 여자 각성자들은 어떻죠? 지금도 군대로 끌려가고 있을 것 아니에요. 당신은 당신이 겪을 뻔했던 고통에서 그녀들을 구원해 줄 생각은 없나요? 당신의 능력이라면 그녀들을 구원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
오브라의 말을 들은 효민은 머릿속에서 번개가 침을 느꼈다. ‘ 그래 내가 막 각성했을 때 얼마나 두렵고 떨렸던가. 동글이가 아니었다면 난 어린 나이에 군대에 끌려갔겠지! 그리고 평생 군인으로 살아야 했겠지! 다른 여자애들도 마찬가지겠지! ’
효민은 오브라의 말에서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 제가 한국의 어린 소녀들의 구원자가 될 수 있겠네요. ”
“ 그렇죠. ”
“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
“ 네? ”
오브라가 효민의 말에 의문을 표현하자 설혁이 나서서 설명을 해줬다. 효민의 머릿속을 꿰뚫고 있는 설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블랙로즈가 그녀들을 군대에 안 가고 혼자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키워줄 수 있지만, 그것에는 문제가 있어요. ”
“ 무슨 문제요? ”
“ 블랙로즈가 그녀들을 짧은 시간 안에 키워주기 위해서는 사냥 중에 계속해서 그녀들과 키스를 해서 마나를 전해줘야 한다는 거죠. 어린 소녀들이 과연 키스 받는 것을 좋아할까요? ”
설혁의 말이 끝나자 게시판이 다시 폭주했다.
[ 그럼 저를 키워주세요. 저는 남자 고등학생입니다. 능력자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키스만 받게 해주세요. ]
[ 블랙로즈 같은 미녀라면 저도 키스하고 싶어요. 블랙로즈가 안된다면 스노우맨이라도. ]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블랙로즈와 키스하고 싶다는 말. 오브라가 게시판을 보면서 설혁에게 말했다.
“ 놀랍군요! 지금 현재 올라온 게시물의 100%가 블랙로즈와 키스를 하고 싶다는 내용인데요? 한국의 소녀들도 블랙로즈와 키스하고 싶어 할 것 같네요. ”
오브라의 말을 들은 설혁이 두 손을 들었다.
“ 제가 졌습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블랙로즈와 키스하고 싶어 한다니. 하지만 제가 블랙로즈가 다른 사람과 키스하는 걸 못 보겠습니다. ”
“ 여자 끼리 인데요? ”
“ 여자끼리 결혼할 수 있는 나라에서 사는 분답지 않은 대답인 거 알고 계시죠? ”
설혁의 말에 오브라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사실 스노우맨에게도 관심이 가고 블랙로즈에게도 관심이 간답니다. 두 분 다 너무 매력적이에요. 두 분 다 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지네요. ”
“ 오브라씨 위험한 사람이었군요! 어쨌든 블랙로즈가 원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블랙로즈를 어린 여학생과 키스시킬 생각은 꿈에도 없습니다. ”
설혁의 말에 오브라가 안색을 굳혔다.
“ 많은 어린 여학생을 구원하는 일인데도요? ”
오브라의 말을 들은 설혁이 씩 웃었다.
“ 사실 저희는 이미 어린 여학생을 구원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그 구원의 손길을 잡고 말고는 어린 여학생이 판단할 일이죠. ”
설혁의 말을 들은 오브라와 효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효민이 설혁의 품 안에서 설혁을 올려다보며 질문을 했다.
“ 언제 우리가 그녀들을 구원할 장치를 마련했어? ”
“ 기억 안 나? 우리가 슬라임을 대량으로 학살하면서 헌터 부적 합자들이 한국 에너지 공사에 입사하게 된 것을. 최소한 헌터 부적 합자들이 군대에 가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길을 우리가 만들어 냈잖아! 헌터 부적합자들이 군대에 가지 않고 위험하지 않은 슬라임만 사냥하며 살 수 있는 길 말이야! ”
설혁의 말을 들은 효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효민은 설혁의 머리를 또 쓰다듬었다. 알고 보니 이 남자 자신만 구원한 게 아니라 한국의 수많은 헌터 부적합자를 구원한 멋진 남자였다.
