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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님의 서재입니다.

마도 명가의 소드 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수려한.
작품등록일 :
2021.05.12 10:41
최근연재일 :
2021.07.24 14:00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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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56
추천수 :
219
글자수 :
41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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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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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벤델 루이스

DUMMY

잡티 하나 없는 순백의 벽지.


사방이 비쳐 보일 정도로 반들반들한 대리석이 깔린 바닥.


부서지는 빛에 찬란한 색깔을 부여하는 진귀한 보석으로 장식된 샹들리에까지.


실내를 더럽힐까 두려워 감히 발길을 들이는 것조차 저어되는 이 장소에.


나신의 미남자가 잠들어 있다.


“······후.”


금발로 빛나던 머리카락은 새카맣게 물들고, 푸른색의 눈동자에도 어둠이 깃든다.


후욱!


내부를 밝히던 샹들리에의 촛불이 일시에 꺼지고, 깨어난 남자가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하아. 하아···. 이게··· 마기에 잡아먹히는 느낌인가···.”


남자는 생명의 숲에서 겪었던 느낌을 되새겼다.


손발의 끝부터 벌레들에게 갉아 먹히는 끔찍한 느낌.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강렬한 고통에 폭소를 터트린다.


“프흐흐. 푸하하하하!”


총단에도 보고하지 않고 심연 깊숙이 보관 중이었던 타락의 종자는 성공적으로 발아했다.


부여한 마나의 성질을 머금고 존재의 근본부터 오염시키는 악마적인 성유물.


그게 어째서 성국이 신성시하는 성유물이라 불리는 것인지는 남자도 알지 못했다.


자신의 마나를 주입했을 뿐인데 그토록 폭발적인 마기를 내뿜는 악마적인 아티팩트가 성유물이라니.


“모조리 마기에 물들어라.”


비록 성지에 직접 종자를 심지는 못했으나 마기에 휩쓸려 영혼이 무참히 찢겨나가기 전에 본 그 정도의 파괴력이라면 생명의 숲 중심부는 사람이 발을 내딛는 것조차 불가능한 폐허가 되었을 터다.


“그리고 당신도···. 이 느낌을 받으셨겠지요.”


아이리스.


사사건건 의식을 방해한 시건방진 하이 엘프.


손쓸 수도 없이 폭주하는 마기에 그녀도 같이 휘말렸겠지.


고작 숲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따위에 속박되어 그 고결한 힘을 낭비하고 있는 어리석은 종족의 수호자.


자신이 감추어둔 크나큰 패를 내보였지만, 거슬리는 하이 엘프와 세계수를 한꺼번에 오염시킬 수 있다면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이제는 헥사르의 권좌 한자리를 차지할 일만 남았다.


······라고 남자가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고 있을 때.


암실이 된 실내에 어둠이 뭉쳐 사람의 형상을 이룬다.


그 익숙한 기운에 남자는 짐짓 엄숙한 표정을 연기한다.


마기와 무거운 마나로 혼탁한 생명의 숲에서 여기까지 억지로 공간 마법을 전개한 탓에 아직도 심장이 제멋대로 뛰고 있다.


싱싱한 생명을 흡수하지 않으면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별이 망가졌다.


그러기 위해선 총단의 도움이 절실하다. 바로 지금 나타난 사람에게 부탁해서라도.


“그렇게 호언장담하고 하우레스 님과 계약을 맺더니, 한다는 일이 고작 꽁무니 빼는 일이었나.”


“······무슨 뜻이죠? 저를 놀리려는 의도로 하신 말씀이면 상당히 재미없는 농담인데요.”


“쯧. 어리석은 놈.”


음성이 흘러나오는 어둠 속에서 붉은 정광이 번뜩인다.


“실패했어. 소환된 마족이 전부 사라지고 세계수는 멀쩡해. 도대체 거기서 무엇을 한 것이냐?”


“······뭐라구요?”


“네게 허락된 권좌는 없다. 의식이 실패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총단에서 말까지 나온 상황이지.”


