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선생님(2)
학교에서 돌아온 설혁과 효민은 커피를 마셨다. 평소에는 설표를 의식해 조용히 원두를 볶던 설혁과 효민도 오늘만큼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원두를 볶았다.
“ 아! 당신이 무능한 게 아니라 너무 유능했기에 우리 둘째가 안 생긴 거예요. ”
“ 칭찬해줘서 고마워요. ”
기분이 나쁠 때는 동글아라고 부르며 반말을 하는 효민이었지만 커피를 잔뜩 마신 효민은 하늘을 나는 기분에 세상 그 어느 여자보다 부드러운 말투로 설혁에게 말을 걸었다. 설혁은 힘쓴 보람이 있다고 느끼며 효민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안나가 설표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 설표야! 고기 잡는 것 재미있었지! ”
“ 네! 이모. 참치가 그렇게 빠르게 헤엄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무슨 오토바이가 빠라바라 빠라밤 하는지 알았어요. ”
설표의 말을 들은 조안나가 미소를 지었다.
“ 이야. 빠라바라 빠라밤이라니. 우리 설표 표현력 끝내주네. 시인으로 나가면 되겠어요! ”
보통 애 엄마들이 자기 애가 천재인 줄 안다는 증상에 조안나가 걸렸다. 조안나는 설표를 안고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 설혁과 효민을 향해 말했다.
“ 식사는 했어요? ”
“ 아니. 커피로 배 채웠어. ”
당당한 설혁의 말에 조안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한 손에 들고 있던 시장바구니를 설혁에게 내밀었다.
“ 설표가 엄마랑 아빠를 위해 잡은 참치를 구워서 만든 참치구이에요. 좀 식었지만 그래도 맛있을 거예요. ”
조안나의 말을 들은 설혁과 효민이 눈을 반짝였다.
“ 오! 우리 아들이 엄마와 아빠를 위해 참치를 잡았다 이거지. 우리 아들 다 컸네. ”
설혁과 효민의 칭찬들은 설표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 거의 이모가 잡아주긴 했지만, 저도 사냥 중에 참치 지느러미 잡았어요. ”
“ 오구, 우리 아들 장하다. ”
효민은 설표를 끌어안고 엉덩이를 토닥거려줬다. 그러는 동안 설혁은 참치구이를 탁자에 펼쳤다. 조금 식긴 했지만 맛있는 향기가 났다.
“ 이야! 괴수 고기가 아닌 참치 고기라니 굉장히 귀한 음식을 우리 설표가 준비했네! 설표 짱! ”
설혁이 설표에게 엄지를 내밀어 보이자 설표도 엄지를 들어 올려 보였다. 그러면서 아빠의 엄지와 자신의 엄지를 도장 찍듯이 찍었다. 그리고 어깨를 추어올리고는 설혁과 효민에게 말했다.
“ 엄마! 아빠 얼른 먹어봐요. 진짜 맛있었어요. ”
“ 맛있어? 무슨 맛인데? ”
설표의 말에 효민이 미소를 지으며 질문하자 설표가 팔을 벌리고 말했다.
“ 혀 위에서 참치가 헤엄치는 맛이었어요. ”
“ 오! 그래요? 정말 맛있었나 보네. ”
설표의 말을 들으며 설혁과 효민은 참치 고기를 먹었다.
“ 음, 정말 맛있네. ”
커피를 마시느라 엄청난 체력 소모가 있었던 둘에게 돌을 줘도 맛있다고 먹었을 건데 싱싱한 참치를 구운 고기를 줬으니 맛이 있게 먹는 건 당연했다. 식사를 마친 뒤 효민이 설표에게 말했다.
“ 우리 아들 엄마랑 목욕할까? ”
효민의 말을 들은 설표가 고개를 저었다.
“ 싫어? 바다에 들어갔다 나와서 씻어야 하는데. ”
“ 응? 목욕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고 조안나 이모랑 목욕할래요. ”
“ 응, 그래? 알았어. ”
결국, 설표는 조안나랑 목욕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설혁과 효민은 더블샷을 마셨다. 조안나는 설표가 깨기 전에 얼른 안고 공중에 떠야 했다.
“ 아니. 이 인간들은 '적당히'를 몰라. 애 깨면 어떡하려고? 어휴, 설표가 잠귀가 어두워서 다행이지. ”
조안나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설표를 안고 공중을 날아서 소리소문없이 부부의 침실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커피 향을 음미했다.