효민만 고개를 끄덕거린 것이 아니다. 오브라는 아예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방청객들도 설혁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 굉장하군요. 사냥만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 해결책을 생각해 낼 정도라니. 진정한 이 시대의 노블이군요. ”
설혁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환호하며 박수를 치자 고개를 저었다.
“ 아뇨. 그냥 얻어걸린 겁니다. ”
“ 아니에요. 슬라임 사냥이라는 하찮은 일에 두 분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거죠. 강제로 군인이 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
오브라의 말에 설혁은 또 다른 한국의 문제에 대해 말했다.
“ 한국의 남자들은 각성하지 않아도 강제로 군인이 되는데요? ”
“ 남자와 여자는 다르니까요. ”
오브라의 말을 들은 설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오브라씨는 남녀평등 주의자가 아닙니까? 어떻게 그런 발언을. ”
“ 아뇨. 남자와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완전히 다른 존재이니까요. 남녀평등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요. 저는 남녀평등주의자가 아니라 여성상위 주의자에요. 여자가 남자에게 원하는 게 돈과 힘이라면 남자가 여자에게 원하는 건 미모 하나잖아요. 돈을 벌고 힘을 키우는 것보다 미모를 가꾸는 게 더 힘든 건 당연한 사실. 그리고 군대가 남자에게는 힘과 근육질 몸매를 선물하지만 여자에게서는 미모를 강탈해 가니까 여자가 군대에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
“ 헐! 여군을 모독하는 겁니까? ”
“ 그건 아니고요. 사람마다 취향이란게 다 다르니까요. 힘을 원하는 여자는 군대를 선택하겠죠. 하지만 대다수의 제 여성 시청자들은 군인이 되어 누구를 지키기 보다는 힘센 남자에게 보호와 사랑을 받는 걸 더 좋아하더라고요. ”
오브라의 말에 설혁이 고개를 끄덕 거렸다. 설득된 것이다. 효민도 설득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설혁의 품에서 한마디 했다.
“ 나도 누군가를 보호하는 것 보다는 동글이 너에게 보호 받는 게 더 좋아! ”
“ 오! 그래? 그럼 커피는 어떡하려고? ”
“ 응, 이제 다른 커피에는 관심 없어. 난 역시 한국인이었어. 동글레 차가 최고더라! ”
설혁은 효민을 안은 체 의자에 앉았다. 그런 둘을 보며 오브라가 입을 열었다.
“ 제가 나름 고민해서 제기했던 문제를 두 분은 이미 예전에 해결한 문제였으니 더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며 지낼 건지 궁금하네요. ”
오브라의 질문을 들은 효민이 입을 열었다.
“ 당분간은 동글이와 식도락 여행을 할 예정이에요. 그동안 능력을 올리는 데만 신경을 써서 젊음을 만끽하지 못했거든요. 한 몇 달은 E급 게이트로 식도락 여행을 다닐 생각입니다. ”
효민의 말을 들은 오브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 하긴 이제 스무 살에 불과 한 두 분이 그동안 잡은 괴수가 2,000만 마리가 넘으니 이제 쉴 때도 되었죠. ”
오브라는 여행을 한다는 효민의 말에 긍정을 표현했다. 하지만 공인으로써의 입장을 잊지는 않았다.
“ 하지만, 두 분 같이 능력 있는 분들이 괴수와의 전쟁에서 오랫동안 빠진다는 건 인류에게 큰 손해라는 걸 두 분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
“ 알겠어요. 적당히 놀고 다시 괴수 퇴치에 힘을 쓸게요. ”
“ 그럼 오브라 원브라 쇼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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