암흑 속에 가려진 남자의 얼굴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긴다.


“······하긴, 그쪽도 꼬리를 잘라내기에 여념이 없겠다만.”


어둠이 내뱉은 말은 남자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실패.


그 단어가 남자의 귓속에 맴돈다.


‘······어떻게?’


흑마법을 접하고 단 한 번도 그만한 양의 마기가 폭주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다.


숲의 모든 것을 오염시킬 정도로 폭주했던 마기의 총량은 감히 누가 감당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세계수도 오염됐으리라 믿었는데.


“그래서, 이번엔 어떤 변명을 준비했지? 이젠 아놀드나 아펠라와 같은 방패막이도 없는데.”


“정말인가요?”


“내가 너에게 거짓을 말할 이유가 있나?”


“그렇다면 제가 책임을 지도록 하죠. 확실하게. 권좌에 앉아 계신 분들께는 꼭 이 말을 전해주세요. 이 모든 일의 책임을 지고 제가 그분들이 만족할만한 선물을 헥사르에 안겨 준다고.”


“······네 몸이나 추스르도록 해라. 회복에 필요한 생명을 공급해 주지.”


뭉쳐있던 어둠이 흩어진다.


남자가 조용히 생각했다.


무슨 방법으로 넘쳐나는 마기를 수습했는지.


게헨나의 마족이나 마물이 아니라면, 모든 생명체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마기를 어떻게.


일단 자신이 얼마 만에 깨어났는지 파악해야 한다.


총단이 숲의 근황을 파악한 것을 보면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상태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펼친 공간 이동으로 예상보다 시간 축이 더 뒤틀렸다.


······그리고 힘을 회복한다. 깨어진 별을 복구하고, 새로운 의식을 준비한다.


이번에 자신을 방해한 존재에겐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주리라.


‘로벤 루이스.’


하우레스를 벤 시건방진 사티아의 애송이.


그 시작은 가장 먼저···. 그놈부터.


끄아아악!


남자가 있는 방의 바깥에서 애처로운 비명이 들려온다.


‘이 빚은 꼭 갚도록 하죠.’


바깥에서 흘러들어오는 생명력을 온몸에 받아들이며, 남자는 눈을 감았다.


*


향긋하게 볶아진 커피 향이 연구실을 가득 메웠다.


수석 교수로서 처리할 모든 업무를 끝낸 세렌이 여유롭게 잔에 뜨겁게 달구어진 포트 안의 물을 붓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했다.


곧,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언제 온다고 했지?”


“내일이요. 마샬에서 루시 씨가 직접 사티아에 방문한다고 하더군요.”


“아~ 저번에 네가 사건의 수습을 맡았을 때 너에게 헥사르의 존재를 언급한 스티어의 딸이라고 했던가?”


“예. 헌데···. 세렌도 스티어···님을 알고 계셨나요?”


세렌은 잔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다리를 꼬았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건 아니고, 그가 마샬의 상단주라는 것은 알고 있지.”


“이참에 마샬과 교류를 트는 건 어때요. 세렌 정도의 대마법사가 먼저 제안하면 마샬은 거절할 수 없을 텐데요. 게다가 세렌이 필요로 하는 그 귀한 물건들도 이렇게 구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초대형 상단인데, 세렌에게도 좋지 않겠어요?”


“······우리 귀여운 막내 공자님이 대견한 소리를 하는데. 아쉽게도 그렇게 할 수는 없어. 대마법사는 상단의 이권 다툼에 끼어들면 안 되거든. 그들이 주는 도움을 거절하지는 않겠다만, 직접적으로 거래를 하는 건 금물이야. 안 그러면 마탑과 학회가 서로 마석의 유통량을 틀어쥐고 개싸움을 벌일 수도 있으니.”


세렌이 해주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대마법사 정도 되는 위치에 있는 마법사가 상단과 직접적인 거래를 하는 게 금물이라니.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었나 보네요?”