“ 아씨. 이러다가 나 변태 되는 것 아니야? 내가 변태가 되면 다 언니랑 오빠가 잘못 한 거야! ”
그렇게 설표를 제외한 세 사람은 밤을 꼬박 셌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설혁과 효민은 다시 학교로 출근을 하려 했다.
“ 설표야! 이모랑 잘 놀고 있어. ”
“ 응. 오늘은 펭귄 보러 가자고 해야지. ”
설표의 말을 들은 효민의 몸이 살짝 굳었다. 효민은 조안나를 불러 신신당부를 했다.
“ 조안나. 추운 데는 안 돼! 우리 설표 감기 걸려. ”
“ 알았어요. 언니는 설표 생각하지 말고 학생들 교육이나 신경 써. 설표는 내가 알아서 키울게. ”
조안나는 추운 곳에 안 갈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설표와 칠레에 갈 생각이었다. ‘ 뭐 다녀와서 바로 힐 받으면 문제없겠지. 우리 설표가 펭귄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한번 만지게 해줘야지. ’
“ 조안나! 오늘은 애들 데리고 실습에 들어가니까 잘하면 오늘 게이트에서 밤 셀지도 몰라. 그러니 우리가 안 오더라도 시간 되면 설표 재워. ”
“ 알았어요. ”
조안나에게 이런저런 당부를 한 효민은 설혁과 차에 탔다. 원래 뛰어가는 게 더 빠르지만, 교수라는 위치에 있다 보니 차를 타고 다니게 된 것이다.
둘은 자가용 뒷좌석에 앉아 오늘 실습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 이동식 화장실은 몇 개나 챙길 거예요? ”
효민의 질문에 설혁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 한 개도 안 챙겨볼까 하는데. 그래야 애들이 나중에 화장실 챙기는 걸 잊지 않지. 슬라임에게 엉덩이를 한번 쓱 닦여봐야. 아! 화장실 사는데 돈 아끼는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닫지. ”
설혁의 말을 들은 효민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 아! 여보 너무 못됐다. 자기가 슬라임에게 뒤를 닦여봤다고 애들도 당하게 하려 하다니. ”
“ 아니, 뭐, 꼭 그런 의미는 아니고. ”
웃던 효민은 웃음을 멈추고 설혁에게 말했다.
“ 그러지 말고 5개만 준비해요. 여자애들이 그런 걸 당하면 얼마나 놀라겠어요. ”
“ 알았어요. 40명에 5개 정도면 딱 충분할 것 같네요. ”
말을 마친 설혁은 이동식 화장실 판매 업체에 전화했다.
“ 여기 성남 부적합 헌터 학교인데요. 이동식 화장실 다섯 개만 제가 불러주는 게이트 앞으로 배달해줘요. 1,000만 원이라고요? 가격이 많이 올랐네요. 알았어요. 지금 당장 송금할 테니 늦어도 9시까지는 꼭 배달해줘요. ”
설혁은 전화를 끊고 효민에게 말했다.
“ 주문 완료. 그나저나 침대는 준비했어요? ”
“ 침대요? 침대는 왜? ”
“ 당신 요즘 계속 밤새워서 힘들잖아요. 이 기회에 누워서 쉬지. ”
설혁의 말을 들은 효민이 미소를 지었다.
“ 호호호. 당신의 정기를 빨아먹어 말짱하답니다. 그러는 당신이나 침대를 사서 좀 쉬는 게 어때요? ”
“ 흐흐흐, 당신에게 정기 빨린다고 지칠 내가 아니죠. 그렇지만 어차피 게이트에서 할 일도 없을 것 같으니 당신 것까지 침대를 준비하죠. ”
“ 여보, 고마워요. ”
둘의 대화는 정자동의 부적합 헌터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학교에 도착한 설혁과 효민은 운동장에 주차해 있는 버스로 차를 갈아탔다. 버스에는 학생들이 미리 와서 타 있었다.
설혁과 효민은 버스에서 출석을 부른 뒤 버스를 출발시켰다. 효민은 자기 반 학생들에게 말했다.
“ 다들 자신이 쓸 간이침대 준비했죠? ”
“ 네! 교수님. ”
“ 좋아요. ”
그에 반해 설혁은 반 애들에게 별말 안 했다.
“ 게이트에 들어가면 마음껏 사냥을 해봐요. 그러다 지치면 쉬고. ”
“ 쉬다가 슬라임에게 공격당하면 어떡해요? ”
“ 한번 공격당해봐요. 슬라임의 몸이 생각보다 기분 좋을지도. ”
“ 우! 교수님 변태! ”
설혁의 말에 설혁의 학생들이 ‘우’거렸다. 그러자 설혁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 원래. 직접 뭐든지 직접 경험해 봐야 기억에 오래 남는 거예요. ”
“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모님도 슬라임의 몸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 아니에요? ”
“ 당연하죠. 내 여자가 나보다 슬라임을 더 좋아하면 큰일이니까요! ”
설혁의 말을 들은 학생들이 혼란에 빠졌다.