“뭐 오래된 일은 아니야. 품질 높은 마석을 대량 유통하던 상단 하나가 그들이 후원하는 대마법사에게 부탁해 새로운 유통망을 뚫어보려고 한 것을 시작으로 너도나도 뒷돈을 주고 청탁을 한 거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과열되자 탑주와 학회장이 직접 못을 박았지.”


그녀는 가볍게 비웃음을 지었다.


“상단의 아귀다툼에 대마법사가 개입하는 것을 금한다고. 마법이라는 유구한 학문을 탐구하고 후배들을 선도해야 할 대마법사가 고작 상인들의 잇속 챙기기에 끼어드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이냐면서.”


“근데 세렌은 마탑과 학회 소속이 아니잖아요?”


“어머. 나도 그 늙은이들의 눈치는 봐야지. 대놓고 튀는 건 괜히 그들에게 명분을 주는 거라고.”


내가 지켜본 세렌의 성격상 그녀가 다른 대마법사의 존재를 의식할 리는 없으니, 루드비히가 마탑과 학회로부터 가져온 사티아 아카데미의 운영 주도권을 내줄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것을 견제하는 듯했다.


“그보다 이번에 본가에 내려간다며?”


“예. 어머니가 많이 걱정하십니다. 타국의 반역에 사티아의 교수진이 관계되어 있었던 것을요.”


실제로 아놀드와 아펠라가 반역을 위해 일을 벌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보이도록 조사가 이루어졌으니 마리아의 걱정은 당연하다.


세렌이 내 앞에 고급스럽게 포장된 상자를 띄워 올린다.


“······이게 뭡니까?”


“빈손으로 가지 말라고 내가 주는 선물이야. 라냑 50년 산, 진짜배기 술이지. 공작님께 전해드리도록 해.”


“뭘 이런 걸 다···.”


바로 받아서 망토에 집어넣었다.


루이스 공작과 친분이 있는 세렌이었기에 신경 써준 모습이었다.


-언제 와?


내가 자리를 비운다는 사실을 알려주자마자 셰스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에게 냉담하게 굴었다.


아리아를 제외하면 가장 친해진 사람이 나였으니, 나름 섭섭한 티를 낸 것이다.


셰스의 머리를 톡톡 두드려주며 대답했다.


“2주 안엔 올 거야. 그동안 세렌을 잘 도와줬으면 좋겠네.”


-알아! 이번 일이 끝나면 아리아한테 갈 거니까!


“그래. 내가 데려다줄게.”


아리아가 세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셰스를 보냈으니, 그 일이 끝나면 아리아에게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


셰스가 그걸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지···.


-진짜 이럴 때는 가지 말라고 해야지···. 눈치 없기는.


“후후. 귀여워.”


세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셰스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원하는 대답이 이게 아니었나?


“로벤. 조심해. 우리가 헥사르의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만큼, 그들도 너를 주시하고 있을 거야.”


“물론입니다. 놈들 입장에서도 제가 굉장히 거슬리겠죠. 특히 그 흑마법사···.”


에센에서 세렌이 놓치고, 이번에 숲에서도 내가 놓친 헥사르의 흑마법사.


녀석은 우리에게 분명 이를 갈고 있을 터다.


“그래.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 그럼 잘 갔다 와.”


“예.”


세렌의 연구실을 나섰다.


목적지는 루이스 공작령.


게이트로 가디우스의 최남단 도시인 바호른까지 이동 후 곧장 국경을 지나기로 했다.


나라 간에 게이트를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세렌의 경고가 아른거린다.


이제야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 녀석들은 그 거대한 몸집을 음지에 숨기고 있는 조직이었다.


드러내놓고 활동을 시작한 이상, 대륙에 얼마만큼의 혼란을 야기할지 모르는 놈들이다.


또 이번의 작위 계승식···.


어쩐지 예감이 불길했다.


벤델은 정실부인인 마리아의 장남인 데다가 그 입지도 굳건해서 분명 계승이 확실하지만.