“ 어? 진짜 슬라임에게 덮쳐지면 기분이 좋아지나? ”
중얼거리는 학생들을 보며 설혁이 미소를 지었다. ‘ 끈끈한 슬라임이 몸에 달라붙으면 기분이 이상할 거다. 지금의 효민이라면 즐길지도 모르겠네. ’ 혼자 상상을 하며 미소를 짓는 설혁을 보며 효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아!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하길래 그런 음흉한 표정을 짓는 거예요? ”
“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 게이트까지 가는 데 20분은 걸리니 잠시 눈 좀 붙여요. ”
설혁은 효민에게 한숨 자라고 말한 뒤 눈을 감았다. 몇 년 지났지만, 슬라임의 감촉은 어제 당한 것처럼 생생했다. ‘ 나만 이런 기억을 가질 수 없지. 너희들도 당해보렴. 그럼 슬라임을 상대할 때 전투력이 상승할 거야. ’
그리고 20분 뒤 버스는 F-3 슬라임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게이트 앞에는 이미 화장실을 실은 트럭이 도착해 있었다. 설혁은 이동식 화장실을 인계받고 학생들을 두 줄로 세웠다.
“ 모두 조용히 해주세요. 우리가 들어갈 게이트는 F-3 슬라임 게이트예요. 게이트 내부에 서식하고 있는 슬라임의 수는 2,000마리로 예상되니 우리 반의 20명이 각 100마리씩 잡으면 돼요. ”
“ 헐! 한 사람당 100마리나 잡으라고요? ”
“ 협동해서 잡으면 10시간이면 다 잡을 수 있어요. 혼자 잡겠다고 날뛰다 보면 24시간이 지나도 10마리도 못 잡을 수 있으니 협동해서 사냥하는 데 주력하세요. ”
설혁의 말이 끝나자 효민도 자기 반 학생들에게 말을 했다.
“ 우리는 들어가서 침대 펴고 그 위에 앉아서 호흡훈련을 하면 돼요. 마나가 찰 때마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슬라임에게 마나탄을 날리는 것도 잊지 말고요. 슬라임에게 마나탄을 날리는 게 무서운 사람은 하늘을 향해 마나탄을 날려요. 중요한 것은 몸 안에 마나를 남겨 놓지 않는 거예요. ”
“ 네! 교수님. ”
효민의 반 학생들은 설혁의 반 학생들보다 표정이 밝았다. 사냥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설혁의 반에 들 수 없을 정도로 열등생이기도 했다. 하지만 효민은 그녀들도 훌륭한 헌터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은 그녀들보다 더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의 훈시가 끝나고 게이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준비한 물건이 없던 설혁 반의 여자아이들은 4명씩 짝을 이뤄 이동식 화장실을 끌고 게이트로 들어갔다.
“ 칫, 화장실을 끌고 다니게 될지 몰랐어. ”
설혁은 투덜거리는 여자애들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 나중에는 화장실 없으면 게이트 안에 들어가려 하지도 않을 거다. 맘 편한 장소가 게이트 안에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인지 모르는구나! ”
효민이 앞장서고 설혁은 맨 마지막에 게이트로 들어갔다. 슬라임 게이트는 역시나 초원이었다. 게이트 들어선 여자애들은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 감탄했다.
“ 와! 멋있다. ”
설혁도 초원을 둘러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굉장히 오래전의 일같이 느껴졌는데 계산해보니 10년도 안 된 얼마 전의 일이었다.
“ 슬라임 게이트에 들어올 때마다 감성적이 되네. 그러고 보면 슬라임이 효민이와 나에게 부와 명예를 선물해준 건가! ”
감상에 빠졌던 설혁은 정신을 차리고 손뼉을 쳤다.
“ 자! 다들 화장실을 적당한 위치에 설치하고 사냥을 시작하세요. 슬라임이 여러분을 덮쳐도 기껏해야 몸이 끈적한 액체로 범벅이 되는 것뿐이니 맘 놓고 사냥하세요. ”
설혁의 말을 들은 여자애들이 기겁했다.
“ 히익, 끈적한 액체 싫어! ”
그렇게 F-3 슬라임 게이트에서 교육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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