다른 외가 쪽에서 보이는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고 전해 들었다.


벤델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이번엔 내가 벤델의 도움이 되어야겠지.


난 게이트가 위치한 에센의 중앙 지구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


“······나중에 보자고 비앙카.”


“그래요. 유리 씨도 그렇게 맨날 먹을 것을 밝히면 금세 살찌니까 조심하시구요.”


“너는 꼭 말을 해도!”


슈라도 고향에 내려가고, 비앙카도 마도 왕국에 돌아간다.


2주 동안, 기숙사가 텅 비는 것이다.


유리는 어쩐지 허전한 마음이 들었으나 최대한 티를 내지 않았다.


비앙카가 간다고 섭섭한 티를 낸다면, 괜히 자존심이 상하고 지는 느낌이 들었기에.


“······유리 씨. 다음에는 저희 왕국에 놀러 오시는 것이 어때요?”


“갑자기?”


“뭐, 저보다는 아니겠지만···. 유리 씨도 마법 재능이 뛰어나신 것 같아서 해드리는 말이에요. ······마도 왕국에는 유리 씨를 이끌어줄 수 있는 훌륭한 마법사분들이 계시거든요.”


스스로의 재능을 맹신하고 남을 인정하지 못했던 비앙카의 성격은 로벤을 만나고부터 바뀌었다.


이 세상엔 자신이 아니더라도 괴물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앙카가 생각하기엔 유리도 재능이 뛰어난 마법사였다.


무엇보다 잠도 자지 않고 독하게 시험공부를 할 때의 모습.


재능을 뒷받침해줄 만큼의 노력을 보였다. 그런 유리가 자신처럼 재능을 알아봐 주는 스승을 만난다면 어떨까···.


“사티아에도 훌륭한 교수님들이 계시는데 뭐. 그리고···. 로벤 선배도 있으니···.”


순간, 유리의 말을 놓치지 않은 비앙카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나 내색하지 않고 비앙카는 몸을 돌렸다.


“뭐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마도 왕국은 볼거리도 많고, 유리 씨가 좋아할 만한 음식이 있어서 해본 말이에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 테니, 기숙사 잘 지키고 계시길 바라요.”


“응.”


비앙카가 기숙사를 나선다.


그렇게, 사티아의 1학기가 막을 내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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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 명가의 소드 마스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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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드러나는 어둠 21.07.24 91 0 14쪽
70 론 그리고 비앙카 21.07.20 81 0 14쪽
69 론 그리고 비앙카 21.07.17 81 0 16쪽
68 벤델 루이스 21.07.15 86 0 13쪽
67 벤델 루이스 21.07.13 110 0 13쪽
66 벤델 루이스 21.07.12 90 0 12쪽
65 벤델 루이스 21.07.09 93 0 11쪽
64 벤델 루이스 21.07.08 98 0 12쪽
» 벤델 루이스 21.07.06 95 1 12쪽
62 1학기 시험 21.07.05 116 1 15쪽
61 1학기 시험 21.07.04 111 1 13쪽
60 1학기 시험 21.07.03 121 1 15쪽
59 1학기 시험 21.07.02 125 1 14쪽
58 1학기 시험 21.07.01 133 1 15쪽
57 1학기 시험 21.06.30 173 1 15쪽
56 그라고스 성국 21.06.29 160 1 12쪽
55 그라고스 성국 21.06.28 160 0 14쪽
54 그라고스 성국 21.06.27 171 1 12쪽
53 그라고스 성국 21.06.26 181 1 13쪽
52 복귀 21.06.25 200 1 14쪽
51 복귀 21.06.24 211 1 13쪽
50 비극 21.06.23 189 1 14쪽
49 비극 21.06.22 199 2 13쪽
48 비극 21.06.21 198 1 13쪽
47 비극 21.06.20 201 1 13쪽
46 격전 21.06.19 217 1 14쪽
45 격전 21.06.18 222 1 14쪽
44 격전 21.06.17 215 1 12쪽
43 격전 21.06.16 2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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